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초대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여행지가 보내오는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일종의 권태에 젖어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집을 나왔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 온 이유는 누가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곧 그 사람이 나와서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할 터였다.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가 내 맘에 별로 안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 사람의 초대에 응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저번에 그 사람이 주전자 하나를 선물로 줬는데 나는 그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는 우리 집에 있는 주전자보다 지루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그 사람이 나왔고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더 일찍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솔직히 말했다. 당신이 초대한 이 장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은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군요. 기왕에 초대해주신 장소인데. 나는 우리 집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에게 굳이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거든요. 나는 그때 당신이 내게 선물로 준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 나를 초대한다면 그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또 웃더니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기왕에 오신 김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보여드리고 싶군요. 하더니 그 사람은 산길을 올랐다. 나는 잠자코, 궁시렁거리며,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올라가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준 주전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멈춰서 내 쪽을 뒤돌아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아, 그래요. 여기에선 뭘 할 수 있죠? 그 사람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제가 좋아하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나는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약수터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와서 나를 붙잡았다. 이것이 여행지에 와서 일어난 그와 나 사이의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장소를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고 고속버스 위에 타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언젠가 그 주전자 같은 선물을 또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네, 그래요 하고 나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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