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7일 토요일

산 것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생님, 제 도시락이 말을 하고 있어요.

나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조수의 말에 돌아보니 과연 도시락이 하는 말이었다. 하긴 아침부터 함께 있었는데, 뜬금없이 점심시간이나 되어서 조수가 내게 인사를 건넬 리는 없겠지. 포장을 보니 편의점에서 산 물건인 듯했는데 예의가 바르고 명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식사 중 가장 중요한 게 아침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녁이라고 하죠. 아침을 먹어야 기운을 내서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저녁에는 성대한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점심이야말로 승부수를 띄우는 때라고 생각해요.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많고 건강상 저녁을 생략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렇지만 오전과 오후 사이에 점심을 잊으면 하루가 온통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

심지어 자기 의견을 갖고 있을 만큼이나 잘 만든 도시락이었다. 이런 건 먹어버리기 아깝겠는데. 조수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과 낭패를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왜 웃고 계세요?

웃고 있어?

네, 아주 즐거워 보이시네요.

대량생산의 시대에 이런 물건이 발견되는 것은 생각만큼 드문 일이 아니다. 매우 빼어나거나 독특하여 유일하기까지 한 물건을 가리키는 영숙어 표현 가운데 one of a kind 라는 것이 있고 때로 이 말은 주문제작(order made)의 유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동시에 역설적으로 대량평질의 유사한 물건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아 2:2) 총기 공장에서 십만 정의 똑같은 권총을 만들 때 그 중 적어도 한 자루는 우연히 명기로 제작된다는 미신과 맥이 닿는다. 말했듯 이것은 상당한 미신이지만 또한 그보다 앞서 말한 바대로,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현상이다. 공정에서 수준 미달의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면 어떤 물건은 수준 초과의 우수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믿음은 아니지 않은가?

이건 일종의 골렘인 것 같다.

골렘이요, 선생님?

너무 잘 만들어진 나머지 의식이 깃들어버린 거지. 영양 균형이 완벽할 거야. 맛있게 먹도록 해.

하지만 말하고 있는데요?

먹히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먹지 않으면 원념을 품을 텐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도깨비가 되겠지.

그러면 안 되나요?

생각만큼 귀엽거나 우습지는 않을 거야. 음식으로 만든 것이어서 상하기도 할 테고. 꺼림칙하겠지만 먹어서 없애는 수밖에는 없어. 나중에 상한 도시락한테 습격을 당하는 것보다야 지금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뭣보다 말을 할 만큼이나 잘 만든 물건이라면 맛도 괜찮을 테고.

그럼요. 그럼요. 나는 아주 맛이 좋아요.

도시락은 노래하듯 가락을 붙여가며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조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가르고 밥을 떠 입에 넣기 시작했다. 도시락은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나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도시락. 이천쌀로 만들어서 더욱 대단해.

어때?

맛있네요.

조수는 울상을 지으며 젓가락질을 계속했다. 점점 줄어드는 도시락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로 돌아와 내가 직접 싼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평범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김치볶음밥. 아무렇지 않은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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