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세계의 거대한 등껍질을 보고 크다,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밤하늘인데 사실은 둥근 유리막으로 투과되고 있다. 그 유리막을 왜 만든 것인지, 어떤 거대 집단이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 그 껍질을 보고 있으면 뭔가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왠지 느낌상,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유리막 위에다가 거리가 있으면 별과 비슷한 질감의 반짝이는 도료를 칠해 놓아 실존하지 않는 별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별에도 이름이 붙는다. 이 유리막에 대한 사실은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것이지만 아직 모르는 과학자나 집단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끼리 숨겨 놓은 비밀이 아니기에 큭큭대며 웃을 일도 아니다. 이 유리막을 만든 집단은 큭큭 웃을 수도 있다. 오직 그런 이유만으로 이런 막을 설치해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리막은 움직이기도 한다. 거대한 생물의 등처럼 좌나 우로 움직인다. 왜 움직이는 것인지는 모른다. 물론 우주비행선은 이 유리막을 통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해놓은 것들도 유리막을 만든 이유일 수 있겠으나,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우주비행선들의 금지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주비행선들을 발사하지 못하게 된 지 벌써 35년이나 지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세계의 모든 우주 관측은 그 이전에 띄워놓은 망원경에 의한 것이 되었다. 우리들의 과학 기술로는 이러한 유리막을 만들 수 없어 보임에 따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외계의 존재에 대해 대부분 긍정하고 있다. 이 유리막 안에서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태양은 예전보다 대낮에도 어두워 보이고 이것은 실제로 사실인 게, 약 15% 정도 현생 인류는 전 세대 인류에 비해 피부가 희어졌다고 한다. 자외선이 유리막을 부분적으로 투과하지 못한다고 하나? 따라서 우리는 비타민 D를 많이 먹어야 하는 인류이고 이런 거대한 물질적 기반이나 토대는(인공 자연은) 결코 한 사람을 울리거나, 감동시키는 법이 없는 것 같다.
2022년 11월 22일 화요일
알림판은 어떡해?
관리인은 별 대답 없이 장갑을 벗어 양손에 하나씩 붙잡고 박수 치듯 맞부딪기 시작한다. 창고 지붕을 타 넘은 오후의 부신 빛이, 리듬을 따라 터져 나오는 흙먼지를 비추고 부풀린다. 관리인의 표정 없는 얼굴은 비스듬한 빛으로 잘려있다. 뭘 하다 온 것인지 한쪽 안경이 온통 뿌옇다. 주변이 점점 먼지로 자욱해진다. 나는 뒤로, 창고의 그늘 속으로 물러선다. 관리인은 이제 그 장갑으로 옷을 턴다. 턴다기보다는 거의 먼지구름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꼴이다. 관리인은 그 속에서 말한다. 뭘 어떡해?
우리 알림판은 어떡하냐고! 미리 준비를 해야지!
근데 언제부터 관리인에게 말을 놓았지? 모르겠다. 관리인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천천히 먼지구름 속에서 나온다. 지독하게 바람 없는 날이다. 관리인은 아무 털어낸 것이 없는 것 같다. 또 답답하게 되묻는다. 진짜 망하는 거 맞아? 망하고 나서 생각해봐도 되지 않아?
아니, 그러면 안 돼. 미리 대비를 해야지, 한군데 정해놔야지. 인스타 갈 거야? 어쩔 거야? 페북? 뭐 마스토돈? 그런 것도 있다던데?
무슨 대비를 해? 그런 델 왜 가? 게시판 있잖아.
게시판은 지미...
투고 들어온 건 있어?
