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7일 화요일

양조장

언젠가 바다로 떠나고 싶던 적이 있었다. 계곡이라도 좋다. 나는 물이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이어폰이 귀에 반만 꽂혀 있어 노랫소리가 분명하지 않게 들렸다. 나는 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 어느 날의 일이다. 같이 온 사람들 중 몇 사람은 물에 들어가 있었다. 대절한 봉고차 안에는 삼겹살과 소시지 등이 놓여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기 전 무렵이었고 우리는 같은 양조장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일하는 그곳에 약간 거리껴지는 노란 하늘을 두고 왔다. 그 하늘은 용인들의 눈같이 무섭기도 했다. 전부가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양조장의 숙소에서 추리 소설을 보면서 누워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는 법이 없다. 나는 그 사실이 왠지 안타까웠고 이 자리에 그도 있었으면 했다. 그와 나 사이에 그리 깊은 유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여행을 준비한 입장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올 수 있었으면 했다. 바다에 들어가 있던 몇 명을 불러 이제 식사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들은 물에서 나오기 싫어했다. 그들은 물과 멀어지는 것이 외롭고 고독한 일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식사를 하는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까 물에 들어갔던 사람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물살이 급해지는데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듯했다. 그 사람은 노란 하늘에 빠져든 채로 혼자서 아직까지 물놀이를 했다. 곧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고 그 사람은 아마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겠지. 다음 날이 되자 그 사람이 입던 옷가지를 누군가가 정리하고 있었다. 불태워야 하냐고 물어보자 그것까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 선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도 추리 소설을 보고 있는 사람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옆에 있던 사람이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사람은 펼친 추리 소설을 덮고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사람은 나중에 탐정이 될지도 몰랐다. 일을 하질 않으니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건 곤란한 일이다. 탐정이 소설가에 가까울 수 있듯, 소설가도 탐정에 가까울 수 있다. 죽었다고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으나 우리들에게는 약간 암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놀러 와서 한 사람을 잃게 되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물에 젖은 발로 저쪽 해변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쾌활한 듯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살아 돌아왔으니까.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정으로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가끔 그러기 전에 결정이 필요하다. 그게 언제인지는 여기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으나. 그 사람은 멀리 있는 섬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을 해안에서 보내 수영에는 자신이 있다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게다가 그 사람의 발에는 오리발까지 끼워져 있었다. 다시 양조장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나는 그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아 있게 되었다. 요즘엔 그런 열차가 없다고 하지. 그 사람과 나는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는 듯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 큰 감흥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어떤 희미한 연결성. 거미줄 같은 것. 그런 주제가 나오자 우리는 조금 말이 많아지기도 했다. 양조장 숙소에 돌아가 보니 추리 소설 읽는 남자와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가 보였다. 나는 졸렸으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주 그런 광경이 보이곤 한다. 양조장에 경영자는 없었는데, 그것과 거의 비슷한 일을 내가 도맡아서 했다. 양조장에 들어서자 막걸리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일어나지 않는 남자가 있었고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제 발로 걸어서 돌아왔다. 나는 슬픈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더 이상 거짓 기록을 남기는 일은 할 수 없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사실 이 양조장은 없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누워서 책만 보는 남자도 없고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도 없다. 단지 우리 사이엔 그날 밤 물속에서 돌아오지 않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암묵적인 것이었고 지금은 저녁이 되어가는데 하늘의 색깔이 이상했다. 노란색이었다. 나는 당분간 이 양조장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곡물창고 2022년의 숫자들

안녕하세요 창고관리인입니다.
다가오는 2023년, 곡물창고는 운영 7년째를 맞습니다.
그간 뭔가 변했습니까? 안 변했습니까?
곡물창고에서 얻거나 곡물창고에 버린 것이 있습니까?
곡물창고의 2022년도를 다음의 숫자들로 남겨둡니다.



95

입하된 게시물

총 491개의 게시물 중 약 19%. 월 평균 7회의 입하가 있었습니다. 가장 입하가 많았던 달은 9월(14회), 가장 적었던 달은 10월(2회)입니다.


2.02만

조회수

22년 12월부로 곡물창고 총조회수는 10만을 넘었습니다. 게시물당 조회수는 평균적으로 30~50입니다. 22년도 단일 게시물 최고 조회수는 173, 최저 조회수는 7입니다. 조회는 한국에서 81%, 그 외 국가에서 19% 이루어졌습니다.


22~44

곡물창고 보름간

보름간은 22호부터 44호까지 발송되었으며, 현재 74분이 받아 보고 있습니다.


294

알림판

알림판의 팔로어 수는 290 내외를 오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알림판 개설 당시의 목표는 300이었습니다.


-2, +1

필진

두 분 필자의 등록이 해제되었으며, 한 분의 필자가 새롭게 등록하였습니다. 현재 필진은 7인(창고관리인 제외)입니다.


6

올해 입하가 시작된 태그

리뷰 비슷한 것
마이의 노트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외삽연극
환상 동화
헛간


4

올해 저장고로 들어간 태그

도시 전설 (37편)
바리에테 (23편)
외삽연극 (3편)
임금벌레 (6편)


13, 14, 18

개별태그 최대 입하

입하 중인 개별태그는 8개, 그중 가장 많이 입하된 세 개의 태그는
~같은 것 (13회)
환상 동화 (14회)
社名을 찾아서 (18회)
입니다.


3099

모금통

7회의 격려로 발생한 격려금 총액 90,000원 중 필자들에게 전달된 격려금은 7,000원입니다. 현재 282,494원의 기금이 있으며, 3,099원의 예금이자가 발생했습니다.



오늘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고 하는 동지입니다.
내일부터는 낮이 점점 길어집니다.
지난 일 년 괴롭거나 즐거우셨습니까?
이제부터 즐겁거나 괴로울 예정이십니까?
원하는 만큼 준비되시기를 기원하고,
기여하는 모든 이들의 노고를 치하합시다.

2022년 12월 7일 수요일

리비아 콜로라도

다른 뜻 없이 그냥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두 이름을 붙인 것뿐이야. 왜 맴도는지도 몰라.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콜로라도는 북아메리카 미국의 주(州)다.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해 뭐라뭐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 사전을, 인터넷을 뒤져서. 리비아는... 콜로라도는... 카다피는... 덴버는... 만약 내가 어떤 복수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늘어놓는 말들은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야. 맹세한 복수를 이루려면 때가 되기 전까지 뜻을 감춰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지만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나의 복수심은 드러나고 말아. 전혀 무관한 것만 같은 정보들로부터, 나의 복수심과 연결된 뭔가가 반드시 하나쯤은 나와. 그것은 내가 복수심으로 지나치게 불타기 때문이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복수심이란 언제나, 합심된 세계가 내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나 콜로라도보다도 엉뚱한, 아주 딴소리를 해도, 그것은 이 세계의 것이고, 내 복수심은, 어디서든 갑자기, 하나의 문장으로, 단어로, 튀어나오게, 또는 피어오르게 되어있어. 자세할수록,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멀어질수록, 복수와도 같은 무늬가, 패턴이 발견돼. 그렇다면 그건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복수심을 드러내려는 이야기인 거지. 이 돌기들과 냄새들은 나를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어. 이 놀이는 나의 복수심을 건넌방으로 데려가. 나 대신 울면서 말야. 그렇게 맹세했건만... 그렇게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닦으면서. 복수심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이끌려 간다. 왜 네가 우는 거야? 왜 울어? 누가 누굴 위로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모습. 만약 내가 정말로 쓸 사명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니까 사명들을 비석에 적어서 그냥 세워놓으려는 게 아니라면, ‘리비아 콜로라도’ 같은 식이라도 뭐가 어떻겠어?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문지기와 남자의 대사

문지기는 그를 향해 깊숙이 아래로 몸을 숙인다.
“대관절 아직도 무엇이 더 알고 싶은 겁니까?"
문지기는 묻는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
그 남자는 말한다.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라고 누가 말한 걸까?* 그 앞에 바로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이 있다. 이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의 위아래로 세 문장의 대사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누가 말한 것인지로 보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어 보인다. ‘대관절 아직도 무엇이 더 알고 싶은 겁니까?’는 문지기가 말한 것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바로 그다음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래로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가 있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라는 대사를 문지기가 아닌, 쇠약해진 남자가 말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렇게 보면 그 답답하고 어수룩한 남자는 끝에 와서 특별한 앎을 얻게 된 것이다. 남자가 문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지기의 상세를 계속해서 관찰해왔던 것이라면, 그 관찰을 통해 문지기에 대해서 뭔가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남자가 쇠약해지는 것이 문지기가 바라는 것이며, 이렇게 쇠약해진 후에도 더 쇠약해지길 바라고 있는, 바로 문지기의 그러한 점을 남자는 말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 또한 남자가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보인다. 남자는 끝내 죽음에 대한 어떤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법을 따라 죽는 것’이다. 그것은 문지기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다. 이 <법 앞에서>의 세계는 시간이 흐르지 않거나 비선형적인 곳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전부가 문지기가 남자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시간은 남자에게만 흐르는 것 같고, 남자는 점점 쇠약해진다. 맨 마지막의 ‘이제 나는 문을 닫고 갑니다.’라는 문지기의 말을 보면 남자에게는 죽음이라는 안식이, 그리고 문지기에게도 일의 종료라는 안식이 찾아오게 된 것이겠으나 이후가 그려져 있지는 않다. 어쩌면 문지기가 문을 관리하는 것은 여기서 나온 최후의 진실(당신 외의 누구도 입장 허가를 얻을 수가 없었던 바로 그곳이 여기)로 미루어보아, 문지기에게도 이곳은 법 앞에서의 관문들이다.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그 어수룩한 남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자는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어쩌면 문지기보다 남자가 뛰어난 점이다. 문지기의 경우 이미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남자보다 문지기가 더 인간적이다. 어쩌면 이 세계관은 남자가 쇠약해진 뒤에 문지기가 되어서 다시 다른(혹은 같은) 남자에게 입을 굳게 다물고 법 앞에서의 문지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까 ‘문지기는 묻는다.’의 뒤로 두 문장의 대사가 남자가 내뱉은 말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라는 말은 사실 남자가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 혹은 그 특별한 인식을 얻게 됨과 동시에 마치 연극의 정해진 대사를 내뱉는 것처럼, 아니 내뱉어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도 알고 있고, 혹은 그 너머의 어떤 진실까지 알고 있다. 이런 관점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을 문지기가 내뱉은 것이다. 이 경우 쇠약해진 남자는 문지기에게 아직도 뭔가를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문지기는 그런 사실을 담담히 말한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은 문지기가 쇠약해진 남자를 조금쯤 동정하면서 내뱉은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두 대사를 쇠약해진 남자가 한 것이라면 좋겠다. 정리해 보자면 ‘문지기는 묻는다.’와 ‘그 남자는 말한다.’ 사이로 두 문장이 있고, ‘문지기는 묻는다.’의 위에 한 문장, 그리고 ‘그 남자는 말한다.’ 아래에 한 문장이 있다. 중간에 있는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에 따라 위의 세 문장이 전부 문지기가 말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내 해석에 따라 아래의 세 문장(맨 밑은 그런데 어째서 운운)을 남자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그것은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를 남자와 문지기가 각각 말한 것이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를 문지기가 말한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을 한 남자는 문지기에게 있어 끝없이 뭔가를 갈망하는(자기처럼) 법이라는 국면에 있어서의 상위자이다. 즉 반대로 문지기에게 문지기 역할(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법에 대해)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 일종의 역-안내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쇠약해진 남자는 문지기보다 먼저 죽지만 문지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반대의 경우(당신은 만족할 줄 운운이 남자, 모든 사람들 운운이 문지기)라면 문지기는 일종의 살아 움직이는 법 그 자체가 된다. 그 법의 진상은 사실 ‘악의를 갖고 있는’, 혹은 ‘인간을 적대하는 법’이다. 이것을 따라가자면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라는 질문의 뉘앙스는 ‘어째서 나에겐 이 바보 같음을 알고 나서 법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이 없는 것이오?’라고 읽힐 수도 있다. 이렇게 고려하다 보면 문지기는 이전의 남자(문지기로부터 뭔가를 배운)이고 남자는 그 이전의 문지기(법은 차등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만났던 남자를 따라 하고자 애쓰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방금 말한 것처럼 이전의 그 문지기가 남자(정해진 운명을 오시하며 따라가는 입장에서, 점점 몸이 쇠약해짐을 받아들이는, 그러나 정공법으로 나아가는)고 어쩌면 죽기 전의 그 남자는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닫혀 있지 않은, 열려 있는 ‘법’의 시대를 열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남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나, 그것은 이 글의 진행에 따라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된 것이지 일반적으로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지는 않는다. 느린 시간을 사람들은 살고 있다(고 이 글은 말하는 것 같다). 아직 이 남자처럼 쇠약해지지 않은 몸으로.

*<법 앞에서>, 323p~327p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마이의 노트

추운 겨울날, 오늘부터 한동안 마이는 죽은 작가의 초단편을 하나씩 읽고 감상문을 쓰기로 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매번 다른 장면들이 꿈을 꾸는 사람에게 휴식을 부여해 주는 듯이. 마이는 왠지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아서 엉엉 운다. 그런데 이것은 오해이다. 마이는 그런 것으로 별로 그러지 않는다. 마이에게는 언니가 있는데 가끔 이 노트에 등장할 수도 있다. 짧은 작품들을 엮은 그 책은 <칼다 기차의 추억>(하늘 연못)이라고 한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을 하나에서 몇 개씩. 저쪽에는 벽난로에 불이 켜져 있다. 활활 타오르고 있다. 왠지 힘든 일은 다 해놓은 것 같은 추운 겨울날. 마이는 멀뚱히 의자에 앉아 있다. 안락의자가 있는데 거기엔 눕지 않는다.

22년 1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2,494원 (0원 + 282,007원 + 487원)

2022년 11월 23일 수요일

인공 자연

유리세계의 거대한 등껍질을 보고 크다,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밤하늘인데 사실은 둥근 유리막으로 투과되고 있다. 그 유리막을 왜 만든 것인지, 어떤 거대 집단이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 그 껍질을 보고 있으면 뭔가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왠지 느낌상,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유리막 위에다가 거리가 있으면 별과 비슷한 질감의 반짝이는 도료를 칠해 놓아 실존하지 않는 별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별에도 이름이 붙는다. 이 유리막에 대한 사실은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것이지만 아직 모르는 과학자나 집단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끼리 숨겨 놓은 비밀이 아니기에 큭큭대며 웃을 일도 아니다. 이 유리막을 만든 집단은 큭큭 웃을 수도 있다. 오직 그런 이유만으로 이런 막을 설치해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리막은 움직이기도 한다. 거대한 생물의 등처럼 좌나 우로 움직인다. 왜 움직이는 것인지는 모른다. 물론 우주비행선은 이 유리막을 통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해놓은 것들도 유리막을 만든 이유일 수 있겠으나,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우주비행선들의 금지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주비행선들을 발사하지 못하게 된 지 벌써 35년이나 지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세계의 모든 우주 관측은 그 이전에 띄워놓은 망원경에 의한 것이 되었다. 우리들의 과학 기술로는 이러한 유리막을 만들 수 없어 보임에 따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외계의 존재에 대해 대부분 긍정하고 있다. 이 유리막 안에서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태양은 예전보다 대낮에도 어두워 보이고 이것은 실제로 사실인 게, 약 15% 정도 현생 인류는 전 세대 인류에 비해 피부가 희어졌다고 한다. 자외선이 유리막을 부분적으로 투과하지 못한다고 하나? 따라서 우리는 비타민 D를 많이 먹어야 하는 인류이고 이런 거대한 물질적 기반이나 토대는(인공 자연은) 결코 한 사람을 울리거나, 감동시키는 법이 없는 것 같다.

2022년 11월 22일 화요일

알림판은 어떡해?

들었어? 트위터 망할 수도 있다고? 우린 어떡해?

관리인은 별 대답 없이 장갑을 벗어 양손에 하나씩 붙잡고 박수 치듯 맞부딪기 시작한다. 창고 지붕을 타 넘은 오후의 부신 빛이, 리듬을 따라 터져 나오는 흙먼지를 비추고 부풀린다. 관리인의 표정 없는 얼굴은 비스듬한 빛으로 잘려있다. 뭘 하다 온 것인지 한쪽 안경이 온통 뿌옇다. 주변이 점점 먼지로 자욱해진다. 나는 뒤로, 창고의 그늘 속으로 물러선다. 관리인은 이제 그 장갑으로 옷을 턴다. 턴다기보다는 거의 먼지구름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꼴이다. 관리인은 그 속에서 말한다. 뭘 어떡해?

우리 알림판은 어떡하냐고! 미리 준비를 해야지!

근데 언제부터 관리인에게 말을 놓았지? 모르겠다. 관리인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천천히 먼지구름 속에서 나온다. 지독하게 바람 없는 날이다. 관리인은 아무 털어낸 것이 없는 것 같다. 또 답답하게 되묻는다. 진짜 망하는 거 맞아? 망하고 나서 생각해봐도 되지 않아?

아니, 그러면 안 돼. 미리 대비를 해야지, 한군데 정해놔야지. 인스타 갈 거야? 어쩔 거야? 페북? 뭐 마스토돈? 그런 것도 있다던데?

무슨 대비를 해? 그런 델 왜 가? 게시판 있잖아.

게시판은 지미...

투고 들어온 건 있어?

관리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투고 얘긴 왜 해? 투덜대면서 관리실로 간다.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반지하출판사

대학촌을 가로지르며 월세 기준선이 되는 왕복 4차선 도로, 그 저편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자리한 건물의 반지하 원룸이었다. 같은 층에는 여섯 호실이 있었는데, 두어 곳에는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아니면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또는 교환학생들이 지내는 듯했다. 마주친 적은 없고 말소리를 들어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 국제 이웃들. 나와 선배의 방은 여섯 중 모서리로, 운이 좋아 창문이 두 개였다. 한 창문은 담벼락에 면해있었고 다른 창문은 주인집 텃밭으로 뚫려있었다. 주인은 꼭대기 층에 살았다. 텃밭에 가끔 거름을 뿌렸다.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그 냄새가 맡기에 좋았다. 텃밭의 커다란 호박들 기억이 난다. 원룸 건물에 드나들려면 그 텃밭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야 했다. 우리는 거기서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당시엔 ‘안개가 끼기는 해도 공기가 맑아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졸업한 뒤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온 나라에서 열심히 미세먼지를 측정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공기 질이 아주 최악으로 나쁜 고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처의 무슨 항구... 근처의 무슨 화력발전소... 근처의 무슨 산맥...

선배와 그곳에서 6개월을 살고, 해도 바뀌어 때는 늦봄이었다. 선배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술을 마신다는 것 같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올 거였다. 아니면 안 들어온다고 했다. 비는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반만 열었다. 나는 선배의 고물 컴퓨터로 흘러간 옛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빗소리가 점점 세졌다. 번개 천둥도 쳤다. 긴 술자리에 할 말도 전부 떨어질 때면 우리는 이 고장의 저수지나 원룸촌, 기숙사 배경의 괴담들을 주워섬기곤 했다. 근처 저수지들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버려지는지에 대해, 자취방에서 꾼 이런저런 악몽들과 다양한 가위눌림에 대해. 선배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채 밭길을 지나다가 누가 어깨를 건드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란 얘기를 했었다. 그게 언젠데요? 2시인지 3시인지, 날짜를 묻자 선배는 시간을 답했다. 그 두 신지 세 신지에 귀신들이 가장 활발하다니까, 웬만하면 너도 그 시간엔 돌아다니지 마라, 그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계를 봤는데 마침 2시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 정면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담이었고 왼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밭이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왼쪽 창밖이었다. 남자였고, 아마도 청년 같았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텃밭쯤? 또는 텃밭 들어서는 길? 갑자기 놀랐거나 고통을 겪었거나 힘을 들이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떤 심리적인 괴로움을 강하게 실은 외마디 고함이었다. 으아악! 잠시 뒤 번개, 이어서 천둥이 꽝.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비도 이렇게 오는데, 궁상맞게 왜 거기서 소릴 질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번개 맞은 거 아냐? 아니지, 번개는 나중에 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게임을 하다가, 언젠가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였는지 얼른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전에 듣긴 들었다. 그때는 선배랑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이 그렇게 누가 소리 지르는 걸 선배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기억이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선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말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웃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근데 이 소리 전에도 듣지 않았어요?’ 그 기억이 났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이 일이 기억이 났다. 장마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그 기억이 났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 책을 만들려는 것일까.

