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카페라떼

커피 맛 우유인지 우유 맛 커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카페라떼가 3/4쯤 채워진 잔을 앞에 놓고 나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곧이어 의자를 가져갔고 그곳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도 전부 카페라떼를 시킨 듯했다. 곧 나는 거기서 눈길을 지웠다. 저쪽을 보면 노트북을 선으로 연결해 충전하고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하면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붙여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시선을 돌리면 환기 때문에 정문을 열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 추운 공기가 들어온다. 나는 펜촉을 돌리며 3/4쯤 채워진 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꿈을 잃고 이곳으로 걸어온 것일지도 몰랐다. 저쪽을 보면 공용 주차장이 있고 차들이 꽉꽉 차 있다.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카페라떼를 시킨 듯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연한 갈색의 음료. 섞지 않으면 밑에 흰 우유 부분이 가라앉아 있다. 사실 이 카페에서는 카페라떼밖에 팔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한 장소 안에서 모두 같은 음료를 마시고 있다니. 어쩌면 거기에서 피어나는 동질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용무와 상념으로 바쁜 것 같았고 어쩌면 멍청해 보이는 자기만의 웃음을 짓는 사람도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잔에 채워진 카페라떼를 조금씩 마셨다. 아껴가며 마셨다. 왜냐하면 여기 오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까 직원에게 음료를 받던 때를 상기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했는데 나는 그만 대답을 하지 않고 말았다. 시럽을 7번 눌러서 카페라떼에 붓고 난 뒤 나는 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곳을 꿈이라고 생각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의 정경이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꿈은 아닐 것이다. 아니겠지.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실감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것은 권태였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종류의 권태를 느꼈고 그것이 실감 났다. 나는 달콤한 카페라떼를 좋아했다. 내가 마시고 있는 카페라떼에서는 충분한 단맛이 났다. 그것은 연유 라떼라고 하는 것들과 맛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 같이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이 광경 속에서 나와 옆 사람, 옆옆 사람, 옆 사람들과의 차이가 덜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예전에는 꿈을 꾸곤 했는지도 몰랐다. 요즘에 나는 꿈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꿈과 가까웠던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지금은 꿈을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거기에는 이전의 관성이 남아 있고 기록되어 있어서, 지금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한번 가까웠던 것은 운명의 실이 그것을 매단 채 놓아주지 않고 있다. 내게 있어선 그런 것이 거리이다. 아무리 멀어져도 금방 닿을 수 있고, 가까이 있어도 먼 그런 귀속들. 그런데 난 여기에서 무엇이 그리운 걸지도 몰랐다. 나는 무엇이 그리운 걸까? 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거리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한번 가까웠다가 이제 멀어지게 된 것들의 생각이 난 듯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것은 거미줄과 모양이 엇비슷했다. 거리가 먼 것 같아도 휴대폰과 SNS 등을 통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반면에 이곳의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거리가 가까운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볼록 렌즈 너머로 보는 세상이 볼록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한 느낌이 나를 이 자리에 붙박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이 내가 느낀 권태의 전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동할 수 있으나 이동하기 어려웠고, 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카페라떼는 아직도 정확히 3/4이 잔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오래 있으려고 너무 조금씩 홀짝인 것일지도 몰랐고, 나는 여기에서 잘못된 전언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도 오목하게, 거리가 가까운데 나에게서 거리가 먼 듯했다. 어쩌면 안경을 안 닦아서인지도 몰랐고, 아니면 지금 내가 두 눈으로 흘리고 있는 눈물이 시야를 가려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져 울었다. 나는 이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울었다. 하나둘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 꾸던 꿈은 카페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카페라떼를 마시는 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때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의 곡물창고들 '21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부랑자 이야기

그의 내력을 설명하자니 길고, 용모에 관해서 눈여겨보자니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부랑자였다. 땅 아래의 땅이라는 곳에서 올라온. 전신에는 티끌들이 묻은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이마 아래의 눈은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함께하는 사람이 없이 시내를 걸었다. 혹시 아득히 멀리 닿은 운명의 실이 이 시내를 걷는 사람들 중의 하나와 그를 묶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무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걷기만 했다. 지상의 사람들과 아직 접점이 생기지 않은 채로 그는 설족 노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옆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눈빛이 형형한 쥐들이 경계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여기서 인간의 육신을 갖고 있는 것은 사방에 가득한 쥐들의 무리 중에서 그와 노인뿐이었다.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그대는 가진 게 없군.” “이 붕대뿐이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의 붕대 사이사이에는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흰 가루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난 뒤 그 자리에 남는 눈물 자국에서 발견되는 흰 가루들인 것 같았다. “일부러 찾아온다면 이곳에 닿을 수 없소.”라고 노인이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정처 없이 걷고 있던 중이었소.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은지라.” 그와 노인 사이에 몇 마리의 쥐들이 난입해서 끽끽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노인의 손을 타고 어깨 위에 올라와서 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말했다. “이곳에 머물길 원하시오?” 그가 대답했다. “그렇소. 만약 이곳에 삼주간만 머물게 해준다면 내 붕대를 조금 나눠주겠소.” “그대는 그대가 닿은 땅의 이름을 물어보고자 하지 않는가?” “관심 밖의 일이오.” “이곳은 설주라 하네.” 그 말을 끝으로 노인과 일련의 쥐의 무리들이 빛이 닿지 않는 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몸을 뒤덮은 붕대의 끝을 손가락으로 다시 만져보았다. 그 감촉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그가 온 행성에서 그는 왕자였는데 그 행성의 크기가 작았다. 어느 날 정원에 핀 한 송이의 장미를 눈에 담았고 그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장미가 시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행성들에 피어 있는 장미들을 보아왔고 영원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만 같은 권세들의 장미부터 아주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장미까지 그 모든 것들을(장미에 관해서라면) 눈에 담아왔다. 그러나 그가 있던 행성에서 본 것과 같은 장미는 이후로 보지 못했다. 멀어서 시야가 닿지 않는 저편 어둠으로부터 아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붕대는 귀한 것이오. 우리들이 가진 자원은 값싼 것뿐이라 그대에게 붕대를 받을 수 없소.” 그 말을 끝으로 어둠 속에서는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조적으로 웃음을 지어야 하는지를 잠깐 고민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랑자가 된 이후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사회적인 웃음을 지을 수 없게 된 지가 오래였다. 쥐의 시비들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그라고 깨끗해지지 않길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는 행성마다 마땅한 교환 자원을 구하기가 어려웠던지라 그러한 일이 마음속 깊이부터 질려가게 되면서 그의 말끔한 의복은 헝겊이 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점점 사람들이 피했다. 그는 장미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고립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그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도중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가 고향에서 마지막 교류를 택하길 그만두었던 그 장미가 별로 아름답거나 독특한 장미는 아니었단 것이다. 각종 고생을 하며 그가 알게 된 것은 다만 그 장미가 아주 고유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결말을 피했던 행동에서 어쩌면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장미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기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옆에는 쥐의 시비들이 쥐가 좋아하는 치즈를 담은 접시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여기서부터 시작된 이곳 설주라는 곳에서 그가 받은 대접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설주의 자들은 분명 그들이 가진 자원의 커다란 일부를 떼서 삼 주 동안 그를 정양토록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붕대의 내력과 이들은 상응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그 설주 노인의 종족의 운영 정책과 맞닿은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얼마 후 고향별로 돌아간 그 부랑자에게서 지구에 있는 설주로 막대한 양의(그가 있는 별은 귀한 광석이 많이 묻혀 있는 별이었다) 치즈로 교환 가능한 자원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는 샤워를 마치고 나가 시드는 모습을 보길 피했던 그 장미가 있던 자리에 다가섰다. 한결 깨끗해진 몸이었고 누구도 부랑자라 생각하지 않을 만한 정결한 모습이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이젠 그리 꺼려지지 않는 듯했다. 그 장미는. 

2021년 12월 26일 일요일

마포 공덕 같은 것

한쪽에는 BAR 오빠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BAR 나쁜 여자가 있다.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건너편에 서 있으면 두 가게의 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이에는 마포 정대포가 있고 문어 골뱅이를 파는 안줏집이 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소심해 보이는 Classic Bar 나는...도 있다. 이 간판들이 맞닿아 있는 상황이 꼭 간판들만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 앞으로 택시 여러 대가 지나간다. 고급 외제 승용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따릉이가 지나간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다가온다. 흐름이 점점 얼어붙었다가 소리가 다 지나가자 다시 활발하게 풀린다. 이 속에서 함께 움직이다보니 드디어 나도 저쪽에 나를 놓고 오기라도 한 듯이 길을 다 건너버렸다. 다음에는 좀 더 늦은 밤에 와 봐야겠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싶다.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기에

몇 주째 창고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다. 대신 조용해서 종종 노트북을 들고 온다. 여기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봐야 맞는다. 하릴없이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검색창에 ‘회색 태비’를 입력해봤다. 쥐잡이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고 했었나? 치즈 태비는 많이 들어봤는데 회색 태비는 낯설다. 그러고보니 검은 태비도 흰색 태비도 낯설게 느껴진다. 고등어 태비는 어디서 들어보았다. 온순하고 침착한 캣. 살집 두툼한 무늬 고양이들.

연관 검색어로는 마눌고양이가 있다. 어디에서는 ‘마눌’이 ‘못생긴 귀’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또 어디에서는 ‘마눌’이 ‘작은’이라는 뜻의 몽골어라고 설명한다. 이 중 무엇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설명들을 기계적으로 합하면 마눌고양이는 못생긴 귀를 가진 작은 고양이다. 마눌고양이의 사진을 보면 이 설명이 적절한 것 같다. 또 얼굴이 둥글고 털북숭이다. 그러나 이 외양이 고양이의 남모르는 사연과 생활양식까지 말해주진 않는다.

마눌고양이는 몽골 등 중앙아시아에 점점이 분포해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이다. 보통 혼자서 생활하며 어둑해지는 저녁에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 아주 한밤중을 선호하진 않는 모양이다. 야생에서 살다보니 전염병 등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어 수명은 5~6년 정도로 짧다. 단명하는 고양이.

이것의 연관 검색어로는 ‘manul cat price’ ‘마눌고양이 분양’ 등이 있다. 마눌고양이의 다른 이름으로는 ‘마눌들고양이’가 있다. 즉 들에 사는 고양이다. 그런데 또 다른 연관 검색어로는 ‘마눌고양이 길들이는 법’ ‘마눌고양이 기르는 법’ 등이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평소 한두 명 정도 드나드는 한적한 블로그인데 요며칠 조회수가 늘었다. 유입 통계를 확인해보니 83% 정도가 ‘마눌고양이 분양’을 검색해 들어오고 있다. 이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니기에 비공개로 돌릴까 했지만 오히려 그냥 두었다. 이 글은 쥐잡이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기에 쓰기 시작했다.

이후로 며칠째 여전히 창고 근처를 서성이는데 아직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꼭 누군가 만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자꾸 오다보니 언젠가 와봤던 곳 같기도 하다. 요옹요옹. 이사야의 울음소리는 이곳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들과 구분하기 쉽다. 다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왜냐하면 나도 이유가 있기에


준짱: 어느 날은 해남으로 출장을 갔어. 거기가 바닷가 마을이거든요? 식당에 갔는데 모든 게 해산물인 거예요. 게다가 이제 그 식당 주인분이, 나 의원님 지지자잖아~ 이러시면서 내 옆자리에 딱 앉으셨어. 그리고 어머, 언니는 너무 말랐다, 하면서 내 숟가락 위에 게장이랑 생선을 다 얹어주시는 거야. 이거 다 비울 때까지 나 안 일어날 거라면서ㅋㅋㅋㅋㅋㅋ

유리: 그게 또 사랑해서 주는 거잖아요ㅋㅋㅋㅋ

담: 그러니까요. 안 먹으면 상처를 받으실 수 있어요.

