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 일요일

릭과 배반

소녀는 수업을 듣고 집에 가고 있었다. 소녀는 박물관 앞에서 잠시 거기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소녀의 곁으로 닷지 자동차가 다가왔다. 닷지 자동차에 타고 있던 릭이 말했다. “타.” 릭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 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릭을 위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박물관 안에 있는 조형물들이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들은 여기에 있어요. 일단 타요.” 소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릭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닷지 자동차 안으로 몸을 굽히고 들어갔다. 닷지 자동차 안은 넓었다. 소녀는 두 발을 좌석 앞으로 누이고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릭의 눈물이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릭은 운전을 하고, 소녀는 릭이 앉아 있는 운전석을 잠시 바라보았다. 닷지 자동차는 시내를 향해 가고 있었다. 릭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반당했고, 소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릭에게는 한쪽 손가락이 없었다. 험한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 한쪽 손가락만 없으면 다행이었다. 릭은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았다. 릭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소녀는 왜 닷지 자동차에 탔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박물관에 있는 조각 조형물들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조형물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그래서 잠시 그들의 말에 감화되었다. 차내 온도가 꽤 높아서 소녀는 후드 집업을 벗고 안에 입은 크롭티 차림이 되었다. 릭은 한참이나 말을 하다가 잠시 말이 없었다. 소녀는 릭 쪽으로 왼쪽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손가락 비행기를 만들어서 그것이 떠 다니고 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것은 소녀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제스처와 연속성을 가진 것처럼 소녀가 릭에게 물었다. “넌 어째서 앞으로 가고 있지?” 다소 생소한 질문임에도 반문할 필요가 없다는 듯 릭이 입을 열었다. “배반당했으니까.” 소녀가 박물관에 대해 말했다. “아까 내가 보고 있던 거기에서는 조각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있었어. 그것들이 대신해서 네 맘을 말하는 것 같더라.” 릭이 대답했다. “뭐라고 했는데?” “일단 타라고. 닷지 자동차를 타래.” “그렇군.” “넌 앞으로만 가지. 내가 이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너는 너의 성질이나 행동을 변질시킬 수는 없을 거야.” “웃기네, 정말.”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릭이 운전하는 닷지 자동차를 탄 것은 소녀와 릭이 거리에서 만나도 인사 한 번만 하고 지나갈 만큼 거리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거리꼈다. 그럴 때 자주 쓰이는 관용구처럼 소녀가 말했다. “어째서 넌 배반당했지?” “몰라. 너무 그랬나봐.” 소녀는 다시 비행기 제스처를 하며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너무 그랬다는 거지. 너무 사랑했던 거지.” “사랑이 뭔데?” 릭은 잠시 말이 없었다. 릭은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적어도 소녀가 보기엔 그랬다. 아까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 차내의 온도가 내려가 있었다. 소녀는 올려 두었던 발을 접고 벗어두었던 후드 집업을 다시 입었다. 소녀는 후드 모자를 썼다. “이제 내릴 시간이야. 다른 박물관 앞에 내려줘.” 릭이 말했다. “박물관엘 왜 가는데?” 글쎄, 하고 말하고선 소녀는 닷지 자동차 밖으로 내렸다. 소녀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생활에는 단조로움이랄 게 있었다. “이걸 두고 내릴 뻔했군.” 릭이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까지 소녀가 하고 있던 비행기 제스처를 따라했다. 소녀가 쿡쿡 웃었다. “그래서, 잠시간의 자동차 여행은 어땠죠?” “네.” 소녀는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고, 그것을 따라가는 척하면서 릭의 얼굴 앞에 당도했다가 조수석 밖으로 내렸다. 릭이 손 인사를 했다. 릭은 소녀의 박물관 친구였다. 잠시 동안 박물관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닷지 자동차를 운전해 곁으로 오는 사람. 소녀는 나중에 돈을 모으면 닷지 자동차를 살까, 생각하다가 제 자리에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녀가 보기에 닷지 자동차는 쓸데없이 비쌌다. 그녀가 내린 곳의 박물관에도 여러 가지 종류들의 조형물들이 있었다. 그 조형물들을 보고 있으면서 소녀는 ‘천사’라고 하는 것들을 상기했다. 왠지 그것들은 천사를 닮아 있었고 스스로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그들의 조언을 따랐는데, 오늘 닷지 자동차를 탔던 것도 그들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박물관에 있는 천사들. 소녀는 그런 말을 떠올리곤 왠지 즐거워서 웃었다. 그리고 오늘부로 자신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 하는 것을 생각했다. 닷지 자동차에는 다른 닷지 자동차들이 없는 것처럼, 박물관에 있는 조형물들은 천사들이다.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가장 중요한 것

과장을 잘하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받은 고통을 과장해서 희화화하는 광대였고, 실제로 고통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몸의 한 군데를 못 쓰는 병자이기도 했고, 단순히 그냥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 그래서 아무리 과장을 하더라도 과장이 아니게 된, 가련한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죽어서 슬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거기에 깃들게 된, 그 사람은 나의 유년 시절의 엄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죽어서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병원에 가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고, 치료를 거부한 채 자택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작용했을까요. 그 이유를 난 잘 알 수가 없지만 죽음이 가까워져 오면서 그가 느꼈을 고통이 짐작이 됩니다. 난 묘를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타인의 많은 죽음들을 겪었습니다. 그중에서 슬프지 않은 죽음이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누군가가 죽었거나 죽는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기 바빴죠. 나는 그러한 죽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슬픈 날에 나는 또 한 가지 슬픈 일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 기억입니다. 학창 시절, 나를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어느 날,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그분을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은사님의 은사님을 죽음으로 인도했으며, 꼭 지금의 저처럼 그 은사님을 잠시간의 슬픔으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잠시 말이 없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고 또한 슬픕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우위인가 하면, 슬픔의 쪽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 또한 쉽게 지워 없애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 또한 나의 소중한 감정이니까요. 과장을 잘하던 나의 엄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자기가 받는 고통을 다른 것으로 비유하지 말라던 분. 그런 솔직함이 오늘은 떠올라서 더 괴롭습니다.