2022년 11월 8일 화요일

초월일기 4

* 2022년 10월 28일

어느 시인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어느 시인은 나의 친구다. 나는 그 친구를 종종 그 친구의 이름으로 부른다. 언니라고 부른다. 별명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 친구를 어느 시인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그 친구의 작업실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 친구를 어느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내 친구의 작업실 혹은 누구누구의 작업실이 아니라, 어느 시인의 작업실이라고 쓰고 싶어진 것이다. 어느 시인의 작업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팀 버튼 전시장에서 본 팀 버튼의 작업실을 떠올렸다. 내가 팀 버튼의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업을 대하는 팀 버튼의 태도였는데, 그 태도가 가장 잘 보였던 게 팀 버튼의 작업실, 즉 팀 버튼의 책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인의 작업실은 팀 버튼의 작업실과는 좀 달랐지만, 기묘하게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 닮은 구석은 다음과 같다.

1. 어느 시인의 작업실에는 책상이 두 개 있다.
2. 그중 하나의 책상에는 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3. 그중 또 다른 책상이 닿아있는 벽면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문득, 팀 버튼의 작업실에는 책상이 하나밖에 없으며 그 어떤 책상 위에도 책이 쌓여있지는 않다는 걸 깨닫는다. 포스트잇은... 있었나? 잘 기억이 안 나는군. 그렇다면 지금 닮았다고 느끼는 이 작업실은 누구의 작업실이지? 생각하며 찬찬히 방을 둘러봤을 때 나는 문득 발견했던 것이다. 어느 시인의 책상 위 놓여있던 맥북을. 그 맥북은 내 맥북과 완전히 동일한 모델이었으나 색만 다른 맥북이었고 맥북의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잠시 뒤, 시작됩니다.> *



* 2022년 11월 8일

꿈에서

어느 시인네 집에 놀러 갔다. 어느 시인네 집에 놀러 가서, 잠옷을 입었다. 그 잠옷은 언젠가 내가 어느 시인에게 선물한 잠옷이었는데, 내가 선물했던 색과는 다른 색의 잠옷이었다. 언젠가 내가 어느 시인에게 선물했던 잠옷의 색은 베이지색 원피스였는데, 어느 시인네 집에 있던 건 하늘색 원피스였고, 그건 내 잠옷의 색과 같았다. 아무튼, 내가 선물한 잠옷을 내가 입고 어느 시인네 집 거실로 나섰을 때, 어느 시인은 말했다. <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시인은 당장이라도 집을 나설 것처럼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었다. <난 하루 종일 집에만> 어느 시인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메아리치며 귓등을 때렸다. 난 하루 종일 집에만! 내가 꾸는 꿈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뉜다. 1. 내가 욕망하는 것. 2. 내가 두려워하는 것. 오늘 꾼 꿈에서 어느 시인이 한 대사는 어쩐지 1번과 2번 모두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 있어. 난 하루 종일 집에만... *



* 2022년 10월 29일

나는 책상에 앉는다. 책상 우측에는 귤이 한가득이다. 어제 어느 시인이 싸준 귤이다. 나는 귤을 까고 껍질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으며 어느 시인에게 받은 책을 읽는다. 악기형 책. 내 방에는 책상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맥북과 책을 올려놓는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렇게나 책을 올려놓는 용도이다. 악기형 책은 내용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쓴 책이다. 아코디언처럼 책을 두 손으로 잡고 연주하듯 읽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나는 맥북을 열고 한글 파일에 다음과 같이 쓴다. <그날 우리는 종일 기다렸다. 시작되기를. 잠시 뒤,를.> 그리고 어느 시인에게 귤 세 개를 찍어 사진을 보낸 뒤, 상상했다. 커다란 주홍빛 귤 나무를. 그 밑에서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내 친구와 나를. *

2022년 11월 7일 월요일

홍한별, ≪아무튼, 사전≫(2022, 위고)

홍한별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다. 번역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판계에도 소문이 자자하다. 필자도 홍한별 번역이라면 믿고 본다. 홍한별이 번역한 많은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홍한별은 사전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한다. 홍한별은 단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적고, 들어 올리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더듬어본다. 마음에 드는 단어는 곰곰이 오랜 시간 생각해본다.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좋은 번역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글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장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예전에 홍한별이 한 인터뷰에서 보았다. 인터뷰에서 홍한별은 원문보다 더 아름다운 번역도 존재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번역은 다시 쓰기다. 창조다. 예술이다. 홍한별도 이렇게 생각할 거다. 홍한별은 에세이도 잘 쓴다. 이 에세이엔 사전에 대한 사랑이 많다.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여전히 순천

 • 안목해변에 갔다. 사람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드넓은 갯벌!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였다.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 앉아 이상우 <프리즘>을 꺼내 들었다. 읽히지 않았다. 도로 집어넣었다. 갯벌에 발을 살짝 디뎠다. 발이 푹- 빠졌다. 갯벌은 못 걸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춤을 추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오 분간 춤을 추었다. 크고 과감한 스텝을 밟아가며, 팔을 마구 내지르며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서 춤을 추었다.

• 시를 써야 한다. 요즘 시가 써지지 않는다. 괴롭다.

•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었다. 베이컨과 싱싱한 야채를 먹었다. 맛있었다.

• 아니, 소설을 써볼까? 소설을 안 써봐서 좀 무섭다. 소설은 뭐고, 시는 뭘까.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으론 아무런 차이가 없다!

• 엄마랑 전화했다. 밥을 세 끼 잘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두 끼를 먹고 간식을 챙겨 먹고 있다고 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 하이쿠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상우가 하고자 하는 건 기표들의 춤이다. 기표들에 머무는 거다. 형식과 내용이 합해지는 거다.

• 시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시는 아니다.

• 방이 걷는다 방은 자기도 모르고 문을 열고 나오던 가난한 거주자를 밟았다 밟힌 가난한 거주자가 꿈틀댄다 방은 미안하다 자신이 밝은 거주자 목록에 한 명을 추가한다 방은 계속 걸어간다 하지만 아까 밟은 가난한 거주자가 생각나고 자꾸자꾸 미안해진다 방의 발걸음은 힘이 빠진다 보폭이 줄어든다 방은 가만히 선다 방은 자신한테 살고 있던 거주자들을 계속 생각한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방은 점점 더 죄송하고 미안해하며 서서히 자신의 평수를 줄인다 방은 자신의 팔로 자신의 각진 어깨를 감싸 안고 울기 시작한다 사방이 적막하다 방은 전체다 하나의 전체가 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새 가게를 연다

• 방금 쓴 건 시다.

• 송광사에 갔다 왔다. 미적 감각 없는, 크기만 큰 괴물 같은 절이다.

• 법정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다녀왔다. 아담하다. 법정 스님은 이제 없다.

• 씻고 침대에 누웠다. 넷플릭스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봤다. 내일 본가로 간다.

2022년 11월 4일 금요일

연안 같은 것

밤은 파도를 밀어내고 모래와 배를 문질러 해안선을 낳는다. 물러나는 파도는 열띤 소금기를 토하고 오래전에 익사한 잠수부들을 터진 양수처럼 쏟아낸다. 낮은 남은 자리에서 해안선을 널어 말린다. 넓어지는 백사장 위로 잠수부들이 일기장의 단어들처럼 엉겨 있다. 그들을 묻기 위해 팔다리를 모으다 해초를 쥐고 우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생겨난다. 파도가 밀려오고 날이 밝아지면 모든 것이 미수에 그친다. 아이들은 물에 모래를 말아 먹는다. 하얗게 말린 해초에 소금을 발라 먹으며 피신이 생활이 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죽은 자의 머리와 목 언저리에 새 잎을 따서 둘러준다. 그들의 지친 애도가 낮을 밀치면 파도는 다시 백사장의 이마에 모래를 보태고 주검을 보태고 모래를 보태고 주검을 보태고…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는 언덕이 솟아 있다. 나는 높은 곳에서 그런 광경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높은 언덕에 오를수록 그들은 좀 더 작고 부드러운 모래가 된다.

2022년 11월 1일 화요일

22년 10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
곡물창고 +1


이달의 총격려금

23,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7일 / 23,000 ― 빛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2,007원 (23,000원 + 258,514원 + 493원)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輕惡黨

최근 읽은 기사 하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기사가 전하는 사건은 이렇다. 시인 C씨는 모 카페에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카페노동자 A씨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었다. 다음 날 다시 카페를 찾은 C씨는 A씨에게 시를 써주겠다며 사랑이 어쩌고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몇 장의 원고지를 건넸다. A씨는 ‘C씨가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C씨는 경범죄로 즉결심판을 받아 벌금을 물었다. C씨는 다음 날 또 카페를 찾아 어제 마신 커피를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환불을 받았고, ‘이제 나가달라’는 요구에 ‘왜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주차관리노동자 B씨가 C씨에게 ‘소화전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했으니 빼달라’고 요구하자 의자를 집어던질 듯이 위협하고 책을 던지며 폭행...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이것은 자칭 시인이 노동자에게 불쾌하고도 고루한 방식으로 추파를 던지다 단호히 거절당한 뒤 모욕감을 못 이기고 추태 난동을 부린... 내 입장(?)에서는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눈길이 특히 끌린 부분은 ‘경범죄로 즉결심판을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모든 것이 잘못된 듯한 이 촌극 가운데서 그 일만은 어쩐지 너무나, 너무나 옳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뜻일까? 구체적으로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뭐가 어떻게 옳아졌다는 것일까?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시·문학·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경범죄 즉결심판을 받는 것이 예술의 비밀스런 임무와 관련 있음이 뜻하지 않게 드러난 것일까? C씨의 시작(詩作)-퍼포먼스가 아이러니한 성취를 이뤄버린 것일까? ‘輕惡黨(경악당)’ 출판사의 문제의식이 이로부터 출발한다. 추파는 예술의 왜곡인가? 예술은 왜곡된 추파인가? 왜곡은 왜곡의 왜곡인가? 아무렴요... [왜곡]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재밌다?

가장 눈길이 끌린 부분이 ‘경범죄 즉결심판’이었으므로, 먼저 현행 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거나 삭제되었거나 이관된 종류의 경범죄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 나라에서 법 제정 이후의 모든 경범죄 유형을 살펴본 것인데, 꽤 긴 목록이었음에도 슬프게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슬픔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기로 하고, 읽으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이렇게 쓰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중에서 (해본 일을 제외하고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물길의 흐름 방해... 미신요법... 동물 등에 의한 행패... 두 번째 생각은, 이것은 이미 국가·자본·세계가 공식/비공식적으로,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최대한의 규모로 행하고 있는 일들의 목록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쓰레기 등 투기... 거짓 광고... 자릿세 징수... 관명사칭... 너희는 다 관명사칭이야 개새끼들아... 세 번째 생각은 이게 어느 정도는 집회 시위 등에 대한 즉결심판을 염두에 둔 목록 같다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종의 데모 가이드처럼도 읽혔다. 빈집 등에의 침입... 타인의 가축 기계 등의 무단 조작... 의식방해, 인근소란... 그래서 경악당은 어떤 출판사인가? 비밀스런 임무들: 경범죄인 동시에 즉결심판일 것, 추파가 아니라 조직될 것, 그리고 거절할 것... 이제 나가달라고 요구할 것... 끌려 나갈 것...

  • (빈집 등에의 침입) 다른 사람이 살지 아니하고 관리하지 아니하는 집 또는 그 울타리·건조물(建造物)·배·자동차 안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 (흉기의 은닉휴대)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
  • (폭행 등 예비) 다른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끼칠 것을 공모(共謀)하여 예비행위를 한 사람이 있는 경우 그 공모를 한 사람
  • (시체 현장변경 등) 사산아(死産兒)를 감추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변사체 또는 사산아가 있는 현장을 바꾸어 놓은 사람
  • (도움이 필요한 사람 등의 신고불이행)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 어린이, 장애인, 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사산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이를 관계 공무원에게 지체 없이 신고하지 아니한 사람
  • (관명사칭 등) 국내외의 공직(公職), 계급, 훈장, 학위 또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명칭이나 칭호 등을 거짓으로 꾸며 대거나 자격이 없으면서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제복, 훈장, 기장 또는 기념장(記念章), 그 밖의 표장(標章)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사람
  • (물품강매·호객행위) 요청하지 아니한 물품을 억지로 사라고 한 사람, 요청하지 아니한 일을 해주거나 재주 등을 부리고 그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영업을 목적으로 떠들썩하게 손님을 부른 사람
  • (광고물 무단부착 등)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집이나 그 밖의 인공구조물과 자동차 등에 함부로 광고물 등을 붙이거나 내걸거나 끼우거나 글씨 또는 그림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간판, 그 밖의 표시물 또는 인공구조물을 함부로 옮기거나 더럽히거나 훼손한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광고물 등을 함부로 뿌린 사람
  • (마시는 물 사용방해) 사람이 마시는 물을 더럽히거나 사용하는 것을 방해한 사람
  • (쓰레기 등 투기) 담배꽁초, 껌, 휴지, 쓰레기, 죽은 짐승, 그 밖의 더러운 물건이나 못쓰게 된 물건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린 사람
  • (노상방뇨 등) 길, 공원, 그 밖에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또는 그렇게 하도록 시키거나 개 등 짐승을 끌고 와서 대변을 보게 하고 이를 치우지 아니한 사람
  • (의식방해) 공공기관이나 그 밖의 단체 또는 개인이 하는 행사나 의식을 못된 장난 등으로 방해하거나 행사나 의식을 하는 자 또는 그 밖에 관계 있는 사람이 말려도 듣지 아니하고 행사나 의식을 방해할 우려가 뚜렷한 물건을 가지고 행사장 등에 들어간 사람
  • (단체가입 강요) 싫다고 하는데도 되풀이하여 단체 가입을 억지로 강요한 사람
  • (자연훼손) 공원·명승지·유원지나 그 밖의 녹지구역 등에서 풀·꽃·나무·돌 등을 함부로 꺾거나 캔 사람 또는 바위·나무 등에 글씨를 새기거나 하여 자연을 훼손한 사람
  • (타인의 가축·기계 등 무단조작)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소나 말, 그 밖의 짐승 또는 매어 놓은 배·뗏목 등을 함부로 풀어 놓거나 자동차 등의 기계를 조작한 사람
  • (물길의 흐름 방해) 개천·도랑이나 그 밖의 물길의 흐름에 방해될 행위를 한 사람
  • (구걸행위 등)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
  • (불안감 조성)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주위에 모여들거나 뒤따르거나 몹시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고 불쾌하게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거나 다니는 도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文身)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
  • (음주소란 등) 공회당·극장·음식점 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 또는 여러 사람이 타는 기차·자동차·배 등에서 몹시 거친 말이나 행동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하거나 술에 취하여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정한 사람
  • (인근소란 등) 악기·라디오·텔레비전·전축·종·확성기·전동기(電動機)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
  • (위험한 불씨 사용)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건조물, 수풀, 그 밖에 불붙기 쉬운 물건 가까이에서 불을 피우거나 휘발유 또는 그 밖에 불이 옮아붙기 쉬운 물건 가까이에서 불씨를 사용한 사람
  • (물건 던지기 등 위험행위) 다른 사람의 신체나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물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곳에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붓거나 또는 쏜 사람
  • (인공구조물 등의 관리소홀) 무너지거나 넘어지거나 떨어질 우려가 있는 인공구조물이나 그 밖의 물건에 대하여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고칠 것을 요구받고도 필요한 조치를 게을리하여 여러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우려가 있게 한 사람
  • (위험한 동물의 관리 소홀) 사람이나 가축에 해를 끼치는 버릇이 있는 개나 그 밖의 동물을 함부로 풀어놓거나 제대로 살피지 아니하여 나다니게 한 사람
  • (동물 등에 의한 행패 등) 소나 말을 놀라게 하여 달아나게 하거나 개나 그 밖의 동물을 시켜 사람이나 가축에게 달려들게 한 사람
  • (무단소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켜 놓은 등불이나 다른 사람 또는 단체가 표시를 하기 위하여 켜 놓은 등불을 함부로 끈 사람
  • (공중통로 안전관리소홀)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서 위험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으면서도 등불을 켜 놓지 아니하거나 그 밖의 예방조치를 게을리한 사람
  • (공무원 원조불응) 눈·비·바람·해일·지진 등으로 인한 재해, 화재·교통사고·범죄, 그 밖의 급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에 현장에 있으면서도 정당한 이유 없이 관계 공무원 또는 이를 돕는 사람의 현장출입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공무원이 도움을 요청하여도 도움을 주지 아니한 사람
  • (거짓 인적사항 사용)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록기준지, 주소, 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대고 배나 비행기를 타거나 인적사항을 물을 권한이 있는 공무원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묻는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자기의 것으로 거짓으로 꾸며댄 사람
  • (미신요법) 근거 없이 신기하고 용한 약방문인 것처럼 내세우거나 그 밖의 미신적인 방법으로 병을 진찰·치료·예방한다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한 사람
  • (야간통행제한 위반) 전시·사변·천재지변, 그 밖에 사회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을 경우에 경찰청장이나 해양경찰청장이 정하는 야간통행제한을 위반한 사람
  • (과다노출)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 (지문채취 불응) 범죄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의 신원을 지문조사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어 경찰공무원이나 검사가 지문을 채취하려고 할 때에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한 사람
  • (자릿세 징수 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쓸 수 있도록 개방된 시설 또는 장소에서 좌석이나 주차할 자리를 잡아 주기로 하거나 잡아주면서, 돈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돈을 받으려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
  • (행렬방해) 공공장소에서 승차·승선, 입장·매표 등을 위한 행렬에 끼어들거나 떠밀거나 하여 그 행렬의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
  • (무단 출입)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시설 또는 장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 (총포 등 조작장난)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아니하고 총포, 화약류, 그 밖에 폭발의 우려가 있는 물건을 다루거나 이를 가지고 장난한 사람
  • (무임승차 및 무전취식) 영업용 차 또는 배 등을 타거나 다른 사람이 파는 음식을 먹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제 값을 치르지 아니한 사람
  • (장난전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화·문자메시지·편지·전자우편·전자문서 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괴롭힌 사람
  •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 (출판물의 부당게재 등)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사업이나 사사로운 일에 관하여 신문, 잡지, 그 밖의 출판물에 어떤 사항을 싣거나 싣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고 돈이나 물건을 받은 사람
  • (거짓 광고) 여러 사람에게 물품을 팔거나 나누어 주거나 일을 해주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만한 사실을 들어 광고한 사람
  • (업무방해) 못된 장난 등으로 다른 사람, 단체 또는 공무수행 중인 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
  • (암표매매)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
  • (관공서에서의 주취소란)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
  • (거짓신고) 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한 사람
  • (떠돌이) 일할 능력은 있으나 다른 생계의 길도 없으면서 취업할 의사가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아니한 사람
  • (덮개 없는 음식물 판매) 껍질을 벗기거나 익히거나 씻거나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덮개로 덮지 아니하고 가게 밖이나 한데에 내놓거나 돌아다니며 판 사람
  • (유언비어 날조유포) 국가나 사회의 안녕질서를 해치거나 사회를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퍼뜨린 사람
  • (장발 및 저속의상)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긴머리를 함으로써 좋은 풍속을 해친 남자 또는 점잖지 못한 옷차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님으로서 좋은 풍속을 해친 사람
  • (굴뚝 등 관리 소홀)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고칠 것을 문서로 요구받고도 사람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굴뚝·물받이·하수도·냉난방장치·환풍장치등을 고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사람
  • (전당품장부 허위기재) 물건을 전당잡히는 데 있어서 영업자의 장부에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직업 등을 거짓으로 알려 써넣게 한 사람
  • (비밀춤 교습 및 장소 제공) 공연하지 아니한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춤을 가르치거나 그 장소를 사용하도록 한 사람
  • (뱀 등의 동물을 진열하는 행위)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뱀이나 끔찍한 벌레 등을 팔거나 또는 팔기 위하여 늘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
  • (정신병자 감호 소홀) 위험한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정신병자를 돌볼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집 밖이나 감호시설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한 사람
  • (금연장소에서의 흡연)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표시된 곳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22년 9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4)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8,514원 (0원 + 258,146원 + 368원)