준짱: 그리고 이, 지지자분에게 비건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담: 그쵸.

유리: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조건 속에서 일궈온 생업을 뭔가 납작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오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길고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문장부터가 벌써 길고 구구절절해짐)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준짱 :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채식을 해서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해산물도 안 먹어? 이거 먹어 봐. 하면서 문어나 낙지가 섞여 있는 해초 무침, 그런 음식을 권하시고.

담: 친구들이랑 주로 소주 마실 때 가는 식당이 있는데요. 저랑 한 친구랑 비건이 된 후에, 오랜만에 거기 가서 두부김치를 시켰어요. 원래는 김치를 돼지고기랑 같이 볶아주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모한테 고기 빼고 볶아달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이모가ㅋㅋㅋㅋㅋㅋㅋ접시를 가져오시면서 “소시지로 넣었어~많이 넣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 맞아요. 우리 이모님들이 햄이 고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시죠.

담 : 너무 자랑스러워하셨어.

유리 : 잘해주려고 한 거니까. 인간 사회에서는 서로에게 고기를 먹이고 밥을 먹이는 게 애정의 표현인 거, 감사한 일이라는 걸 우리도 다 아니까요.

준짱 : 그걸 안 먹고 그 마음을 거절하는 게… 만약 거기 있던 게 나 혼자면, 혼자 그 식당에 간 거면 그냥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제가 정말 못 먹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날은 내가 보좌진으로 있는 자리였잖아요. 그래서 먹었어요.

담: 비건 실천이 제일 어려울 때가 지역 출장 갈 때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준짱: 집에서는 그렇게 안 힘들어요. 낫또 먹으면 돼서. 근데 출장 가면 주로 도시락이 나오거든요. 당연히 비건 아니고. 그럼 도시락에 담긴 닭알말이를 두고 고민을 하는 거죠. 차 안에서 이동 중에 식사할 때가 잦은데 맨밥만 먹어서는 힘이 안 날 거 같을 때가 있어요. 바쁨에 쫓기고, 효율에 치여서 나의 가치를 배반할 때가 슬퍼요.

유리: 공감. 출장 가면 내가 비건지향인 줄 모르는 스태프분이 제육볶음 도시락 이런 걸 주세요. 고기가 이미 있잖아. 거기서 내가 김이랑 밥만 먹으면 고기가 버려지잖아요.

준짱: 맞아.

담: 그거 잘 생각해봐야 돼.

예인: 저는 언니랑 같이 사는데, 언니가 논비건이거든요. 언니가 식사하고 남은 음식을 보면 ‘저걸 저대로 버려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잔반 처리하듯이 먹게 되는 거예요.

준짱: 그쵸. 다 나름의 딜레마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출장을 갔어요. 일정표를 봤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따로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달리는 차 안에서 준비해 둔 도시락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내가 주문을 했으면 고기를 빼주시라 이런 설명을 했을 텐데. 그 도시락은 다른 활동가분이 직접 시켜주신 도시락인 거야. 또 달리는 자동차에서 도시락 먹을 때는 남기면 안 되거든요. 국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요. 그냥 다 먹는 거죠.
그럴 때 드는 어떤.... 어렵죠. 왜냐하면 나도…….

유리: 왜냐하면 나도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담: 어느 날 기분이 괜히 그래져서 비건한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

유리: <이유>를 모르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 뭐가 문제지?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채식이기 때문에. 각주 꼭 읽어주세요.


“한 달에 한 번
한 분의 손님을 엄살원에 모십니다.
비건 실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대신 손님께선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 월간 비건 레시피&인터뷰 웹진 『엄살원』 3화,
준짱의 참지 않는 국회생활 下편」 중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감성 속세 에세이

삶을 동시에 두 가지 목표에 헌정할 수는 없다. 단독자인 동시에 범부대중의 일원으로 살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애초에 이것은 선택의 문제조차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수를 깨닫는다. 직업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먹어치운다. 무의미한 사무에 몰두할 때면 확실히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제 대충 노동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노동은 점차 존재를 사라지게 만드는 테크닉이다. 희미해지고 희미해지다 보면 말 그대로 대중, 모래알, 장삼이사 따위 텅 빈 기표들만이 곁에 남는다. 우리의 진정한 이름은 바로 이런 것들뿐이다. 노동은 우리에게서 한 줌의 색채마저 앗아간다. 존재를 박탈당한 자들은 투명한 유령이 되어 속세를 배회한다.
내가 그저 생업이라고 부르는 것, 단지 먹고살기 위해 몸을 담그고 있을 뿐이라고 여기는 그것이, 그나마 세간에서는 유일하게 나를 대표해준다. 그 당연한 사실을 여지껏 모르는 척 해왔다. 하지만 이조차도 영원히 내 존재를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차라리 자기기술을 한껏 토해내고 나면, 잠시나마 희미해짐의 속도를 늦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것이 순전한 기분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덧없는 자기환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허탕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자기환상에 대한 환멸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차라리 모래알 속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 방법을, 비존재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저 광활함 속에 자신을 내어주고도 긍정할 수 있는 태도를 터득하고 싶어진다. 떠밀리듯 범부대중으로 태어났고, 떠밀리듯 그것을 수행해야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행로다. 변변한 이름조차 없이 등 떠밀리며 여기까지 온 것은 사실이지만, 걸어온 발걸음 중 무엇도 되물리고 싶진 않다. 이곳에 남기를 자처할 것이다. 사라짐을 견디면서. 사라짐과 싸우면서. 그리고 완전한 사라짐을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어떻게 해야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까?”
“바다에 던져지면 되느니…”

2021년 12월 9일 목요일

체념의 좌파

소위 ‘오피스 하이퍼리얼리즘’이 흥행하는 양상을 보고 있으면 대충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화이트칼라는 어떻게 리얼리즘을 탈취했는가?> 이제 그런 식의 리얼리티야말로 우리의 흥미를 끌고 몰입시킨다. 우리가 보통 그렇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블루칼라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비국민화되고 있다(외국인 노동자와 기계 따위). 외국인은 국가가 그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이 아니다. 그렇다면 로보트는 더더욱 아니겠지요?(아이로봇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들이 우리의 공론장에서 갖는 목소리는 거의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다. 글로벌/자동화된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위험을 그런 식으로 축출한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언어부터 축출한다. 그리고 리얼리즘이라는 남겨진 어떤 전리품...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라는 소시민적 존재를 떠올린다. 나는 관료제적인 것의 실효성을 믿지 않는다. 누가 믿고 싶겠습니까. 본격 관료들조차도 그런 거 안 삽니다. 행정주의가 유발하는 너무 많은 불필요한 과잉들에 다들 치이며 산다. 그러나 일터에서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보통의 관료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관료로서의 적성을 발굴하는 재미가 쏠쏠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해까닥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이런 거구나. 니가 선택한 관료제다.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버텼습니다. 매너리즘 한 봉다리에 관료정신을 배웠고. 피어오르는 무사안일주의와 더불어 그만 꼴까닥... 흐흐흐. 큭큭큭.
마크 피셔가 말한다. “쾌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종의 비판적 성찰성을 거의 완전히 결여하고 이 관리자가 그랬듯 관료 기관의 모든 지침에 냉소적으로 순응할 수 있을 때 뿐이다. 물론 순응할 때 보이는 그 냉소주의가 핵심이다. 가령 그는 감사 절차를 아주 성실하게 이행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댐으로써 60년대 스타일의 자유주의적 자기 이미지를 보존한다.” 그런 식으로 냉소하면서 나는 이 현실 저 현실을 옮겨다니는 중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심적 반란에도 불구하고, 외적으로 나는 마치 그러한 절차들을 믿는다는 듯이 행동(해야)한다. 그 대가로 나는 최소 소시민적 생활수준을 보장받는다. 그러한 수준에 미달하는 경제적 생존을 상상하는 것은 확실히 공포스럽다...
그야말로 공포에 길들여진 똥개가 되어버렸구나. 뭐요. 기만적이라구예? 똥개로 안 살아도 되는 니들이야말로 기만적이다(똥개 동지분이셨다면 죄송ㅎㅎ). 이렇듯 좌파의 병리 현상을 온몸으로 증빙하고 있지만. 섣부른 낙관엔딩 같은 것은 절대로 구사하고 싶지 않다. 응애 아기좌파 혁명줘. 그런 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줍니다. 일전에 돗자리 말고 본진에다가 체념으로부터 출발하는 철학이 좋다고 썼다. 체념이야말로 우리 똥개들이고 고통받는 중생이며 범박한 민중 그 자체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체념의 좌파 같은 것을 자처하고 싶다. 체념하는 좌파 아니구요. 체념으로부터 출발하는 좌파입니다. 뭐요. 악질 반동이라구예? 니맘만 있고 내맘은 없냐???

꽈배기책방

처음엔 그냥 평범한 출판사였다. 출판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그럼 서점도 같이 하면 괜찮지 않겠느냐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출판사는 몇 %인데 서점은 몇 %를 떼 가고 어쩌고... 그릇된 해결 방안에 알맞게 상황은 두 배로 안 좋아졌다. 그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동료 한 명이 알바 경험을 살려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반응이 왔다. 그런데 기왕 시작한 거 커피만 팔기는 아쉽지 않냐, 그러면 뭐가 좋냐, 꽈배기 어떠냐, 그러다 된 것이 ‘꽈배기책방’이다. 원래 출판사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걸로 운이 트였는지 그 동네 흐름이 그랬는지 나름 지역 15대 이색 명물 축에 끼게 되었다. 이걸 읽고 행여나 커피나 꽈배기를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여기엔 다 쓸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결정적으로는 건물이 대표 거였다. 개새끼... 여하간 그때까지 우린 여전히 책을 만들었고, 그걸 매대에 놓기도 했고, 커피와 꽈배기를 함께 팔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싶겠지만 세상엔 그런 일도 있다(마법 같은 문장). 손님들이 꽈배기 먹던 손으로 들춰 본 책들은 당연히 팔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어떤가? 어쨌건 들춰는 봤다는 게 기적이었다. 우리는 즐겁게, 책을 찢어 꽈배기 봉투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꽈배기 판 돈으로 책 만드는’ 구조가 겨우 정착됐는데, 몇 달 전부터 대표 녀석이 이제 출판은 접겠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 없지. 우리는 집에서 가까워 좋은 이곳에, 최소한 지금 월급 그대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붙어 있고자, 대표에게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계간으로 꽈배기 전문지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부터 해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제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는 항상 그랬듯 『계간 꽈배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계간 꽈배기라는 백지 위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신이 나서 마구 펼쳐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대표가 즈란꽈배기를 팔자고 했을 땐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가 이 다음 위기도 헤쳐낼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지금도 꿈같고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맞는가? 아니면 꼬여버린 시간선 속에서 과거나 미래의 일을 당겨 겪는 건가?