얼마 전 그런 이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이후로 슬픔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생각이 났던 건, ‘나는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이 들었던 건, 그분이 한 인간의 엄마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자식과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애써 먼 것으로 조장해야만 했습니다. 사실대로라면, 죽기 전에도 그분은 이지를 약간 상실한 분이었으니까요. 나는 그 생각으로 내가 느끼는 그의 죽음에 대한 고통과 슬픔, 분노 등을 덜었습니다. 얼마 전 나는 그의 죽음을 접하고, 울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네, 곧 단막극이 시작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이름의 단막극이요.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가장 중요한 것>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GMCG

고대 히브리 문자 표기 체계에 모음이 없었다는 얘기는 제법 알려져 있다. 출판사 ‘지엠시지’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다. 네 개의 알파벳만 봐서는 직관적으로 아무 뜻도 짐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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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영 수상쩍다. 사이비 종교 또는 유사과학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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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에 무슨 좋은 뜻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들리기에만 좋고 입에만 잘 붙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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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CG는 둘 다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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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자로 표현할 수도 있다. ГМЧГ(게엠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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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4음절은 여러모로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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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의 로고를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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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특수문자로 등록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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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문제가 아니다. 어느 문자로든 그런 이름은 안 쓸 것이다. 최소한 출판사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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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점이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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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왜 그냥 곡물창고가 아니라 굳이 GMCG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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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곡물창고로 하면 출판사에 곡물창고가 딸린 것처럼 되어 버린다. 곡물창고는 어떤 출판물을 위한 선공개 플랫폼이 아니다. 일테면, 출판사 쪽이 곡물창고에 딸려야 한다. 구분을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거다. 또 글로벌 시대니까 Gokmoolchang... 이런 건 어렵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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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래너리북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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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할 이유 없고, 이미 미국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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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보니 Global Maritime Consultants Group이란 기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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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남한에선 우리가 지명도로 압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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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글로벌 어쩌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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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파벳 대문자 배열을 사명으로, 출판사명으로 써도 안 될 거 없다는 얘기다. LG나 GS 같은 경우는 어떤가? BMW는? 다른 업종까지 안 가더라도, 그런 식의 출판사명은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검색시스템에서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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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우리가 아는 데 중엔 없지. LG 출판사? 그런 게 가능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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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가능하다. 삼성출판사도 있다. 그렇다면 타협안으로 GMCG 프레스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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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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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CG 엔터테인먼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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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엔터테이닝을 하겠다는 건가? (그리고 더 길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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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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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이 아니라 출판사명이 흥미를 불러일으킬 이유는 없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직 서가에서, 책등들의 아래쪽에서나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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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거다. 서가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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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엔터테인먼트는 안 된다. 도서명에 도리어 방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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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역시 그냥 GMCG로 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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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수작... 다 그렇다 쳐도 곡물창고의 사유화 아닌가? 곡물창고와 그 출판사가 어째서 관계있어야 하는가? 누구 마음대로? 차리고 싶으면 따로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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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입장으로 바꿔 봐도 곡물창고에 어떤 식으로든 딸릴 이유가 없다. 왜 곡물창고와 관계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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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당한 얘기들이다. 그래도 후보에 넣을 순 있겠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순간에, 결국 제비뽑기를 해야 할 때, 그 제비 중 하나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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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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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당신들을 부르지 않겠다.

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초대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여행지가 보내오는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일종의 권태에 젖어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집을 나왔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 온 이유는 누가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곧 그 사람이 나와서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할 터였다.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가 내 맘에 별로 안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 사람의 초대에 응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저번에 그 사람이 주전자 하나를 선물로 줬는데 나는 그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는 우리 집에 있는 주전자보다 지루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그 사람이 나왔고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더 일찍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솔직히 말했다. 당신이 초대한 이 장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은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군요. 기왕에 초대해주신 장소인데. 나는 우리 집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에게 굳이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거든요. 나는 그때 당신이 내게 선물로 준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 나를 초대한다면 그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또 웃더니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기왕에 오신 김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보여드리고 싶군요. 하더니 그 사람은 산길을 올랐다. 나는 잠자코, 궁시렁거리며,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올라가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준 주전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멈춰서 내 쪽을 뒤돌아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아, 그래요. 여기에선 뭘 할 수 있죠? 그 사람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제가 좋아하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나는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약수터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와서 나를 붙잡았다. 이것이 여행지에 와서 일어난 그와 나 사이의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장소를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고 고속버스 위에 타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언젠가 그 주전자 같은 선물을 또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네, 그래요 하고 나는 답했다.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전농의 로고

외곽으로 이어지는 타원형은
 온갖 곡식의 씨앗,
 생명을 뜻함.

단결된 농민의 손으로 나락을 부여잡고
 이 땅의 농업을 지켜내기 위해 진군하는 형상임.

나락 알곡의 개수는 남북한 도의 총수와 같고,
 전농의 통일의지와
 전국적 대표성을 의미함.

바탕색인 하늘색은 남북 단일기의 색으로
 통일농업을 향한 전농의 의지를 뜻함.

상징문형과 로고는 백색으로 농민을 상징함.

2021년 2월 19일 금요일

[19호 서신]


*신년 진입
- 유행병 시기 심신 건강관리 유의
- 입하: 5월 5일
- 입추: 8월 7일
- 입동: 11월 7일

*곡물창고 메일링 『곡물창고 보름간』 시작
- 게시물 입하 소식을 모아 한 달에 2회 발송
- 관리실 → 구독 메뉴에서 이메일 주소 등록하고 아카이브 확인 가능
- 트위터 이외의 경로로도 새 게시물로의 접근이 가능하케 함이 주 목표
- 제1호는 이달 말 2월 통합으로 발송 예정
- 이전까지의 구글 FeedBurner 기반 메일링을 스티비 기반으로 개편
- 기존 메일링 구독자는 새로운 주소록으로 옮기고 이전 정보는 삭제됨
- 주소록에 필자들 추가됨
- 관련하여 사용조례 개정