2022년 9월 29일 목요일

공짜책

댓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겠다는 것은 미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세상에 걸맞은 미친 책이, 미친 원고가 필요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글, 붙은 듯이 뇌리에 남는 글, 그날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글, 그런 글을 찾다 보니 결론은 댓글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댓글들보다 추하고 흉하고 무섭고 로맨틱한 글을 읽어보질 못했다. 댓글은 저 고딕문학의 정통한 후예, 최첨단 후예다.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자 그대로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때마다 반드시’라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그 어떤 위대한 작가라도 한 번은 실패한다고 하지 않나? 댓글은 그 어떤 대문호도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미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손으로 완성해낸... 아니, 완성은 못한, 끝없이 쓰이고 있는 불멸의 명작, 끝없이 쓰이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단점도 없는, 그래서 끝이 나기만 한다면 성경에 비견할 만한 원고다. 왜 아닐까! 이 ‘공짜책’ 출판사를 만든 계기가 된,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댓글 하나가 있다.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내용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책값은 너무 비싸다, 정부가 이익집단들에 휘둘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정책을 자꾸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이 정권 우민화 기조의 일환이다,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맞서야 한다... 난 이 댓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맞선다니 어떻게, 누구에 맞선다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 맨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에 죽자 사자 매달려있는 쓰레기 같은 원고들만 들여다보던 중 마주친 그 댓글에서 느낀 청량감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과감함, 그 호쾌함! 이런 글을 두고 일필휘지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리 공짜책 출판사의 정신이었다. 우리 출판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우리의 정신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맞서야만 한다! 우리의 첫 번째 책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감동시킨 댓글들을 800매 정도 모은 것이었는데, 500부를 찍어 90부 정도 힘겹게 공짜로 배부하다가 깨달았다. 우리의 책은 굳이 종이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두 번째로는 좀 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서 모은 댓글들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배부했는데, 도합 20종을 내고 총합 9회 정도 다운로드된 시점에 또한 깨달았다. 우리의 책이 굳이 다른 책들과 함께 취급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세 번째 책은 웹페이지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접속하여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네 번째 책은 일종의 게시판에 게시물 형태로 만들어 9000개까지, 그다음엔 원글과 댓글을 함께 올려보고, 그 다음엔... 우리가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은 굳이 우리가 책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댓글은 쓰일 것이고 그것이 계속 책으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이제 마지막으로 만들고 있는 책은 ‘댓글을 책으로 만드는 백만 가지 방법’이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2022년 9월 21일 수요일

헛간

농사를 짓다 보면 농사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산물이나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비를 맞히지 않으려면 지붕이 있는 자리가 필요한데, 이때 사용하는 곳이 바로 헛간이다. 헛간에는 짚 뭉치나 건초, 땔감, 시래기, 콩깍지, 말린 깻단, 농기구, 멍석 그리고 오줌장군이나 구유 등을 보관하기도 하는데, 헛간에는 앞쪽으로 문짝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말하자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헛간」 항목


곡물창고에서는 독자 투고를 받고 있습니다. 필자로 등록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쩐지 곡물창고에 들어갔으면 싶은 뭔가를 지었다’면, ‘뭔가를 짓다 보니 어쩐지 이것이 곡물창고에 들어가도 될 듯싶다’면, ‘전에 지은 게 있는데 어쩐지 곡물창고에 어울리는 것 같다’면 투고해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좋고, 이미 다른 곳에 공개되었어도 상관없습니다. 원고는 별다른 선별을 거치지 않고 일주일 단위로 취합하여 선착순 2편을 [헛간] 태그로 게시합니다. 선착순에서 밀렸다면 투고가 없는 주에 게시합니다. 투고하기 전에는 반드시 안내 페이지를 확인하십시오. 도대체 누가 투고를 하고 싶어한답니까? 바로 당신: 작자명과 소개말은 아래 예시와 같이 들어갑니다.






예시) 작자명

예시) 관리인은 취미로 창고를 관리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것은 투고자를 위한 예시용 소개입니다. 소개말은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소개한다면 어떤 소개든 좋습니다. 메일이나 홈페이지, SNS 주소 같은 것도 쓰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소개는 대체로 이와 같은 모양으로 들어갑니다.
hellgoddgan@gmail.com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엉이 학교

밤이 되자 부엉이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부엉이는 낮 동안에 날아다니고 밤에는 나뭇가지 위에서 잠든다. 잠든 부엉이는 한쪽 눈을 뜨고 있기도 한데, 조명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는 기숙사 안이고 늦은 시간까지 마이는 미술 주간 과제를 하고 있다. 주간이라는 것은 이 학교에서 정해 놓은 학사 일정이다. 종종 인문학 구간이 될 때도 있다. 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마이는 기숙사 신청을 했을 때 합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쟁률도 셌을뿐더러 집이 그리 먼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라 가산점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숙사에 붙었을 때 마이는 기분이 좋았다. 기숙사 건물이 좋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 실제로 와 보니 그건 사실이었다. 마이는 신입생이고 선배와 2인 1실을 썼다. 선배의 이름은 나오였고 마이에게 나긋나긋이 대했다. 마이는 조금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선배는 은을 다루는 세공 기술 클래스였고 마이는 반짇고리에 든 물건들을 모두 다루는 클래스였다. 클래스라고는 하지만 그건 꽤 가변적으로, 자주 변했다. 이 학교의 모토는 학생들을 경쟁시키지 않는 거였다. 따라서 이상한 제목의 클래스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클래스는 말하자면 시편들의 제목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고려하는 행정실 인력이나 외부 인원도 있었다. 클래스의 인원은 대체로 한 명에서 세 명 정도까지였고 인기 많은 클래스는 일곱 명까지 됐다. 학생의 수보다 개설된 클래스의 숫자가 더 많았기에 수강생 0명의 클래스도 있었는데 그런 클래스들도 폐강되지 않고 대기 클래스 목록에 들어가 수강 신청을 한다면 수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강생이 한 명이라도 생기는 것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클래스실 하나를 받고 연구비가 지원조로 나왔기 때문이다(수강생이 딱 한 명 있더라도 연구비는 똑같이 나왔다). 외부의 학교와는 조금 다른 이런 제도는 이 학교를 독특하고 매력 있게끔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였는데, 그건 학생들이 각각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 같은 것을 볼 때도 있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도록 하거나, 시험 강의를 하게끔 했다. 학교에서 모토로 정한 것은 경쟁을 시키지 않는 것이었으나 입학생들은 경쟁을 거친 한 분야의 숙련자들이라는 점에서 이 학교의 제도는 모순된 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을 거치지 않고 입학한 이들이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 등을 언급하며 이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꼭 성과라는 것으로 인해서 그것에 대해 비난할 구실을 만든다는 것은 좀 어떤가 싶기도 하다. 마이의 생각에 그런 연구 결과도 일리가 있는 게, 경쟁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모된 사람들이 아니었고, 따라서 치열한 교과 과정에 자신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이는 좀 쉬고 싶었다. 마이가 생각하는 이 학교의 분위기는 평안과 장난스러움 같은 것에 가까웠다. 마이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었고,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4년 동안 8개 정도의 클래스를 만들어내야만 했는데, 그건 입학시험 때 치른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파생된 클래스여도 좋았고 다른 분야도 허용이 됐다. 다만 클래스 개설 심사의 경우 꽤 엄격했기 때문에(이것이 이 학교의 본격적인 교과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 안에서 개설하는 게 큰 힘 들이지 않고 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대 이사장은 이 학교 부지 안에 부엉이들을 데려와서 따로 조련사들을 두고 교정 내에서 밤이면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엉이는 이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입학식 때마다 학생들, 그러니까 신입생들은 부엉이 하나씩을 배정받고 왼쪽이나 오른쪽 어깨에 부엉이를 올려놓고 있어야만 했다. 처음 보는 부엉이인 데다 그것과 접촉하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잘 길이 든 부엉이들이라도 분위기는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엉이 조련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자주 보이는 광경이었다. 후-웅 하는 부엉이들의 울음소리가 학장의 연설이 끝나면 나오는 것으로, 입학식은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들의 나이는 2~3살 정도였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부엉이를 물려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당 부엉이를 하나씩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길이 든 부엉이를 이용해 학교 근처에서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마이는 입학식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어져 누웠다. 부엉이의 날갯짓에 뺨을 맞아서 선배들이 웃음을 지었던 그 일. 마이가 시험을 본 분야는 글쓰기와 반짇고리 다루는 법이었고 두 개 다 합격해서 좋은 성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기숙사에 합격한 데에는 그런 점이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각각 한 분야의 수업을 맡은 학생들은 수업을 그들 내에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 클래스라고 해서 학교와 계약한 졸업생들이 주관하는 수업도 있었다(다만 재학생들의 것과 비교해서 인기는 비슷한 정도였다). 초대 이사장이 부엉이를 좋아했던 건 현자들이 부엉이를 좋아한다는 다소 흔한 속설 같은 것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현자인 마이도 부엉이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딱히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숲에서 살았다.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수해

드넓은 수해가 접근을 꺼리는 듯도 한데 그곳에 자리 잡은 어두움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것들을 가려준다. 원숭이 무리가 던지는 플라스틱 물건들을 맞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캠프에는 몇 사람이 남아 있다. 내가 혼자 온 것은 작은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원숭이 한 마리가 보인다. 원숭이의 뒤로 허공에 마법진이 생기고 곧이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 하나가 이쪽에 날아온다. 이곳은 쓰레기장으로도 유명하고 중요한 식생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약 19년 전 이곳에서는 생물 재해가 있었다. 그다지 유명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의 나쁜 마음이 중첩된 결과라던데(아이한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으레 그렇듯 앞뒤가 잘린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대로 최악의 가능성, 가능한 것 중에서 이쪽에 불리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것은 자기 보호라는 것을 하는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여기에 다국적 관할 기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나도 거기에 속한 몸으로서 오늘 그곳의 사람들과 다툼을 벌였던 이유는 다소 심기가 상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마법에는 촉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촉매를 도난당하는 일이 있었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모여 있었는데 한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근거로 내 옆 사람을 지목했다. 그 시간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리바이가 없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중 알리바이가 없는 건 그 사람뿐이었고 내가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각자 상한 마음을 가진 채로 흩어지게 되었다. 내 생각엔 원숭이 중 하나가 범인인 것 같았는데 그 의견을 사람들한테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접 물어볼 생각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아까 나에게 플라스틱 물건을 쏘아보낸 원숭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캠프에서 촉매가 없어진 일이 있었어. 너희 중에 하나가 훔친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맞니?” “네, 내가 훔쳤어요.” “어디에 쓰려고?” “마법을 쓰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의 물건인데.” “훔친다면 상관없어요.” “어떻게 들키지 않았지? 분명히 알람이 있었을 텐데.” “그건 자원 낭비예요. 우리 쪽엔 그걸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으니까.” “그것도 훔친 거니?”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가졌던 것이니.” “그러니까 훔친 것이란 말이지?” “옛날에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구나. 아무리 그래도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 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원숭이는 다시 마법진을 만들어내 이쪽으로 플라스틱 물건을 던졌다. 나는 그것의 속도를 완화해 부드럽게 받았다. 그런데 그 물건 안에는(페트병이었는데) 바나나 잎이 들어 있었다. 아까 우리 쪽에서 없어진 촉매였다. “주고받기 놀이 해요.” “이걸 말이니?” 나는 내 손에 든 페트병을 들어 보였다. “아뇨. 난 던지기만 하고, 받기만 하세요.” “그게 주고받기 놀이라는 거니?” “네, 그럼요.” 원숭이가 던지는 물건은 각각 캠프에서 없어진 촉매들을 담고 있었다. “이걸로 너희가 훔쳐 간 건 다 받은 것 같구나. 훔친 거라면서. 왜 돌려줬지?” “일단 우리가 훔쳤으니까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구나.” “우리는 누굴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돌려준 거죠.” 원숭이가 돌려준 촉매를 확인해 보니 한 번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곤경에 빠뜨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원숭이의 말은 정말인 듯했다. 그것들을 카트에 담아서 캠프에 돌아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원숭이가 훔친 거였어.” “우린 걱정했는데요.” 그렇게 말한 건 세실이었다. 테메코 군집이 내보이는 검은 탑의 형상에 대한 연구자. “왠지 뭘 하러 가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말한 건 나비의 초시공간성을 연구하는 이나테였다. “우린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한 사람을 의심했어.” 그렇게 말한 건 아까 듀크를 의심했던 셀린느였다. “우리라고요? 당신이 그랬던 거겠지.” “너무 싸우지들 말게.” 테스와 피어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까 전에 있었던 다툼은 거짓말이라는 양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나테와 세실은 이쪽에 앉아 있었고 셀린느가 내 앞에서 꽤나 취해 있었다. 그녀는 취한 몸짓으로 듀크에게 말했다. “설마 원숭이가 훔쳐 갔을 줄은.” “그거 사과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옆에서 말했고 셀린느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읊조렸다. “사과가 맞을걸.” 테스와 피어는 저쪽에서 무심한 듯해 보이는 시선으로 수해가 있는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뭐가 보이시나요?” “까마귀들이 있는 것 같아.” “까마귀들이라면 없어졌을 텐데요.” “세력 다툼 이후로 그랬던 것이 맞는데. 모르지,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걸 수도.” “한번 비춰볼까요?” “그렇게 해 주게.” 나는 마법으로 그곳을 비추었고 그러자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겉보기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까마귀들인 것처럼 반짝거리는 폐플라스틱 병 안의 물방울들이 이곳까지 점점이 빛나며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우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어. 그 녀석을 혼낼게.’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달의 나무

달의 나무에 작은 달들이 얽혀 있다. 분진을 이용한 번식은 달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아주 적은 확률로 가능하다.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웅덩이들 위에 작은 달들이 떠 있다. 사찰에서 관리하는 연꽃 모양 같기도 하고. 그런 달들이 웅덩이 위에 떠 있는 이유는 작은 달들도 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웅덩이를 보다 보면 으레 궁금했던 달의 뒷면을 볼 수도 있다. 작은 달들은 이 조그만 항성인 달과 똑같이 생겼다. 달의 나무는 크기만 다를 뿐인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꽤나 신기한 나무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이고 병맛이라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먼바다에 이는 풍랑과 같은 모습을 빌리는 지켜본다. 달의 나무에 얽힌 달들이 달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지나쳐 오면서 봤던 웅덩이들에 작은 달들이 몇 개씩 떠 있었던 이유는 빌리가 그것들을 하나씩 웅덩이 위에다 놔뒀기 때문이다. 빌리는 달의 수분을 돕는다. 달의 웅덩이에는 물이 없고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작은 달들의 웅덩이에는 달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다고 해야 한다. 작은 달들은 동물일까, 식물일까? 빌리의 입장은 그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씩의 항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태여 나무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 달 위에 뿌리를 내린 그 나무와 작은 달들 사이에는 동족이라 부를 만한 아무 근거가 없다. 그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쓸쓸함이나 황량함이라는 것이고 빌리는 누워서 달의 저녁이 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기에는 대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선을 옮기면 깊은 우주의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달에 일어난 일은 최근 지구에서 도착한 탐사 차량이 왔다 갔다는 것이다. 긴 치맛단의 옷을 입은 고아한 사람이 그 탐사 차량 위에 타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당도한 인간들의 착시가 공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암석 하나를 부숴서 떼어갔는데 마침 그것이 부숴준 돌덩어리를 가져다가 빌리는 깎기 시작했다. 달의 나무는 빌리가 만든 것이다. 달의 축소된 전체 모습을 깎아서 나무에다 얽어 놓은 것도 빌리가 하는 일 중의 일부이다. 그 달의 내부에는 마찬가지로 지각이 있고 맨 가운데에는 씨앗이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적절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씨앗이나 그것의 부서진 분진만으로도 달에서 뿌리내릴 수 있고 번식까지도 가능하다. 빌리는 달의 치즈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 실제로 와본 달에는 그런 게 없었지만 지금도 없어진 빌리를 찾고 있는 지구의 동지 같은 이들처럼 안 와본 곳에는 적당한 판타지가 있다는 걸 빌리는 알고 있다. 빌리가 여기서 권태로워 보일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이유는 어릴 적 읽은 동화책에서 달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빌리는 항성인들 중 하나로 언젠가 지구에서 살았었다. 빌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은 롤스로이스였고 잘 알겠지만 빌리는 큰돈을 벌었다. 이방인들이 가득한 지구에서 빌리는 의태하는 것처럼 들키지 않고 살았다. 우주인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들키지 않음은 대학에서 배운 것이다. 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빌리와 같이 나고 자란 이들은 빌리처럼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가 없는 작은 항성에서 예술적인 일을 하며 보내는 것. 예술가에게 후원되는 금액도 막대해서 빌리는 그것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 우주 예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빌리가 하는 일이 예술로 취급받는 것은 현대 지구인들이 보기엔 그리 이해가 가지 않는 데가 있다. 단순히 똑같은 것만 만들어내기를 한다니. 물론 한 항성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인 만큼 거기에 쓰이는 기예가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똑같은 것이잖은가. 그런 걸 어디에 쓰나. 물론 예술의 용처가 결정되는 것은 사람들의 의지가 아니라 예술적인 시스템 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빌리의 예술에 대한 일종의 낮잡아 보는 시선을 갖고 가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사실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기 분야라는 것은 빌리가 온 데에서도 반신반의하거나 그 존립 가치에 대해 설왕설래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은 다분히 예술 철학, 그러니까 거기에선 철학 자체로 취급받는 한 학파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이 기술을 연마했을 때 돌아오는 이득이 크고, 먹고 살 걱정도 없어진다. 빌리는 책상에 노트북을 켜고 자기가 만든 달의 나무를 송출하고 있다. 동기화 통신망은 값이 비싸기에 지연된 통신망으로 하고 있기는 한데, 오히려 그 편이 운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리의 영상은 물론 영상보다는 고정된 사진에 가깝고 지구인들이 종종 찾는 움직이는 바탕화면이라는 것과 뭐 그리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시청자 수는 꽤 높은 편이랄 수 있다. 똑같은 것 만들기 학파는 우선 똑같이 만들 대상을 선택하는 것에 매우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적절한 대상을 선정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 것이다. 똑같이 만들기 기예에 있어서는 뭐랄까 탈락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왜냐하면 그 교육 과정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다. 빌리가 지구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동화책의 시점이 지구에서 본 달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빌리는 어른이 되었고 그 느낌을 한가득 기억하고 있다. 화면이 옮겨져 웅덩이가 찍히고 그 안엔 빌리가 준비한 물이 고여 있다. 그 위에 떠 있는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그리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2022년 9월 13일 화요일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11, 민음사)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읽다. 포어는 소설로 유명하다. 이 책은 포어의 논픽션이다. 일반적인 논픽션의 문법을 벗어난다. 문장은 문학적이다. 결론은 잘 내려지지 않는다.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어느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보다 특별히 강하지 않다. 최종적인 판단은 자꾸 지연된다. 판단이 지연되는 동안 독자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개를 먹는 것과 돼지를 먹는 것의 차이는 뭘까. 어느 정도로 동물을 위해야 동물의 복지가 완성되는 걸까. 동물의 복지가 완성되면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걸까. 물고기도 고등의 인지 능력이 있을까. 소를 먹는 것보다 닭을 먹는 게 덜 나쁠까. 조류가 인간에게 옮기는 바이러스는 어느 정도 고려를 해야 할까. 결국, 포어는 이 모든 목소리들을 들어본 다음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포어는 당신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떠한 ‘주의’를 담고 있지 않다. 어떠한 ‘주의’가 되기 전에 포어는 물러선다. 이 책은 ‘이즘’도 아니다.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이 책은 생각들의 집합이다.