2021년 12월 4일 토요일

성골 프롤레타리아를 찾아서

여러분과 나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급격히 악화된다. 그러면 또다시 뭔가 쓰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재차 이러고 있다. 이건 뭐 내가 일간 이슬아도 아니고. 국수 뽑아내듯이 뭘 자꾸 뽑아내요? 에휴 하여튼. 곡물창고에 돗자리 깔면서 특정한 주제를 생각해둔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노동 에세이를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도 근무시간 내에서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약 하에서. 오늘은 주말이다. 출근 안 하는 날이라고 해서 노동자가 노동자 말고 다른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쓴다.
하지만 쁘띠 부르주아로 추정되는 작자가 징징거리는 이야기 같은 것을 누가 읽고 싶겠는가. 나조차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배부른 소리 따위의 꼬리표를 모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말할 자격을 갖춘 자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성골 프롤레타리아를 찾아서. 아니 사실 별로 찾고 싶지 않다. 나야말로 출신성분 좋은 혁명집안 출신이다. 가까운 가계도를 뒤져봐도 아주 그냥 농부랑 노동자 말고는 뭐가 안 나와요. 우리 세대에 오면서 일부 대학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일부 사촌들 때문에 우리 집안의 순수성이 망가졌구나. 언제 한번 날 잡고 자아비판 씨게 때리겄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얘기 나온 김에 말 좀만 더 얹어보자.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랑시에르는 소위 ‘평민 철학자’라고 불리는 루이 가브리엘 고니(Louis Gabriel Gauny)에게 관심을 갖는다. 노동자는 무엇에 그토록 분노하고 절망하는가. 고니에 따르면 그것은 다름아닌 시간의 박탈이다. “시간은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에겐 노동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몰두할, 달리 말해 빈둥거릴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시간은 오로지 부르지아지에게 속한다. (그렇다면 고니는 도대체 어떻게 글을 쓰고 남겼는가. 밤잠을 유예시켜 시간을 마련하는 방법이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빈둥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확실히 과거에 비하자면 나은 처지인 것이다. 심지어는 정통 노동계급인줄 알았던 내 부모 및 일가친척들도 맨날 텔레비전 보면서 빈둥거린다. 그렇다면 이제 다함께 (최소한) 쁘띠 부르주아라는 정체성을 확인받고 만족하면 되는 문제인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쁘띠 부르주아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니들끼리 해라. 이를테면 이러한 상황들이야말로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불유쾌하게 만든다. 끝없는 자격 확인 절차라는 머저리 같은 장난질. 그럼 뭐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아주 그냥 옛날 운동하시던 분들처럼 공장으로 침투합니까? 아니면 이럴 바에 차라리 룸펜 인텔리겐치아로 눌러앉아서 돈 없다고 맨날 징징거려요? 말하자면 나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성골 프롤레타리아 따위는 찾아다니지 맙시다. 차라리 히로빈 찾아다니는 마크 초딩이 더 영양가 있을 듯. 달리 말해, 이제 우리는 모두 배가 불러서 배부른 소리밖에 못한다고 인정을 해야 뭐라도 한다. 하층민의 걱정거리가 배고픔이 아닌 비만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덧붙여야 하겠습니까?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사골 끓이기 왜케 힘듦

작성해야 하는 문서가 있는데 글이 안 풀려서 뻘글이나 쓴다. 문서 작성에 할당하는 시간이 10이라면 보통 9는 고통받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다. 님은 로동을 통해 무엇을 생산하시는지? 에 저는 말하자면 창작의 고통을 생산하는디요 하여튼 그러고 있으면 사업주가 저한테 돈을 줍니다. 벌써부터 말문이 막혀가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이래서 글을 위한 글은 쓰면 안 된다. 님들 저가 뻘글만 쓰면서 헛소리만 주구장창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 뭐시기냐... 아디다스 뱅크입니다. 뻘글 하나 제작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아이템 구상하고 농담 궁리하고. 님들은 아무것도 몰라!!!(흑흑) 예 뭐 그렇습니다... 나는 레퍼런스 딱딱하게 읊어대는 거 진짜 싫어하긴 하는데. 그럼에도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로는 역시 잘 말하기 어렵다. 사무실에 쥘 만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일단 마우스가 있고요. 볼펜이 있고요. 업무수첩이 있습니다... 아이고 삭막해서 사람 못산다. 돌잡이 때부터 어른들이 뭐든 쥐어보라고 난리부르스를 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런데 사실 레퍼런스 없이 제일 힘든 것이 바로 업무다. 선례 없는 업무가 떨어졌을 때 그 더러운 느낌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작년꺼 재작년꺼 찾아보고 아 다르고 어 다르고 하여튼 어?!! 해서 갖다바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레거시가 하나도 없고 님한테 주어진 게 그저 hwp의 영롱한 <빈 문서 1>뿐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야말로 사람 미치는 거예요. 그만큼 페이퍼워크에 있어서 레퍼런스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저가 전문용어로도 하나 만들어봤는데요. 네 글자로 컴팩트하게 절대참조...(절대적으로 참조하라는 깊은 뜻) 레거시라는 게 무슨 먼지 쌓인 구석탱이의 골동품이 아니라. 회계연도를 기점으로 자기갱신을 되풀이하는 영구 기관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그 과정에 끼어들어서 아 다르고 어 다르게만 손봐줍니다. 비유하자면 보고서님 네일아트 해주시는 분 정도밖에 안 돼요(네일아트 종사자분들 사랑합니다). 그런데 큰 틀에서는 동일하되 디테일만 살짝씩 바꿔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몇십 년째 똑같은 사골을 쓰고 있는데 매번 새로운 포인트를 주래요. 그래서 포인트 주면 예전 같은 맛이 안 난다고 화냅니다. 저보고 뭐 어쩌라는 건지???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같은 것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사람들은 시 같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시를 잘 모른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들었고 매번 무방비 상태에서 들었다. 아마 사람들에게 시 같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어떤 긴장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사진을 찍을 줄 알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찍은 거의 모든 사진의 초점은 미묘하게 빗나가 있다. 자동 흔들림 방지 기능을 켜 놓아도 마찬가지다. 흔들린 사진은 흔들린 대로 좋다. 이미지가 흔들리면 앉아 있던 사람이 점프를 하고 걷고 있던 사람이 날아간다. 흔들린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잘 고정되지 않는다. 액체 비슷한 것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거나 기체 비슷한 것이 되어 떠다니고 있다. 더구나 배경 속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화분조차 깨지지 않은 채로 일그러져 있다. 한줌의 흙도 흘리지 않은 채 변형되어 있다. 그 안에서 모양이 달라진 식물이 살아 있을 뿐이다. 
이런 일과 비슷할까? 

자주 사람들은 시를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시를 찾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소설이나 만화나 그 밖의 것을 읽는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시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낡은 마법사의 꿈 (2)

의자 위에는 깔개가 덮여 있다. 벽난로를 앞에 두고 나는 손으로 가위나 보의 모양을 만들며 장난을 했다. 벽난로 속에서는 장작이 불타 없어지고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실내의 어떤 권태를 느꼈다. 내 다리가 온기로 인해 따듯해지고 있었다. 나는 거의 더웠다. 이것은 과장된 것이고 나는 집 바깥의 추위와 유리되는 따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앉아서 졸며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멀리에 있는 교실에서 한 인물이 가만히 앉아 빈 교실 안에 있는 정경들을 눈에 담았다. 나는 깨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 꿈의 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미망이 나는 즐거웠다. 꿈은 단순히 소비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다분히 앞날의 일을 의식하는, 그런 예언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꿈은 평소에 해볼 수 없는 생각들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권위적이다. 그것은 왕의 침소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도자기들이나,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 앞으로 손을 내뻗을 수는 있으나 그 손은 닿지 않는다. 벽난로에도 손을 넣어볼 수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잠시 간의 조응된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일어나서 주전자 안에 있는 물을 컵에 부었다. 김이 나고 있었다. 고양이 몇 마리들이 이쪽으로 다가와 한껏 몸을 늘리고 있길래 나는 다시 꿈에서 깼다. 나는 고양이들을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벽난로 안에선 장작들이 불타 없어지고 있었고 나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돌아온, 사람 말을 배운 쥐에 대한 생각을 했다. 쥐 곁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쥐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만났고 서로 동료가 되었을까? 나는 의자 위에 덮여 있는 깔개를 치우고 그 위에 물컵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저쪽으로 가서 믹스 커피를 가져와 그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런 양이 왠지 나는 기분 좋았다. 가루들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액체 안으로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컵 안에서 숟가락을 빼낸 뒤 그것을 입으로 물었다. 실내가 조금 건조한 것 같았다. 나는 방의 중앙으로 가서 가습기를 틀었다. 수증기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정경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앞으로의 대한 일을 생각했다. 이 집에는 나 이외에도 몇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오늘은 때가 맞아 이 공용 거실에 앉아 졸고 있기까지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올라가거나 내려오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 공동 거실 안에 자리하고 있거나 않기도 하다. 나는 그들과 안면을 나누지 않은 사이였다. 대충 그들이 내려오는 시각을 잰 뒤에 나는 이 공동 거실에 나와 있곤 했던 것이다. 마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그저 마음에 들기만 한 '틀린' 쪽을 무수하게 고르며 나아가는 것처럼. 이 미궁 끝에는 괴물이 살고 있을까? 나는 틀린 쪽만 제법 골라왔으니, 그런 괴물은 없을 법도 했다. 대신에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단지 중앙이 있는 의자 외에는. 그 의자 위에 앉으면 그것으로 게임이 끝나는 것이었다. 하나의 엔딩으로서. 그러나 잘 만들어지지 못한 그런 엔딩. 손을 많이 거친 게임은 아니라 엔딩도 이렇다 할 만하게 꾸며져 있지 않다. 그저 조용할 뿐이다. 나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러한 게임에 대한 생각은 실내의 권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은은한 온기가 한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일종의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내가 느끼고 있기 전까진 그 존재가 위태롭고 불확실한 것이었어서 시인들이 쓴 시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문장들이 지닌 지위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곧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다. 카페에 가 보면 계속해서 캐롤이 흘러나올 것이고. 인형들을 선반 위에 올려놓아 그 현실, 방 안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 것처럼 12월의 막바지로 가다 보면 그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 이틀의 전야제는(한 날은 전야제이고, 한 날은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는 날이다) 12월 23일이고, 그날의 전야제는 12월 22일이고, 이렇게 해서 계속 전야제가 길어진다. 어쩌면 12월의 전체가.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들의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우둔히 앉아 있었다. 어쩌면 고양이 몇 마리들이 이쪽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고, 고양이는 뛰어올라 내 미망이 장난감이 된 것처럼 나를 그 의자 위에 붙박혀 있게 할 것이다. 나는 혼자 앉아서 소원을 빈다. 부디 그 예수가 태어나지 말기를. 그로 인해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늘어지는 전야제들이 이쪽을 호도하지 못할 미망과 같게 해달라고. 그러나 이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다. 사람들은 12월의 이틀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실내에 트리 나무 장식을 우두커니 서 있게 한다. 나는 실내의 어떤 조짐도 느껴지질 않았고, 내 두 다리는 끝없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더운 공기는 벽난로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고 나는 이것의 엔딩을 보길 바랐다. 지금 나는 앉아서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었고 꿈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꾸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다음 번에도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안면이 있든 있지 않든 이쪽으로 뛰어 올라와 겹겹이 내가 꾸고 있는 꿈을 끝냈다. 소프라노의 음성으로 된 회선곡이 흘러나오며 나는 벽난로 안으로 내 발을 빠뜨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 사이 고양이들은 나에게로 뛰어올라 온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껏 몸을 편 채로 걷고 있었다. 저쪽에서 저쪽으로. 마치 그곳으로 걸어가면 그 두 날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양이가 쥐 잡고 놀듯이 성탄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야제들로 지루한 야간 기차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고향을 떠난다는 마음에 나는 왠지 즐거웠다. 그 고향은 내 생각 속에서 벽난로 안에 있는 장작들처럼 몸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것이 회선곡이라면, 나는 지금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 이 실내 안에서 마법을 쓰고 있는 것이노라. 카드 스프레드와 별점들. 그리고 배움. 나는 이러한 것들의 꿈을 꾸고 있었다. 레버를 당겨 슬롯머신을 작동시키듯이 어떤 매력으로써 내게 그런 꿈을 강요한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별점 보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가 몹시 그립다. 그 기술이 그리운 건지 성탄의 전야제가 천천히 내려오는 작은 마을이 그리운 건지 혹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알지 못하고 나는 다시 미망 속으로 잠겨 들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다시금 누군가 이곳으로 내려왔다. 나의 낡고 오래된 꿈을 끝내러.