이상

2021년 2월 18일 목요일

편지

발몽 자작이 내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순간 나는 당황하게 되어 여러 감정이 들었다. 우선은, 항상 메데이아 부인이 보내는 편지를 받던 입장인 발몽 자작이 무슨 연유로 갑자기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쓸 마음이 들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발몽 자작은 무표정한 채로 자신이 죽는다면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편지를 완벽하게 봉하지 않곤 했다. 그래서 전달하는 동안에 편지를 열어볼 수 있었다. 나는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는 일을 맡고 있었다. 편지를 열어본 적은 지금껏 한 번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확인한 감상은 바깥의 평가에 비해 그녀의 말투가 순진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의 집사였다. 그런 내게 발몽 자작은 부탁을 한 것이다. 지금껏 받기만 했던 편지의 최초의 답장을. 그 부탁을 받고 나는 온종일 고민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 성격의 어떤 부분이 편지를 전달하는 일에 적합했기에 나를 적임자로 삼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한번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 다음번부터 발몽 자작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써줄 수는 없겠냐고. 나는 메데이아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나와는 다른 쪽의 성별로 사교계의 유명인인 그녀의 말투를 모방해 한 남자에게 변치 않을 관계를 약속하는, 그런 편지를 쓰기에 나는 부담스러우며, 나는 멍청하고,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이미 발몽 자작에게 부탁을 받은 입장인 나로서는 상황에 맞는 말이 그런 것뿐이 없었다.

메데이아 부인이 떠났다. 나는 그녀를 대신해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러 가고, 발몽 자작의 부탁으로 내가 그를 대신해 쓴 편지를 다시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으로 송달해 가고, 하는 식으로 둘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쓰고 보내는 모든 일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부탁을 받기 전에 혼자서 고민했던 내용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사실 며칠 전에 메데이아 부인은 떠났으며, 이것은 그녀가 내게 부탁한 일이라고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발몽 자작이 아니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날랐던 집사라고 메데이아 부인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메데이아 부인의 옆에 서 있을 때 났던 향기가 향기로웠다는 것도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다고 두 사람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발몽 자작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나는 메데이아 부인이 이 저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메데이아 부인이 사귀었던 발몽 자작조차도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미뤘다.

발몽 자작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메데이아 부인이 자신을 떠난 것을 알고 실의에 잠겨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혹은 내가 편지를 전달하던 시절부터 발몽 자작은 저택에 있는 미라였고 나는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하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이 살아 있게 만들고 싶다. 다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바깥의 평가에 비해 순진했다는 것이며, 나는 그녀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었고, 나는 그의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를 그런 부탁을.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社名을 찾아서

출판사를 차리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차린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별명 만들기에 더 가깝지 않은가? 이렇게 느껴진다. 어쩌면 남한 출판의 핵심 정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사/인쇄사 검색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어떤 특정한 정체를 지시하는 사명社名을 하나 만드는 데 있는 거 아니냐? (나머지... 도서 따위와 관련된 일들은 다 ‘부차적인 잡무’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인쇄를 출판의 필수 요소로 여기지 않겠다면, 처음 SNS에 가입할 때의 닉네임 정하기와 출판사명의 등록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합당한 질문이라는 느낌이 온다. 혹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 그로부터 출판이란 무엇인지를 역으로 추적(영 쓸모없는 일인 것도 같지만)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다못해 넷-표현 환경에서의 개인 계정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일단 당장 떠오르는 한 가지 구분점은 다음과 같다. 출판사명이라고 하면 어쩐지 ‘개인적’일 수가 없다. 무슨 최가네출판사라든가, 이런 건 안 된다. 이 점은 개인이라는 개념이 원 없이 폭주하고 있는 오늘날 도리어 묘한 매력으로 느껴진다. 이에 비추어 보건대, 사실상의 전자출판사인 우리의 넷-별명들은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닐까? 또는... 그래서 출판사를 차린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차릴지 안 차릴지 모를 미래의 출판사의 社名 후보와 그 뜻을 생각해내는 것이 이 연재의 목표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고민은 끝나지 않을수록 좋다. 우리에겐 아무런 권리도 없다. 이것은 끝나지 않는(물론 끝나야겠지만) 브레인스토밍, 아주 어렵고 거의 영원한, 극도로 지루한 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배웅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클리셰에 대한 사랑.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꽃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른다. 그 사람과 나는 아는 사이였다. 나는 그 사람이 혹여나 나오지는 않았는지 하루에도 몇 번 꽃가게에 들렀다. 거기서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이 얼른 동굴 속에서 나오기를 바랐다. 꽃가게의 주인은 심드렁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이따금씩 그의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을 눈감아 주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일은 내게 있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 사람과 놀이동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놀이 기구를 잘 못타는 편이었고, 그 사람은 내게 무서운 놀이 기구들을 같이 타자고 말했다. 무서운 놀이 기구들을 탈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사람은 안전 장치를 어깨 위에 걸친 채로 나를 보며 웃었다. 놀이 기구를 다 타고 난 후, 우리는 테마 파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 사람과 나는 아침 일찍 만나서 놀이공원에 갔다. 꽃가게의 주인은 그곳에 없었다.

꽃가게의 주인이 나를 배웅했고, 나는 곧 동굴 앞으로 되돌아갔다. 그곳은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 안에는 한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내가 이따금씩 보는 TV를 올려둔 찬장 아래에 그 입구가 있었다. 나는 그 입구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일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들어가지 않을 입구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달리, 나는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돌아온 건, 동굴 속으로 들어간 지 ※※쯤 지난 저녁의 일이었다. 그 사람이 걸친 웃옷에는 나뭇잎들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은 주웠다며 솔방울을 하나 내게 건넸다. “꽃가게에서 기다리지 않고 있었네.” 나는 돌아온 그 사람에게 작은 파이를 구워주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내가 먹어도 될까?”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따금씩 꽃가게에 갔었어요. 왜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라고 했었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글쎄, 이젠 그렇게 상관은 없는 일이지.” 나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었다. “또 놀이공원에 갈래요?” “아니.”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현관으로 나가는 그 사람을 나는 배웅했다. “또 놀러 갈게요.” 나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2021년 2월 13일 토요일

호박 고구마 할머니




쉬는 시간이 끝나고 돌아오자 zoom 화면에는 나문희 선생님 얼굴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호박 고구마 할머니라고 불렀다. 한선생은 딱히 금지하는 것이 없는 편이지만 배경으로 깔아둔 저 표정을 보고 수업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반의 룰을 정했다.