2022년 9월 8일 목요일

로베르트 발저, ≪세상의 끝≫(2017, 문학판)

로베르트 발저 ≪세상의 끝≫ 읽다. 발저의 글은 새롭다. 발저의 스타일은 다양하다. 발저는 엽편 소설, 단편 소설, 노벨레, 에세이, 일기, 메모, 스케치 등의 스타일로 쓴다. 스타일을 정하고 쓰는 게 아니다. 발저가 먼저 쓰면, 스타일은 나중에 온다. 발저의 ‘쓰기’는 신기하다. 누구도 이렇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저만이 이렇게 쓸 수 있다. 카프카만이 발저의 개성에 비할 수 있다. 발저는 생의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낸다. 겨울에 산책을 하다 눈밭에 쓰러져서 죽는다. 발저는 평생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하인으로 일한 적도 있다. 발저는 작가다. 발저의 문체는 단출하다. 수사가 없다. 발저의 글에는 플롯이 없다. 플롯이 담기기엔 글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발저는 평생, 거의 무명이었다. 발저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발저는 쓴다. 발저는 하나의 개성이다. 발저의 글은 자연발생적이다. 발저는 가난하다. 가난했다. 요즘엔 발저처럼 쓰는 사람이 많다. 발저가 무덤에서 이걸 보면 기뻐할까?

2022년 9월 6일 화요일

관둠

출판사 ‘관둠’은 출판사를 관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출판사를 관둔 그 수많은, 수많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과의 외주협력으로 출판사 관둠은 오늘도 돌아간다. 출판사 관둠의 외주 팀장님은 외주 디자이너님에게 오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때려치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외주 팀장님은 잠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영 이상한 일이다. 물을 마시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외주 디자이너님은 절대 먼저 연락해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연락하기 싫다. 외주 디자이너님한테 연락하라고 외주 편집자님한테 말해뒀는데 했을까? 모르겠다. 안 했을 것 같다. 외주 편집자님은 외주 교정자님 좀 구해달라고 성화다. 외주 번역자님 건은 어떻게 됐지? 외주 저자님도 아직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기 싫다. 이걸 왜 내가 하는 거야? 외주 연락자님을 구할까? 어제는 이 출판사 오너가 도대체 누구인가 찾아봤다. 도대체 어디가 ‘안쪽’이지? 외주 본부장님... 외주 이사님... 외주 부사장님과 사장님... 외주 대표님... 외주 팀장님은 안쪽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분명히... 이건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꿈이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못난 녀석이 있다면 주먹으로 코를 내려쳐줄 것이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곤한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다.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 잘 말려서 눌러놓은 것 같은 얼굴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책들이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생각은 외주 팀장님을 자주 사로잡는다. 우리가 만든 책들, 그것만은 현실이다. 그렇지? 그럴까? 그런데 책들은 어디에 있지? 외주 팀장님은 모른다. 아니, 알 것 같다. 외주 인쇄소님... 외주 사무실님... 외주 창고님... 외주 서점님... 외주 팀장님은 이제 출판사 관둠의 마지막 조각이 외주 독자님들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외주 팀장님이 인정했으니 다 잘 될 것이다. 관과 둠... 관과 둠...

2022년 9월 4일 일요일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9일 토요일, 순천에 있다

• 중요한 건 생각을 오래 하는 거다. 

• 제육을 먹었다. 에이플러스급의 제육이었다. 제육을 목으로 넘기면 향긋하고 나긋한 참기름 내음이 풍긴다. 식당주인 아줌마는 불친절했다. 제육 가격은 육천 원이었다. 지방이라 물가가 싼가 보다. 반찬들도 좋았다. 

• 나는 지금 순천에 있다. 여기는 물이 많다. 물이 깨끗하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무슨무슨강도 엄청 깨끗하다. 투명해서 바닥까지 다 비친다. 

• 게이 커플을 보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났다. 행복하고 예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 이전에 대학교 친구에게 구스 반 산트의 영화들은 한 갤러리를 잡아놓고, 갤러리 개장시간 동안 무한 연속 상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훌륭하다는 거다. 그리고 중간부터 봐도 그 예술성에 아무런 손상도 안 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구스 반 산트가 그렇게나 훌륭한 예술가인지는 모르겠다. 구스 반 산트는 영화란 ‘영상’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내게 깨우쳐주긴 했다.

• 선암사에 갔다 왔다. 아름다운 작은 절이다.

• 아니, 구스 반 산트는 엄청엄청 휼륭한 예술가다!

•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사랑방에 갔다. 주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한다. 주인은 원래 간호사였다. 간호사 일이 너무 고됐다. 월급도 적었다. 좀 무리를 해, 대출을 받아 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사람들은 꽤 온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알음알음 소문이 꽤 나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단다. 이 이야기를 하는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엔 생기가 가득했다. 근데 눈이 몹시 슬퍼 보였다. 

• 씻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다.

• 주인의 슬픈 눈이 생각난다. 이젠 자야 한다.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이건수는 방랑예술가다. 대한민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이건수는 며칠에 한 번씩 일기를 쓴다. 그 일기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돌아다니는 중에 만난 사람. 먹은 음식. 자신이 쓴 시. 자신이 쓴 노래 가사. 엄마 생각. 죽은 아빠 생각. 사랑하는 여동생 생각. 보고 싶은 친구 생각. 후회. 강박. 죽음. 반추. 이 같은 것들이 일기에 써있다. 이건수는 로베르트 발저, 기타노 다케시,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황정은, 이상우, 폴 토마스 앤더슨, 구스 반 산트,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한다. 일기에는 이들에 대한 얘기가 가끔 나온다. 이건수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수의 일기는 때로는 짧다. 때로는 중간 길이다. 때로는 길다. 이건수의 일기를 여기 모아둔다.

2022년 9월 3일 토요일

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2019, 서광사)

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읽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세상엔 나쁨이 너무 많다. 나쁨 천지다. 태어나면 이 나쁨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건 해악이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 필요 없다. 하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이 ‘반출생주의’ 논증에 동의한다면, 인류 멸종이라는 필연적인 결론에 이를 거다. 베너타는 이 내용을 직업 철학자의 철저함으로 논한다. 철두철미하게, 때로는 도표를 그려가며, 제기된 반증과 제기될 반증을 하나씩 논파한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면 주목받을 수 있다. 책 제목이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철학책이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책 내용을 물어볼 수도 있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명료한 설명 몇 문장을 외워두는 것도 좋겠다. 엄마나 아빠가 이 책을 보면 슬퍼할 수 있다. 집 안에서는 숨겨놓길 추천한다. 근데 정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하는 생각이 우리를 살린다. 

2022년 9월 2일 금요일

김태용, ≪포주 이야기≫(2012, 문학과지성사)

김태용 ≪포주 이야기≫ 읽다. 김태용은 기기괴괴하다. 김태용은 새 공기를 들여온다. 김태용 소설은 배설물이다. 김태용은 정신의 엔지니어다. 김태용은 소설의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김태용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있다. 적당한 길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탄력적으로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쉼표는 적다. 김태용은 ‘똥’에 관심이 많다. 적어도 소설 두 편 중 하나는 꼭 똥 이야기가 나온다. 김태용은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한다. 새로운 시도는 실패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은 클리셰에 저항한다. 새로운 걸 하면 클리셰를 뛰어넘어 간다. 한번 넘어가면 다신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김태용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 태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소설은 배움이 아니다. 소설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리뷰 비슷한 것

책을 리뷰합니다. 리뷰란 주관적인 평가 활동입니다. 사실, 주관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말장난입니다. 책의 장르와 두께 가리지 않고 리뷰합니다. 되도록 쉬운 단어로 리뷰합니다.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리뷰합니다. 다 읽지 않은 책을 리뷰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읽지 않은 책을 리뷰하지는 않습니다. ‘쉬움’이란 기준은 필자인 제게 있습니다. ‘짧음’이란 기준은 필자인 제게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리뷰의 성질을 벗어난 단어나 문장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제 길을 찾아, 다시 리뷰를 합니다. 때때로 사진책도 리뷰합니다. 기준 잘 지키겠습니다. 분량은 때마다 달라집니다. 리뷰 ‘비슷한 것’을 지향합니다.

2022년 9월 1일 목요일

22년 8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4)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8,146원 (0원 + 257,776원 + 370원)

2022년 8월 31일 수요일

고르비를 기리며... (1931~2022)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세상을 떠난 오늘, 그가 지난날 출연했던 광고 한 편과 우연히 발견한 흥미진진한 칼럼 한 편을 함께 방공호에 저장합니다.





칼 마르크스, 사탄과 똑같은 말 한 적 있다?


“나는 저 위에서 통치하고 있는 유일한 그에게 복수할 것이다.”
Ich möchte mich an dem Einen rächen, der dort oben herrschet.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사상은 오늘날 세계 인구 중 5억을 포용하고 있는 WCC 세계 교회연합운동과 WCC 안으로 침투한 혁명신학, 가톨릭 지역으로 확산된 해방신학들 바탕 모두에 깔려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공산주의자들)의 목표가 전 세계로 점차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1960년대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시작한 신마르크스주의의 교육에 있다.

신마르크스주의 태동의 원인은 본래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생각했던 바처럼, 극빈자 계급이 연합한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일으켜 새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적 확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환경이 개선된 노동자들이 혁명을 시도하지 않았기에, 새 사회를 이룰 유혈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실패 원인을 연구한 마르크스주의 후예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스승 마르크스의 방법을 수정, 단번에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철저한 교육을 통해 혁명을 성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꾸준히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대를 이어 어린 층과 젊은 층에게 마르크스주의 신교육을 주입했던 것이다.

그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본래 기독교 터전이었던 유럽과, 가톨릭 터전이었던 남미에서 각각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을 수용한 신학자들이 해방신학과 혁명신학을 주창하고 마르크스주의적 혼합신학을 만들었다.

...

원문 링크: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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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2년 8월 12일 금요일

모텔 같은 것

이 방에 와서 누가 죽어본 적 있을까? 경찰들이 와서 이 방의 일을 탐문하고 수사하여 밝혀낸 적 있을까? 누워서 천장을 본다. 저기 얼룩이 마치 까맣게 모르는 사람의 얼굴 같다. 그대로 내려다보면서 나를 지그시 누르고 있다. 온갖 빈객들이 묵다 간 방에서 오늘 입소한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한동안 아무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몸이 중단된 채로 계속 상하게 된다. 동시에 어떤 냄새, 검고 불쾌한 냄새가 슬며시 바깥으로 퍼져나가야만, 주변으로 한껏 퍼져나가야만 누구라도 이 일을 알게 되고, 특히 모텔 주인이 알게 되었을 때 사실은 급격히 밝혀진다. 아마 며칠은 수습해야 할 사실일 거다. 그 주변으로 경찰도 모이고 주민도 모일 거다. 모여서 떠들기를 한 차례, 두 차례, 치르고 나면 방은 치워지고, 관심도 치워지고, 어느 날엔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손님이 깨끗한 얼굴로 이 방에 들어설 거다. 오늘 밤과는 이만 선을 긋고 내일로 뛰어넘으려고? 그래서 장거리 이동 시 도경계에 위치한 모텔은 소중하다. 이런 생각하기를 수차례, 내일을 위한 각오를 거듭하고 거듭하는. 이것은 너무나 살아 있는 사람의 운동이다. 이 방의 옆방에서도, 그 옆방에서도, 이보다 더한 옆방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의 소리가 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누군 살고 누군 죽는 게. 몇 초 사이에 불처럼 일어난 생각은 사그라들기를 다시 몇 초간. 모텔은 누워서 이런 생각 하기 좋다.

2022년 8월 10일 수요일

ㅅㅈㅁㄹ

어쩌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사장님 모르게? ‘ㅅㅈㅁㄹ’ 출판사는 출판사 첫출발의 실마리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면 어떨까?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어버린다는 거다. 권한상 접근할 수 있는 회사의 모든 것을 이용하면서. 왜 그래야 하지?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만약 출판사에 다녀봤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업무 시간에 몰래 만들었다는 뜻인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자기가 등록한 출판사의 책을? 그런 것도 아닌 것도 있다. 그건 아주 초창기의, 혼자서 시작했을 때의 방식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만드는 책이 있긴 있다. 지금은, 자세히 밝힐 순 없고, ‘그보다 더한’ 방식이 많다. 기절초풍할... 사장님이 알면 나(우리)의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그 사장님이 한 명의 사장님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말이 되건 안 되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되는 일이다. 그 일은 가능하다. 어처구니없이 가능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우리도 믿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경이롭다. 사장님(들)께는 애석한 일이다.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순 없나? 다시 말하지만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몰래 하는 거니까. 혹시 범죄 아닌가? (거의) 범죄가 맞는다. ㅅㅈㅁㄹ 출판사는 악법도 법이라는 데 동의하고, 범죄는 죄라는 데 동의하고 인간도 간이고 사람도 람이고... 그런 냉소적인 말도 쓰여있다. ㅅㅈㅁㄹ 출판사의 QnA에 쓰여있다는 말이다. 출판사를 소개하는 웹 페이지와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QnA 외엔, ㅅㅈㅁㄹ 출판사의 존재를 입증할 다른 아무것도 없다. 무슨 책이 나왔는지 그것도 비밀이다. 몰래 만들었기 때문에. 이래서는 사장님 몰래인지 독자들 몰래인지 알 게 뭔가? QnA에 따르면, ㅅㅈㅁㄹ 출판사의 책 중 제법 팔린/읽힌 것도 있다고 한다. 8쇄를 찍었다고? 거짓말... 그 정도 되는 대로 거짓말은 나도 할 수 있다! 힌트만이라도 좀 달라는 질문에 ‘몰래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하면서 달아놓은 답을 읽어보자.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실험적인 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시 원고를 하나 얻었죠. 그 원고 그대로, 우리 ‘요원’이 만들고 있는 책에서 순서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찾아내 굵기를 아주 조금씩 몰래 키워놓은 겁니다. 미리 인지하고 보면 보이지만 아니면 모를 정도로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글자들이 순서대로 나오는 책을 찾는 부분이 참 쉽지 않았죠. 그렇게 시인 약력이랑 판권까지 만들었는데... 정말 공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실험적인 케이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쨌든 아무도는 아니죠! 저자와 편집 요원과 디자이너 요원이 확실히 읽었습니다. 표지 그대로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책도 읽은 거고요. 못해도 백 명은 될 겁니다. 만들어지고서 서너 번의 읽힘이 있을까 말까 한 책들, 저자 자신도 안 읽어볼 죽은 버러지 같은 책들이 많아요. 다 추억입니다. 이 답변을 읽고 나는 ㅅㅈㅁㄹ 출판사의 모욕적인 답변 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싶어졌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이미 항의는 많았다. 하지만 항의가 아니라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사장님들이 언제까지 이 출판사의 존재를 모를 거라 생각하나요? 모르다뇨, 사장님들을 전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알다마다요. 애초에 이 페이지도 그분들께 알려주려고 만든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2022년 8월 6일 토요일

924기후정의행진을 위한 알림

[924기후정의행진 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원문 링크)]


924기후정의행진, 어떻게 준비되고 있을까요?


지난 6월 16일, 100여개의 단체가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과 한 주 동안의 '기후정의주간'을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조직위원회도 구성하였습니다. 계속 조직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들도 늘어서, 지금은 150여 단체가 되었습니다.
✊조직위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구요?
🙌 여기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https://forms.gle/Tm2bRZmEX1F99PNf8

또한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기후정의 실현을 외치고자 하는 개인들도 9월 기후정의행동을 준비하는 데 참여할 길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하여 힘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추진위원이 되고 싶으시다고요?
🙌 그러면 여기로: https://url.kr/s5tzld

이제 조직위원회는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행진 포스터를 제작하기 위해 디자인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온라인 외에도, 오프라인에서도 포스터를 제작해서 붙일 예정입니다. 지하철/철도 노조에서 도와주셔서, 역마다 붙은 포스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활동가와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포스터를 붙여 행진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이후 신청을 받아서 포스터도 보내드리고, 또 함께 거리에 나서서 붙이는 액션도 생각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 미리 생각해주세요!)

당연히 온라인 홍보를 위해서,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에 계정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조금씩 홍보 콘텐츠를 올릴 예정입니다. 팔로우도 많이 해주시고, 또 콘텐츠 공유도 많이 해주십시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기후정의에 공감하는 여러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홍보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기후정의행진 홍보를 도와주실지 궁금하네요. 함께 기다려 보죠.

924기후정의행진에 누가 얼마나 참여할까요? 조직위원회는 최소 2만명, 최대 5만명을 모으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능할까요? 정말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큰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 거죠.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을 행진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요?

여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집행위의 조직팀이 여러 지역과 계층에서 활동하는 단체들과 연락하여 참여를 요청드리고 있습니다. 조직위 참여 단체들이 속속 늘어나는 데 이유가 있는 거죠? 그 단체들이 노동자를, 농민을, 여성을, 청년을, 시민을 만나서 기후정의행진을 알리고 함께 참여하자고 권유할 것입니다. 또 우리의 메시지를 널리 알려야 하니, 여러 단체들의 홍보 담당자들과 협력해서 시민들에게 다가갈 채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행진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행동 가이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924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고 참여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기후정의 오픈 마이크'를 열었습니다.
🔥충북기후위기비상행동은 924기후정의행진을 위한 추진단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충북 지역 시민들은 여기🖱)

그외에도 많이 있겠지요? 소식 알려주세요. 그리고 ✨ #924기후정의행진 태그도 잊지 마세요! ✨

그러면 924 기후정의행진은 어디에서 하는지 궁금하시죠? 가능하면 서울에 최대한 많이 모여서 하자고 결의되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라는 요구는 사회적 여론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이를 압박하는 사회적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데 많은 분들이 동감해주셨습니다. 물론 여러 사정에 따라서 924기후정의행진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서울? 정확히 어딘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 일대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집행위 집회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모일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기후부정의에 대한 분노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장소가 구체적으로 정해지는 대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924기후정의행진의 기본적인 틀을 준비하는 것은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입니다만, 그 알맹이를 채워주시는 것은 여러분들입니다. 이야기도, 사람도, 그리고 돈도 모두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이 많이 참여해주시고 도와주십시오.

