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 월요일

실감

여느 때처럼 나는 집 앞을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는 내 버릇이었다.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된 건 어느 학원을 다니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달려야 하는 거리를 다 달리고 난 후, 나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항상 마시는 음료를 샀다. 음료는 토레타였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는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오늘은 왠지 TV가 보고 싶었다. 집에 있는 과자를 그릇에 쏟아 가져왔다. 그리고 커피를 탔다. 이 집 안에서 맞는 휴식 시간이 나는 좋았다. 나는 이 집을 좋아했다. 전세 대출로 얻은 집이었다. 집 주인은 친절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앞을 달렸다. 달리는 거리는 3km였다. 남들과 비교해서 많은 거리인지는 잘 몰랐다. 나 혼자만의 버릇 같은 것이었으니까. TV에서는 어떤 사람이 불가 앞에 앉아 있엇다. 그리고 잡은 생선을 꼬치에 끼워 불가 앞에 놓아두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며 과자를 먹었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동해 내 방에서 노트를 가져왔다. 그 사람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노트를 가져와 그림을 그렸다. 과자를 다 먹고 난 후 딸기를 가져왔다. 그릇 안에서 싱긋한 딸기 냄새가 났다. 내 노트에 그려지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은 TV에서 나오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사물을 닮게 그리는 건 내가 학원을 다니면서 중요하다고 들었던 일이었다.
나는 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은 집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 학원에 등교하는 데 약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서 중간중간에 나는 딸기를 먹었다. 이렇게 중간중간에 뭘 할 수가 있는 것이 나는 좋았다. 문득 나는 내 생활이 너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내가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과일을 자주 사 먹지는 않았다. 과일을 먹는 것도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그림을 그리는 건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TV를 보는 일과, 음악을 듣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달리기도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이는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학원을 다니거나 부모님께 연락을 하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저 사람처럼 불가 옆에서 생선을 굽는 일은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을 나는 노트에 그리고 있었다. 노트에 그려지는 그림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그림으로 될지 생각하는 것은 해도 안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애매한 회색 지대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딸기를 다 먹고 나니까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난 뒤었다. TV에서는 계속 그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나는 중간중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하는 것이 없이 그림에 집중했다.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다. 실내의 분위기가 고요했다. 그림을 다 그리자 고양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양이를 만지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TV로 음악을 틀었다. 집 안에 음악 소리가 퍼지면서 나는 어쩐지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방금까지 하던 일을 손에서 떼고 나니까 그런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였고, 식사는 아직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약하게 잠이 왔다. 나는 소파에 누워 내가 다니는 학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학원을 다니면 언제나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토레타를 사 먹곤 했다. 그 일이 뭔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오늘 따라 왠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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