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1일 목요일

거미 이야기

하루는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린 일이 있었어요. 독성이 강하거나 한 거미는 아니어서 상처 부위가 붓고, 팔이 조금 저릿한 정도였죠. 약을 먹을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단지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렸다는 사실, 그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어요. 왜냐하면 이 거미는 외로워 보였거든요.

그래요, 상처 부위가 조금 붓고, 가려웠었어요. 그래서 손으로 약간 긁었죠. 상처가 다시 날 만큼은 아니게 약간만 긁었어요. 그랬더니 상처 부위가 조금 더 붓는 것이 느껴졌어요. 가려움이라. 난 가려운 데는 긁는 편이에요. 상처가 다시 덧난다거나 하더라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 감촉을 좋아하거든요. 가려운 데로 의식이 집중되고, 그 위로 손을 올려 긁으면 살살 긁히는, 그런 느낌이 나는 좋아요.

그 거미는 우리 집 안에 있는 찬장에 살았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내려고 할 때, 그 앞에 있는, 반짝 하고 빛나는 거미줄을 나는 보곤 했었죠. 무덤덤하게 그렇게 보거나 했어요. 가끔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어요. 거미에게는 뭘 줘야 하는지 몰랐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낼 때마다, 반짝 하고 빛나는 줄 위에 그 거미는 살아 있었고, 또 가끔은 움직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숨죽여 그 광경을 바라보곤 했었어요.

그야말로 내가 ‘기르고 있는’ 거미였죠. 기르고 있는 것은 그 외에도 꽤 있었어요. 크고 작은 화초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의 권역에 그 거미는 없곤 했어요. 찬장이라니. 마치 세 들어 사는 것처럼 그 거미는 얌전히 그 자리에 있곤 했죠. 거미도 주거지를 옮기거나 하는 건가요. 글쎄요. 그렇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거미가 나의 세입자였다면,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은 순전히 내가 예쁘게 여겨 그 자리를 허락한 것들이었어요. 그 거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주 깜짝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 찬장은 오래되고 꽤 낡았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관리나 청소가 거의 안 된 집 안의 애물단지 같은 것이었거든요. 거미가 한 마리 그 안에 있었다고 해서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는 덤덤히 그 거미를 바라보곤, 꺼내려던 그릇을 줄이 상하지 않게 그 밑으로 꺼낸 것이었죠. 그 거미는 그렇게 거기서 제거당하지 않고 살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기르는 것보다는 반쯤은 방관으로, 나머지 반쯤은 흥미 삼아 거기에 놓아두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죠. 가끔은 꺼내려고 하는 그릇이나 찻잔이 있을 때에, 그 거미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게 됐던 거예요. 아직까지도 그 거미는 찬장 안에 있으니, 그런 궁금증들은 이내 곧 풀리는 것이었고... 말이에요. 나는 그 거미가 왠지 외로워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거미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잠시 고민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냥 이름 없는 거미로 놔뒀어요. 거미에게 이름은,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려 보였거든요.

네, 나름의 재미가 있었죠. 치우지 않고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두게 된 건.... 말이에요. 그 이름 없는 거미는 내 시선을 잡아끌곤 했어요. 손가락 반 마디는 되는 만큼의, 꽤 큰 거미였어요. 거미도 벌레 과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그 거미를 난 꽤 좋아했고, 가끔은 문득문득 그 거미에 대한 생각이 났어요. 왜냐하면, 그 거미에 물리게 된 건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저쪽으로 나가면, 그리 근사하지는 않지만 내가 꾸며 놓은 우리 집 정원이 있어요. 가끔 그곳으로 나가서 풀을 치거나, 심을 것을 심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거나 하곤 했죠. 거미를 내 손가락 위에 올려서 그 정원에다 풀어둘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었단 말이죠. 하지만 그 거미는 실내의 찬장 안에 있는 것이... 조금 더 근사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가끔 그 정원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어요. 풀들의 냄새가 주위에서 나고, 작은 귤나무 몇 개도 거기다 심어 놓았거든요. 그리고 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죠. 그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알고 지내는 친구가 우리 집에 왔었거든요. 그때 나는... 구워 온 파이를 내주면서, 혹시 찬장 안에 내가 기르는 거미가 그 친구의 눈에 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아마 그 거미가 진짜로 외롭게 보였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물곤 하니까...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물렸던 것 같아요. 이 집 안에서 나는 꽤 외로움을 탔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따금 그 거미가 내 눈앞에 있었죠. 보통은 거미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가령 나무 위에 줄을 치고 있다든지... 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어디 들판에 살 수도 있을 것이고... 거미가 보통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 거미에게 물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그 근처로 가져다 댄 직후의 일이었어요. 원래는 그릇 하나만 꺼낼 생각이었는데, 그 거미의 몸통이 눈에 들어왔었어요. 나는 그때 깜짝 놀랐었죠. 꽤 아픈 데다가... 거미는 독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만큼 강한 독인지는 몰랐으니까요. 바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 거미를 계속 길러도 될까요, 라고 물어봤었어요. 권하지는 않습니다만... 하고 말을 꺼낸 것은 의사였죠. 그리 강한 독은 아니라고, 그 의사는 나에게 말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에요. 그 거미에게 아직도 이름을 붙여줄 생각은 없어요. 정말, 거미에게는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굳이 꼭 어울리는 이름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이대로도 괜찮아 보여요. 글쎄요. 몇 년이나 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죽을 때가 된다면,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사실 큰 자신은 없어요. 나는 다른 사물들에 대한 이해력이라고 할까요. 관찰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거든요. 하루는 식탁 위에서 찬장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 거미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식탁 위에서는 그 거미의 모습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열어본 다음에, 내 눈에 보이는 그 거미의 모습을 기억해서 하나 그려 봤었어요.

거미가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집 안에 음악을 틀고 그걸 눈을 감고 듣고 있곤 해요. 고양이들이 있고, 화초가 있지만 그때 언뜻 내 생각 속에 있는 건 바로 그 거미의 모습이에요. 거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때 그려 놓은 그림이 저 서랍 안에 있답니다. 한번 그려놓고 꺼내 보지는 않았었지만요. 나는 그런 적이 많은 것 같아요.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느릿하게... 본 적이 있었어요. 물론 찬장 안에 사는 그 거미였죠. 그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보곤, 별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그냥 움직이나 보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죠.

그 거미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지내는 곳이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아무도 없는 실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 생각이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허투루 말하거든요.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그 거미가 나와 닮아 보였던 걸까요? 하지만 나는 외로운 것 같지는 않아요.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가끔 길을 걷고 있다 보면, 문득 그 거미가 나의 뒤를 느릿하게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바람이 적게 불고, 하늘이 조금 어둡고 대기가 습할 때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해요. 그 거미가 무슨 모습을 취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냥 따라오는 것 같은 거예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그 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어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곤 하는 것 같아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거미가 어떤 모습으로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미에게 거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한번 그려봤던 딱 그 외양인 것 같아요.

제 얘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얘기를 하면서 조금 편했던 것 같아요. 아무렴 거미를 기른다니. 일상적인 일은 아니죠. 나는 일상적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안녕히 가세요. 내가 구운 파이는 맛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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