21년 1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48)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96,267원 (0원 + 196,137원 + 130원)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임금벌레

뻘글은 원래 근무시간에 쓰는 게 가장 재미있다. 거창한 기획 같은 것은 없고요. 근무시간에 살살 눈치 봐가면서 분량 뽑아내는 것이 곧 기획이죠 흐흐. 일 참 편하게 한다고 생각 드시는지. 저가 이렇게 마음만큼은 항상 누구보다도 불편하다. 학창시절에도 한 교시 50분이면 30분은 해찰했는데. 근무시간 풀가동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딩초 시절부터 해찰 1분도 안 해본 사람만 저에게 돌을 던지라. 관리자의 감시를 교란하는 감동적인 회피기동. 사업장의 억압장치를 무력화하는 능수능란한 리스크 헷징. 예 거의 뭐 써커스단이나 다를 바가 없죠. 저가 맨날 이렇게 똥꼬쇼 하면서 산다. 뻘글 하나 빚어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여러분. 규율권력 및 어쩌구저쩌구에 빅엿을 날리는 충격쇼크 감동실화. 이제 아시겠습니까? 앞으로 잘 보세요.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초월일기

2017년부터 지금(지금은 2021년 12월이지만 이 기준은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까지 쓴 약 6000개가량의 일기들을, 현재 시점에서 마구잡이로 뒤섞고 번복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초월해 보고, 그렇게 완성되는 것들을 씁니다.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두족류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농담이 있다.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듯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고, 하나는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건? 역시 두 가지 뜻으로, 하나는 용서할 아무런 도리가 없다는 뜻이고, 하나는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이 있다는 건 어떨까? 용서할 권한이 오직 내 안에 있고 나에게만 미친다는 뜻이면서, 용서할 만한 일을 절대 당하지 않는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용서를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우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에 있다는 말과 한 사람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말 사이에 아주 대단한 차이가 없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안다.

출판사 ‘두족류’의 로고는 휘리릭 펼쳐지는 중인 책을 책머리 방향에서 본 모양이다. 그것은 매달린 책처럼도 보이고, 책배부터 떨어지는 중인 책처럼도 보이고, 거꾸로 놓인 부채처럼도 보인다. 책등에서부터 방사형으로 뻗쳐 나오는 낱장들의 선은 출판사 두족류 구성원들의... 뭔가를 자극한다. 출판사 두족류에 다닌 지가 벌써 얼마인가?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이 로고를 들여다본다. 옆자리의 동료도 그런다는 걸 알고 있다. 굳이 서브컬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두족류의 여러 신비한 특징에 대해서는 오늘날 제법 알려져 있다. 출판사 두족류에서 나오는 책의 특징이라면, 책등과 표지의 위아래가 서로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게 사고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두족류의 책을 서가에 꽂을 때 책등을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 책을 뽑았을 때 표지가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출판사 두족류의 저자 섭외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저자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저자 후보에게 처음으로 연락하며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그러면 저자들은 보통...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아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네


¿키코에루데쇼?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게시판 다는 날

관리인이 게시판을 달았다. 못을 박았다가 뽑았다가... 그 자리 벽이 다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이런 거 단다고 누가 쓰겠어요? 모금통도 몇 달째 비어 있는데.

게시판을 이 각도에서 보고 저 각도에서 보던 관리인은

그래도 전에 무슨 쪽지함이니 우편함이니 그런 거보단 낫지 않아?

하고선 턱을 만지며 덧붙였다.

모금통은, 돈을 쓰질 않으니 들어오지도 않는 거야. 차라리 기금으로 뭐라도 해. 수전노처럼 굴지 말고.

뭐? 수전노? 수전노가 아니라, 진짜 뭘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게 수전노야. 모르겠는데 돈은 왜 쥐고 있어?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아 네네. 잘 아셔서 좋으시겠어요.

자네도 여기 뭐라도 한마디 써서 붙여 봐.

무슨 한마디요?

근처에서 이사야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관리인은 연장을 챙긴다.

아무 한마디나. 안녕하세요? 모금통으로 모은 돈을 어디에 쓸까요? 그런 거라도 물어보라고. 아니면, 자네도 창고에 들어오는 건 다 읽고 있을 거 아냐? 최근 들어온 뭐뭐가 참 좋습니다, 읽어들 보세요, 또, 무슨, 일하다 심심할 때 삼행시 같은 거라도 지어서 올려. 말마따나 자네 아니면 누가 쓰겠어?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래도 달아두면 쓸 사람이 있겠죠. 왜 없어요.

없을 거라며? 그래 없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자네가 써. 나 쓰라고 달린거다, 생각을 하면서. 그럼 쥐잡이가 쓰겠나? 하여튼 필요는 하다고. 여 봐봐, 분위기가 훨씬 좋잖아? 자네도 종일 관리실에 앉아 있어 보란 말야. 얼마나 살풍경하고 수상쩍어 보이는가 이 말이야... 내가 이런데 남들은 오죽하겠어?

알았어요. 알았어. 창고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좀 나갔다 오고 하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메타버스?

관리인은 껄껄 웃으면서 이사야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불로초를 바라는 듯이

불로초를 바라는 듯이 황제는 '시'를 가져오라고 했다. 눈앞으로, 그것을 만질 수 있게. 이제 거의 골동품에 가까운데도, 황제의 전자 두뇌는 멀쩡했다. 오히려 정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최신예의 해킹 공격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두뇌는 함락되지 않았다. 고물상에서도 값을 쳐주지 않을 것이 어찌 저리 굳건할 수 있을까. 융성과학자이자 빛 미장이인 덴트로비는 무릎을 꿇으며 양손을 바닥에 붙였다.

덴트로비는 황제와 가장 가까운 융성과학자였다. 거리상으로도 그랬고, 감정적으로도 그랬다. 은덕을 입지 못했다면, 덴트로비는 상인들에 의해 우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부젓가락으로 뇌를 헤집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황제의 타락과 악업에도 불구하고, 황제를 향한 사랑은 한참 전에 그의 목숨값으로 지불이 끝난 뒤였다.

하지만 빛 미장이로서 덴트로비의 의무는 황제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빛 미장이들은 노선을 돌려 해킹 작전을 포기하고 물리적 파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역할의 수행자가 덴트로비였다. 그로 인해 그는 괴로웠다. 역할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여덟 명이 그의 역할을 대신 거부해주어야 덴트로비는 자신의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언뜻 이해되지 않겠지만, 빛 미장이들에 대해서는 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생리에 대해 안다면 당신 또한 덴트로비의 고뇌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덴트로비는 황제의 네 가지 방어막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네 가지 단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각각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벼려진 물건으로 황제를 지키는 네 가지 방어막의 성질과 일치했다. 성찬식은 만 년에 한 번 있었고 내일이 그날이었다. 덴트로비는 황제의 전선을 교체하게 될 것이었고, 그때가 황제를 네 번 찌를 기회였다.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음영

전기 모터를 단 배가 퉁퉁거리며 물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 위에는 낙후된 지역에 사는 주민 둘이 타고 있다. 이 배는 주민 둘이 같이 돈을 모아서 산 중요한 자산이다. 햇빛이 이 위로 따뜻하게 내려온다. 강 유역에는 물푸레나무들이 자라 있고, 처음 보는 식생의 장소가 펼쳐져 있다. 이 둘은 모험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모험에는 긴장감과 비교적 안전하다는 느낌, 그리고 그 나라의 화폐가 들어 있는 멋진 벨트가 함께하는데, 이 둘에게는 화폐가 없다. 생계를 이어나가는 몸짓에는 어딘가 조용하며 고즈넉하고 하나의 그림 속에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가 있다. 둘은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배를 조종하거나 하며 옆얼굴을 이쪽으로 비추고 있다. 그 얼굴은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둘은 대화를 한다.

주민1: 기다려야 하는군.

주민2: 맞아.

주민1: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주민2: 글쎄.

별은 관측 장치가 나오기 전까진 항해하는 사람들의 길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주민 둘이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둘이 하고 있는 것은 시계공들의 낡고 오래된 작업대처럼 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그 순서와 리듬에 몸을 맞춰야 하는 직업적인 활동에 가깝다. 한 사람의 키는 꽤 큰 편이며, 나머지 한 명은 그보다 좀 더 작다. 둘의 성별이나 생김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러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인상을 남겨준다. 주민 둘은 도중에 담배를 피운다. 이번에는 주민2가 먼저 말한다.

주민2: 맞아.

주민1: 응?

주민2: 기다려야 하는군.

주민1: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글쎄.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는 별로 중요한 의미가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개인들의 위치에 대한 것은 전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달의 모양을 보고 날짜를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이 둘은 날짜를 세지 않는다. 이 둘은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둘도 궁금해하고 있듯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이 둘은 다시 전기 모터를 단 배로 이동하고 있다…….

이동하던 도중, 둘은 이 낙후된 지역, 나아가서는 이 낙후된 나라의 정치 현실에 관한 걱정이 담긴 대화를 나눈다. 이 나라에는 두 가지의 세력이 있는데, 둘 중 어느 쪽에도 이렇다 할 비전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물론 낙후된 지 너무 오랜 기간이 흘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노력할 것 같은 쪽과 방향이 조금 어긋났지만 잘할 수 있어 보이는 쪽 중 어디를 지지하면 좋은 걸까? 전자인 후발 주자는 기세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현실에 부합하는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지층의 한 표 한 표가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었다…….

한 명이 엽총을 발포한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새였던 걸까? 그 자리에 있던 새는 추락하여 배의 밑판으로 떨어진다. 한 명이 서둘러 새의 손질을 한다. 이동하는 배의 위에서 원거리 발포로 새를 잡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다. 추락하는 새가 물 위로 떨어진다면 그것을 건져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것은 그런 정확한 위치나 타이밍이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그만두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도 때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새를 잡기란 요원한 일이다…….

둘은 강가에 배를 정박하고 나뭇짐들을 그러모아 불을 피운다. 그리고 꼬챙이에 꿰어진 새를 나눠 먹는다. 둘은 등 뒤에 엽총을 한 정씩 걸고 있다. 이곳은 야생의 큰짐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곳이다. 문득 햇빛이 다른 쪽으로 드리워져 한 명의 얼굴에 음영을 만든다. 그 음영이 걸린 쪽이 말한다.

음영이 걸린 쪽: 그 얘기 들어봤어? 이 글은 다분히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고려되었다는 것…….

음영이 드리워지지 않은 쪽: 들어봤지.

음영이 걸린 쪽: 그렇군.