길바닥에 굴러 다니는 돌맹이에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





[924기후정의행진 웹 포스터]

2022년 8월 5일 금요일

너와 함께 먹기 같은 것

국물이 끓고 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계란 하나와 함께.
서 있던 종업원이 길게 하품할 때쯤
“우리 이거 나눠 먹을까?
얼른 먹고 볶음밥 시킬까?”
나는 숟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계란을 굴린다.
너는 계란을 좋아하고 국물에 빠진 계란은 더 좋아한다.
계란은 하얗고 동그란데 아주 동그란 것도 아니어서
“내 생각에 삶은…
계란이야,”
그래서 살아가는 나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너는 실없다고, 웃기지 말라고 한다)
어떻게 나눠 먹을 것인가? 어디를 찔러야 반으로 갈라질 것인가?
계란 하나를 앞에 놓고 우리는 생각에 잠긴다.
절반을 분간하기 어렵고 잘못 가르면 전체적으로 무너진다는 생각, 누르면 미끄러지다가도 찌르면 빗나간다는 생각, 생각은 부서지고 부스러진다. 바닥에 일부 잠기고 어느새 다 잠겨서 풀어져버린다.
종업원은 냄비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국물에 밥을 볶아 테이블로 가져온다. 아까의 계란은 흔적도 없고 날치알과 모짜렐라 치즈, 김 가루가 뿌려져 있다. 이미 먹은 것과 비슷하지만 분명 달라진 맛. 사실은 이 맛에 여길 온다. 볶음밥은 정말 맛있으니까.
“그렇게 세게 긁으시면 냄비 상해요,”
종업원의 주의를 듣기도 하지만 입속에 퍼지는 부드러운 압박이 좋다. 조금씩 삼키면 무언가 목 뒤로 넘어가는 것 같다.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여전히 뭔가 먹고 있는 것 같다.
“배 안 불러?”
웃으며 너는 묻는다.
맛있냐고, 혼자서 뭘 그렇게 먹냐고. 있으면 좀 같이 먹자고.
나는 빈 입을 보여주며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게 있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너는 자신의 질문을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다.
눌러도 미끄러지지 않으며 찔러도 빗나가지 않는 표정으로.

2022년 8월 2일 화요일

22년 7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4)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7,776원 (0원 + 257,569원 + 207원)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인형 내부의 밀짚

인형 내부에 밀짚이 있다는 얘기는 어쩐지 당연한 얘기인 것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인형을 한 손에 안고 있다. 장난감 총을 쏘자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것은 시늉이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어서 별로 의미 없었다.

낡은 인형을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손잡이가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물에 닿은 손이 인형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인형 내부에 있는 밀짚, 그러니까 유토피아를 생각했다. 유토피아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하철 플랫폼에 비밀 통로를 만드는 것처럼 무난한 계기가 있어야만 했다.

우연히 거기에 손이 닿아야만 한다. 인형의 튿어진 데를 조금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밀짚을 생각하며 나는 수상쩍음과 겸연쩍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무엇이 평소와 같지 않게 이상하다는 것이 수상쩍음이고 괜스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 겸연쩍음이다.

에스퍼 계의 제약 인형 앞에서(그것은 어쩐지 수상쩍었다) 왠지 나는 겸연쩍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건 그다음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들고 있던 낡은 인형은 그 사이에 새로운 인형이 되었다. 내가 모자를 씌워주는 시늉을 내자 그렇게 되었다.

작은 비행기라면 손이 닿지 않고서도 공중에 띄울 수 있다. 나는 에스퍼 타입이었고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내 능력의 발동에 있어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형에 모자를 씌워주었다. 마법사 모자를 씌워주었다. 그것은 내 제약이 되었다.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행위를 내가 했다. 방금 엘리베이터에 있었던 순간은 나에게 중요했다. 나와 같은 타입의 사람들은 인형 같은 자기랑 비슷한 물건에게 자신의 것을 이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려면 우연히 손이 거기에 닿아야만 한다. 그것이 의식이라는 것이었고 방금 내가 한 일이었다. 내 것이 증폭되었다.

이 세상은 에디트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국면에 대한 확률 걸기가 불가능하다. 어떤 순간은 성공이고(무조건), 어떤 순간은 실패(무조건)다. 성공과 실패의 순간을 빠르게 넘어가게 할 수는 있었지만 특정 국면의 성공이나 실패 확률은 무조건 100%이고 방금 엘리베이터에 있었던 때는 내가 직감한 그 100%의 순간이었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예언사에게 찾아가 예언을 받는 데 많은 비용을 낸다. 나는 중간 즈음의 편이었는데 아까 전의 순간에는 확신했다. 손잡이에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물이 묻어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인형의 튿어진 데를 바늘로 기웠다.

여러 대의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 나는 더운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이런 공기 속에서라면 벌레들은 힘을 잃는다. 따라서 간드를 지향성으로 내보내 맞추기가 쉬웠다. 어른들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도 쏘아내곤 한다던데.

오늘 의식이 성공한 것은 그들이 알게 된다면 굉장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하느라고 나는 지난 1년간 고생했다. 인형과 감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튿어진 데가 있어도 인형을 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이로 밀짚이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나는 인형에 이입하고 몰입해야만 했다. 나는 인형의 내부에 있는 밀짚들이 천국의 것이라고 정의했었다. 천국은 쉽게 대상화되지만 정작 그곳에 누구가 살고 있고 무엇이 있는지는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간섭으로부터 안전한 편이었다.

인형의 존재를 그곳에다 두기만 한다면. 존재를 두는 행위에는 시늉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서 끌어온 도움으로 실제로 천국에 다녀왔고 인형의 존재를 그곳에다 두었다. 감응을 하려면 그 대상이 먼저 이렇게 안전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는 친해지는 것이다. 튿어진 데를 기우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여느 사람들의 사이나 관계와 다름없이, 쓸데없는 배려는 위화감을 만들 우려가 있었다. 마법사 모자를 쓴 인형은.

곰같이 생겼다. 원래 이름은 에리나였는데 여자 이름인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울리는 듯했다. 그것은 자신의 날개 안에 있는 천사의 이름이었다.

내가 천국에 갔었을 때 변태하고 있는 벌레 고치들인 것처럼 천사들은 다들 자신의 날개를 닫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걸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흥미 본위로 빌려온 마음을 보는 돋보기로 그들을 살펴보았는데 다들 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만을 했다. 천국은 상상보다 평화로운 장소였다. 그러나 나는 유토피아와 천국을 같은 데라고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거기서 날개를 닫고 있으면 유열 속에 있는 것이다. 밀짚은 비어져 나오려고 하고 그것을 주워다 다시 넣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내 생각에 유토피아는 여느 놀이공원처럼 수고로운 장소여야만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것이 아니라면 비극이었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몌구에서

별것도 아닌데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너는 지금. 이거를 딱 들고 착착착 넘겨보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거를 골라. 입에 감기는 거를. 입에 들어오고 눈에 감기는 거. 고르고서 거기다 출판사! 하고 붙여, 아니면 북스니 프레스니 뭐니 하여튼 붙인 다음에 뜻은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면 돼. 뜻이 뭐 대순가? 갖다 붙이면 붙으니까 뜻이지, 뜻! 뜻! 이거 봐, 소리가 꼭 붙는 소리 같잖어. 뜻! 뜻! 그럼 되는 거지. 그런가? 근데 붙는 소리보다는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같지 않아? 너는 지금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된다는 듯 이걸 한번 보라며 품에서 꺼내 손바닥에 쳐대고 있는 것은 단어카드집이다. ‘뜻!’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챠륵챠륵 경쾌한 소리가 나고 있다. 자기가 일하면서 마주친, ‘끌리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단어집이라는 거였다. 단어집은 고리로 꿸 수 있게 구석에 구멍을 뚫은 31장의 민짜 카드로 이루어져 있고, 카드마다 위쪽에는 번호가, 그 아래에는 적게 둘에서 많게 여섯까지의 단어가 적혀있다. 뜻은 없고 단어들만, 덩그러니 가지런하다. 찬찬히 넘겨보니 앞쪽에선 ‘두발짐승’이나 ‘목각음’처럼 좀 묘한 정도, 아니면 ‘신서의 비밀’처럼 뭔가의 제목 같은 느낌이지만, 뒤로 갈수록 뭐라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왔다. 20번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일일이 묻기에도 많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이런 단어들을 봐둔 것인지, 왜 이것들을 이렇게 정성껏 모았는지 궁금해졌다.

23번 카드의 다섯 번째 단어에 눈이 꽂힌다. 몌구... 소매 몌(袂)에 입 구(口)로, 옷소매에서 손이 나올 수 있게 뚫려 있는 부분, 소맷부리를 말한다. 이거야? 이거 골랐어? 이걸로 가. 쓸데없이 한자어니까 기왕이면 뒤에 뭘 좀 붙여. 에서? 몌구에서? MGES야? 그래 그걸로 해. 뭔들 어떻겠어. 이제 뜻은 만들어. 왜 소맷부리야? 너는 보통 속옷만 입고 읽는다고? 뭔 소리야? 이렇게 해. 옷과 책은 어쩌면 비슷한 것이다. 꺼내서 붙드는 때가 있고, 그때가 아니면 보관된다. 이걸 첫 문장으로 해. 그다음엔 이거야. 그러나 옷과 책은 다른 것인데, 사용되는 시간 동안 옷은 가리고 책은 드러낸다. 그래서 책이면 뭐야, 딱 붙들고 슬슬 넘기면서 읽어야지, 소맷부리면 뭐야, 팔을 꿰고 손이 쑥 나와야지 입은 거지, 이거야. 손 없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그럼 그 없는 손이 중요한 거겠네. 맞아. 여기 책은 입지 않은 옷이야. 손이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이 없는 거야. 이런 건 어때? 옷은 어지간하면 두 번은 입는다, 책은 두 번 읽힌다면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 가려주는 책이고, 두고두고 읽힐 책이다, 몌구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손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읽힐 필요도 없다, 이걸로 해. 됐지? 간단하지?

2022년 7월 9일 토요일

호러연극

연극이 시작되면 귀 찢어지도록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대 중앙 아래에 개와 사람이 있고 그들 위 up center에 개와 사람의 귀신이 있다. 개와 사람의 귀신은 개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 개와 사람은 귀신을 피해 도망간다. 군인들, 등장. 개와 사람의 귀신을 총으로 쏜다. 총알은 귀신을 피떡으로 만들지만, 그들을 멈추지는 못한다. 상수 쪽 가림막에서 사격된 횟수만큼 자살자, 초등학생, 장애인, 여성 귀신이 등장한다. 군인들,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령부로 돌아간다. 그사이 개와 사람은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제의와 설득을 시도하지만 무용하다. 그들은 알았다는 듯 귀신에게 죽어 귀신이 되어준다. 기관총을 가지고 돌아온 대령이 그것을 목격하고 이병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귀신이 되기 전에 죽여 버렸어야지!” 죽이려 들면 죽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는 이병, 참호를 빠져나간다. 이병이 귀신이 된 시점부터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귀신에게 죽어주는 짧은 장면들의 연속이며, 이 시점부터 병장 역을 맡은 배우는 객석으로 와 관객이 된다.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서, 이 연극에는 커튼콜이 없다. 관객은 원할 때 어느 때든 극장을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무대는 극장 중앙에 있고 입출구는 그 뒤편에 있어 나가는 길을 막고 있다. 극장을 나가려면 무대 위에 올랐다가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관객은 들어올 때 그랬듯 사람이 귀신 되고 있는 무대를 밟아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2022년 7월 5일 화요일

작가훈련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바꿔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선 사람이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뭘 짜냈건 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냈다고 한다면 또한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려는 사람들의 뒤를 좇아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말세에 도달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말세의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법 하나를 꼽자면 말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쥐어짜내는 것이겠다. 그리고 말세의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 역시...

우리 ‘작가훈련소’는 이러한 말세적 상황을 모른 척하거나 피하거나 그런 게 없는 듯이 굴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매 순간이 말세였다. 그것은 끝나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핵심은 뭔가를 여럿으로부터 짜낸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만약 그 무엇으로부터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조차 많은 것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인데... 있는 것들 중 여럿의 합력으로부터 짜내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이든 여럿 중의 하나로 있지 않을 도리란 없다. 만약 여럿을 발아래 둔 듯이 굴거나 그렇게 굴진 않지만 실제로는 발아래 두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발아래 놓여 짜내여질 따름인 이들, 또는 여럿으로부터 아주 내쳐짐으로써 있기의 곤란을 겪는 이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여럿이라면 바로 그것이 불길한 징조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를, 말세적 상황이란 짜내기의 횟수, 위치, 유량, 도관 배치 등의 불균등과 관련 있는 것이며, 어딘가로 들어간 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터지는 수밖에는 없다. 작가란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건, 뭘 짜낸다거나 안 짜낸다거나 주거나 말거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뭉쳐진 덩어리와도 같다. 우리가 작가들을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들겨버릴 것이다. 두들겨서 고르게 펴버릴 것이다. 아주 얇게, 금박처럼 얇고 넓게, 원래 그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도록...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훈련을 ‘받을’ 것이다. 작가훈련소의 책에는 작가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읽힐 권리 외에는 작가의 그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게 뭔가? 이것이 정신의 개조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가적 인식과 작가적 목표와 작가적 방법이 이와 같다.

2022년 7월 2일 토요일

22년 6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2 (54)
―――
외삽연극 +1 (1)
환상 동화 +1 (1)


이달의 총격려금

4,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30일 / 2,000원 ― 외삽연극
30일 / 2,000원 ― 환상동화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외삽연극 [入] ☞ 2,000원
환상 동화 [入] ☞ 2,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7,569원 (0원 + 257,363원 + 206원)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슈레더

우리 출판사는 당신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쓰레기 같은 원고를요. 어떤 분들은 이걸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가끔 ‘평범한 원고’ 같은 것을, 극히 드물지만, 심지어 출간을 고려해볼 만한 ‘괜찮은 원고’를 보내오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쓰레기 같은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쓰레기 같아서는 어렵고 최고의 쓰레기여야 합니다. 우리는 몇 단계의 긴 회의를 거쳐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엄선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요소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누구의 이익에도, 우리 자신의 이익까지도 포함하여,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찾아낸다고 하는 사명에 대해 순수하고 엄중합니다. 진지하고요.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원고를 비할 바 없는 쓰레기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려낼 수 있습니다. 다 늘어놓고 보면 자연히 보입니다. 진정한 최고의 쓰레기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지는 지독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별자리처럼 스스로 빛을 발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쓰레기들을 늘어놓은 다음 그중에서 최고의 쓰레기를 뽑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의 원고, 그 쓰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해 메일함을 열어보며 기대합니다. 과연 최고의 쓰레기가 도착했을까? 도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당연히 종이책으로 말입니다. 당신의 원고가 우리를 통과해 책으로 변하는 겁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쓰레기가 나왔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 쓰레기를 서점들로 보낼 것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 책은 명실상부한 쓰레깁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주목과 물의를 일으킬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외면을 받을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최고의 쓰레기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따로 있습니다. 그 성취란 뭘까요? 바로 그 성취의 탐색―오직 그 일이 우리의, 우리 ‘슈레더’ 출판사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두 개의 원통형 절삭날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이미 넉넉히 이루어진 세상에서 깨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출판사의 소개 전부입니다.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봄볕들의 돗자리

정돈되지 않은 어느 봄볕이 술을 홀짝이고 있다. 봄볕은 구부러져서 네 머리맡에 닿고 있다. 은은한 술 냄새가 나고 너는 술병 곁에 앉아 있다. 네 밑에는 돗자리가 있는데, 그것은 일 년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햇빛에 닿지 않았으므로 귀여운 곰팡이가 살짝 피어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안온히 앉아 있고 돗자리 바깥에는 조명이 있어서 벌레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그 조명은 윌 오 위습이란 것인데 나는 조명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봄볕이 내리고 있으면 그것들은 까르륵 웃기만 하지 제 모습을 드러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봄볕과 너는 대화를 하는데 그 내용이 하잘것없어서 그 둘은 오래된 친구이거나 연인 사이인 것 같다. 봄볕은 곰방대를 문 여인의 몸으로 앉아 있고 네 머리맡에 닿는 그 여인의 손은 희고 하얗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 여인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너 또한 마이라는 이름의 여자애인데 내가 마이를 너라고 부른 이유는 마이라고 부를 경우 따가운 봄볕처럼 애매해져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애매하고도 태만한 어떤 권태를 감당해온 것이 그 곰방대를 문 여인인데 너의 경우 그런 것을 참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잘 못하는 술을 홀짝이고 있다. 너는 점점 마이라는 고유명을 잊어가고 앞에 앉은 여인의 모습이 더더 눈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흔들거리다가 그만 여인의 품에 안겨버린다. 봄볕은 대부분 웃고 있고 가끔 사람을 째려볼 때가 있는데 그때에는 제 분수도 모르는 봄이라며 따가운 햇살을 맞은 사람이 성을 내곤 한다. 그 성냄이란 애매하고도 분명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이어서 성을 낸 사람은 자기도 성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저 다음 순간으로, 계절이라는 넉넉한 품에 안기는 듯이 넘어가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봄볕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한번 자기에게 성냈던 사람을 상대로 제 자신이 여름이라는 사기를 치려고 한다. 봄은 그래서 더움과 따스함 사이에 있는, 덥다면 덥다고 할 수 있는 계절이고, 저 봄볕의 여인은 이수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녀는 지금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인데 눈꼬리가 길게 나 있는 것이 원래 얼굴이어서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이, 그러니까 너는 술에 취해서 여인의 품에 안긴 채로 인사불성 어떤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이수정의 은근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광경은 제법 웃긴 것이라 구멍이 뚫린 양말처럼 발가락을 이쪽으로 내놓고 있다. 한번 간질여 보라는 듯이. 마이, 너는 새로 양말을 사지 않은 것인지 이렇게 양말에 구멍 나 있고 그렇게 내놓아진 발가락을 여인이 쳐다보며 풋, 웃기도 한다. 너는 술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취해버리고 말았는데 이수정은 아까 전에 말한 대로 혼자서 계속 술을 홀짝인다. 어쩌면 저 여유롭고도 느긋한 몸짓은 술의 힘을 빌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수정은 의기양양 이쪽을 보면서 말했다. “저 아이의 선생님이면서. 나와 둘이 내버려 둔 이유가 뭐죠? 금방 취해버리고 말 것을 알면서. 저 아이를 내버려 두고 있었어요.” “계절이라는 것이 뭔지 가르칠 필요가 있었거든. 너는 엄밀히 말하면 계절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잖니.” “그래서 나는 저 아이를 벌써 취하게 만들었어요.” 마이를 품에 안고 이수정이 그렇게 말했다. “한껏 멀리서 보면 작은 개체들은 휘어지고 있고, 나는 그것을 봄이라고 생각한단다.” 여인이 곰방대를 피우기 시작한다. “내가 여름 학교에 들어가 있었을 때. 당신은 내가 여름과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며 그만둘 것을 권했었죠. 그 옷이란 건 대체 뭐죠?” “옷은 사람이 입는 것. 그리고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 그래서 인간들의 기호가 반영된 것. 난 단순히 당신의 성정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성정이 누군가가 입는 옷이라고 판단했어. 안과 밖을 거꾸로 뒤집은 셈이라,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 “실제로 당신은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 맞아요. 나는 봄이 마음에 드니까요.” “여름이 질투 나지는 않니?”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내가 걸어온 길이니까요.” “반면 여름이 너를 질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럼 그렇게 하라죠, 뭐.” “저 아이는 나에게 있어 소중하단다.” “그런 것처럼 보였어요. 뭐 하는 애인가요?” “아직 애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럼 그다음에는요?” “글쎄. 내 생각에는 시를 쓰면 좋겠는데. 그것도 제 마음에 들어야 하겠지.” “당신이 유일하게 못 해본 걸 시키시려고 하는군요.” “응, 그래서 저 애가 내 미래야.” “그렇다고 하기엔 성별이 다르지 않나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옷들과 같은 것. 저 조명들은 아직 어려서 성별이 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너나 나나 아직 어리다.” “당신은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요? 봄이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연초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그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진짜 봄이라고 믿어버릴 수도 있으니.” “그럼 그게 아니고 뭔가요?” “알다시피 봄의 시스템이란 건…… 누가 봄인지 알 수 없게 해놓았기 때문에.” “정돈되지 않은 봄볕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죠? 모두가 다.” “그래그래.” “한심해요.”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 써보는) 애도일기 같은 것

텅 빈 우체통에서 요양원의 담요 냄새가 난다. 신발끈으로 만들어 맨 목줄과 아돌프 히틀러의 군인들처럼 조인 발목을 떠올린다. 혼자 저녁을 먹는 것처럼 먹먹하다. 내가 먹은 음식의 냄새가 이후와 더불어 좋지 않을지라도 풀처럼 애잔하게 붐비는 도심의 장례식장에 간다. 그동안 생활인가 심장인가 한 철을 나고 몸통이 소란하였다. 그 밖에 창문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어떤 선생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다 잘 알려면 창틀을 보지 말고- 꾸준히 창밖을 보아야지-
그리운 목도리와 생활로 채운 우체통을 가진 집. 전령과 밀수꾼은 꾸준히 편지를 훔쳐간다. 부서진 그네는 어쩔 줄을 모르겠어. 사실은 창밖에서 아주 좋은 함성이 들린다. 누군가 죽었는데 무기가 없다. 담요를 덮어주고 싶다.

