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9일 화요일

장마서림

생각이 장마철의 숲속에 있다. 서가가 숲이라면 빗물은 눈길이다. 빛은 손이고 그늘은 생각이다. 중력이 밤 같다. 이런 따위 비유들. 장마는 안다. 숲은 뭔가? 숲은 쓰레기다. 장마는 냄새다. 나는 장마철의 숲속에서 자신과 숲 밖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가라! 여기에서 나가라! 질식 직전의 내가 지렁이처럼 내밀어지고 있다. 별처럼 쏟아진다. 바늘에 꿰인다. 한 가지도 없다. 뭔가를 읽어서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뭔가를 써서는 막을 수 있을까? 있다면, 읽거나 쓰는 일이 막는 일과 어떻게 관계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없을까? 숲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듯이, 읽거나 쓰는 일도 막을 수 없다면, 숲이 없어지는 것도 막을 수 없을까? 막는다는 것도 생긴다는 것과 같이, 생각만으로는 없어서, 그것은 물러설수록 오가는 것이고 다가갈수록 오가는 것인가? 오가지 않으면 없다는 뜻인가? 숲을 위해 장마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장마를 위해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여기서 서로를 위하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래서 서로를 위한다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결코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장마도 여름도 없는 곳에선? 때에선? 마른 발이 장화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바닥이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