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반지하출판사

대학촌을 가로지르며 월세 기준선이 되는 왕복 4차선 도로, 그 저편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자리한 건물의 반지하 원룸이었다. 같은 층에는 여섯 호실이 있었는데, 두어 곳에는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아니면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또는 교환학생들이 지내는 듯했다. 마주친 적은 없고 말소리를 들어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 국제 이웃들. 나와 선배의 방은 여섯 중 모서리로, 운이 좋아 창문이 두 개였다. 한 창문은 담벼락에 면해있었고 다른 창문은 주인집 텃밭으로 뚫려있었다. 주인은 꼭대기 층에 살았다. 텃밭에 가끔 거름을 뿌렸다.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그 냄새가 맡기에 좋았다. 텃밭의 커다란 호박들 기억이 난다. 원룸 건물에 드나들려면 그 텃밭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야 했다. 우리는 거기서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당시엔 ‘안개가 끼기는 해도 공기가 맑아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졸업한 뒤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온 나라에서 열심히 미세먼지를 측정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공기 질이 아주 최악으로 나쁜 고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처의 무슨 항구... 근처의 무슨 화력발전소... 근처의 무슨 산맥...

선배와 그곳에서 6개월을 살고, 해도 바뀌어 때는 늦봄이었다. 선배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술을 마신다는 것 같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올 거였다. 아니면 안 들어온다고 했다. 비는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반만 열었다. 나는 선배의 고물 컴퓨터로 흘러간 옛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빗소리가 점점 세졌다. 번개 천둥도 쳤다. 긴 술자리에 할 말도 전부 떨어질 때면 우리는 이 고장의 저수지나 원룸촌, 기숙사 배경의 괴담들을 주워섬기곤 했다. 근처 저수지들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버려지는지에 대해, 자취방에서 꾼 이런저런 악몽들과 다양한 가위눌림에 대해. 선배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채 밭길을 지나다가 누가 어깨를 건드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란 얘기를 했었다. 그게 언젠데요? 2시인지 3시인지, 날짜를 묻자 선배는 시간을 답했다. 그 두 신지 세 신지에 귀신들이 가장 활발하다니까, 웬만하면 너도 그 시간엔 돌아다니지 마라, 그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계를 봤는데 마침 2시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 정면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담이었고 왼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는 밭이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왼쪽 창밖이었다. 남자였고, 아마도 청년 같았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텃밭쯤? 또는 텃밭 들어서는 길? 갑자기 놀랐거나 고통을 겪었거나 힘을 들이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떤 심리적인 괴로움을 강하게 실은 외마디 고함이었다. 으아악! 잠시 뒤 번개, 이어서 천둥이 꽝.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비도 이렇게 오는데, 궁상맞게 왜 거기서 소릴 질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번개 맞은 거 아냐? 아니지, 번개는 나중에 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게임을 하다가, 언젠가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였는지 얼른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전에 듣긴 들었다. 그때는 선배랑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이 그렇게 누가 소리 지르는 걸 선배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기억이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선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선배가 먼저 말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웃은 다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근데 이 소리 전에도 듣지 않았어요?’ 그 기억이 났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이 일이 기억이 났다. 장마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그 기억이 났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 책을 만들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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