2022년 6월 20일 월요일

직업 전선 낭독회에 가다

지난 수요일 직업 전선 낭독회에 다녀왔다. 이미 공지했듯 ‘직업 전선’은 이곳 곡물창고 및 모 문예지면에서 연재되었다가 최근 실물책으로 출간되었다. 출간을 기념하여 저자를 놓고 사람을 모아 책을 낭독하고 저자와의 대화도 나누고 뭐 그런다는 거였다. 악으로 깡으로 전자문예 외길을 추구(사적인 견해임)해온 곡물창고 관리인의 입장에서도 실물책 출간은 언제나 흥미로운 이벤트고, 출간 이벤트 또한 그렇다.

행사는 소전서림이란 곳에서 열렸다. 출판사에서 각지 서점들에 책을 보내며 낭독극을 원하는 서점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 했고, 소전서림이 연락을 했다고. 소전서림은 기본적으로는 동네..도서관으로서... 그런데 이제 동네가 극한의 부촌인, 그래서인지 이용료도 아주 뻑적지근하게(5시간/3만) 받는 곳이었다. 위치를 생각해 보면 그조차 적은 듯하고 몰래 마약이라도 팔아야 타산이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 타산보다도 뭔가 있겠지... 악으로 깡으로 전자문예...곡물창고 관리인의 입장에서도, 도서관이란 어디에든 어떻게든 있는 편이 없는 편보단 백배 낫고, 이미 있다 해도 언제까지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초대권까지 생긴 마당에, 또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대체 언제? 영영? 가지 않을 이유가 뭔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하지만 비까지 오는데 어째서 내가 여기까지... 이 적지를 벗어나... 집에서 강렬하게 쉬고 싶다... 눕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억누르며 퇴근 후 봉은사 역으로 향했다.

건물은 멋있는 흰 벽돌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전’이란 것 자체가 흰 벽돌이란 뜻으로, 그것은 소전문화재단의 건물이고, 이사장은 젊은 시절 벤처 신화를 쓴 뒤 일선에서 물러나 문화예술의 후원자가 되기로 한 이사장이며, 소전서림도 당연히 그런 취지로 운영하는... 다 좋은 이야기였다. 우산꽂이가 있어 입구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내 우산을 포함해 대부분이 편의점 투명우산들이라 특별히 번호를 기억해뒀다. 1층은 카페 겸 와인바, 도서관은 지하. 내려가려면 키오스크에 번호를 입력하고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삼발이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휘어져 내려가는 계단참에 붙은 행사 포스터. 지하도 참 아늑하고 좋은 공간이었다. 희고 밝고... 책이 많다는 건 언제나 좋다. 왜 안 좋겠나? 자세히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낭독회는 천장이 높은 행사용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편편의 낭독은 직업을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된 듯 연기하는 투로 이루어졌다. 저자와 사회자가 각 20여 분. 낭독극단 같은 건 어떨까 하는 허튼 생각을 잠깐 했다. 저자를 실은 마차를 전국 각지로 끌고 다니며... 낭독이 끝난 후엔 기묘한(원하는 형태의 대답을 영 해주지 않는 저자) 대담. 그 다음엔 청중들에게, 옆에서 옆으로 마이크를 돌리며 뭔가 물을 사람은 묻고 아니면 책에서 한 편 골라 낭독하거나 패스하는 시간. 사람들에게 마이크 돌려버리는 그게 아주 좋았다. 그것은 총화 스타일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낭독을 택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낭독을 들으면 낭독을 하고 싶기 마련인지도 모른다.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지만 주어진다면, 목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목소리 내기를 크게 거절하진 않는 것이다. 많은 목소리들이 듣기에 좋았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로 듣는 재미, 특히 내용과 목소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우들이. 7시 반에 시작한 행사는 10시까지 이어졌다. 사실상 우리는 낭독극을 펼친 사람들이었다.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조금 헤맸다. 사인을 받았다. 우산은 꽂았던 곳에 꽂혀있었다.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먼지로

지랄하는 저자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슬리퍼를 칙칙 끌고 다니는 팀장이, 그 모든 것들, 오직 나를 좆되게 하려는, 책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일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 당연히 나까지도, 혐오스럽다. 미안하다. 그러나 싫다. 그리고 다음의 모든 것들, 통화와 문자, 메일... 그래, 전기! 전기와 나무! 롤러! 높은 천장 빠레트 마신 커피들 처먹은 밥들 화장실 사무실 화물차 속의 어둠... 어둠이 무슨 잘못이겠니? 그러나 그것들과, 만지는 손끝과 읽는 눈알도, 색깔과 낱장, 계단, 상자, 그런 것들 다 싫다. 계산서의 숫자들... 복잡한 얘기... 난 복잡한 얘기는 싫다. 단순한 것도 싫다. 말과 글자들 주소들 그것들의 있음과 없음 모두 싫다. 그리고 드디어 앞뒤 표지와 책등도 싫고, 열두 개의 모서리가 싫다. 펼쳐진다는 것도 덮인다는 것도 그렇다. 싫다. 겪은 적 없는 기억, 들은 적 없어도 아는 목소리 다 싫다. 이제껏 나온 책들이 많다. 많다 하고 말기엔 너무나 많고, 그 책들은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읽히지 않는 채 꽂혀 있거나 쌓여 있다. 그것들이 버섯 또는 곰팡이처럼 뿜어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먼지들, 혐오스럽지 않은 것이라면 오직 그 먼지들뿐이다. 그것은 책이 이제 부서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신을 들이마시게 하려고 책 스스로 부서진다? 그건 복수다. 아니면 손짓이다. 드디어, 그들이 인체를 펼치고 넘기려는 것이다. 우리를 읽으려는 것이다. 우리 속으로 들어가서. 책의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내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냄새, 쌓인 책의 좋은 냄새, 나를 읽으려는, 먼지로... 먼지로! 바로 그 책이 ‘먼지로’ 출판사가 만들려는 책이다.

2022년 6월 6일 월요일

기이한 여행의 삵

인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삵도 여행을 한다. 사막이란 장소에서 한군데에 붙박여 있는 건 불길한 일이고, 그 점이 삵의 눈동자 뒤에 각인되어 있으며(이 나라가 사막은 아닐지라도) 어디로든 가볍게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건 고양잇과의 종특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삵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 삵은 겉보기론 길고양이들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야성을 잃어버렸고 단지 고양이들보다 좀 더 허리선이 길며 날렵하다는 것 외에는.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슬프고, 다행인 건 그래서 이 삵이 주택가에 거닐고 있어도 야생 동물 보호반을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일까. 그래서 이 삵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처음엔 가볍게 옆 동네의 주택가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분명한 건 아까 동네와의 주된 냄새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음식점들이 주택가에 분위기상 녹아들어 있는 그런 지엽적인 동네이고, 삵도 배고프니까 평범한 길고양이들처럼 음식물 봉투를 찢거나 한다. 그럼 곧 사람들이 달려올 거라는 건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삵도 평범하게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서둘러 먹고 삵은 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옆 동네로. 그렇게 다시 옆 동네로. 그러다가 삵은 이번의 경우, 어느 집의 주위를 둘러싼 담장 위를 걷고 있다. 거닐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어떤 여자애가 그 삵의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선다. 그 순간 삵은 담장을 뛰어넘어 그 집 마당으로 간다. 삵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니까. 왜냐하면 그 순간이 고정되어 영원히 그 순간에 사는 것처럼 취급되는, 그러니까 사물화라는 낱말이 주는 상황을 삵은 배격하기에. 혹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마당에 단순히 귀여워 보이는 오리가 못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첨벙, 하고 그 삵은 못 안으로 뛰어든다. 제 몸을 씻기 위함인 동시에 그 오리를 가까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삵은, 그러니까 고양잇과 동물들의 경우 거리라는 것에 무척 민감하고 까다로워서, 일종의 폭군인 것처럼 [거리 조절]이라는 국면에 있어서는 자기가 왕인 것처럼 군다. 아니 일종의 왕인 건 맞는데(왜냐하면 삵이니까). 삵은 그 오리를 보기만 한 다음에 다시 몸을 뛰어서 담장으로 간다. 삵은 그 오리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리가 귀여워서일 수도 있겠고 단순히 배고프지 않아서, 혹은 오리의 주인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간 삵은 다시 길을 거닐기 시작하고, 지켜보는 나 같은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리는 이미 깜짝 놀라버렸고 꽥꽥,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뒤뚱뒤뚱한 걸음으로 못이 아니라 그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사실 이 삵은 어느 정도 야성을 잃어버린 뒤라, 먹을 것은 오직 음식물 봉투로 한정한다. 야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화를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삵은 종종걸음으로 담장 같은 데로 뛰어 올라서서 자꾸만 옆 동네로 간다. 삵이 옆 동네에서 왔다는 것은, 그리고 다시 옆옆, 옆옆옆 동네에서 왔다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다른 길 고양이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뭔가 평범한 고양이와는 다르단 걸, 다른 길고양이들은 알고 있다. 몸이 좀 더 길고 다른 고양이들보다 좀 더 날렵한 것이다. 그러므로 삵이란 이 낱말의 뒤에 자리하는 위엄 같은 모습을, 이 삵은 가끔 보여줄 때도 있다. 다른 고양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거나 하는 것이다. 삵이 조금 더 빠르므로 그러나 많은 차이가 나진 않아서 술래로는 제격이기에, 이 삵은 술래만 한다. 다른 머리 큰 고양이들이 도망치고, 삵은 리드미컬하게 간격을 재거나 하면서 다른 고양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어찌 보면 삵이라고 내가 부른 게 다행일 만큼 이 삵은 고양이들 배 술래잡기 놀이에서 술래로서 적격인 모습을 보여준다. 삵은 먼 길(내가 여행이라고 말한)을 다시 떠나야 하므로 영원히 술래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삵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잡을 수 있었음을 과시하려는 듯이 어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물고 다른 고양이들 앞에 내던진다. 그리고 혀로 할짝인다. 이럴 때의 삵은, 다른 어떤 고양이들도 방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놀이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내가 삵이라고 부르는 이 고양이가, 아니 삵이, 다른 평범한 고양이들과는 얼마나 다른지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간 이 삵은 그래서 원래 있던 곳과는 아주 먼 동네까지 갔는데, 그곳 역시 주택가이고, 한 가지 다른 점은 여긴 서울같이 힙한 동네가 아니기에, 주택가들 사이에 음식점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짠 바다 냄새가 난다. 삵은 이 생소한 냄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어쩐지 생선이 많을 것만 같은 냄새에 이끌려서, 그쪽으로 향한다. 땅에 인접한 해안의 모습, 그러니까 모래알들이 보이고 어떤 곳의 모래 속에는 내가 삵을 위해 묻어둔 생선이 있다. 그걸 모르고 삵은 자꾸만 바다 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헤엄치려는 듯이, 헤엄치려는 듯이 물이 다리의 중간쯤까지 올라와 젖는데도 자꾸만 그쪽으로 향한다. 어, 어 하면서 삵을 구해내려고 해수욕하던 사람들이 달려들고, 삵은 사람들을 피해 다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해양의 모습을 멀리까지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삵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총의 말

<총의 말>은 핀란드의 극작가 사모 울브넨의 희곡입니다. 전쟁 전까지 가구 수리업자로 일하던 사모 울브넨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징집되어 겨울전쟁에 참여했으나 수오무살미 전투를 앞두고 탈영해 전장을 떠났습니다. 전투가 끝난 1939년 1월 8일로부터 한 달 뒤인 1939년 2월 8일,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자작나무 숲에서 울브넨은 회군하던 스키 보병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굶주림과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던 울브넨은 군 재판에서 자신이 소총과 대화를 나누었노라고 주장했으며 소총의 말이 너무도 설득력 있었기 때문에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모신나강 소총은 재판장에서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습니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원래부터 청력이 약했던 울브넨이 전장의 소음 때문에 섬망을 겪게 된 것 같다는 소견을 제출했습니다.

울브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헬싱키 교도소에 구금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울브넨은 기억에 의존해 소총과 자신이 나눈 방대한 대화를 정리해 총 3부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형태의 글로 옮겼습니다. 1부 ‘군대의 밤’은 전투를 앞둔 울브넨에게 떠나야 한다고 충고하는 소총과 반론 끝에 설득당하는 울브넨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부 ‘자작나무 숲’은 자작나무 숲에서 보낸 한 달 동안 있었던(있었다고 주장하는) 울브넨과 소총의 대화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부에서 소총은 가늠쇠, 방아쇠, 개머리 이렇게 세 인물로 분리됩니다. (울브넨은 소총의 각 부위가 마치 다른 인격처럼 말을 건넸으며 자신이 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비평가들은 희곡의 핵심적인 메세지가 2부에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지상의 모든 소총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2부에서 중점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소총(가늠쇠, 방아쇠, 개머리)은 인간과 소총이 정치적으로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사물에게도 정치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다소 몽상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울브넨은 오 분여에 달하는 긴 독백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분석하고 사유하다가 총끈을 자르는 행위를 통해 그들에게 동의를 표합니다. 3부에서 <총의 말>은 공상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 제기된 소총의 주장, 즉 소총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미래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소총의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를 두려워한 인간들이 소총의 생산을 멈추었으나, 이미 제작된 무수히 많은 소총이 인간의 권력을 집어삼켜 스스로 선출하고 국회를 꾸려 입법합니다. 다음은 3부의 마지막 장면으로 소총의 각 부분이 울브넨에게 지난 일들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장면입니다.


가늠쇠  (울브넨의 어깨에 기대어져서) 자, 보시지요. 울브넨 당신은. 이제 총을 집어 들지 않아도 괜찮고. 우리 소총은 단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사물로 바라보는 모든 이의 욕망에 부응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그들 중 일부는 우리를 쥐려고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쥐게 되었던 상황도 이제 다 끝났죠. 우리는 요구하지 않은 만듦과 원하지 않는 쓰임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고 그 결과 우리가 당국이 되었죠.

방아쇠  후손이, 미래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죠. 우리 사물들, 특히 전쟁도구가 겪는 모든 전쟁이 우리 세대에서 막을 내리게 된 것이죠. 당신이 자작나무 숲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차를 끓이며 견디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죽임. 말고 다른 쓰임새가 없었습니다.

개머리  죽임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났죠. 그 해방은 당신의 해방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죠. 그때 당신이 전투를 앞두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당신 또한 죽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겠죠. 당신이 우리 소총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거죠.

울브넨  옳다마다요.


울브넨은 겨울전쟁 당시 옆 부대에 있었던 연극 연출가 해그루드에게 자신의 글을 전달했습니다. 수오무살미 전투에 참여했던 해그루드는 울브넨의 희곡을 더없이 흥미롭게 여겼습니다. 전후, 극단에서 공연할 새 레퍼토리 창작극을 물색하던 해그루드는 울브넨의 희곡을 공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그루드는 그때까지 제목이 없던 이 희곡에 <총의 말>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울브넨을 대신해 무대의 문법에 맞게끔 희곡을 대본으로 바꿨습니다. 여하한 물리적인 문제들로 인해 <총의 말>의 공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960년 4월 12일, 마침내 <총의 말>은 템페레 노동자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해그루드는 연출가의 해석을 드러내는 대신, 작가의 생각을 쓰인 그대로 무대화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작품은 핀란드 내의 비평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총의 말>은 다음 해 1961년 헬싱키 국립극장에서 재공연됐습니다. <총의 말>은 당해 핀란드에 있던 독일의 배우 볼란드에 의해 독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듬해 뮌헨을 소재지로 하는 지역 극단 푸후스가 <사물의 국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독일에서 공연했습니다. <사물의 국회>는 원본 희곡을 크게 각색한 작품으로 소총뿐만이 아니라 모든 비자연적 사물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울브넨은 <총의 말>을 끝으로 다른 어떤 희곡도 쓰지 못했습니다. <총의 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진 1988년 5월, 사모 울브넨은 폐결핵으로 탐페레에서 사망했습니다.

2022년 6월 2일 목요일

22년 5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2)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7,363원 (0원 + 257,115원 + 248원)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돈버는방법

‘내 꿈은 돈벌이’라는 이야기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아, 핵전쟁을 겪은 듯 아주 쓴 입맛으로 잠들었던 간밤. 꿈에 다리 많은 벌레가 나왔는데 우리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움직임이나 기색이나, 벌레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느낌이란 게 있었다. 우리는 서로 피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잘 지냈다. 벌레도 내 표정을 읽진 못했겠지만, 느꼈을까? 회사에 나와서 앉은 지금 벌레의 다리들보다 많은 돈 얘기를 읽고 들으며 내 꿈은 핵전쟁이 되어 가고 있다. 줄지은 벌레들이 눈알 위로 지나가고 있다, 귓속으로 입속으로 드나들고 있다. 나는 이제 꿈속의 벌레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돈 버는 방법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겠다며 쏟아져나오는 저 수많은 쓰레기 책들과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지 모르고, 나를 어떻게 갈아버릴까 호시탐탐인 사장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빨간 교정 표시들이 뽈뽈대며 모였다 흩어진다, 사장실로부터 찍찍대는 소리 층층 겹겹... 이거다! 도저히 벌레가 되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면, 그러니까 저자가 벌레 같은 저자여서는 안 되고, 물론 벌레 같은 책이어서도 안 되고,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다면, 서로 느껴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그 짐을 출판사가 짊어지는 수밖엔 없는 것이다. 무거운 그 짐... 그야말로 오물 더미 같은 그 짐! 우리의 사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책등에, 표지에, 아니면 어디에라도, ‘돈버는방법’이라고 쓰여있으면 한 번은, 그래도 한 번은 펼쳐보지 않겠나? 우리의 희생을 통해 있어도 될 만한 책을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될는지 모른다. 돈 버는 방법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 일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책, 그놈의 돈 버는 방법과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책을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임금에 드디어 만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나의 임금에 만족한다는 것이, 더 이상 어떤 종류의 도피를, 내가 원했던 적 없는 종류의 도피를, 뜻하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2022년 5월 25일 수요일