-돌고래 소리 금지.
-폭력과 욕설 금지.
-줌 수업 때 나문희 선생님 사진 금지.

한선생의 일지가 줄어드는 걸 보면 그동안 아이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똑똑했지만 작년 학생들에 비해 매우 어렸다. 또래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라지 않다니.

신도 다시 룰을 정하는 걸까?

한선생이 잠시 생각에 빠졌을 때, 아이들은 재빠르게 호박 고구마 할머니의 사진을 껐다 켰다 반복하고 있었다.

2021년 2월 11일 목요일

거미 이야기

하루는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린 일이 있었어요. 독성이 강하거나 한 거미는 아니어서 상처 부위가 붓고, 팔이 조금 저릿한 정도였죠. 약을 먹을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단지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렸다는 사실, 그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어요. 왜냐하면 이 거미는 외로워 보였거든요.

그래요, 상처 부위가 조금 붓고, 가려웠었어요. 그래서 손으로 약간 긁었죠. 상처가 다시 날 만큼은 아니게 약간만 긁었어요. 그랬더니 상처 부위가 조금 더 붓는 것이 느껴졌어요. 가려움이라. 난 가려운 데는 긁는 편이에요. 상처가 다시 덧난다거나 하더라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 감촉을 좋아하거든요. 가려운 데로 의식이 집중되고, 그 위로 손을 올려 긁으면 살살 긁히는, 그런 느낌이 나는 좋아요.

그 거미는 우리 집 안에 있는 찬장에 살았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내려고 할 때, 그 앞에 있는, 반짝 하고 빛나는 거미줄을 나는 보곤 했었죠. 무덤덤하게 그렇게 보거나 했어요. 가끔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어요. 거미에게는 뭘 줘야 하는지 몰랐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낼 때마다, 반짝 하고 빛나는 줄 위에 그 거미는 살아 있었고, 또 가끔은 움직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숨죽여 그 광경을 바라보곤 했었어요.

그야말로 내가 ‘기르고 있는’ 거미였죠. 기르고 있는 것은 그 외에도 꽤 있었어요. 크고 작은 화초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의 권역에 그 거미는 없곤 했어요. 찬장이라니. 마치 세 들어 사는 것처럼 그 거미는 얌전히 그 자리에 있곤 했죠. 거미도 주거지를 옮기거나 하는 건가요. 글쎄요. 그렇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거미가 나의 세입자였다면,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은 순전히 내가 예쁘게 여겨 그 자리를 허락한 것들이었어요. 그 거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주 깜짝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 찬장은 오래되고 꽤 낡았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관리나 청소가 거의 안 된 집 안의 애물단지 같은 것이었거든요. 거미가 한 마리 그 안에 있었다고 해서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는 덤덤히 그 거미를 바라보곤, 꺼내려던 그릇을 줄이 상하지 않게 그 밑으로 꺼낸 것이었죠. 그 거미는 그렇게 거기서 제거당하지 않고 살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기르는 것보다는 반쯤은 방관으로, 나머지 반쯤은 흥미 삼아 거기에 놓아두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죠. 가끔은 꺼내려고 하는 그릇이나 찻잔이 있을 때에, 그 거미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게 됐던 거예요. 아직까지도 그 거미는 찬장 안에 있으니, 그런 궁금증들은 이내 곧 풀리는 것이었고... 말이에요. 나는 그 거미가 왠지 외로워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거미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잠시 고민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냥 이름 없는 거미로 놔뒀어요. 거미에게 이름은,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려 보였거든요.

네, 나름의 재미가 있었죠. 치우지 않고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두게 된 건.... 말이에요. 그 이름 없는 거미는 내 시선을 잡아끌곤 했어요. 손가락 반 마디는 되는 만큼의, 꽤 큰 거미였어요. 거미도 벌레 과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그 거미를 난 꽤 좋아했고, 가끔은 문득문득 그 거미에 대한 생각이 났어요. 왜냐하면, 그 거미에 물리게 된 건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저쪽으로 나가면, 그리 근사하지는 않지만 내가 꾸며 놓은 우리 집 정원이 있어요. 가끔 그곳으로 나가서 풀을 치거나, 심을 것을 심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거나 하곤 했죠. 거미를 내 손가락 위에 올려서 그 정원에다 풀어둘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었단 말이죠. 하지만 그 거미는 실내의 찬장 안에 있는 것이... 조금 더 근사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가끔 그 정원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어요. 풀들의 냄새가 주위에서 나고, 작은 귤나무 몇 개도 거기다 심어 놓았거든요. 그리고 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죠. 그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알고 지내는 친구가 우리 집에 왔었거든요. 그때 나는... 구워 온 파이를 내주면서, 혹시 찬장 안에 내가 기르는 거미가 그 친구의 눈에 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아마 그 거미가 진짜로 외롭게 보였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물곤 하니까...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물렸던 것 같아요. 이 집 안에서 나는 꽤 외로움을 탔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따금 그 거미가 내 눈앞에 있었죠. 보통은 거미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가령 나무 위에 줄을 치고 있다든지... 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어디 들판에 살 수도 있을 것이고... 거미가 보통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 거미에게 물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그 근처로 가져다 댄 직후의 일이었어요. 원래는 그릇 하나만 꺼낼 생각이었는데, 그 거미의 몸통이 눈에 들어왔었어요. 나는 그때 깜짝 놀랐었죠. 꽤 아픈 데다가... 거미는 독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만큼 강한 독인지는 몰랐으니까요. 바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 거미를 계속 길러도 될까요, 라고 물어봤었어요. 권하지는 않습니다만... 하고 말을 꺼낸 것은 의사였죠. 그리 강한 독은 아니라고, 그 의사는 나에게 말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에요. 그 거미에게 아직도 이름을 붙여줄 생각은 없어요. 정말, 거미에게는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굳이 꼭 어울리는 이름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이대로도 괜찮아 보여요. 글쎄요. 몇 년이나 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죽을 때가 된다면,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사실 큰 자신은 없어요. 나는 다른 사물들에 대한 이해력이라고 할까요. 관찰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거든요. 하루는 식탁 위에서 찬장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 거미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식탁 위에서는 그 거미의 모습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열어본 다음에, 내 눈에 보이는 그 거미의 모습을 기억해서 하나 그려 봤었어요.

