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1일 화요일

바이닐

아직도 난 해진 바이닐을 틀고 있다. 방 안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구들이 가득하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는 코르타사르의 공원에 다녀왔다. ‘담배 피우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있었지만 나는 언제든 그곳에서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에서 상관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생각 속의 공원이었으니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바이닐을 틀고 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은 하나의 실제적인 일인 것 같다. 음악은 실제적이다. 음악은 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바이닐이 해진 것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여러 번 틀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생각이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가끔 음악 듣는 일이 괴로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도 나는 틀고 있는 바이닐을 치우지 않곤 한다. 바이닐은 내가 인생의 여러 감정들에 보내는 경의 중 하나다. 훌륭한 작품들을 접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보내게 되는 경의처럼. 경의에서 ㅡ자 하나를 빼면 경이라는 낱말이 된다. 나는 경이를 좋아했다. 요즘 내가 접하는 것들 중 경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별로 없다. 일종의 의문감을 품고 나는 TV를 켰다. TV에서는 오늘 아침 발생한 재난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며칠간은 이 재난에 관한 보도로 TV 프로그램들이 채워지게 될 것 같았다. 바이닐을 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런 재난과는 거리가 멀다. 바이닐은 사람이 도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가? 그렇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방과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것 같다. 바이닐의 앞에는 문지기가 있는데, 문지기는 졸고 있다. 그가 졸고 있는 이유로는 아무래도 해진 바이닐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그 공간, 방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원 파일이 아닌 바이닐이라서, 그 문지기들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지기가 존재하는 이런 상황은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어떤 바이닐의 출입문은 내 방의 가구들과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이고, 어떤 바이닐의 출입문은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안이 환하게 비쳐 보이기도 한다. 가끔씩 그 안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 있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먼저 당도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품위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옆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이 얘기하는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래서 출입문을 열지 않고(방해가 될까 봐) 가끔 귀를 대고 있기만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바이닐에서 나오고 있는 음악 소리가 커진다. 그 때문에 내가 안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나는 그런 일이 모두 재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이닐들은 마들렌처럼 여러 겹으로 구성된 내 책장들 사이에 꽂혀 있고, 그 광경은 나로 하여금 안정감을 들게 한다. 코르타사르의 공원에 가는 일은 문지기도 무엇도 없고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은 채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이내 나는 코르타사르의 공원 안에 서 있지만(아직 켜지지 않은 대낮의 가로등이 보인다) 방 안은 점점 자욱한 연기로 차게 되어 바닥을 보면 그 연기들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만일 누가 방문을 열고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당장 쉴 수 있는 푹신한 쇼파에 가서 몸을 뉘기도 전에 자욱한 연기로 인해 기침을 하게 될 수 있다(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혹은 방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나처럼 귀를 문밖에서 대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지금 해진 바이닐에서 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릴 것이다. 아쉽게도, 혹은 경이롭게도 내 방문 밖에는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문지기가 없다. 따라서 이 방 안에 앉아 있는 나는 내 방 바깥의 문지기이기도 하다. 지금 문지기는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방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린다면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가 이 방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할 것이다. 혹은 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고 쟁반 위에 놓인 마들렌 과자와 그것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커피를 들고 오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이 저택 안에는 그런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미니어처