전기 모터를 단 배가 시동이 꺼진 채로 미동도 없는 것 같다……. 둘은 조용히 새 구이를 먹는다. 모닥불이 꺼지고 한숨과 함께 그들 뒤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글은 무엇을 상징하려는 것은 아니다.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데모판

언젠가, (일은 안 하고) 그놈의 트위터에다 대고 이런 출판사 이름은 어떨까 저런 이름은 어떨까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던 와중에, 곡물창고의 필자 중 한 분이 ‘이판사판출판’을 슬쩍 제시해 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색해 보니 출판사 ‘이판사판’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폐업했지만. 나는 대안으로 ‘개판출판사’에 방문하기로 했다. 개판출판사는 찾아가기까지 아주 고역이었다. 엄청난 언덕길... 겉옷을 한 꺼풀 벗어 둘둘 말아 쥐었다. 이런 언덕을 걸어서 오르는 이들도 있는가? 있다. 언덕을 걸어서 올라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개판출판사는 이 언덕을 넘어가면 있다. 개판출판사가 있는 동네는 이런 언덕들에 둘러싸여 있다. 구덩이 같은 곳에 있는 셈이다. 지난번 찾았던 국립출판사 생각도 난다. 거기 사장은 정말 개새끼였다. 그 표정이며 말투 하며... 개새끼... ...끼 ... 같은 새... 꼭대기에 다다르니 바람에 땀이 식는다. 파헤쳐진 땅벌집 같은, 썩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풍경이 트인다.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맑아지는 듯하다고 생각하자마자 얼굴이 두 방향으로 찢어질 것 같다. 이제 겨울이란 말이지? 다시 옷을 입고, 나는 개판출판사를 잊는다. 잊고, 나는 출판사 ‘데모판’으로 방향을 다시 잡는다. 데모판에서 나오는 책들은 마무리가 안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렇다. 내용, 표지, 편집, 교정, 어느 부분인가 하여튼 꼭 완성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책이 너무 빨리 나왔나? 데모판의 구성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시간이 돌이킬 수 없이 정해져 있다면, 그 책을 만드는 데 사람들이 쏟을 수 있는 시간 역시 돌이킬 수 없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나는 한쪽 귀에 걸쳐 놓았던 마스크를 다시 쓴다.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ㅣㅣㅣ ― 염통의 원위치

 

: 다 줬어도

심장만 반덩이는 남겼고


뛰어야 할 시간이 있다 거울을 보는 정각

척추도 사이좋게 나누어 기댈 뼈가 없다 드디어 피부가 겹치고, 말려들고

나를내 가 포 개졌다


나를

내가

포개

졌다

이상

한문

법이

죠?


소두 태아를 살리고 싶어 기부해서

뇌가 없어서 말입니다


:심장이 심장으로 되는 시간이 있다 거울을 보는 정각

반절짜리를 거울에 붙이면 저곳에서 반쪽이 덜컹 뛴다

아쿠아가 박동하는 유일한 장기


이름 같잖아 


이름도 획을 팔아서

없어서

누구도 날 부르지 않았고


그 때 말야, 다 가졌을 때, 이름도 있고 뼈고 있고 뇌고 있고 심장도 있고,

장기가 모두 갖춰 입고

부딪치면 입에서 냈던 소리를 반복했던 그 때 말야

그 원소만 몸에서 떠나질 않았어


아쿠

아쿠

아쿠 아

아쿠


다칠 뻔한 게 예뻐서 넌

반쪽에서 살아달라고 했지


:거울을 보면 체중이 증가한다

진짜 46킬로그램

허수 46킬로그램


허수의 심장 허수의 아쿠아 진짜로 뛰는 나 

달리면 폐가 늘어나야 하는데 배고파서 음식값과 바꿔버렸고


약소히 심장이 부풀어 

헛디뎌

다시 다쳤다

아쿠아

쏟아지고 나도

증발하고


:이제

0킬

로그

램0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21년 10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48)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96,137원 (0원 + 196,027원 + 110원)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낡은 마법사의 꿈

낡아 해진 마도구 상점에서 나는 서류철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사실 마도구 상점들은 다 낡고 해졌죠. 롤랑이 지난번에 갖고 온 고블린의 바지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맞지 않습니다. 노예 감독은 문 쪽에 서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한 명의 마법사이고, 나는 그 밑에서 봉급을 받는 처지입니다. 노예 감독은 그가 만든 골렘인 셈입니다. 간단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복잡한 의사 결정은 누군가 대신 내려줘야 하죠. 우리는 한 사람씩 교대로 보울 안에 담긴 액체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좋은 향이 난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끓어도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원료이지요. 겉으로는 투박해 보여도 끓임 솥은 주기적으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마도구입니다. 이스마엘의 향은 향긋한 식물 계열의 것인데, 마치 단정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디퓨저와 비슷하게 지금도 얌전히 끓는 중이랍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온전한 서류들ㅡ두 장 받침의ㅡ을 작성하며, 각자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키보다 높은 서류 보관실에서 체류합니다. 꿈은 동물이 잠들었을 때 꾸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는 먼 미래의 목표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지요. 우리들은 꿈속에서 서로 만날 수 있고, 만나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에 약속 시간을 정해두고 잠드는 일도 빈번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잠들어 있는 것은 누군가의 꿈인데요. 누구의 꿈인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사무실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창문에 우주의 풍경이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생각보다 드넓고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꿈속의 이 장소는 지상에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우주의 특정한 한곳에 정주해 있는, 추진 기능이 사라진 왕복선의 잔해입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하죠. 현실에서나 꿈속에서나 우리들이 발 딛고 있는 곳에 대한 소문들은 무성하고, 그것은 특히 세기말 시점의 도시에서 그 영향력을 키웁니다. 마치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번호처럼. 조용한 새소리의 알림이 울리는군요. 탕비실에서 한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뜻입니다. 담당자는 서둘러 그 방문을 열고 아직도 이곳이 꿈의 안임을 그에게 알리고, 납득시켜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손바닥들을 그의 눈앞에 들이밉니다. 다행히 익숙하게도 그가 손바닥으로 손바닥들을 마주치고 다시 잠드는군요. 꿈속에서 잠들 수도 있다는 점은 꽤 웃긴 일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걸어 올라왔다’라고 표현한답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로 ‘미끄러진다’라고 말하는 것도 있죠. 말 그대로 미끄러지는 것인데요. 누군가의 꿈속에서 램프의 연기가 밖으로 새 나가는 것처럼 이탈되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로소 진짜ㅡ원래의? 아니면 본래적인, 응당, 평범히 그러한 성격의ㅡ 의미의 꿈으로 층계가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니므로 업무의 분담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달 뒷면의 돌로 벼려낸 간이 공간 안에서와는 달리, 우리들은 여기에서 천체 관측의 업무 또한 하고 있지요. 사실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꿈의 위계가 매지컬하냐 아니냐를 가릴 수 있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여기ㅡ기록원ㅡ에서 천체 관측을 할 때에는 객관적이고 지루한 천체 정보의 나열 말고도, 개인적이고 사적인ㅡ어쩌면 비밀의ㅡ 관측자의 정한의 기록이 바로 뒤에 있는 시트지에 적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우지 않는다면 잊히고야 말 그러한 정보들은 이 세계에서 소용이 다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숨을 몰아쉬고 있네요. 어디엘 다녀왔냐고 물으니 고블린의 빈집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카이브에 등록되어 있는 생물 종의 꿈입니다. 아카이브에 등록되어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그곳에 잠들어서 다녀올 수 있죠. 여기는 위계가 높은, 상위의 꿈의 세계인 덕분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창밖에 실제 우주가 있는 이유도 누군가의 자의식을 감추기 위해 정교하게 엮어 놓은 공간ㅡ공간이 아니라 ‘틀’이나 ‘약속’, 아니면 ‘타자’에 가까운 것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ㅡ이라는 환상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세계에서 번역 및 편집이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통계적으로 장편 소설 한 권ㅡ약 250kbㅡ의 분량을 손보기 위해서는 유능한 이라고 할지라도 약 스물 네 번의 꿈의 이탈, 층계로의 진입, 테라스에서의 휴식, 엘레베이터의 이용, 그리고 마지막에 송고하기 위한 목적에서의 이 ‘꿈’으로의 진입이 필요하다고 하니까요. 이 마도구 상점에서는 이름과는 달리 서류철의 분류 작업이 주된 업무입니다만, 가판대엔 그렇게 번역된 책들이 있고, 콘센트도 팝니다. 이 세계에서도 전기를 사용하지요.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관 달리, 한 사람에게 묻어 있는 전기를 ‘털어내는’ 것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가끔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전화가 걸려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아까는 ‘박력분 밀가루가 있어요?’라는 어떤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요, 사실 이곳에서 전화로 그 사람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굉장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위의 전화도 사실 어떤 남성분이 건 전화였을지도 모르고 박력분 밀가루가 아니라 중력분 밀가루를 찾고 있었는지도, 아니면 과일 캔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분포’라고 배우는데, 수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많이 헷갈릴 수도, 적게 헷갈릴 수도, 아니면 의외로 안 헷갈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서 적게 헷갈리는 경우까지만을 상정하도록 교육받는답니다. 그러니까 위의 경우에는 박력분, 중력분, 부침 가루, 베이킹파우더 등의 재고까지 정도를 확인해 주는 것이죠. 그 여성분은 잠시 후 여기에 와서 고블린의 안 맞는 바지를 입어 다리의 모양이 비쳐 보이는 나의 차림을 보고 그거 벌칙 같은 것인가요? 라고 묻습니다. 이런, 시간대가 헷갈리는 모양이군요. 이 세계에도 잠은 필요합니다. 시간대가 헷갈리는 것은 잠이 필요하다는 표지이지요. 나는 이곳을 세계라고 부르기가 껄끄러운데, 왜냐하면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는 세상은 세계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더 낫게는ㅡ트여있더라도ㅡ ‘사무실’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담배 피우러 테라스에 나갑니다. 테라스 또한 별다를 바 없는 장소이지만, 가끔 담배 피우러 ‘달려온’ㅡ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미끄러진ㅡ 사람들이 있고, 나는 물론 그곳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노예 감독의 관리자로서 천천히 걸어야 ‘품위’가 있을 테니까요. 노예 감독은 그 골렘에게 우리가 붙인 별명 같은 것입니다. 아무튼 테라스에 나가면 시인들이 쓴 시가 있는데, 그 시들은 음악처럼 계류적이죠. 여기에 시인들의 시가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시의 전문을 기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여기로 오지 말라고ㅡ그러니까 기억 속에서 잊히기 전에 이곳으로 다시 오라고ㅡ 하는 당김줄과 비슷한 것이죠. 다시 사무실로 내려가면 중요한 것을 기억하기 어려워서, 계속 그곳에 머물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익숙해진다면 괜찮지만, 그렇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무급 봉사를 하게 될 위험이 있지요. 물론 이곳을 만든ㅡ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잠든ㅡ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죠.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이 말은 이곳에서 당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을 기억하라는 인삿말로 쓰이곤 한답니다. 이것이 당신의 기억 속에서 잊힐 수도, 내 기억 안에서 다시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그럼 평안하세요. 낡고 해진 마법사의 꿈처럼.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감기에 걸렸어요

교정의 요정으로부터의 전화였다. 감기에 걸렸다고.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몇 번 다그쳐 물었다. ...렸.. 기요... 감... 뭐라고? 감기라고? 감기? 맞아? 관리실 수화기를 붙들고 소리 소리를 치다가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는 교정의 요정을 본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긴 했는데 입에다 대고 있지 않다. 교정의 요정에겐 입이 없다. 요정은 그대로 창고에 들어갈 기세였다. 수화기를 놓고 황급히 마스크를 썼다. 앞을 가로막고 보니 요정의 피부빛이 좀 달라진 듯도 했다. 좀 더 창백한 빛이 도는... 감기라며? 뭐하러 왔어? ...러요... 다... 뭐라고? 기러기? ...옴... 옮기러요. 옮기겠다고? 감기를? 요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흐흐 웃기 시작한다. 요정의 눈에서 점점 더 강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ㅣㅣㅣ ― 칠일

 

피부를 7하기엔

일주일은 모자라서

덜룩덜룩

창조주는

많은 마안은 마는 10000은 만 하다 만

몽고반점을 남겼습니다


[ 작품명 : 몽골계 ]

왼쪽 뺨 목 다리 팔에 대륙지도. 이 지구는 26퍼센트의 청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만 건강합니다.


