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5일 화요일

모자 같은 고양이

만우절 장난 같은 고양이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하수구 구멍이 보인다. 난 길 위에서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고양이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머리에 모자를 얹고 있었다. 나 또한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다. 저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내 머리 위의 고양이와 아까부터 내가 쳐다보고 있었던 고양이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다. 나는 생김새가 정말로 비슷한지 확인해 보려고 모자를 벗어 잠시 바라봤다. 그런데 내 손에 들린 것은 모자였지 고양이가 아니었다. 순간 나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까 전과 같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 같은 모자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모자를 쓰자 그 모자는 다시 고양이가 되었다.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수구 구멍 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악어 인형이 걸어 나왔다. 진짜 악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악어 인형은 자기가 진짜라는 듯이 귀여운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악어가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는 나도 저 악어에게 한심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하수구 구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저 악어 봉제 인형에는 태엽도 안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누가 감아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태엽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악어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이동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렇다면 내 도착지는 다른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인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각자의 다마고치를 맞대고 전송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저 악어 인형은 그 순간을 알려주는 전송의 요정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철학적인 생각은 여기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요정 같은 악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악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인간을 좀 봐. 모자 위에 머리를 얹고 있어. 아니, 이게 아닌가?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어. 뭔가 한심하군. 네가 보기엔 어때?” 고양이가 먀, 하고 울었다. 아쉽게도 고양이의 말까진 알아들을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내 느낌상 고양이가 “그러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동의의 천재니까 말이다. 순간 아까 먹은 커피의 카페인이 내 혈관 속에 돌고 있는 듯하여 나는 잠시 휘청, 했다. 그리고 뒤에서 날 붙잡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친절한 이는 거대 고양이, 캣트시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거대 고양이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이렇게저렇게 쳐다봤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 거대한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 굉장히 특이한 인간이로군요. 저 고양이의 스핀은 저 위치에 고정되어 있어 살아 있지만 이 세계의 그늘에 가리어진 상태예요.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봤으니까요.” 거대 고양이 할로윈 분장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살아 있는 고양이의 촉감이 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나는 저 거대 고양이에게 감사해야 할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아까 전의 악어 인형이 뚜벅뚜벅 걸어와 캣트시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용무가 뭐니?” “그냥요.” “그냥?” “왠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저 인간이요.” “응?” “그런데…” “응.” “좀 한심한 것 같지 않아요?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까요!” 캣트시는 미니 선풍기의 전원을 켜고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악어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구나. 좀 한심한걸.” 순간 나는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저 고양이도 다시 먀, 하고 우는 것에 후회가 됐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쳐다보며(아침에)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는 것이 어울려 보이도록 점검했다. 그런데 저 고양이와, 악어와, 거대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 얹힌 고양이엔 문제가 없으나, 내 쪽엔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저기요.” 나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으로 나는 그 사람과 카페에 같이 들어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혹시 제가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이 한심해 보이나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네? 머리 위에 고양이가 있어요? 없는데요?” 저 앞에서 악어가 다시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만우절 장난은 아니죠?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럼요. 벌써 지났잖아요. 저는 머리카락만 보여요.” 분명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니 그런 것이 없었고 고양이가 손으로 누른 듯한 자국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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