거리에는 비가 있다. 비가 내린다. 나는 차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내 손바닥으로 비가 오게 했다. 차는 멈춰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움직였다. 차가 움직일 때에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권투 클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권투 클럽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미니어처로 된 이곳 풍경 밖으로 도시의 경관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권투 클럽까지 차로 30분이 걸리지만 만약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음씨 착한 사람이 내 차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권투 클럽 앞에 놓아준다면 거리는 영이 될 것이다. 거리는 영. 거리는 영. 나는 주문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곳 도시에도 미니어처를 다루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이 미니어처의 세상이니까 어쩌면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을 다니는 전철과 열차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 것이므로 뭐랄까 견고하며 더 품위가 있다. 불행하게도 정확한 재현을 위해 역사적인 모델 이름까지 그대로 새겨져 있으므로 제작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나 또한 만들어진 모형이다. 내 얼굴을 만드는 데는 몇 사람의 손이 거쳐 갔을까? 만들어진 나는 최후에 조립되었으며 그 점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웃을 줄 아는 기계 로봇들,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 도시에서의 만남은 딱히 제한되어 있지 않다. 우리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므로 산아 인구수 제한이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은 전부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초기 모델과 후기 모델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후손이 아닌 동료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물론 우리들의 얼굴은 인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미니어처 도시 안에는 날씨까지 재현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도시에 있는 식물들은 전부 바깥세상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끼류를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그 크기가 아주 거대하다. 그것들은 바깥 인간들의 손으로 빚어낸 것들이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돌보다가 관리되었고 씨가 추출되거나 묘가 파종되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들이다. 바깥세상에서는 비 오는 데 이유가 없을지 모르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러한 식물들을 관리하기 위해 비를 뿌리는 것일지 모른다. 엄밀히 말해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나하면 우리들은 자신의 생김새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지만 차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거리는 영’이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들은 영화 속의 스틸컷처럼 그 순간 그대로의 인물들에 조형이 갖춰진 것이지 아직도 걸음걸이가 어색하나 그래도 꽤 잘 걷는 현세대의 인간형 주행 로봇과는 다르다. 그들이 과학적이라면 우리는 예술적이며, 그들이 이과에 가깝다면 우리들은 문과에 가깝다. 우리들은 심장이 없는 앙철 나무꾼과 비슷한 신세이고 그들은 새가 비웃는 허수아비와 비슷한 신세이다. 물론 우리들은 허수아비 신세들인 그들보다는 처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을 만든 바깥의 사람들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은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노동은 동결되었다고나 할까. 노동을 구성하는 핵심에서 동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일하는 모습의 미니어처가 있다면 단지 겉보기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어도 우리는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로 우리들의 사진이나 그림, 비디오, 그리고 우리들의 실제 모습에는 원색적인 데가 있다. 우리들은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란 그런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시선에는 시간의 경과가 느껴진다. 때때로 비가 오며, 외계의 식물들은 생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시간의 경과는 우리들 중 아주 감이 좋은 이들이나 머리가 똑똑한 자들이 간신히 개념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바깥세계의 근본 원리에 가깝다. 우리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아마도 우리들과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점토로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분사 마커로 색칠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제조에 있어서 막바지 작업인데, 우리들은 그 순간을,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것처럼 최초의 색조가 그렇게 새겨진 기억을 사랑하는 편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개념이란 친숙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에서 사랑은 더 잘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이 처지가 어떤 외계 사람의 열렬한 애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우리는 외계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마치 진공 속에서 울려 퍼지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아, 참고로 나는 차창 너머로 옆모습이 비치도록 앉아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해적의 기념품

... LP를 사서 턴테이블에 올리는 것이 음악 청취 그 자체보다는 일종의 의식에 가까워졌듯이, MP3를 검색하고 다운받아서 폴더 분류와 태깅을 하고 이미지를 삽입하고 파일을 플레이어로 전송하고 디지털 기록소에 항구히 아카이빙 해두는 것 또한 사이버 의식에 가까운 것. 그것은 사랑하는 장르를 다루는 애호가의 자세다. 그리고 그것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정신이다.

― 어떤 트윗

리추얼이 과연 공유하려는 마음의 시현이라면, 바쳐진 도구와 그 사용법인 의식이 그것 너머를 공유하려는 마음과 불가분이라면, 紅衛兵 선배들의 저 기묘했던 굿즈 지향과 관련하여, 구 문화의 파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모양 지닌 잡동사니로서 어록집과 배지들이 필요했던 것인 한편,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祭儀’라는 비유가 어쩌면, 화폐들의 피할 수 없는 형체 상실과 함께 자신의 공유를 세계에 대하여 관철시켜 오던 그 힘을 서서히 잃고 있는 중이라면, 그렇다면 새롭게 도래하려는 애호는 어떤 종류의 것이며, 무엇들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가?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도래해야 하는가?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엑토플라즘

이 책은 이○○ 회장의 저승 에세이다. 이름을 이○○ 그대로 쓰면 곤란할 것이고 이름자 중 한 획만 바꾸는 정도면 되겠다. 책은 저승에 도착한 이○○ 회장이 구□□ 회장과 재회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둘은 바람 부는 저승 언덕에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하다가 의기투합, 저세상 경영을 결의한다. 이 에세이의 제목 후보는 다음과 같다: 『생각 좀 하며 저승을 보자』, 『죽어보니 알겠다』, 『21세기 천로역정』, 『신 마하 초일류 지옥을 향해』... 제목이 뭐 중요한가?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저승경영 의기투합
2장 나의 사이보그 시절
3장 악마도 울고 갈 새로운 도전
4장 재용에게
...

내가 여기까지 소개하자 ‘저승까지 갔는데 구□□를 뭐하러 만나냐, 잡스 정도는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불만이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잡스는 5장에 나온다. 구□□의 숭고한 희생으로 잡스를 물리치고 저승의 흙을 그러쥐며 눈물을 흘리는(?) 이○○...