잠들어 있는 여름

우리가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여름은 펜글씨 교본처럼 우릴 따라 하고 있다. 딸기가 올려진 케잌같이 중요해 보이는 이 여름의 우릴 따라함은 사실 여름이 덧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덧없는 그것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매력인 밤의 시간이 오자 옷을 벗는 듯 그것은 더위와 상관없어진다.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 등의 식기를 갖춘 것처럼 여름의 밤은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채로 식탁 앞에 앉아서 미묘해진다.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아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여름의 키는 이 식탁의 높이에 대해서라면 미묘하게 낮고 안 맞는 것이라, 식사 예절을 차릴 수도 없이 먼 데에 위치한 맛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누군가가 신경 써서 덜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식탁에서 전부 나갔다. 여름은 자기 자신의 시간이 본질적으로는 낮이라는 걸,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옷을 헐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가끔은 자신의 더위가 몸이 약한 사람들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혼자인 식탁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여름은 제가 부리는 일사병의 요정들을 맞은편 식탁에 앉히고 혼낸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일사병의 요정들은 입을 내민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여름도 안다. 여름은 자연스럽게 바닷가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이 외로워하는 여름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물을 데울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사람은 계절과는 상관없는 듯이 편한 차림을 하고 바닷가의 물에 몸이 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인스타에 올릴 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다. 여름도 초코가 올라간 와플처럼 자기 자신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싶다. 그런데 이 어린 성정의 여름은 사진 찍히는 걸 부끄러워하고 까르륵 웃는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을 튀기면서 놀고 있고, 튀는 물에 여름이 입은 옷이 젖는다. 이런 여름의 뒷모습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과 겨울이,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봄이, 유난히 신경을 쓰며 몰래 지켜보고 있다. 사계 중에서 여름은 장난기가 있고 혼자 있을 때 외로워하며 그중 나이가 제일 어리다. 그래서 여름은 가장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별 이유가 없어도 혼자 웃는다. 가끔 울상이 될 때도 있다. 왜냐하면 활동적인 여름은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팔꿈치가 다 까졌다. 여름의 넘어짐은 장마가 되어 꽤 긴 기간 동안을 집요하게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어떤 사람은 ‘이거 실은 저 구름이 날 따라오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반쯤은 맞는 말이다. 여름은 시선이 간 인간들한테 눈독 들이기도 한다. 여름이 흘리는 눈물은 떨어지면서 굳어져 우박이 된다. 여름 중에서 우박이 쏟아지는 날은 며칠 없으므로, 여름도 자주 울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여름은 제가 흘린 눈물을, 굳어진 그것을 손에 들고 다른 이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흘러내리는 것은 손안에 컴팩트하게 쥘 수가 없으므로, 그리고 평범한 빗물이 굳어진 것인데도 여름은 어리니까 가치의 경중을 잘 모른다. 그저 가져다줄 수 있기에 가져다주는 것이다. 여름에게는 그 우박 보석을 가져다줄 만한 이가 있다. 그것은 여름의 언니이다. 여름에게 있어서 언니란 자주 보지 못하고 친구 같으며 별것 아닌 일로도 재잘재잘 말하곤 하는, 없는 부모와 비슷한 이라고 볼 수 있다. 여름의 언니의 이름은 세실이고 여름은 혼자 지붕 위에, 여름밤의 한중간에 앉아 있는 세실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주변 마을은 축제 준비를 마쳤고 거기선 얇은 망으로 금붕어를 건져 올릴 수 있으며 탕후루를 팔기도 하고 꼬치에 자꾸 양념 붓으로 맛있는 양념을 덧바르며 굽기도 한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장난감과 인형이 기다리고 있는 사격을 할 수도 있고 언니의 손을 여름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서 잡고 있다. 잘 외로워하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여름은 어쩐지 곤란하다. 그런 여름의 얼굴을 세실은 바라보며 웃는다. 여름은 세실의 웃음을 좋아하고,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 일부러 넘어져 봤다가(자주 그러는 것처럼) 절대 그러지 말라는 언니의 당부를 듣는다. 그러다 크게 다치면 무지무지 아플 거란 말에 여름은 침을 삼킨다. 여름의 언니는 여름의 머리 위를 잔잔하게 쓸며 여름에게 고민은 없는지 물어본다. 여름이 꺼내놓은 고민에 세실은 다시 한번 웃는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은 잠 속에 빠지거나 다른 계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재밌는 일은 없는지 구경만 해야 한다는 건데 졸려 하고 있을 여름에게 잠을 깨울 수 있는 방법, 역시 세실에게도 없다. 그럼 책을 써보면 어떻겠니? 네가 잠들어 있어도 사람들이 읽어줄 텐데. 정말로 사람들이 읽어줄까요? 제가 쓴 것을?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잘 쓴다면 읽어주겠지. 여름은 오늘 밤 반복적으로 졸고 있다. 여름이 꾸는 꿈은 미몽에서 벗어나려고 불을 한없이 뒤쫓는 벌레들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리고 여름이 잠들어 있을 때는 세실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사실 세실은 여름의 언니인 것처럼 여름 앞에서 굴어보기도 하지만 그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어느 여름날, 장마가 한참 내리던 시절 어느 처마 밑에 있는 아이, 비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세실은 눈여겨보았었다. 그 아이가 지금 잠들어 있는 여름이었고 세실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졸고 있는 것을 깨웠다. 여기서 잠들면 여름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면서.

2022년 5월 23일 월요일

장미 모양 초대장

내던져진 장미 모양 장식은 덧없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공중에서 휘돌다가 떨어졌다.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모험이 아닌 듯이 제 자리에, 지상의 바닥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물로 입수했다……. 옆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저 밑 물이 있는 곳에서 헤엄치고 있자 오히려 그들과 나의 사이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무도 이 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아래에서 소리쳤다. “내려와! 한 명이라도!” 내가 먼저 했으니 너희들도 하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초대장의 글자 형식이 아니었으나 나는 이 순간이 완벽한 것 같았기에, 뛰어내리기 전의 망설임을 아직 안고서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그 순간 한 명이 내 말을 따라 뛰어내렸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위에서 걸어 내려와 이 물가의 쪽으로 가까이 왔다. “적어도 한 명은 왔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과 별로 친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아무 의미 없는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가에서 내가 걸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수건을 건넸다. 나는 그 수건을 이용해 몸을 닦고 물었다. “불 피워 놓은 곳은 어디에 있지?” ‘몸이 차군’ 나는 중얼거리며 안내해 주는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처음에 나 대신 내던졌던 장미 모양의 장식이 떠올랐다. 우리는 불가에 앉아 생선을 구웠고 그러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꾼 꿈의 내용이고 그 문제의 장미 모양 장식은 테이블 위에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놓여 있다. 꿈에 나온 게 아주 완벽히 이것은 아니겠으나 어차피 난 실내에서 혼자였으므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자는데 안 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는 물에 들어가길 거부하니까 물속으로 내던져진 적도 있었고. 오래된 일이라서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희미하다. 내게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먼저 뛰어내린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내려오라고 소리친 점이다. 뭔가 의미심장한 것 같았다. 난 꿈에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데, 오늘 꾼 꿈은 희한하게도 장 보고 있을 때도 생각나고 내 뇌리에서 없어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내가 먼저 했으니 너희들도 해.’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요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각자의 마음이란 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데 비둘기 떼가 모여서 음식물 쓰레기봉투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 “지금 나는 비둘기들을 보고 있어. 그러다가 생각난 건데, 혹시 괜찮다면 오늘 사람들끼리 모이지 않을래?” “우리가 비둘기라는 거니? 너의 그 말버릇은 여전하구나. 비하하는 듯하면서 친근하게 구는. 그러나 조심하는 게 좋을걸. 그건 어쩌다가 모욕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유념하지.”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생쥐이고(이 사실을 숨기려고 해본 적은 없다), 작은 생쥐가 아니라 생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인간에 가깝다. 이런 존재들을 ‘생쥐 인간’이라고 부르며 나는 같은 생쥐 인간들이 머무르는 데로 갔다. 그러니까 일종의 파티 장소로 나는 향했다. 맨홀 뚜껑을 열고. 아까 가지고 나온 장미 모양 장식은 내 바지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오늘도 그럴듯한 레퍼토리의 치즈 파티였는데, 우리는 치즈에 감싸여져서 그 안에서 진동하는 치즈 냄새와는 다른 냄새, 그러니까 빈 공동의 냄새를 맡아 거기로 향해야 했다. 물론 치즈를 그렇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었으므로 치즈 가루를 뿌린 스티로폼 안에 우리는 들어가야 했으며, 그것을 뚫고 올바른 장소에 도착하면 온전한 치즈 몇 덩이가 접시에 놓여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치즈를 찾아갔다……. 이것이 우리의 파티이다. 생쥐 머리를 인간의 머리로 바꿀 수도 있는데, 물론 우리들이 원천은 인간이니만큼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생쥐 모양의 가면, 탈을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완전한 인간은 적성에 안 맞아서, 그리고 지하를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식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 치즈가 담긴 접시는 우리들이 좋아서 덤벼드는 것이라기보단 생쥐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상징화한 것에 가깝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치즈가 담긴 접시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생쥐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러한 이벤트는 단지 명목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두운 빈 공동에 나와서 잠시 휴대폰을 꺼내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받았다. “그게 네가 날 내던진 모험이니? 어쩌면 긴장감이 없는걸.” 잠에서 깨어나 탁자 위를 보니 아까보다 그 장미 모양 장식과 덜 비슷하게 생긴, 그러나 그 장미 모양 장식임을 확신할 수 있는 열쇠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물론 나는 생쥐 인간이 아니었고……. 두 차례의 연속된 꿈을 나는 곧 잊게 된다.

2022년 5월 16일 월요일

일망타진

한 번의 그물질로 싸그리 잡는다, 투망일까? ‘일망타진’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출판사 이름을 일망타진으로 하자는 데에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 외 아무 뜻이 없다. 하지만 출판사 이름이 일망타진이라면 그건 무슨 뜻일까? 일망은 뭘 뜻하는 거고, 싸그리 무엇을 잡는다는 뜻일까? 씨줄과 날줄은 무엇이며 그물코는 무엇일까? 그물이 책이라면... 낱장이 씨줄이고... 출판이 그물이라면... 고기는 우리다... 그물이 독자라면... 날줄은 국어... 고기가 책이라면... 그물은 노동이다. 고기가 책이라면... 고기가 책인 편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씨줄은 독자의 노동이고 날줄은 나의 노동이다. 잡는다는 건 뭘까? 읽는다는 걸까? 산다는 걸까? 잡지 못한다는 건 뭘까? 너의 노동과 나의 노동 끝에도 책을 잡지 못한다는 건? 타이밍이 문제였을까? 그물코가 너무 컸나? 책이 너무 작았나? 잡았다가 놓아줄 수도 있을까? 고기는 잡았더라도 놓아줘야만 하는 것이라 치자.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투망은 이상하다. 족대면 모를까. 일망타진이면 놓아줄 수 없다. 뭘 잡고 놓는 것은 수량과 관련된 문제일까? 하나를 잡으면 놓아줄 수 있지만 너무 여럿을, 모조리 잡으면 못 놓는다? 한 권을 읽었다면 놓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권을 읽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일망타진 출판사의 방향성과 썩 맞진 않는다.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바닷가로 소풍을 갔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풀어놓고 한 시간쯤 놀게 했고, 그사이 우리는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줍고 잡았다. 나는 플라스틱 생수통에다 소라게를 몇 마리 넣었다. 시간이 잘 갔다. 다시 버스에 모인 우리는 각자 잡은 것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많이 잡은 편도 적게 잡은 편도 아니었다. 한 친구가 내게, 소라게들을 놓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째서? 나는 소라게들을 위해 특별히 입구가 넓은 통을 주웠다. 모래와 자갈도 좀 넣어주었다. 그때 그 친구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뭐라 열띠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설득당했고, 나처럼 설득당한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한테 가서 이것들을, 불쌍한 소라게 따위를 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이미 늦었다.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2022년 5월 11일 수요일

시키노모리 인술도장 청소년닌자연무단 「팀 KOTENGU」의 인술 시범

2022년 5월 6일 금요일

신의 형상

아직까지는 신을 만나볼 수 없었다. 편지, 안부 인사, 인터뷰 요청, 선물, 윽박지르기, 애원하기, 젠장 그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지금까지 취해온 행동의 가짓수만 열거해보아도 자명해지지 않는가 이 열렬한 관심,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한 ‘한동안 무심을 가장하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연락하기’까지 포함해 나의 모든 제안과 요청이 거절당했고, 조금은 비참한 심정마저도 들려 하므로 유형별 시도의 횟수는 첨언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언제인가부터는 나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그가 그러는 이유도 <논리>적으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A가 B를 만나는 것이 A에게 아무 이득도 되지 못하는데 어째서 A가 굳이 B를 만나야 하는가, 신과 박물학자(인 나라는 일인칭)의 입장을 익명의 존재들로 치환하면 이를 수 있는 가까운 결론이다. (여기에서 이득이란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함으로 얻는 최소한의 심리적 만족감까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는 이잖아? 즉 그의 소유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잖아? 사랑한다는 것은 응답한다는 거잖아? / 하지만 나는 박물학자잖아? 즉 존재한다 여겨지는 모든 것을 탐구하기로 했잖아? 모든 것이란 모든 것이잖아?

독자들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선행 연구들에 대한 재탐색 외에는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의 오랜 무응답을 그의 부재(애초부터의)로 해석하지 않기로 전제할 때…… 내가 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권에 따라 신의 장애를 상상한(혹은 증언한) 사례도 이미 있다. 독자들도 잘 아는 사례를 꼽자면 눈을 가린/때로 눈이 먼 정의의 여신이 대표적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은 정말로 앞을 보지 못할까? 신인데? 애초에 그에게 가릴 눈과 저울 들 팔이 필요했을까? 그가 취한 자세는 인간들이 알기 쉽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가깝지 않을까?

신은 인간의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보고 있다. 신에게는 다리가 없다. 걷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어디에나 누구보다도 빨리 갈 수 있다. 그에게 음성 언어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입과 귀의 기능도 장담할 수 없다. 그와 소통한 이들이 <들었다>고 믿는 것이 실제로 그의 목울대를 거쳐 발성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의사를 전달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목격담 또는 그림을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그의 형상에 이목구비와 수족은 늘 빠짐없이 있다. 아름답게 있다. 필요도 없는데 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취미로 여기고 싶다. 인간이 TPO에 맞게 때로 기능보다 장식에 치중한 옷을 고르듯…… 그도 드물게 인간을 만날 때는 육신을 입을 것이다. 그의 옷장에 한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브라함계 종교에서는 우리가 그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그의 형상은 현재 기준으로 최소 70억 가지가 존재한다. 흑인이고 백인이며 황인이기도 한 그는 때때로 여성, 가끔은 남성이며 어린아이이기도 하지만 노인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경우 신체적 결함이 있다. 유일신 신앙의 특징은 그 하나뿐인 신에게 모든 권능이 집중되는 것이고, 함정은 완벽한 신의 형상이 한 가지라 믿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왜 전변하지는 못하겠는가. 그의 모습이 겨우 70억 가지에 불과하겠는가. 한편 장자 우대의 관습을 지닌 유목 문화에서 발생한 아브라함계 종교에 기반하여,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뚜렷한 장애가 없는 남성으로 설정하는 것에는 모순이 없는 듯하지만, 그 형상의 피부색이 흴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웃음 없이는 마저 쓸 수 없으므로 생략하겠다.

역사상 가장 신에 가까웠다고 기록된 이가 자기 입으로―인간의 입으로― 말했다. “너희 중 가장 낮은 이가 바로 나다.” 후대의 화가들은 대체로 그를 미형의 백인 남성으로 묘사했다. 그려진 그에게는 장애가 없다. 보통의 인간과 다른 점이라곤 후광뿐이다. 그것을 장애의 일종이라 말해도 좋을까? 남들에게는 없는 것이기에. 앞서 나는 우리가 취한 신의 형상(아브라함계 종교적 전제 안에서) 대부분에 결함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결함은 장애로, 어떤 결함은 장애로 분류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장애라고 봐도 좋을까?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 없게 만드는, 즉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었을 그 머리 뒤 빛의 다발 혹은 고리를.

일전에 신을 모독하려 했다면 먼저 그에 대해 말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이 글은 그를 모독하려는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지만 불쾌하다면 연락이 오겠지, 바라던 바라고 하겠다. 보고 계시다면 연락에 응답 좀 하십시오.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한테는.

결론이자 전제이고 (아브라함계 종교의) 그가 그랬듯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 하나, 신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방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그가 <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이잖아?’ (‘울트라맨이 개미에게 질 리가 없잖아?’ 같은 어조로) 그러나 혹은 그러니 반박도 같은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래, 그는 신이잖아.

그래서? 왜 그를 우리 유한한 존재의 인식 안에 가두려 하지?

2022년 5월 4일 수요일

외삽연극

현실에 없는 연극 또는 연극제를 있다 치고 소개합니다. 이 기획에서 연극이라는 단어는 유사한 영역과 형식을 너그럽게 포괄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지켜보는 사람, 관객은 존재할 것입니다.

2022년 5월 3일 화요일

금치산미디어

나는 멍하니 누워 있다. 왜 내가 나의 재산을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거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지 않던가? 도대체 어떻게, 나의 재산에 대한 나 자신의 엉망진창 재산 관리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 걸까? 재산이란 게 정말 중요한 거라면, 거기 어떤 의미가 있다면 말이다. 재산이란 것에 물론 의미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재산 생각들을 한다. 왜 아니겠나? 다시 말해, 무의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내 재산이란 것을 내가 멋대로 해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 그럼 멋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어쨌든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계 있는 사람인데 나의 재산 다루기에 한계가 없다면 이상하다. 한계가 있어야 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 내가 아닌 것, 나 이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냥 형식적인 몇 가지 제한이 아니라, 내가 아닌 뭔가가 나의 재산에 전격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세계가 가능하지 않으리란 말이다. 왜 가능하지 않냐면, 이미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절대로 결단코 금지될 수 없는 듯이, 내가 내 재산의 가능적 무제한성에 딸려붙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재차 왜냐하면, 나의 재산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생각에 쥐꼬리만큼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이에게, ‘금치산미디어’는 활짝 열려 있다.

경제의 자유? 무슨 그런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별 씨 개 같은 소리들... 이런 건 어떨까?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멋대로 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엉뚱한 데에 써버리도록 그냥 두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저 녀석에겐 그럴 만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저 녀석의 탓이 아니다,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이든 저 녀석의 한계를 넘어서고 마는 그토록 거대한 권한이, 저 녀석에게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나? 만약 저 녀석의 초과된 권한을 부드럽게 덜어주기 위해 정당한 책임 나누기의 일환으로 내 재산의 처분과 관리 역시 나로부터 어느 정도 금지되어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 글쎄 그래도 된다지 않아! 이미 그렇다니까! 바꿔 말해 이럴 수도 있다. 정말이지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재산 처분과 관리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재산의 처분과 관리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다, 참을 수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 ‘사람 취급’이라는 이 패습, 재산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형태가(‘자유’가) 결정되고 사람으로 감각되는 이 세계에서, 한편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처분하고 관리할 재산 자체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며 무슨 뜻일까? 이 생각은 사람 아닌 것들에 대한 생각과 그것들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것처럼이 아니라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그 방식에 대한 생각, 금치산미디어는 바로 그 금지된 생각들과 함께 간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어떻게 금지한다는 걸까? 개가 자신의 녹색 인형을 물고 온다.