거미가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집 안에 음악을 틀고 그걸 눈을 감고 듣고 있곤 해요. 고양이들이 있고, 화초가 있지만 그때 언뜻 내 생각 속에 있는 건 바로 그 거미의 모습이에요. 거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때 그려 놓은 그림이 저 서랍 안에 있답니다. 한번 그려놓고 꺼내 보지는 않았었지만요. 나는 그런 적이 많은 것 같아요.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느릿하게... 본 적이 있었어요. 물론 찬장 안에 사는 그 거미였죠. 그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보곤, 별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그냥 움직이나 보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죠.

그 거미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지내는 곳이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아무도 없는 실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 생각이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허투루 말하거든요.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그 거미가 나와 닮아 보였던 걸까요? 하지만 나는 외로운 것 같지는 않아요.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가끔 길을 걷고 있다 보면, 문득 그 거미가 나의 뒤를 느릿하게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바람이 적게 불고, 하늘이 조금 어둡고 대기가 습할 때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해요. 그 거미가 무슨 모습을 취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냥 따라오는 것 같은 거예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그 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어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곤 하는 것 같아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거미가 어떤 모습으로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미에게 거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한번 그려봤던 딱 그 외양인 것 같아요.

제 얘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얘기를 하면서 조금 편했던 것 같아요. 아무렴 거미를 기른다니. 일상적인 일은 아니죠. 나는 일상적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안녕히 가세요. 내가 구운 파이는 맛있었나요?

2021년 2월 8일 월요일

광인

광인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고양이가 광인이 덮은 무릎 담요 위에 올라가 있다. 어린애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같이 춤을 춰요.” 고양이가 무릎에서 달아나고. 옛날에 유행했던 가곡이 흘러나온다. 광인은 귀고리를 걸고 있다. 광인이 춤 동작을 할 때마다 귀고리가 반짝 빛난다.

어린애는 광인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양이는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춤출 줄 아는 고양이이다. 마치 옛날에 상연되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 같다. 고양이의 이름은 나비이고, 광인의 이름은 광인이다.

아이의 이름은 앨리스이다. 앨리스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 소절은 지금 나오는 음악 소리에 꼭 들어맞는다. “그렇게 되고 난 후로부터는 나는 사물들에 붙여진 이름들을 변호할 궁리를 했어요. 마을에서 나는 <물 긷는 소녀>였죠. 지금은 <앨리스>이고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들으면 도통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되기 전,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일이고...

그 일을 각색해 내가 다니는 학원 연극제에서 연극을 상연했어요.”

“그 연극제 당일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었고... 내 친구들은 나무와 별을 연기했죠. 그 사실을 넣어 이번 연극제의 홍보 문구를 작성하기도 했어요. 배경인 나무와 별, 내 친구들이 연극제가 상영되는 동안 정말 가만히, 가만히만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도중에, 꼭 저 고양이처럼 멋진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몸에 와이어를 걸고 내려왔어요. 우리가 준비한 공연의 일부였죠. 우리는 그 사람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렀어요. 그 이름은 꼭 들어맞았어요. 지금 나오고 있는 가곡의, 내가 부르고 있던 가사 소절처럼 그의 등장은 당연하고, 또 깜짝 놀랄 만큼...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래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랍니다. 나는 <모순>이라고 불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을 나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차라리 <이야기꾼>이 될래요. 그래요, 지금 당신이 걸고 있는 귀고리처럼. 어린애인 나는, 그런 사람이 지금 될래요. 광인이여. 내가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어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고양이야, 너의 이름은 나비이고, 부르면은 곧잘 무릎 위에 올라오는 고양이란다.”

광인이 춤을 춘다.

“광인도 사물인가요. 광인의 이름은 광인 말고는 부를 이름이 없어 보여요.”

2021년 2월 5일 금요일

호위 무사

낭자, 나는 강물 위에 떠 있소.

    강물에 뜬 채 어딘지도 모를 기슭에 닿아 있소.

    기슭에 자란 버들나무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소.

        나를 데리고 온 강물은 내가 흘린 피에 닿아 제 몸도 붉어졌구려.

나는 내 몸이 품어왔던 시간이 나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낭자에게 편지를 쓰오.

        낭자를 만나게 해주었던 운명의 실은 언제부터 베틀 위에 올라 있었던 것인지.

        낭자는 표국의 호위를 받으며 길 떠나던 첫날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운명이라는 강물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나를 낭자에게로 데려간 것 같소.

    말한 바 없으나, 나는 표국에서 표사로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오.

나는 본디 배화교의 사람으로, 우리를 해하려는 무리에게 이미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소.

산중에서 쫓기다 낭떠러지로 몰려 떨어졌을 땐 끝인 줄만 알았지.

그때도 강물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으니, 이미 강물은 내 목숨을 한 번 구해준 셈이구려.

    강물에 떠밀려 도착한 곳은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었소.

    노랗고 붉은 과일들이 탐스럽게 열린 과일나무가 많았다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아팠음에도 허기는 어찌나 견디기 어렵던지.

        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거의 기다시피 하여 나무 아래까지 가서 낙과를 삼켰소. 그 과일이 신기 과일인지도 미처 몰랐다오.

    나는 오래 안 가 기력을 회복하였소. 그러자 우습게도 앞날이 염려되더군.

    비경을 둘러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한 양 강기슭에 거룻배 한 척이 매여 있더구려.

        과일은 물론이요, 온갖 비급들이 가득했소.

        나는 거룻배를 타고 강물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몇 날 며칠을 떠내려갔다오.

        신기 과일이 있어 배고프지 않았고, 비급들은 읽는 대로 내게 새로운 지경을 펼쳐 보였소.

    과거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교리도 기슭에 묻어두고 살아가려 했지.

나는 들짐승처럼 아무렇게나 떠돌아다녔소.

