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 수요일

그레고리의 업무

우선순위가 위에 있는 문화재들을 관리하는 그레고리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기 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하나의 무리가 오밀조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주 조용한 광경이다. 말이 없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새끼 거미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그 광경은 순식간에 파했다. 마치 다른 게 생각났다는 양 그레고리는 바닷가에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레고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다. 그레고리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그레고리의 손을 붙잡아왔다. 위에 있는 것을 끌어내리듯이 그레고리는 그 손을 이쪽으로 당겼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상대는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고리를 저쪽으로 끄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리도 이 상대를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람은 문화재였다. 그레고리가 관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처럼 말이 없게 된 그런 것들 중에 하나. 문화재는 현실을 침식하는 경향을 가진다. 수성에서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것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 보고 있었던 바닷가의 광경도 사실은 문화재가 벌인 사상의 침식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그레고리가 맡게 된 이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레고리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자문 역으로 인형사의 사무실에 찾아가곤 한다. 그레고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인형사가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계약을 그레고리의 마력적 저변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레고리도 거기에 동의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갖고 있는 문화재의 양만으로도 그레고리는 침식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마법 적성이 그쪽으로 의도적 편향된 그레고리라 하더라도 이같은 양을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인형사는 며칠 전 죽었다. 그리고 만들어둔 인형의 몸으로 다시 활동했다. 인형사의 시각으로는 이미 살아 있다는 것은 ‘활동의 재개’를 뜻했다. 그것은 ‘마모되어 감’일지도 몰랐으나, 어쨌든 간 인형사의 성격은 밝고 명랑한 편이었다. 인형사의 조수가 커피를 타와 그레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레고리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그레고리는 아까 침식될 우려가 있었던 바닷가의 사상을 이쪽으로 하며 잔을 받고 커피를 마셨다. 조수는 거기에서 마력적 반응을 느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불황이 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한 대단위 기류는 실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되거나 하며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비가 자주 오게 했다. 비가 온다는 것은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무언가를 끌어당겨 쓴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그레고리의 계약 또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기쁘거나 행복해진 이유를 찾아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이러한 합리화 마법이 결국 문화재들의 침식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드는 보호되는 필드의 생성과 이어지는 일이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는 전보다 많은 살인 사건과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내 주관을 말하자면, 인간의 불법적 행동을 점화시킨 것이 그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원흉’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 그레고리의 말에 내가 영향받은 것이다. 나는 여러 효과적인 방법들을 구상했지만 그것으로 그레고리의 사상에 개입할 명분은 찾기 어려웠다. 나는 이 사무실에서 ‘작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문화재들의 침식이 본질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 이어지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회의의 입장을 표하는 쪽이었다. 물론 그들의 경험적인 결과를 의심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이러한 관측이 다시 보호되는 필드를 만들어내 문화재로부터의 사상의 개변에 더욱 매끄러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어떨까. 조수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을 믿지만 믿지 않는다.’ 정도의 그러한 입장. 이 점 모순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선이 필요했고, 나는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농담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었기에 지금 내놓는 ‘화성’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이 자리가 코믹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쉽게 말하면 내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침식이 있으면 그 반대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 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인형사가 탄식이 섞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기가 이미 그건 원리를 알고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어진 대화는 기초적인 인형사의 마법 이론에 대한 강연과 실행 계획에 대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들었다. 인형사가 말하는 도중에 제안된 핵심적인 계획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원흉은 없으나, 그 원흉이 살고 있는 맨션은 있을 수 있음. 2. 그 맨션을 마법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원하는 결과에 닿기 어려움. 3. 여기에서 ‘肅’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공간을 압착하는 것으로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원리의 공간의 좌표를 지정하는 것에 가까움. 4. 그 ‘肅’이라는 기능을 지닌 문화재를 이쪽에서 만들어낼 수 있음. 5. 검사에게 그 검을 쥐여주고 들여보내(맨션에) 이 이야기에 말려 들어 간 근거로 보호되는 필드를 베게 할 것(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있는 조수가 구체적인 지시를 맡을 것). 6. 여분의 몸은 이미 여러 벌로 준비되어 있음. 검사는 살아서 돌아올 것.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