얼룩은 따지려다가 입이 말랐습니다

혀에

백태로도 지도가 있단 거 

모릅니다 창조주는


창조주는 우리 할아버지도 만들었습니다

1977년 7월 7일에 죽였습니다

중복 숫자는 괴슈탈트에게 퀴즈를 냅니다


Q. 장례를 몇 시에 (치릴/치룰)까요?

+어이가 없어서 정답을 무시합니다+

A. 장례를 ‘7’우다


그 오답이 가로등 같아서

숫자 아래 서니까

빛 칠 슥 이제

뚜렷해집니다


몽골계,

74퍼센트의

아이보리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정도로 

아픕니다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21년 9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48)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96,027원 (0원 + 195,937원 + 90원)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비몽사몽북스

연휴가 끝났다. 어쩌다 보니 잠을 못 자고 출근해서 아주 비몽사몽이다. 아까 퇴근까지 3시간 반 남았을 땐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그나마 4시 즈음부터는 좀 괜찮아졌는데 퇴근을 한 시간 앞둔 지금은 또 비몽사몽이다. 이런 비몽사몽한 상태로 노동을, 안 그래도 눈앞이 깜깜해지는 교정校定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교정공의 책임은 무한하지만 나의 책임은 유한하다. 언어의 도가 끊어져도 노동의 길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뭘 어쩌겠는가? 나는 지금처럼 딴짓도 많이 하지만, 아주 일을 놓아버리는 사람까진 아니고 싶다. 졸릴 때는 차라리 떠드는 편이 도움이 된다. 졸음이라고 하니 옛날에 제과 공장에서 나흘간 야간 알바를 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만 해도 담배를 많이 피웠다. 담배는 졸음 쫓기에 도움이 된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졸음이 쫓아진다. 담배를 피우다 폐병으로 돌아가신 친척 생각도 난다. 그리고... 죽은 이 한 명이 떠오르면 다른 이들까지 주르륵 떠올라버려 괴로운 지가 몇 년째인지. 내가 바로 먼저 간 이들이 꾸고 있는 꿈이라면? 그래도 어쩌겠는가? 비몽사몽북스는 먼저 쓰인 책들의... 현실이 어쩌고... 꿈이 저쩌고... 어쩌고저쩌고... 비몽사와 몽북스: 비몽사는 점심시간 외에도 1시간의 추가 오침 시간을 보장하며, 주 4일제지만 퇴근이 2시간 늦고 임금은 그대로다. 몽북스는 주 5일제를 유지하지만 하루에 4시간 노동이 전부고 임금은 비몽사의 반절이다. 비몽사도 몽북스도 내가 사랑하는 출판사다. 두 출판사의 구성원들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책을 낸 이들도 각기 갈라서 있다. 그냥 사이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로를 욕한다. 몽북스의 돼지들, 비몽사 개새끼들... 서로를 욕한다는 건 좋은 신호다. 무슨 좋은 신호? 우리에겐 욕할 만한 것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근처에 있을수록, 그것이 우리와 닮아 있을수록 좋다. 그래야 서로를 부러워하고 동경할 수도 있는 것이며... 미래의 나는 비몽사 몽북스 모두의 일을 돕고 있는 외주교정자다. 하루에 10시간 6일간 일하고 임금은 반절, 지금 금연에 대한 책을 엉망진창으로 교정하고 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간 것일까? 과거는 미래의 내가 꾸는 꿈일까? 과거와 미래가 합심하여 나를 떠올리고 있다. 완전 비몽사몽으로...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검사

콜록콜록. “왜 그러니, 어디가 아파?” 나는 공책을 꺼내서 폈다. 그리고 몇 문장을 적어서 언니에게 보여주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언니와 대화할 수 없어. 그런데 집에서 마스크를 쓰기엔 갑갑해. 언니, 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까? 그런데 같은 반에 검사를 받은 아이에게 들었는데 면봉을 코 깊숙이까지 찌른대. “검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자, 여기 마스크. 오늘은 이따가 검사받으러 갈까?” 나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응.” “밥 먹고 갈까?” “아니, 먹고 싶지 않아.” “그럼 좀 누워 있으렴. 이따가 언니랑 같이 가자.” “그런데 나 TV 보고 싶어.” “안 돼, 네 생각대로 나한테 옮길지도 몰라.” “콜록콜록.” “감기약이 있긴 한데 먼저 먹을래?” “응.” 언니가 감기약을 들고 왔다. 나는 그것들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다음 한 번에 물과 함께 삼켰다. 예전에 어릴 때는(지금도 어리지만) 한 번에 한 알씩만 삼키곤 했다. 언니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약을 잘 삼키네.” “응.” “그럼 좀 누워 있으렴.” “언니, 그런데 나 심심해. 핸드폰 하고 있어도 돼?” “응. 아마도 될걸. 그런데 눈 나빠지지 않게 조심해.” 시간이 몇 시간이 지나야 병원에 갈까? “언니, 병원에 몇 시에 갈 거야?” “나 지금 나갔다 와야 돼서 이따 1시에 가자.” 오랜만에 언니와의 외출이었다. 언니가 방을 나가고 나는 장롱문을 열어 개어 놓은 옷들을 꺼냈다. 이따가 입고 갈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동영상 어플을 켜서 맨날 보는 그림 방송을 봤다. 그리고 난 잠이 들었다.

*

콜록콜록. 멍하니 누워 있는데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언니인 모양이었다. 언니는 내 방문을 노크한 다음 고개를 올리고 일어난 나에게 캐미솔을 덮어주었다. “몸은 좀 어떤 것 같아?” 창밖으로는 비가 오고 있었다. “으응, 그냥 그래.” “아직도 밥 안 먹고 싶어?” “응.” “그럼 지금 병원에 갈까?” 나는 언니의 손을 붙들었다. “그런데 정말 면봉을 코 깊숙이까지 찌를까? 그럼 아플 텐데.” “그렇게 깊게는 안 찌를걸.” 나는 약간 두려웠으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까 꺼내 놓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가는 언니를 따라갔다. 언니는 근사한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왼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져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그런데 검사는 무료야?” “만 원 정도 든대. 그렇게 걱정하지 말렴.”

*

콜록콜록. 언니와 나는 택시를 타고 근처의 검사를 시행하는 큰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언덕길을 오를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의 밑에 안내원이 서 있었다. “언니, 나 그런데 정말로 그 병에 걸린 거라면 어쩌지? 지금도 이렇게 나란히 서 있잖아. 그리고 아까 택시 아저씨랑도 같은 차 안에 있었고. 아저씨에게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고 있음을 밝혀야 했던 게 아닐까?” “마스크를 썼으니까 괜찮을걸. 그래도 밝히는 것은 그래야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을 못 했어.” “으응.” 언니는 뭘 깜빡할 때가 많았다. 검사소는 병원 건물 밖에 마련되어 있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언니는 검사지를 쓴 다음에 안내원에게 건넸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멀뚱멀뚱 그것을 바라보았다. “의자에는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구나. 안 힘드니?” “콜록콜록.” 난 괜찮아, 라고 말하려는데 기침이 나왔다. 감기에 걸린 것은 분명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난 괜찮아. 그보다 언니. 그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 병이 맞다면 지금까지 제일 많이 같이 있었던 언니가 그 병에 걸릴 위험이 많은 거잖아. 그걸 뭐라고 했더라? 맞아, 리스크가 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돌아올 때는 언니와 같이 걸어왔다. 그리고 코 깊숙이까지 찌른다던 같은 반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코 깊숙이까지 찔렀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까진 아니었고, 언니가 옆에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코가 찔린 직후엔 코 속이 매웠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눕고 다시 동영상 어플을 켜서 그림 방송을 봤다. 그리고 멍하니 그렇게 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 난 장화를 신고 가서 양말이 젖지 않았다. 그렇게 있기를 몇 시간. 언니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림이 왔구나. 음성이래.”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록콜록.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지?” “응, 정말 다행이야.”




2021년 9월 7일 화요일

흡혈귀

벨벳 나무 앞에 여자애가 손 흔들고 있다.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하다. 나는 그 여자애의 연원을 생각한다. 문지른 책받침에 머리카락이 떠오르는 걸 여자애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그녀의 뒤에 있다. 앞에는 벨벳 나무가 있다. 이 언덕까지 올라오느라 나는 옷감이 상했다. 벨벳 나무의 그늘이 이쪽으로까지 뻗어 차양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내 몸에 가려 햇빛이 여자애의 몸까지 닿지 않는다. 나는 책받침을 들어 다시금 그 여자애의 머리카락에 대고 문지른다. 머리카락들 중 일부가 올올이 책받침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여자애는 앞에서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거대한 그림이 있다. 황야의 풍경을 누군가가 거대한 화구로 그려 놓은 듯한 그림이다. 그 그림은 현실성이 있어서 사진일 수도 있고 실제 풍경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미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재현해 놓은 것임은 분명하다. 여자애가 입을 연다. “저기에 가 보고 싶어.” 나는 말한다. “안 돼. 저곳까지는 멀어서 안 될 거야.” 여자애가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커터칼을 꺼내 익숙한 몸짓으로 벨벳 나무의 표면을 긁어낸다. 그녀는 하늘소처럼 벨벳 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음용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여자애는 허리춤에 빈 병을 매달고 있다. 그 빈 병에 흘러내리는 수액을 가득 채운다. “나무에는 통각이 없다고 해. 자기가 받은 고통. 그것을 잊어버린다는 거겠지. 나무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그리고 스스로를 상처 입히나 다른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거기에는 아무 차이점도 없을 거야. 난 나무가 상처 입을까 봐 표면을 긁어내는 게 아냐. 그저 나무의 중심부까지 닿을 힘은 없어서 이렇게 긁어내는 거지. 나무에게도 실감을 주고 싶어. 고통은 실감을 동반하는 것이니까. 난 권태로워.” “벨벳 나무는 좀 다를 수도 있을걸.”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벨벳 나무와 다른 나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그러나. “잘 모르겠군. 네가 옆에 있다는 거 아닐까.” 여자애는 수액이 반 정도 담긴 통을 흔들며 말했다. “이걸 마시면 잠이 잘 와. 졸리지 않을 시간에도 잠이 와.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그 점일지도. 벨벳 나무가 분비하는 물질은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 평화롭다는 것은 곧 행복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녀의 말에 답했다. “평화롭다는 것은 곧 행복한 거 아닌가?” “네 말이 맞아. 여기에서 난 행복해. 이 장소의 주인은 이곳을 가장 먼저 발견한 나이지, 나는 이 장소를 이렇게 불러. 벨벳 나무의 그늘이라고. 그늘은 나, 그리고 너.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지. 하지만 내가 권태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나에게 언니가 없기 때문이야. 있었을지 몰라. 하지만 잊어버렸어.” 나는 작은 경멸을 담아 말했다. “그렇다면 이 벨벳 나무를 언니인 셈 치면 되겠네.” “넌 날 경멸하니?” 나는 약간 당황했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져서 곧이어 “응.”이라고 정정했다. “이유는 많을지도 몰라. 감정이란 그런 것이거든. 종합적인 거. 그리고 일의 사후에서야 나오는 거. 나에게 경멸을 가지는 건 잘못된 게 아냐. 나에게는 현실성이 없으니까.” “부족하니까가 맞는 표현이겠지. 어찌 됐건.” “그래, 난 살아 있어. 부족한 게 많은 몸이지. 그런데 저쪽을 봐.” 아까 봤던 황야의 풍경이 보였다. “저게 그림이라는 건 잘못된 소문에 불과해. 저것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냥 떠돌아다니는 것들과 비슷해. 잘못 걸려온 전화, 받고 나서 무슨 메세지인지 너무 명확하고 하잘것없기 때문에 바로 끊어버리는 전화. 그런 전화는 하루에 몇 통씩이나 오기 마련이지.” “소문이라고?” “내가 설명한 것들은 다 소문이라고 부를 수 있어. 도시 전설에 대해서 들어봤니? 그냥 도시 안을 떠돌아다니는 소문. 이천년대 초쯤에 가장 세력을 얻었던.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익 단체들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어쩌면.” 나는 소녀의 그다음 말이 짐작이 갔다. “어쩌면 우리가 그 소문의 주인공일지도 몰라.” 그녀는 희열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라기엔. 특별한 것도 없고. 결여된 게 있을 수도.” “그래. 하지만 일의 진행 상황 중에는 아무래도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는 이익 단체의 눈을 끌어야 할지도 몰라.” “어째서?” “어째서긴. 여기를 벗어나기 위해서지.” 그렇게 말하는 여자애의 머리카락은 정전기로 인해 반쯤 공중으로 떠오른, 자고 일어난 직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자러 갈 시간이야. 사실 난 흡혈귀거든. 밤과 낮이 뒤바뀌어 있어. 넌 뭐 할래?” “나는 특별한 사람 할래.” 그녀가 웃음을 지었다. “어딜 봐서 특별하다는 거야.”