    먹을 것이 생기면 먹고, 누울 곳이 생기면 자고. 

    가끔 악행을 일삼는 이들을 보면 무시하지 못하여 저지하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표국의 표사가 되어 있었다오.

        하남의 어느 객잔에서 무뢰배의 버릇을 고쳐주던 나를 눈여겨본 총표두가 나를 표국의 식객으로 초대하였고,

    잠시 머물다 떠나려 했던 것이, 밥만 얻어먹고 떠나기 무람하여 한두 건의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참, 세상 일 알다가 모를 일이지 않소?

    몇 차례 낭자의 호위를 더 맡게 되고, 흐르는 시간이 서로를 조금씩 더 알게 만들고

    결국 낭자의 세가에 들어가 낭자의 호위 무사가 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침묵을 나누었는지, 

    그리고 간간이 그 침묵을 적시는 다디단 말을 나누었는지.

낭자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숨 찰나간 멎었지요.

    내가 물속의 잉어였다면 낭자 마주하기 부끄러워 수심 깊은 곳으로 숨었을 테고,

    하늘의 기러기였다면 낭자 보느라 날갯짓도 잊어 땅으로 떨어졌을 게요.*

        그런 낭자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내가 많이 미안하오.

            낭자는 지금 내가 말없이 구름처럼 그대 떠난 줄로 알겠지요.

수원지가 있어 물줄기가 예까지 이어지듯이

과거는 그리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것인가 보오.

    내가 배화교의 사람으로 자랐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들에겐 그토록이나 증오할 거리가 된다는 게 어이없고도 원망스럽구려.

    따라붙은 가막새들이 보이기에 낭자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산중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달이 차고 기울 때까지 이어진 칼부림,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이들을 베었으나 나 또한 응분의 대가로 자상을 입었소.

    잠깐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뜨니 강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오.

여기까지 읊고 나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 많구려.

어쩌면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을 겪고, 몇 번이나 죽음을 계속해왔는지도 모르겠소.

마치 전장에 부러진 채 꽂혀 있는 수천 자루의 칼날들, 칼 무덤의 형상과도 같이.

            매화가 만발하던 어느 날, 낭자가 내게 물었지요. 나를 영원 동안 지켜주지 않겠느냐고.

            그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소.

            아마도 낭자는 속으로 야속했을 거요. 아니 꼭 그랬었기를 바라오.

            호위 무사로서 연심을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 점도 없지 않으나,

    나 역시 여인의 몸이기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오.

            혹여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어느 쪽이든 무사하지 못했겠지요.

            낭자는 내가 그런 줄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소.

            아니 꼭 알았었기를 바라오.

    그러면 지금에라도 나는 너무나 기쁠 터이니. 

    이렇게 죽더라도 덜 억울할 터이니.

낭자, 나는 다시 강물 위에 떠 있소.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고 있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는 낭자의 손길 같은 이것이 내가 느끼는 마지막 감각인 듯하오.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바람이 좋구려.





*침어낙안(沈魚落雁).


2021년 2월 4일 목요일

대화의 스무 가지 요령

1. 재미있는 상대를 구할 것.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2. 가능한 한 길게 할 것. 대화를 길게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물들이 필요하다. 먼저 가치가 있는 자료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다만 실제로 대화에 입장할 때는 사람에 따라서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가 갈릴 수 있다. 이러한 의사-역할에 대한 능동적인 고려를 통해 실제 대화가 이상적인 시간-보내기로 변모할 수 있다.

3.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언급은 신중히 할 것. 이것도 사람의 개성에 따라 다름이 드러나는 분야다. 먼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면 사족을 못 써 주구장창 하는 타입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대화 상대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대화에는 어떤 사전적인 권위-설정과 그것의 빈번한 무너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일이 약방의 감초를 찾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것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간의 학식이 부족한 모습은 감춰진다.

4. 꼭 학식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것은 다른 외부적인 조건들ㅡ돈과 명성,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 또는 서로가 상대에게 보내는 호감을 비롯한 감정들까지도 아우른다. 학식은 중요하지만, 대화 자리는 그보다 더 폐쇄적이다. 학식은 넓은 분야에서의 성공을 도와주는 큰 요소이지만 대화에서는 그때그때 서로 올바른 카드를 내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5. 이것은 좀 애매하지만 가급적이면 대화는 두 사람이 할 것. 왜냐하면 사람 수가 많아지면 예산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서로 허영을 부르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니 조심할 것. 물론 이것도 사람의 성정에 따라서 그런 무대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값싼 재질의 옷을 일부러 입기도 하는 것처럼 사전에 좋은 대화를 제지하는 상황 설정은 가급적이면 피할 것.

6. 항상 어떤 만남이 있을 것.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는 등의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씀씀이가 있다고 해서 꼭 대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씀씀이의 발현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대화의 무대를 특별하게 삼되 모든 면에서의 새로움은 구하지 말라. 때로는 오래된 것, 안락한 것에 대한 선택이 좋은 대화를 만들기도 한다.

7. 집중할 것. 물론 매 순간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대화 상대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며 물론 그것이 보람 있는 일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면서 혹시 내가 놓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대화하는 상대가 항상 똑같이 말한다고 느껴진다면 내 행동이나 태도에서 미진함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라.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의 못남이 나의 부정적인 태도에서 발견된다면 그것을 능동적인 것으로 순화할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꾸려 가거나 고통을 받는 일 등은 피해 가야 한다.

8. 손안에 중요한 카드를 들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당장 당신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표출할 수 있음을 표현해라. 하지만 대화를 살벌한 무대나 전장으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나쁜 방법이다. 물론 떨리는 대화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대화의 상호 작용은 서로 간에 있는 배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납득하고 있어야 한다.