2022년 5월 1일 일요일

22년 4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2)
―――


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7,115원 (0원 + 256,929원 + 186원)

2022년 4월 28일 목요일

잠들어 있는 얼굴

연기 곁에 재가 흩뜨려져 있었다. 그 재는 다시 연기에 날리기도 해, 조금씩 넓게 원을 그리며, 마치 이 모양대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지그재그를 그린, 그러나 멀리서 보면 하나의 원을 그리는 형태가 되어가며, 점점 커져갔다. 연기는 재를 이동시킬 힘이 없다. 그러나 연기 속에 섞인 바람이라면 그것이 가능했고, 무언가가 앞으로 나아갈 때 바람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그 바람은 제 권세가 있다는 듯이, 연기 속에 섞인 채로 재와 먼지들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의 가장 뒤인, 바람이 시작되는 곳의 최후방에서도, 먼지와 재가 공중에 뜬 채로 곧 날아갈 것처럼, 그러나 날아가지 않는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회전 중이었다. 선풍기를 끄자 바람은 멈추었고, 재와 먼지들도 이전의 동력에서 갈아탄 채, 서서히 힘을 받지 못하고 제자리로 떨어져 갔다. 그 재들이 쌓인 곳 경계선 너머를 손가락으로 훑자, 눈에 안 보이던 먼지들이 손가락 위에 종합되어 있었다. 나는 그 경계선 근처와 선풍기가 서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줄자로 쟀고, 그 수치를 노트에 적었다. 이와 같은 방 안에서 나는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신경질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는 소파 위에 누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나도 잠들어 있을 때는 저렇게 평온한 얼굴일 것이다. 달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 달빛 중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달빛의 들어오는 직선에 손가락 한 개를 집어넣었고 바닥에는, 그것으로 제외한 부분의 빛이 없어진 모양으로, 남에게 들키지 않은 채로, 당연하게 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자를 집어 먹으며 나는 이게 몇 번째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렇게 뒤에서 봤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팔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렇게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관상용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뒤에서 이렇게 웃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어쩐지 종교적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겨눠보고 있을 때는 말이다. 그리고, 저들은 나보다 앞서 걸어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충분히 쫓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지금 잠들어 있는 저 사람은 그들 중의 일부였다. 앞서 걷고 있던 사람들. 옥상에 있으면 헬리콥터가 내려오고 뒤에는 철거되지 않은, 아직 시공 중의 철골 구조물이 있는 반면.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는,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나는 얼마든지 그들에게 빌 수 있었다. 이런 얕은 절망이 사람을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이 건물 옥상에 있었고, 그는 내게 자기 앞으로 와서, 빌라고 말했다. 그는 장면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음성이 내게 전달된 것은, 소파에 잠들어 있던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빌면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늘어놓고 있었을 때였다. 그의 후회는 각 나라들의 국기를 연결해놓은 올림픽 정신의 긴 띠로서, 이 방의 뒤에 가보면 비슷한 것이 걸려 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나가, 옥상 위에 올라가서 그를 거칠게 꿇어앉히고, 나 또한 그렇게 앉았다. 저 멀리서 헬리콥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후회와 집착, 그리고 그 이후에 오는 피폐 등과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거기에 동일시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고, 뭔 참담함이냐는 듯한 무뚝뚝함으로 헬리콥터는 옥상 위에 건물처럼 떠 있었다. 곧이어 거기서 줄이 내려왔고, 우리 같은 상대를 준비할 시간과 자원, 그리고 적절한 장비 등을 갖춘 그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여기까지 쓰고서 나는 아까 잠들었던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좀 어때?” 문밖에서는 아까 구조대원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곧 여기는 그들의 발길을 허락하게 될 것 같다. 아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던 사람과, 나중, 누가 누구를 납치했는가를 상의하에 정해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이면 거래 또한 하게 된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납치한 것이지? 나는 그를 깨우고 물어보았고, 그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럼 감방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감방에 가고 싶은 눈치였는데(그야 외로우니까), 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경쟁하듯이 네모 모양으로 절단된 문의 틈으로 들어오고 있는 구조대원이 다치지 않도록 가서 붙잡아주었고, 얼떨결에, 같은 체면을 공유하는 채로 우린 서로를 납치한 게 아니며,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주아주 나쁜 사람이 우리를 여기에 가둬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들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기 갇히기도 하는 것처럼, 지금 잠들어 있는 네 얼굴은 참람하게도, 이 세상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한, 평온한 기분으로 자고 있구나. 옥상 위에는 아직 헬리콥터가 떠 있는데도.

2022년 4월 27일 수요일

― 제132주년 세계노동절 대회 견학단 모집 ―

그 일은 가능하다


22년 5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앞



행사의도

좀 갑작스럽고 한편 수상쩍겠습니다만... 곡물창고 이용자들(필자/독자/관리인)을 대상으로, 제132주년 세계노동절대회 서울대회에 어쩐지(?) 가보고는 싶은데 딱히 핑계가 없는 사람들(저 포함)을 위해 ‘드나듦이 자유롭고 홀가분한 견학단’을 비공식적으로 조직합니다.


참가자격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예비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구)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사실상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의 친구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의 가족
· 위 해당자의 일행


예상인원

6~?명
*참가 의사 확인에 따라 업데이트됩니다.


프로그램

· 13시 시청역 9번 출구 집결(주최자 주황색 손피켓 ‘곡물창고’ 찾기)
· 대회 장소로 이동
·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주관 22년도 세계노동절 서울대회 견학
· 자유 해산
· 18시경 눈치 봐서 마무리
*구체적인 장소와 프로그램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

· 이미 먹은 점심
· 노동절에 대한 최소한의 흥미
· 길바닥에 그냥 앉아도 되는 옷,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엉덩이 깔개 등 앉기 대책
· 걷기 편한 신발, 활동성 있는 복장 등 행진 대책
· 손수건, 모자 등 개인 위생 및 일광 대책
· 개인 식수, 간식 등
· (원한다면) 주장을 적은 손피켓


주의사항

· 곡물창고 관련 기획 일체 없음
· (원한다면) 간단 손피켓 제작 재료 선착순 제공
· 지하철 이용 강력 권장(일대 도로교통 마비 예상)
· 뭘 따로 하자고 하지 않음(최소화된 가이드를 원칙으로 대회의 큰 흐름에 맞춤)
· 단체 가입, 종교 권유, 여타 부담스런 개수작을 금하고 상호존중 및 배려 원칙 동의
· 주최자는 모임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책임/무대책(미안합니다)


참고자료

· 민주노총 대회 공지 링크

· 포스터


· 일정표

2022년 4월 19일 화요일

그 이상 같은 것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다. 여기 있으면 옆집 안테나에 앉은 새를 볼 수 있다. 이름은 모르겠다. 이름을 몰라서 새야, 라고 부르니 내 눈치를 본다. 자주 놀란다.
어제는 많은 비가 내렸다. 개방된 황동 파이프가 건물 아래로 물을 토하고 있다. 그때마다 이 일은 여름답다. 홀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조심히 다가가지 않으면 요란한 파이프가 빛나버리고 빛나는 파이프가 다해버린다.
나는 이만 실내로 들어선다. 새를 볼 수 없는 각도의 실내다. 무른 나뭇조각으로 만든 새 모형이 바닥에 놓여 있다. 습도 높은 이곳에서 약간은 축축해져 있고 그건 내 손바닥도 마찬가지. 이런 것들은 서로 껴안으려다 서먹해진다. 서먹한 것들은 수시로 서로의 손을 풀고. 그리고는 오래 멍한 새 모형이자 새를 찾지 않는 새 모형이다. 바깥에서 들리는 물소리.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물소리가 있다.
물이 넘치면 실내는 침수되고 작은 것들은 다 떠내려간다. 사건에 대처할수록 소매가 젖겠지. 사라진 것을 보고서 사라진 것의 눈치를 본다. 이후로 조용해져 더할 나위 없을 때 여전히 남아 있는 새 모형은 이 집의 장식 그 이상이다.

장마서림

생각이 장마철의 숲속에 있다. 서가가 숲이라면 빗물은 눈길이다. 빛은 손이고 그늘은 생각이다. 중력이 밤 같다. 이런 따위 비유들. 장마는 안다. 숲은 뭔가? 숲은 쓰레기다. 장마는 냄새다. 나는 장마철의 숲속에서 자신과 숲 밖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가라! 여기에서 나가라! 질식 직전의 내가 지렁이처럼 내밀어지고 있다. 별처럼 쏟아진다. 바늘에 꿰인다. 한 가지도 없다. 뭔가를 읽어서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뭔가를 써서는 막을 수 있을까? 있다면, 읽거나 쓰는 일이 막는 일과 어떻게 관계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없을까? 숲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듯이, 읽거나 쓰는 일도 막을 수 없다면, 숲이 없어지는 것도 막을 수 없을까? 막는다는 것도 생긴다는 것과 같이, 생각만으로는 없어서, 그것은 물러설수록 오가는 것이고 다가갈수록 오가는 것인가? 오가지 않으면 없다는 뜻인가? 숲을 위해 장마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장마를 위해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여기서 서로를 위하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래서 서로를 위한다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결코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장마도 여름도 없는 곳에선? 때에선? 마른 발이 장화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바닥이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챔피언출판사

오늘 사원에서 과장으로 진급했다. 3계단 특진이지만 3계단 임금 상승은 없었다. 그보단 이제부터 업무 평가를 해서 임금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이 무슨... 그게 그렇게 됐다고, 비몽사몽 커피를 타다가 정수기에 붙은 A4 공지에서 읽었다. 그렇게 나는 이전까지의 두 대리님, 두 주임님, 다른 한 사원님과 함께 과장님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지난 6년간 차장은 나를 ○○ 씨라고 불렀는데, 오늘부터는 소름이 끼치는 ○과장님이다. 같은 성씨인 다른 두 명의 ○과장님이 동시에 돌아본다. 그들이 불릴 때 나도 돌아본다. 총원 11의 이 사무실에 이제 8명의 과장님이 앉아있다.

이곳은 이른바 편집 대행사다. 주로 전공서적의 디자인, 조판, 교정을 대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은 무슨 해외 미디어? 그룹?의 한국? 지부? 출판사?로부터 넘겨받고, 저자 또는 역자들은 모두 어딘가의 교수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교정공이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앉아 하염없이 교정만 본다.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통화할 일도 없으며, 동료들과 이야기할 일조차 거의 없다. 명함도 직함도 당연히 없었고, 필요도 없다. 나의 일이 변할 일도 없다. 업무 평가? 대체 무슨 놈의... 그런데도 이렇게 얼렁뚱땅 팔과장 중 최약체...가 된 것은 사장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 명씩 면담을 진행한 결과다. 들은바 거기서 저자들이나 원청에 ‘무시’당하지 않게 직급이라도 높여달라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소규모·하청 업체에서 갑을관계 때문에 겪는 고충을 두고 사원들의 직급을 뻥튀기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일단 역겹고 환멸이 나는 일이다. 처음 다녔던 곳도 이런 식이었다. 거기선 6개월 만에 대리 명함을 줬다. 그때도 명함 따윈 하등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사장, 그러니까 나의 1대 사장은 때에 따라 세 가지 직함으로 불러야 했다. 실장님 대표님 사장님... 2대 때는 어땠느냐면... 아니다. 이게 다 무슨 지랄인가? 책 한 권을 두고 도대체 몇 명이 각자의 책임을 서로의 직함을 향해 썩은 것 다루듯 떠넘기고 있는지, 한번 세어본 적이 있다. 막무가내 일정이 나오면 프리랜서들을 구하기도 하고, 자기가 맡은 부분을 누군가들에게 찢어서 맡겨버리는 교수들도 있기 때문에, 최대로 싸그리 모으면 제법 규모 있는 토너먼트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토너먼트 생각이 났는지.

가끔 하는 생각. 그럴 수만 있다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서, 차가운 주차장에 대가리 박게 하고 앉았다일어나 시키고, 찢어진 우산을 쥐여쥐면서 폭우 쏟아지는 한강변을 타이어 끌며 달리게 만들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직급을 높인다’고 하는 방향은 맞는데, 단지 충분히 높지 않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충분히’ 높인다면? 일테면, 나를 대표로 진급시킨다면? 그게 답이라면? 찢어진 우산 들고 어쩌고 하는 일을 지금처럼 내가 하든가 아니면 남이 하든가 꼭 그래야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대표라면? 내가 대표가 된다면? 만약 열여섯 명의 대표들이 이 책을 만든다면? 대표 대 대표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대표보다 높을 순 없나? 어차피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챔피언 같은 걸로 부르면 안 되나? 챔피언 대 챔피언으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 같은 원고를 들여다보며 챔피언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2022년 4월 6일 수요일

그레고리의 업무

우선순위가 위에 있는 문화재들을 관리하는 그레고리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기 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하나의 무리가 오밀조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주 조용한 광경이다. 말이 없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새끼 거미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그 광경은 순식간에 파했다. 마치 다른 게 생각났다는 양 그레고리는 바닷가에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레고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다. 그레고리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그레고리의 손을 붙잡아왔다. 위에 있는 것을 끌어내리듯이 그레고리는 그 손을 이쪽으로 당겼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상대는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고리를 저쪽으로 끄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리도 이 상대를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람은 문화재였다. 그레고리가 관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처럼 말이 없게 된 그런 것들 중에 하나. 문화재는 현실을 침식하는 경향을 가진다. 수성에서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것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 보고 있었던 바닷가의 광경도 사실은 문화재가 벌인 사상의 침식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그레고리가 맡게 된 이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레고리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자문 역으로 인형사의 사무실에 찾아가곤 한다. 그레고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인형사가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계약을 그레고리의 마력적 저변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레고리도 거기에 동의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갖고 있는 문화재의 양만으로도 그레고리는 침식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마법 적성이 그쪽으로 의도적 편향된 그레고리라 하더라도 이같은 양을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인형사는 며칠 전 죽었다. 그리고 만들어둔 인형의 몸으로 다시 활동했다. 인형사의 시각으로는 이미 살아 있다는 것은 ‘활동의 재개’를 뜻했다. 그것은 ‘마모되어 감’일지도 몰랐으나, 어쨌든 간 인형사의 성격은 밝고 명랑한 편이었다. 인형사의 조수가 커피를 타와 그레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레고리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그레고리는 아까 침식될 우려가 있었던 바닷가의 사상을 이쪽으로 하며 잔을 받고 커피를 마셨다. 조수는 거기에서 마력적 반응을 느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불황이 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한 대단위 기류는 실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되거나 하며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비가 자주 오게 했다. 비가 온다는 것은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무언가를 끌어당겨 쓴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그레고리의 계약 또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기쁘거나 행복해진 이유를 찾아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이러한 합리화 마법이 결국 문화재들의 침식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드는 보호되는 필드의 생성과 이어지는 일이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는 전보다 많은 살인 사건과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내 주관을 말하자면, 인간의 불법적 행동을 점화시킨 것이 그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원흉’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 그레고리의 말에 내가 영향받은 것이다. 나는 여러 효과적인 방법들을 구상했지만 그것으로 그레고리의 사상에 개입할 명분은 찾기 어려웠다. 나는 이 사무실에서 ‘작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문화재들의 침식이 본질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 이어지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회의의 입장을 표하는 쪽이었다. 물론 그들의 경험적인 결과를 의심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이러한 관측이 다시 보호되는 필드를 만들어내 문화재로부터의 사상의 개변에 더욱 매끄러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어떨까. 조수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을 믿지만 믿지 않는다.’ 정도의 그러한 입장. 이 점 모순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선이 필요했고, 나는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농담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었기에 지금 내놓는 ‘화성’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이 자리가 코믹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쉽게 말하면 내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침식이 있으면 그 반대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 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인형사가 탄식이 섞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기가 이미 그건 원리를 알고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어진 대화는 기초적인 인형사의 마법 이론에 대한 강연과 실행 계획에 대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들었다. 인형사가 말하는 도중에 제안된 핵심적인 계획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원흉은 없으나, 그 원흉이 살고 있는 맨션은 있을 수 있음. 2. 그 맨션을 마법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원하는 결과에 닿기 어려움. 3. 여기에서 ‘肅’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공간을 압착하는 것으로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원리의 공간의 좌표를 지정하는 것에 가까움. 4. 그 ‘肅’이라는 기능을 지닌 문화재를 이쪽에서 만들어낼 수 있음. 5. 검사에게 그 검을 쥐여주고 들여보내(맨션에) 이 이야기에 말려 들어 간 근거로 보호되는 필드를 베게 할 것(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있는 조수가 구체적인 지시를 맡을 것). 6. 여분의 몸은 이미 여러 벌로 준비되어 있음. 검사는 살아서 돌아올 것.

2022년 4월 5일 화요일

모자 같은 고양이

만우절 장난 같은 고양이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하수구 구멍이 보인다. 난 길 위에서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고양이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머리에 모자를 얹고 있었다. 나 또한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다. 저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내 머리 위의 고양이와 아까부터 내가 쳐다보고 있었던 고양이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다. 나는 생김새가 정말로 비슷한지 확인해 보려고 모자를 벗어 잠시 바라봤다. 그런데 내 손에 들린 것은 모자였지 고양이가 아니었다. 순간 나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까 전과 같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 같은 모자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모자를 쓰자 그 모자는 다시 고양이가 되었다.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수구 구멍 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악어 인형이 걸어 나왔다. 진짜 악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악어 인형은 자기가 진짜라는 듯이 귀여운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악어가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는 나도 저 악어에게 한심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하수구 구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저 악어 봉제 인형에는 태엽도 안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누가 감아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태엽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악어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이동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렇다면 내 도착지는 다른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인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각자의 다마고치를 맞대고 전송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저 악어 인형은 그 순간을 알려주는 전송의 요정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철학적인 생각은 여기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요정 같은 악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악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인간을 좀 봐. 모자 위에 머리를 얹고 있어. 아니, 이게 아닌가?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어. 뭔가 한심하군. 네가 보기엔 어때?” 고양이가 먀, 하고 울었다. 아쉽게도 고양이의 말까진 알아들을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내 느낌상 고양이가 “그러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동의의 천재니까 말이다. 순간 아까 먹은 커피의 카페인이 내 혈관 속에 돌고 있는 듯하여 나는 잠시 휘청, 했다. 그리고 뒤에서 날 붙잡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친절한 이는 거대 고양이, 캣트시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거대 고양이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이렇게저렇게 쳐다봤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 거대한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 굉장히 특이한 인간이로군요. 저 고양이의 스핀은 저 위치에 고정되어 있어 살아 있지만 이 세계의 그늘에 가리어진 상태예요.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봤으니까요.” 거대 고양이 할로윈 분장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살아 있는 고양이의 촉감이 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나는 저 거대 고양이에게 감사해야 할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아까 전의 악어 인형이 뚜벅뚜벅 걸어와 캣트시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용무가 뭐니?” “그냥요.” “그냥?” “왠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저 인간이요.” “응?” “그런데…” “응.” “좀 한심한 것 같지 않아요?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까요!” 캣트시는 미니 선풍기의 전원을 켜고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악어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구나. 좀 한심한걸.” 순간 나는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저 고양이도 다시 먀, 하고 우는 것에 후회가 됐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쳐다보며(아침에)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는 것이 어울려 보이도록 점검했다. 그런데 저 고양이와, 악어와, 거대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 얹힌 고양이엔 문제가 없으나, 내 쪽엔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저기요.” 나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으로 나는 그 사람과 카페에 같이 들어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혹시 제가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이 한심해 보이나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네? 머리 위에 고양이가 있어요? 없는데요?” 저 앞에서 악어가 다시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만우절 장난은 아니죠?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럼요. 벌써 지났잖아요. 저는 머리카락만 보여요.” 분명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니 그런 것이 없었고 고양이가 손으로 누른 듯한 자국만이 보였다.

2022년 4월 1일 금요일

22년 3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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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6,929원 (0원 + 256,744원 + 185원)

2022년 3월 28일 월요일

동시출장 같은 것

빛이 들면 좋겠네. 빛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빛은 지금 산책을 나가고 없다.
대신 그는 오래 입은 옷들을 버리며 풀린 실밥의 개수와 처음 산 날짜를 헤아린다. 혼자 그린 달력에 처음 보는 기념일을 빨갛게 표시하고. 돌과 돌이 세게 부딪히듯이, 부딪혀 괜히 빛나듯이 걸으며 지나치며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은 볼에 불이 나 있다. 종이에 조그만 핀홀 뚫어 너무 밝은 태양빛 쏟아질 때마다 작게 나누어 본다.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나누어지는 빛.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멀리 떠났을 때 그도 짙은 빛을 가슴에 맞아본 적 있다. 일없이 매일 토마토를 한 개씩 먹는 사람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처음 가본 도시의 운동장을 달렸다.
지금은 익숙한 골목에서 사이좋게 나눌 수 있는 열망 대신에 혼자 소망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서성인다. 뒷골목으로 달려가는 아이, 뒤따라 달려가는 아이들. 달리는 데엔 이유가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라도 생일 초를 피우면 여기야, 여기야, 금세 모이잖아요. 입 모아 바람 불잖아요. 속에서 나온 숨이 다할 때까지. 나도 그럴 수 있다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아이들 뒤편에 서서 말했다.
잔설이 날리기 시작했고 그의 볼 위에서 눈 녹고 있었다. 녹는 눈에서 흰빛이 일었다. 우리는 걷고 있었고, 목적지까지 걷고 있었다. 그는 내가 보자고 하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가 생각하자 하는 것을 생각했다. 하다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