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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내세의 벌레

그건 괜찮아. 통후추야. 그렇지만 꼭 먹진 않아도 돼.

조수는 그릇의 특정한 지점을 연거푸 찌르기만 했다. 숟가락을 뜰 생각이 영 없는 듯해 조수의 눈길이 머무는 데가 어디인지 보았더니 작고 검고 동그랗고 단단한 알맹이가 있었다. 알맹이는 조수의 숟가락 놀림을 따라 맑고 되직한 국물 속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꼭 살아있는 것 같지. 우무질에 감싸인 양서류의 난황 같지. 그래서 나는 조수를 타박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떠올리면 먹을 수 없게 되지.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조수가 나를 빤히 보았다. 오늘의 조수는 열두 살.

조수는 내 꿈에서 나온 사람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다른 꿈을 꾸면 조수도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가? 모양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하나? 때로 조수는 젊은 여자고 또 어떨 때에는 우울한 노인이며 오늘처럼 소년의 모습일 때도 있다. 어떤 모양일 때에나 조수는 자기가 조수라는 것을 안다.

만약에 이게 벌레 알이면 어떡해요?

극도로 불만스러운 한편 몹시 걱정스러운, 말하자면 과연 소년다운 표정으로 조수가 말했다. 역시 알이라고 생각하는군. 내가 떠올린 알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알이군…… 먹기에는 그쪽이 더 끔찍할지도? 나는 조수 앞에 놓인 그릇을 내 쪽으로 조금 당겼다. 밖은 춥고 너는 어려서 따뜻한 것을 내놓았는데 너는 내가 네 수프에 일부러 벌레를 넣었다고 믿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조수를 탓할 수 없었다. 식사에 불순물이 혼입되는 상황에 대한 신경증은 내게도 있다. 또한 조수에게 전염병으로서의 환생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은 나다.

잘 알려져 있듯 어떤 생명체는 다시 태어난다…… 그러기를 선택하는 개체가 있고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환생하거나 환생하지 못하는 개체가 있다. 짐작 가능하다시피 의식의 동일성과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생은 큰 의미가 없으며 대부분의 환생 현상이 그러하다.

환생을 주관하는 어떤 사후 기관(인터뷰를 시도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 은밀한 조직이다)의 기조와 의지에 따라 환생은 지난 생에서의 윤리적 부채를 상환하는 제도로 정의된다. 이에 개인적으로 환생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종교적으로 해석된 현상으로서의 환생을 신봉하는 이들은 새로 얻은 삶에서 덕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지만, 환생 개체의 상환 점수가 발생하는 거의 유일한 행위는 사망뿐이다. 대부분의 환생이 비인간 동물, 그중에서도 극소형 무척추 동물군 방향으로 나아가는 까닭을 이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쉽게 죽고 여러 번 죽고 효율적으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 문장에서 사망을 의미하는 문장을 상환으로 바꾸어 읽어 보라.)

문제는 어떤 생명체가 환생 과정에 있는 다른 생명체와 밀접 접촉을 일으킬 경우 의지와 무관하게 환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으로서의 환생은 바로 이 현상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해를 입혀온, 심지어 섭취해버린 날벌레들이 당신의 환생을 촉발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하지는 않듯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를 먹고도 환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비흡연자보다 흡연자의 폐암 발병 위험성이 높듯 벌레를 적게 먹은 사람보다는 벌레를 많이 먹은 사람의 환생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지만 너에게도 환생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구나.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얼굴로 내 조수를 자칭하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더구나 벌레 알 하나 정도로 양팔 저울이 크게 기울지는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은 박물학자답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조수는 수프 그릇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숟가락을 담갔다. 내가 말리기도 전에 작고 검고 동그랗고 단단한 알맹이를 건져 입에 넣었다. 멀리 놓인 그릇에서 급하게 떠낸 한 숟갈이었기 때문에 탁자에 수프가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그냥 후추였네요.

조수는 온몸을 들썩거리며 재채기를 두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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