9. 대화는 편한 분위기에서 할 것. 만약 사람들 간의 대화가 불편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면 그 속에서 비꼬는 말이 나왔는지를 한번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대화 속에 등장하는 비꼬는 말의 위력은 떨어지는 유성 같아서 유성이 떨어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저 하늘로 향하게 되고, 유성이 떨어진 자리에는 큰 흔적이 움푹 패일 수 있다. 비꼬는 말은 상호적인 대화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위력을 지닌 것임과 동시에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능동적인 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비꼬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아까 전에 비꼬는 말이 나왔지, 하고 생각해 둘 것. 왜냐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비꼬는 말은 그 위력을 갑자기 잃고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비꼬는 말을 내뱉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히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게 될 때는 그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그 말은 눈앞의 상대보다는 활기가 없는, 단순히 죽은 것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피력하라. 때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 사람의 입장은 효과적인 유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의 시선은 신호등과 같아서 빨간 불일 때는 잠잠하다가도 초록 불이 될 때는 돌연 빛나며 압도적인 대수의 차량들이 운행하는 것처럼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이 물꼬가 트이기도 한다. 그러한 물꼬를 틔울 때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유념할 것.

11. 상대방의 꼬투리를 잡으면 그 서막을 장황하게 하라. 왜냐하면 한 사람의 불리한 입장이 희화화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정당한 구실 하나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단점은 지적만 훌륭하다면 훌륭한 교사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처럼 재미있는 분위기와 함께 그것을 교정해 나가는 장이 될 수도 있다. 꼬투리를 잡을 때 서막을 장황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장한 각오로 어떤 일에는 임하라.

12.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만약 감식안이 뛰어난 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칭찬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감식안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또한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는 것은 때로 자신을 겸허하거나 예절 바른 이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신조다. 과정에 대해 평가받고 그 결과를 손 위에 올려 마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리듬을 따를 것.

13.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참을성을 가져라. 한 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쓴 사람이 이상적인 대화 상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화에서 인내심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얘기하는 주제의 폭이란 서로 다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영민한 눈으로 상대방의 한결같음에 대해서 폭로한다면 예쁘고 풀기 좋게 마련된 매듭을 푸는 일처럼 서로에게 재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놀이 중에서 특정한 한 종류는 바로 택배 박스에 들어 있는 운송용 포장을 하나씩 눌러 터뜨리는 일이다.

14. 외부적인 장치에 의해 도움을 받을 것. 수려한 외모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건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어딘가 배움을 얻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외모가 대화에서 중요한 면을 담당하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외모는 마음의 창이라는 독선적인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외모가 부족한 사람은 그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화의 한 분야는 상대의 그러한 자격지심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시킬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임을 알고 서로가 갖고 있는 단점으로 인해 분위기를 한쪽에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엉엉 우는 일도 여기에 동원될 수가 있다. 먼 길을 돌아가면 빨리 닿기도 하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외부적인 장치들을 동원해서라도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여기에는 단맛이 나는 과자들이 좋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15. 상대방이 갖고 있는 명성에 대해 눈을 감을 것. 왜냐하면 눈을 감을 때 사람의 얼굴은 여러 개의 표징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을 때의 상태는 일반적이고, 일반적이라는 것은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한 요소로 파악될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만약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 등)들에게는 그 명성에 대해 눈 감아 버리는 태도가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놀라움을 느꼈다면 그 놀라움에 대해 잘 표현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경이 자신이 목적한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드라마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 대화에 있어서 연기자의 자질은 있어도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무덤덤한 성정을 표출하는 것에서 좋은 대화 상대의 요령이 발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떤 것을 미묘하게 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 좋게도 그 상대가 눈앞에 있다면 바깥의 것은 무용하고 지금 상대만이 좋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기류에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성정에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으니 무덤덤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 있어서 정치적인 변신을 자주 꾀하라. 폐쇄된 세계들을 도서관 등지에서 열람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될 수 있다.

17. 항상 마음을 젊게 하라. 늙은 사람들이 규탄을 받는 것은 항상 그들이 어린애와 같은 행동 원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젊은 것은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순간이나 분기점을 지나고 있을 때에는 항상 대화하는 상대방을 눈앞에 있게 하라.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일과 일기를 쓰는 일은 서로 다르고, 시점이 추가되어 조명받는 것은 한 개인의 입체적인 면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잔가지들을 하나씩 걷어내는 마음으로 임하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좀 더 성숙해지고, 사람들 속에서 대담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마주 서게 된다.

18. 상대방이 본 책들에 관해서 일일이 묻지 말라. 책의 세계는 복잡다난한 이 세계의 일들과 같아서, 목적하는 바와 다르게 세상사가 요동칠 수도 있다. 그 세계 속에서 목적하는 곳에 다다르는 방법은 물론 훌륭한 조언에 따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법이 필요하다. 자신이 했던 선택들을 곱씹으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훌륭한 이해자만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는 건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거기에 더해 적당한 몰염치함과 자신의 마음을 감출 줄 모르는 성실함이 있다면 누구나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

19. 대립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좋은 것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좋음을 구가한다는 건 대화에 있어서 숙명적인 일과도 같다. 좋음을 구가하지 못할 것이라면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통틀어 오직 필요에 의한 만남은 그 수가 적고 희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필요하지 않은 만남이나 관계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거나 하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만남과 관계들을 찾아 나서는 건 그 여정길이 험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남이나 관계들을 숙고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기도 하며 자신의 필요성을 따르고 있음을 상대에게 입증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에게서 대립된 존재들의 도움을 바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20. 대화를 길게 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하여. 긴 것은 왠지 좋은 것 같다. 내가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들이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꼽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긴 것은 왜 좋은 것인가? 장편 소설을 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거나,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체득은 하고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수많은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 좋다. 하지만 참을성이 많다고 해서 장편 소설을 한 권 쓴다는 건 왠지 성립되지 않는 일일 듯싶다. 이 모든 것에 기이하고 엉성하며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으며, 나는 그 아래에 잠겨 있다. 무엇이 길게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또한 대화를 길게 할 수 있는 상대란 그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하고 있는, 그래서 대화 도중에 쉴 수도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쓰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으며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2021년 2월 3일 수요일

부재 기름

전화가 왔었어요 선생님.

조수가 전달한 메모는 인터뷰 요청이었다. 요청이라기보다… 요청처럼 정중한 말을 쓰기에는 너무 자신만만한… 요약하면 내가 자신을 인터뷰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종이조각 귀퉁이에 ‘부재 기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수는 거기에 동그라미를 두 번 그렸다.

