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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5일 월요일

반딧불

반딧불 하나가 어둠 속에 있다. 그 반딧불은 드넓게 펼쳐진 밤의 수해를 가로지르며 앞으로 이동한다.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걷는 것과 같은 속도이다. 그 반딧불은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안착한다. 그 반딧불을 따라가던 나는 그 반딧불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 그 반딧불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앞으로, 저 앞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반딧불의 뒤를 따라가지만 그 반딧불이 내가 십 분 전에 따라가던 반딧불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가 왼쪽 손을 펴고 위로 올린 자세로 걷자 이내 내가 쫓던 반딧불이 내 왼쪽 손 위로 올라온다. 그 반딧불은 너무 작고 미세해서 손에 올린 감촉이 없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크게 빛나는 것은 아니고, 조금의 열기도 없다. 반딧불은 왜 빛나는 걸까. 나는 반딧불이 올려져 있는 나의 왼손 끝을 조금만 움켜쥐었다가 편다. 반딧불이 다시 저 앞으로 날아간다. 이번에도 나는 저 앞으로 이동하는 반딧불이 지금까지 내가 쫓던 반딧불인지 확신할 수 없다. 곧 숲과 나무들의 수해가 끝나고,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 다시 주거 건물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로 이동한다. 내가 쫓던 반딧불은 불 켜져 있는 가로등들의 불빛의 세기에 밀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꼭 그 반딧불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그들의 일부로서 되려는 것처럼 날벌레들이 가로등 안으로 솟구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장면을 간직한 한 가로등 밑에 서 있다. 지금은 밤이고, 이 가로등이 켜져 있는 시간은 새벽까지다. 새벽이 지나면 모든 가로등은 꺼지고, 하늘에는 빛나는 태양의 구가 떠오르게 된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반딧불의 뒤를 따라갈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반딧불의 뒤를 따라갔던 것은 단순히 반딧불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숲의 밖에서 그 빛에 이끌려 그 숲을 모두 지나왔고, 이제는 불 켜진 가로등들 사이에서 그 반딧불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할 수 없어 쫓는 일을 그만두고, 단순히 서 있는 중이다. 단순하다. 가만히 서 있는 일은 단순하다. 내가 반딧불의 뒤를 쫓았던 것은 그 반딧불이 앞으로 이동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 사람이 천천히 걷는 속도라고 하더라도 공중에서 움직이는 존재의 뒤를 쫓는 일은 지상의 장애물들에 이따금씩 가로막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서 있던 가로등의 불빛 안에서 아주 미약한 불빛 하나가 분리되어 튀어나온다. 나는 그 불빛이 반딧불인지, 작은 먼지 조각인지, 아니면 내가 반딧불을 쫓던 이 한 밤의 여정이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앞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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