*조연호, <서적>

2021년 9월 1일 수요일

로봇 꿈

진짜 이상한 꿈으로 이어졌는데 나 빼고 다 로봇이야. 엄마도 로봇이고 아빠도 로봇이고 조상 대대로 로봇이고 애인도 로봇이고 구 애인도 로봇이야. 무슨 계기가 있어서 알아차리게 됐는데... 맞다, 내가 누굴 봤어. 그때 그 작자가 무언가를 한 거야. 절대로 인간의 것일 수 없는 괴이한 행동이었어. 동작으로 따지자면 사소하고 작았지. 무슨 행동이었는지 나도 몰라. 그건... 그건 묘사하지 못하겠어. 하여튼 그걸 본 충격이 너무 컸어. 잠깐 내가 죽은 줄 알았다니까. 

정신을 차리고 달아나려고 했지. 왜 달아나냐고? 몰라, 이 자식아. 무서워서 그랬겠지. 웃긴 게 뭔지 알아? 뛰기 시작한 순간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문자와 전화가 쏟아지는 거야. 아빠가 차에 치였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래. 엄마가 집에 불이 났대. 애인이 오늘 완전 할 마음이래. 또 뭐 친구들, 술을 먹자느니, 네가 바람을 피우는 걸 봤다느니, 복권에 당첨되었다느니. 말이 돼? 일생에 한 번 있기도 어려운 사건들이 어떻게 이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냐고. 날 붙잡으려는 것처럼?

때마침 사람들이 쫓아오는 거야. 집에서 나오고 학교에서 나오고 관공서를 나오고 길거리에서. 아파트에서 나오고 빌라에서 나오고 편의점에서 나오고 이마트를 나와서 쫓아오는 거야. 한참을 뛰었어. 뛰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 나한테 문자나 전화를 안 한 사람. 그 사람은 로봇이 아닐 거야. 그 사람은 사람이 맞을 거야. 뛰면서 확인했지. 정말 있었어. 여동생. 여동생한테는 전화나 문자 온 게 없었어. 희망을 찾은 것 같았지. 날 도와줄 것 같았어. 떨리는 맘으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곧장 받더라. 그런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미안, 오빠. 나도 로봇이야.”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니? 꿈이라고 영원히 뛸 수 있어? 얼마 못 가 잡혔어. 이 다음부터는 순식간에 일어났지. 그들은 내 장기를 다 뜯어냈고, 파이프와 튜브를 삽입한 다음 나를 프레임으로 만들었어. 머리에 변속기를 달았고, 어깨와 골반 사이에 체인을 걸었지. 쇄골부터 코에 이르기까지 꿰매 앞바퀴, 배꼽부터 샅까지 꿰매 뒷바퀴를 끼우고... 나를 자전거로 만들었어. 지나가는 어린아이에게 선물했지. 그 아이가 나를 타고 집에 돌아갔어. 훔쳐갈 수도 있으니까 집에 들이라는 말에 현관에 나를 내려놓고 씻으러 갔지. 

현관에 세워진 나는 멀리 거실에 둔 티브이를 봤어. 티브이를 보니까 지구도 로봇이고 우주도 로봇이고 공기도 로봇이래. 주기율표에 있는 게 다 로봇이래. 축구공도 로봇이고 윷놀이도 로봇이래. 꿈속에서 로봇 아닌 게 없는데 나만 그냥 사람이었던 자전거야. 오늘 밤에 이어서 꾸기로 했으니까, 내일 전화를 해서 알려줄게. 어떻게 되었는지. 꿈을 계속 이어 꿀 수 있어서 편하다.

21년 8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3 (48)
―――
박물지 +1 (5)
도시 전설 +1 (1)
방공호 +1 (4)


이달의 총격려금

7,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31일 / 3,000원 ― 박물지
31일 / 3,000원 ― 도시 전설
31일 / 1,000원 ― 방공호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박물지 [入] ☞ 3,000원
도시 전설 [入] ☞ 3,000원
방공호 [入] ☞ 1,000원 (기금 기부)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95,937원 (1,000원 + 194,854원 + 83원)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바이닐

아직도 난 해진 바이닐을 틀고 있다. 방 안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구들이 가득하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는 코르타사르의 공원에 다녀왔다. ‘담배 피우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있었지만 나는 언제든 그곳에서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에서 상관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생각 속의 공원이었으니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바이닐을 틀고 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은 하나의 실제적인 일인 것 같다. 음악은 실제적이다. 음악은 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바이닐이 해진 것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여러 번 틀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생각이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가끔 음악 듣는 일이 괴로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도 나는 틀고 있는 바이닐을 치우지 않곤 한다. 바이닐은 내가 인생의 여러 감정들에 보내는 경의 중 하나다. 훌륭한 작품들을 접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보내게 되는 경의처럼. 경의에서 ㅡ자 하나를 빼면 경이라는 낱말이 된다. 나는 경이를 좋아했다. 요즘 내가 접하는 것들 중 경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별로 없다. 일종의 의문감을 품고 나는 TV를 켰다. TV에서는 오늘 아침 발생한 재난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며칠간은 이 재난에 관한 보도로 TV 프로그램들이 채워지게 될 것 같았다. 바이닐을 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런 재난과는 거리가 멀다. 바이닐은 사람이 도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가? 그렇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방과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것 같다. 바이닐의 앞에는 문지기가 있는데, 문지기는 졸고 있다. 그가 졸고 있는 이유로는 아무래도 해진 바이닐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그 공간, 방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 파일이 아닌 바이닐이라서, 그 문지기들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지기가 존재하는 이런 상황은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어떤 바이닐의 출입문은 내 방의 가구들과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이고, 어떤 바이닐의 출입문은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안이 환하게 비쳐 보이기도 한다. 가끔씩 그 안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 있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먼저 당도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품위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옆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이 얘기하는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래서 출입문을 열지 않고(방해가 될까 봐) 가끔 귀를 대고 있기만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바이닐에서 나오고 있는 음악 소리가 커진다. 그 때문에 내가 안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나는 그런 일이 모두 재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이닐들은 마들렌처럼 여러 겹으로 구성된 내 책장들 사이에 꽂혀 있고, 그 광경은 나로 하여금 안정감을 들게 한다. 코르타사르의 공원에 가는 일은 문지기도 무엇도 없고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은 채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이내 나는 코르타사르의 공원 안에 서 있지만(아직 켜지지 않은 대낮의 가로등이 보인다) 방 안은 점점 자욱한 연기로 차게 되어 바닥을 보면 그 연기들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만일 누가 방문을 열고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당장 쉴 수 있는 푹신한 쇼파에 가서 몸을 뉘기도 전에 자욱한 연기로 인해 기침을 하게 될 수 있다(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혹은 방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나처럼 귀를 문밖에서 대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지금 해진 바이닐에서 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릴 것이다. 아쉽게도, 혹은 경이롭게도 내 방문 밖에는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문지기가 없다. 따라서 이 방 안에 앉아 있는 나는 내 방 바깥의 문지기이기도 하다. 지금 문지기는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방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린다면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가 이 방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할 것이다. 혹은 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고 쟁반 위에 놓인 마들렌 과자와 그것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커피를 들고 오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이 저택 안에는 그런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미니어처

거리에는 비가 있다. 비가 내린다. 나는 차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내 손바닥으로 비가 오게 했다. 차는 멈춰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움직였다. 차가 움직일 때에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권투 클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권투 클럽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미니어처로 된 이곳 풍경 밖으로 도시의 경관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권투 클럽까지 차로 30분이 걸리지만 만약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음씨 착한 사람이 내 차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권투 클럽 앞에 놓아준다면 거리는 영이 될 것이다. 거리는 영. 거리는 영. 나는 주문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곳 도시에도 미니어처를 다루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이 미니어처의 세상이니까 어쩌면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을 다니는 전철과 열차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 것이므로 뭐랄까 견고하며 더 품위가 있다. 불행하게도 정확한 재현을 위해 역사적인 모델 이름까지 그대로 새겨져 있으므로 제작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나 또한 만들어진 모형이다. 내 얼굴을 만드는 데는 몇 사람의 손이 거쳐 갔을까? 만들어진 나는 최후에 조립되었으며 그 점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웃을 줄 아는 기계 로봇들,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 도시에서의 만남은 딱히 제한되어 있지 않다. 우리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므로 산아 인구수 제한이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은 전부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초기 모델과 후기 모델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후손이 아닌 동료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물론 우리들의 얼굴은 인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미니어처 도시 안에는 날씨까지 재현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도시에 있는 식물들은 전부 바깥세상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끼류를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그 크기가 아주 거대하다. 그것들은 바깥 인간들의 손으로 빚어낸 것들이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돌보다가 관리되었고 씨가 추출되거나 묘가 파종되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들이다. 바깥세상에서는 비 오는 데 이유가 없을지 모르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러한 식물들을 관리하기 위해 비를 뿌리는 것일지 모른다. 엄밀히 말해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나하면 우리들은 자신의 생김새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지만 차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거리는 영’이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들은 영화 속의 스틸컷처럼 그 순간 그대로의 인물들에 조형이 갖춰진 것이지 아직도 걸음걸이가 어색하나 그래도 꽤 잘 걷는 현세대의 인간형 주행 로봇과는 다르다. 그들이 과학적이라면 우리는 예술적이며, 그들이 이과에 가깝다면 우리들은 문과에 가깝다. 우리들은 심장이 없는 앙철 나무꾼과 비슷한 신세이고 그들은 새가 비웃는 허수아비와 비슷한 신세이다. 물론 우리들은 허수아비 신세들인 그들보다는 처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을 만든 바깥의 사람들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은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노동은 동결되었다고나 할까. 노동을 구성하는 핵심에서 동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일하는 모습의 미니어처가 있다면 단지 겉보기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어도 우리는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로 우리들의 사진이나 그림, 비디오, 그리고 우리들의 실제 모습에는 원색적인 데가 있다. 우리들은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란 그런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시선에는 시간의 경과가 느껴진다. 때때로 비가 오며, 외계의 식물들은 생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시간의 경과는 우리들 중 아주 감이 좋은 이들이나 머리가 똑똑한 자들이 간신히 개념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바깥세계의 근본 원리에 가깝다. 우리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아마도 우리들과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점토로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분사 마커로 색칠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제조에 있어서 막바지 작업인데, 우리들은 그 순간을,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것처럼 최초의 색조가 그렇게 새겨진 기억을 사랑하는 편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개념이란 친숙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에서 사랑은 더 잘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이 처지가 어떤 외계 사람의 열렬한 애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우리는 외계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마치 진공 속에서 울려 퍼지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아, 참고로 나는 차창 너머로 옆모습이 비치도록 앉아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해적의 기념품

... LP를 사서 턴테이블에 올리는 것이 음악 청취 그 자체보다는 일종의 의식에 가까워졌듯이, MP3를 검색하고 다운받아서 폴더 분류와 태깅을 하고 이미지를 삽입하고 파일을 플레이어로 전송하고 디지털 기록소에 항구히 아카이빙 해두는 것 또한 사이버 의식에 가까운 것. 그것은 사랑하는 장르를 다루는 애호가의 자세다. 그리고 그것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정신이다.