1명 이하 방문이 조건으로 달려 있었기에 혼자서 갔다. 수도권 외곽 베드타운의 아주 조용한 상가 건물의… 그러나 기이하게 시끄러운 지하동의 한 켠이 그가 지정한 약속 장소였다. 여느 지하상가들이 그렇듯 성긴 빗 모양으로 서로 트여있는 구조였는데 그의 방만이 사방이 막혀 있었고 창문도 없었다. 문을 열자 문을 닮은 빛의 자국과 함께 내 그림자가 방 안으로 넘어졌다.

그는 불 꺼진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었다(관심을 둘 사람이 있을까 하여 부연하자면 그는 평범한 접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불이 꺼져 있는 거야 별일 아니었지만 앉아 있는 위치(관심을 둘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특별히 감정적 동요를 느꼈기 때문에 부연하자면 문을 기준으로 방을 가상의 사분면으로 나누었을 때 삼사분면 가운데였다)가 너무 신경에 거슬려서 참기 힘들었다.

박물학자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무릎에 양손을 얹고 단정하게 앉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열린 문으로 새어든 빛은 그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을 뿐이었지만 골상조차 평범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녹음해도 되겠습니까?
기계를 쓸 만큼 긴 내용은 아니다.
‘부재 기름’ 말이지요. 부재로부터 기름을 짜낸다는 말인가요?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세계 에너지난도 해결될 텐데, 또는 놀라운 향신료의 발견일 텐데, 그런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면서 물었다.

저기부터 여기까지가 나의 부재라는 말이다.

그는 방의 북동쪽 모서리와 자신의 무릎을 차례로 가리켰다.

부재를 기른다는 말이었군요.

조수의 메모 실력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어 부재不在가 공간空間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려고 나를 여기까지 부른 것인가에… 이런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짜증을 참기 힘들었다.

놀라운 발견이군요.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이동하는 모든 존재가 부재를 기르고 있는 셈이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또한 부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이고요… 실로 대단한 통찰이십니다.

그는 조용히 의자를 옮겼다. 녹음기를 켰다면 내 한숨소리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의 부-재가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나의 시-간은 실제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겨우 이따위 이야기를 하려고 (심지어 내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 같은 말까지 하면서) 인터뷰를 ‘요청’했단 말이지.

나의 부재는 점점 더 빠르게 커져가고 있어…

그는 다시 한번 의자를 옮겼다. 그다지 큰 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이제 거의 남서쪽 모서리에 닿을 정도였다. 닿을 정도가 아니라 닿아 있었다. 닿아 있는 게 아니라 벽에 들어가 있었다. 무릎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그 위에 얹은 손과 팔꿈치까지, 한쪽 어깨와 조금 틀어 나를 향하고 있던 얼굴의 반이 차례로, 조금씩 빠르게, 벽 안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는 흔적 없이 부재하게 되었다. 완벽한 부재를 길러냈다.

역시 이런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짜증 나는 사실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가 평소 싫어하던 것처럼 인터뷰이보다 말을 많이 하는 인터뷰어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다. 그의 부재 기름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부재 기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는 제대로 후회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2021년 2월 1일 월요일

21년 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2 (37)
―――
곡물창고: +1 (15)
미아와 접시: +1 (2)


이달의 총격려금

3,606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16일 / 606원 ― 제목샀음입니다
29일 / 3,000원 ― 미아와접시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미아와 접시 [入] ☞ 3,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42,447원 (606원 + 141,790원 + 51원)

실감

여느 때처럼 나는 집 앞을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는 내 버릇이었다.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된 건 어느 학원을 다니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달려야 하는 거리를 다 달리고 난 후, 나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항상 마시는 음료를 샀다. 음료는 토레타였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는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오늘은 왠지 TV가 보고 싶었다. 집에 있는 과자를 그릇에 쏟아 가져왔다. 그리고 커피를 탔다. 이 집 안에서 맞는 휴식 시간이 나는 좋았다. 나는 이 집을 좋아했다. 전세 대출로 얻은 집이었다. 집 주인은 친절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앞을 달렸다. 달리는 거리는 3km였다. 남들과 비교해서 많은 거리인지는 잘 몰랐다. 나 혼자만의 버릇 같은 것이었으니까. TV에서는 어떤 사람이 불가 앞에 앉아 있엇다. 그리고 잡은 생선을 꼬치에 끼워 불가 앞에 놓아두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며 과자를 먹었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동해 내 방에서 노트를 가져왔다. 그 사람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노트를 가져와 그림을 그렸다. 과자를 다 먹고 난 후 딸기를 가져왔다. 그릇 안에서 싱긋한 딸기 냄새가 났다. 내 노트에 그려지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은 TV에서 나오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사물을 닮게 그리는 건 내가 학원을 다니면서 중요하다고 들었던 일이었다.
나는 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은 집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 학원에 등교하는 데 약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서 중간중간에 나는 딸기를 먹었다. 이렇게 중간중간에 뭘 할 수가 있는 것이 나는 좋았다. 문득 나는 내 생활이 너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내가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과일을 자주 사 먹지는 않았다. 과일을 먹는 것도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그림을 그리는 건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TV를 보는 일과, 음악을 듣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달리기도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이는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학원을 다니거나 부모님께 연락을 하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저 사람처럼 불가 옆에서 생선을 굽는 일은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을 나는 노트에 그리고 있었다. 노트에 그려지는 그림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그림으로 될지 생각하는 것은 해도 안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애매한 회색 지대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딸기를 다 먹고 나니까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난 뒤었다. TV에서는 계속 그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나는 중간중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하는 것이 없이 그림에 집중했다.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다. 실내의 분위기가 고요했다. 그림을 다 그리자 고양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양이를 만지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TV로 음악을 틀었다. 집 안에 음악 소리가 퍼지면서 나는 어쩐지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방금까지 하던 일을 손에서 떼고 나니까 그런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였고, 식사는 아직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약하게 잠이 왔다. 나는 소파에 누워 내가 다니는 학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학원을 다니면 언제나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토레타를 사 먹곤 했다. 그 일이 뭔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오늘 따라 왠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