관리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투고 얘긴 왜 해? 투덜대면서 관리실로 간다.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반지하출판사
선배와 그곳에서 6개월을 살고, 해도 바뀌어 때는 늦봄이었다. 선배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술을 마신다는 것 같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올 거였다. 아니면 안 들어온다고 했다. 비는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반만 열었다. 나는 선배의 고물 컴퓨터로 흘러간 옛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빗소리가 점점 세졌다. 번개 천둥도 쳤다. 긴 술자리에 할 말도 전부 떨어질 때면 우리는 이 고장의 저수지나 원룸촌, 기숙사 배경의 괴담들을 주워섬기곤 했다. 근처 저수지들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버려지는지에 대해, 자취방에서 꾼 이런저런 악몽들과 다양한 가위눌림에 대해. 선배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채 밭길을 지나다가 누가 어깨를 건드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란 얘기를 했었다. 그게 언젠데요? 2시인지 3시인지, 날짜를 묻자 선배는 시간을 답했다. 그 두 신지 세 신지에 귀신들이 가장 활발하다니까, 웬만하면 너도 그 시간엔 돌아다니지 마라, 그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계를 봤는데 마침 2시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 정면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담이었고 왼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밭이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왼쪽 창밖이었다. 남자였고, 아마도 청년 같았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텃밭쯤? 또는 텃밭 들어서는 길? 갑자기 놀랐거나 고통을 겪었거나 힘을 들이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떤 심리적인 괴로움을 강하게 실은 외마디 고함이었다. 으아악! 잠시 뒤 번개, 이어서 천둥이 꽝.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비도 이렇게 오는데, 궁상맞게 왜 거기서 소릴 질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번개 맞은 거 아냐? 아니지, 번개는 나중에 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게임을 하다가, 언젠가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였는지 얼른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전에 듣긴 들었다. 그때는 선배랑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이 그렇게 누가 소리 지르는 걸 선배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기억이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선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말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웃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근데 이 소리 전에도 듣지 않았어요?’ 그 기억이 났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이 일이 기억이 났다. 장마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그 기억이 났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 책을 만들려는 것일까.
2022년 11월 8일 화요일
초월일기 4
2022년 11월 7일 월요일
홍한별, ≪아무튼, 사전≫(2022, 위고)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여전히 순천
• 안목해변에 갔다. 사람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드넓은 갯벌!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였다.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 앉아 이상우 <프리즘>을 꺼내 들었다. 읽히지 않았다. 도로 집어넣었다. 갯벌에 발을 살짝 디뎠다. 발이 푹- 빠졌다. 갯벌은 못 걸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춤을 추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오 분간 춤을 추었다. 크고 과감한 스텝을 밟아가며, 팔을 마구 내지르며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서 춤을 추었다.
• 시를 써야 한다. 요즘 시가 써지지 않는다. 괴롭다.
•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었다. 베이컨과 싱싱한 야채를 먹었다. 맛있었다.
• 아니, 소설을 써볼까? 소설을 안 써봐서 좀 무섭다. 소설은 뭐고, 시는 뭘까.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으론 아무런 차이가 없다!
• 엄마랑 전화했다. 밥을 세 끼 잘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두 끼를 먹고 간식을 챙겨 먹고 있다고 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 하이쿠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상우가 하고자 하는 건 기표들의 춤이다. 기표들에 머무는 거다. 형식과 내용이 합해지는 거다.
• 시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시는 아니다.
• 방이 걷는다 방은 자기도 모르고 문을 열고 나오던 가난한 거주자를 밟았다 밟힌 가난한 거주자가 꿈틀댄다 방은 미안하다 자신이 밝은 거주자 목록에 한 명을 추가한다 방은 계속 걸어간다 하지만 아까 밟은 가난한 거주자가 생각나고 자꾸자꾸 미안해진다 방의 발걸음은 힘이 빠진다 보폭이 줄어든다 방은 가만히 선다 방은 자신한테 살고 있던 거주자들을 계속 생각한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방은 점점 더 죄송하고 미안해하며 서서히 자신의 평수를 줄인다 방은 자신의 팔로 자신의 각진 어깨를 감싸 안고 울기 시작한다 사방이 적막하다 방은 전체다 하나의 전체가 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새 가게를 연다
• 방금 쓴 건 시다.
• 송광사에 갔다 왔다. 미적 감각 없는, 크기만 큰 괴물 같은 절이다.
• 법정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다녀왔다. 아담하다. 법정 스님은 이제 없다.
• 씻고 침대에 누웠다. 넷플릭스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봤다. 내일 본가로 간다.
2022년 11월 4일 금요일
연안 같은 것
2022년 11월 1일 화요일
22년 10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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