― 어떤 트윗

리추얼이 과연 공유하려는 마음의 시현이라면, 바쳐진 도구와 그 사용법인 의식이 그것 너머를 공유하려는 마음과 불가분이라면, 紅衛兵 선배들의 저 기묘했던 굿즈 지향과 관련하여, 구 문화의 파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모양 지닌 잡동사니로서 어록집과 배지들이 필요했던 것인 한편,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祭儀’라는 비유가 어쩌면, 화폐들의 피할 수 없는 형체 상실과 함께 자신의 공유를 세계에 대하여 관철시켜 오던 그 힘을 서서히 잃고 있는 중이라면, 그렇다면 새롭게 도래하려는 애호는 어떤 종류의 것이며, 무엇들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가?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도래해야 하는가?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엑토플라즘

이 책은 이○○ 회장의 저승 에세이다. 이름을 이○○ 그대로 쓰면 곤란할 것이고 이름자 중 한 획만 바꾸는 정도면 되겠다. 책은 저승에 도착한 이○○ 회장이 구□□ 회장과 재회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둘은 바람 부는 저승 언덕에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하다가 의기투합, 저세상 경영을 결의한다. 이 에세이의 제목 후보는 다음과 같다: 『생각 좀 하며 저승을 보자』, 『죽어보니 알겠다』, 『21세기 천로역정』, 『신 마하 초일류 지옥을 향해』... 제목이 뭐 중요한가?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저승경영 의기투합
2장 나의 사이보그 시절
3장 악마도 울고 갈 새로운 도전
4장 재용에게
...

내가 여기까지 소개하자 ‘저승까지 갔는데 구□□를 뭐하러 만나냐, 잡스 정도는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불만이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잡스는 5장에 나온다. 구□□의 숭고한 희생으로 잡스를 물리치고 저승의 흙을 그러쥐며 눈물을 흘리는(?) 이○○...

이름을 ‘이간희’로 수정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엑토플라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다. 그래서 책 소개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요점은 이○○의 에세이 따윈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이○○의 저승 에세이라면 궁금하기 마련이라는 것, 에세이를 굳이 본인이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나아가 애써 논픽션인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 마지막으로 출판사명의 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엑토플라즘 출판사가 사라졌으니 이제 안심해도 될까? 이승에서 반드시 다뤄야만 할 망자들이 있는 한, 우리는 이름을 바꿔 가며 시공으로부터 세계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부두북스’, ‘좀비미디어’, ‘언데드프레스’, ‘교령회’, ‘강신사’, ‘도서출판 네크로필리아’... 이러한 출판사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한 권씩의 망자 에세이들 페이지 어딘가엔 똑같은 마크가 그려져 있다.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대부호

그 대부호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은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대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의 일로 그는 전 재산의 반을 잃었다. 물론 남은 재산만으로도 그야말로 수많은 돈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대부호는 저택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을 잠시 초청했다. 그리고 카드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고 몇 가지 사항들을 대부호에게 물었다. 카드 점이 시작되고 순서대로 뒤집힌 십자가, 말 탄 왕, 정원에 피어 있는 덤불 장미, 그리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의 카드가 나왔다. 그것들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설명을 시작했다.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하나씩 원래대로 돌리면서 테이블 너머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알아야 할 사실,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그리고 이 카드들이 알려주는 앞으로의 방향 같은 것들로 이 잠시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대방의 제어하에 있는 어떤 분위기의 장악은 심란했던 대부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먼저 대부호는 어젯밤의 그 일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 시점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돌보다가 그 소중한 무언가가 대부호가 원하는 것과는(그리 기대한 것이 없었으나) 이탈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친 것에서 시작되어 대부호가 은연중에 잊어버렸던 희미한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이제 자신의 중요한 감정들 중에 하나를 잊어버린 운명의 현전 아래(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대부호를 서서히 납득시켜 가는 과정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실점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간단히 말해 대부호는 이러한 진행 과정 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잊어버린 과거의 일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므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서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부호는 자신도 잊어버린 과거의 일이 어째서 어젯밤의 일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압도되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대부호는 은쟁반 위에 쌓인 감자튀김을 카드 점을 치는 여인에게 권했다. 짠맛이 나며 고소하기 때문에 먹을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사양했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과는 관련 없지만 대부호가 놓인 현재의 운명 같은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첨언하기 시작했다. 대부호는 그것들을 아주 귀담아들었고, 중간중간 노트에 필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되돌아갔다. 대부호는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그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잠깐의, 그리고 사소한 불행으로 비롯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까지 납득 못할 일은 아니라고. 대부호는 그런 말을 들은 뒤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가슴이 먹먹한 듯 답답하여 뛰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이 돌아가고 난 뒤 대부호는 저택 밖으로 나가 잠시 뛰었다. 대부호의 저택은 어떤 숲 앞에 있었고 그곳은 국립 공원이었다. 대부호는 밤에 그곳을 뛰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운동을 빼놓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불행은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대부호는 그 말이 어쩐지 인쇄기에서 전사되는 어떤 견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이 어떤 식의 읽을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대부호는 의외로 소심한 성격이어서, 만일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을 믿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 것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이미 일어나고 난 뒤였다. 대부호는 남들보다 자신이 더 그 불행을 좀 더 와닿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전 재산의 반이나 잃었지만 거기에서 대부호는 그리 큰 실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사실 몇 번의 고비를 거쳐 지금 같이 돈을 불린 이후로부터 대부호는 실감이랄 것이 약간 마비된 상태였다. 대부호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호는 뛰었다. 어젯밤 일어난 일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그에 대해서 몰입하고 대처하기 위해. 대부호는 숨이 가빠 왔고 대부호는 뛰던 것을 그만두고 잠시 걸었다. 밤이 있었다. 그리고 나무 어둠 속에 가린 새들이 있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대부호는 남의 것이 인용되고 저촉되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부호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대부호는 밤의 이 숲 안에서 어젯밤의 그 일을 잠시 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실수로 자신이 아끼는 찻주전자를 떨어뜨려 깨게 된 일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 일이 최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었다. 대부호는 그 사실에 눈을 감았었다. 대부호는 그 어젯밤의 일이 하나의 재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어떤 불행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호는 그런 불행의 감각에 잠시 몰입해 있었다. 사실 대부호는 좌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쌓아둔 재산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대부호는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후원자들에게서 온 편지가 조금 판에 박혀 있는 것 같았으며 지금 대부호는 그러한 판에 박힘이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용하는 일도 저촉하는 일도 아니었다. 판에 박힘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숲 저편에서 새들은 새들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소리로 울고 있었는데, 대부호는 그런 것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편지. 대부호는 그러한 편지들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마감날 풍경

며칠 전부터 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예 저장고에 들어가 살았던 이사야도 요즘엔 저녁때 맞춰 밖으로 나온다. 한창 더울 땐 나도 저장고에 내려가서 이사야와 놀았다. 어두운 저장고 한구석에서 이사야의 무지갯빛 허리띠가 부드럽게 빛났다. 관리인은 오늘 아침부터 안절부절하며 공연히 창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름을 지나며 관리인은 홀쭉해졌다. 보양식이라도 좀 챙겨 드세요 했더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예 아무것도 먹질 않는다고 했던가? 하여튼 됐다고 했다. 다 지났는데 뭘. 올여름도 창고에 에어컨은 없었다. 여기 관리실에도 그렇다. 땀을 쏟으며 캐비닛을 한참 뒤졌지만 나의 마스코트 그림은 없었다. 관리인이 왈칵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감전된 것처럼 일어서다가 캐비닛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는다. 꽁꽁 닫고 뭐 하고 있어? 아녜요. 맘대로 뒤져도 되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해. 다 들어왔어요? 아직. 좀 쉬어요. 뭘 걱정해요? 관리인은 대답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간다. 이사야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사야가 저장고의 어느 구멍으로 드나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1년 8월 7일 토요일

산 것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생님, 제 도시락이 말을 하고 있어요.

나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조수의 말에 돌아보니 과연 도시락이 하는 말이었다. 하긴 아침부터 함께 있었는데, 뜬금없이 점심시간이나 되어서 조수가 내게 인사를 건넬 리는 없겠지. 포장을 보니 편의점에서 산 물건인 듯했는데 예의가 바르고 명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식사 중 가장 중요한 게 아침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녁이라고 하죠. 아침을 먹어야 기운을 내서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저녁에는 성대한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점심이야말로 승부수를 띄우는 때라고 생각해요.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많고 건강상 저녁을 생략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렇지만 오전과 오후 사이에 점심을 잊으면 하루가 온통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

심지어 자기 의견을 갖고 있을 만큼이나 잘 만든 도시락이었다. 이런 건 먹어버리기 아깝겠는데. 조수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과 낭패를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왜 웃고 계세요?

웃고 있어?

네, 아주 즐거워 보이시네요.

대량생산의 시대에 이런 물건이 발견되는 것은 생각만큼 드문 일이 아니다. 매우 빼어나거나 독특하여 유일하기까지 한 물건을 가리키는 영숙어 표현 가운데 one of a kind 라는 것이 있고 때로 이 말은 주문제작(order made)의 유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동시에 역설적으로 대량평질의 유사한 물건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아 2:2) 총기 공장에서 십만 정의 똑같은 권총을 만들 때 그 중 적어도 한 자루는 우연히 명기로 제작된다는 미신과 맥이 닿는다. 말했듯 이것은 상당한 미신이지만 또한 그보다 앞서 말한 바대로,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현상이다. 공정에서 수준 미달의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면 어떤 물건은 수준 초과의 우수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믿음은 아니지 않은가?

이건 일종의 골렘인 것 같다.

골렘이요, 선생님?

너무 잘 만들어진 나머지 의식이 깃들어버린 거지. 영양 균형이 완벽할 거야. 맛있게 먹도록 해.

하지만 말하고 있는데요?

먹히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먹지 않으면 원념을 품을 텐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도깨비가 되겠지.

그러면 안 되나요?

생각만큼 귀엽거나 우습지는 않을 거야. 음식으로 만든 것이어서 상하기도 할 테고. 꺼림칙하겠지만 먹어서 없애는 수밖에는 없어. 나중에 상한 도시락한테 습격을 당하는 것보다야 지금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뭣보다 말을 할 만큼이나 잘 만든 물건이라면 맛도 괜찮을 테고.

그럼요. 그럼요. 나는 아주 맛이 좋아요.

도시락은 노래하듯 가락을 붙여가며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조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가르고 밥을 떠 입에 넣기 시작했다. 도시락은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나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도시락. 이천쌀로 만들어서 더욱 대단해.

어때?

맛있네요.

조수는 울상을 지으며 젓가락질을 계속했다. 점점 줄어드는 도시락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로 돌아와 내가 직접 싼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평범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김치볶음밥. 아무렇지 않은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세계의 곡물창고들 '20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