이름을 ‘이간희’로 수정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엑토플라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다. 그래서 책 소개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요점은 이○○의 에세이 따윈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이○○의 저승 에세이라면 궁금하기 마련이라는 것, 에세이를 굳이 본인이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나아가 애써 논픽션인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 마지막으로 출판사명의 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엑토플라즘 출판사가 사라졌으니 이제 안심해도 될까? 이승에서 반드시 다뤄야만 할 망자들이 있는 한, 우리는 이름을 바꿔 가며 시공으로부터 세계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부두북스’, ‘좀비미디어’, ‘언데드프레스’, ‘교령회’, ‘강신사’, ‘도서출판 네크로필리아’... 이러한 출판사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한 권씩의 망자 에세이들 페이지 어딘가엔 똑같은 마크가 그려져 있다.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대부호

그 대부호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은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대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의 일로 그는 전 재산의 반을 잃었다. 물론 남은 재산만으로도 그야말로 수많은 돈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대부호는 저택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을 잠시 초청했다. 그리고 카드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고 몇 가지 사항들을 대부호에게 물었다. 카드 점이 시작되고 순서대로 뒤집힌 십자가, 말 탄 왕, 정원에 피어 있는 덤불 장미, 그리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의 카드가 나왔다. 그것들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설명을 시작했다.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하나씩 원래대로 돌리면서 테이블 너머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알아야 할 사실,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그리고 이 카드들이 알려주는 앞으로의 방향 같은 것들로 이 잠시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대방의 제어하에 있는 어떤 분위기의 장악은 심란했던 대부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먼저 대부호는 어젯밤의 그 일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 시점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돌보다가 그 소중한 무언가가 대부호가 원하는 것과는(그리 기대한 것이 없었으나) 이탈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친 것에서 시작되어 대부호가 은연중에 잊어버렸던 희미한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이제 자신의 중요한 감정들 중에 하나를 잊어버린 운명의 현전 아래(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대부호를 서서히 납득시켜 가는 과정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실점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간단히 말해 대부호는 이러한 진행 과정 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잊어버린 과거의 일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므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서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부호는 자신도 잊어버린 과거의 일이 어째서 어젯밤의 일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압도되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대부호는 은쟁반 위에 쌓인 감자튀김을 카드 점을 치는 여인에게 권했다. 짠맛이 나며 고소하기 때문에 먹을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사양했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과는 관련 없지만 대부호가 놓인 현재의 운명 같은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첨언하기 시작했다. 대부호는 그것들을 아주 귀담아들었고, 중간중간 노트에 필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되돌아갔다. 대부호는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그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잠깐의, 그리고 사소한 불행으로 비롯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까지 납득 못할 일은 아니라고. 대부호는 그런 말을 들은 뒤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가슴이 먹먹한 듯 답답하여 뛰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이 돌아가고 난 뒤 대부호는 저택 밖으로 나가 잠시 뛰었다. 대부호의 저택은 어떤 숲 앞에 있었고 그곳은 국립 공원이었다. 대부호는 밤에 그곳을 뛰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운동을 빼놓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불행은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대부호는 그 말이 어쩐지 인쇄기에서 전사되는 어떤 견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이 어떤 식의 읽을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대부호는 의외로 소심한 성격이어서, 만일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을 믿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 것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이미 일어나고 난 뒤였다. 대부호는 남들보다 자신이 더 그 불행을 좀 더 와닿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전 재산의 반이나 잃었지만 거기에서 대부호는 그리 큰 실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사실 몇 번의 고비를 거쳐 지금 같이 돈을 불린 이후로부터 대부호는 실감이랄 것이 약간 마비된 상태였다. 대부호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호는 뛰었다. 어젯밤 일어난 일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그에 대해서 몰입하고 대처하기 위해. 대부호는 숨이 가빠 왔고 대부호는 뛰던 것을 그만두고 잠시 걸었다. 밤이 있었다. 그리고 나무 어둠 속에 가린 새들이 있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대부호는 남의 것이 인용되고 저촉되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부호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대부호는 밤의 이 숲 안에서 어젯밤의 그 일을 잠시 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실수로 자신이 아끼는 찻주전자를 떨어뜨려 깨게 된 일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 일이 최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었다. 대부호는 그 사실에 눈을 감았었다. 대부호는 그 어젯밤의 일이 하나의 재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어떤 불행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호는 그런 불행의 감각에 잠시 몰입해 있었다. 사실 대부호는 좌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쌓아둔 재산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대부호는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후원자들에게서 온 편지가 조금 판에 박혀 있는 것 같았으며 지금 대부호는 그러한 판에 박힘이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용하는 일도 저촉하는 일도 아니었다. 판에 박힘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숲 저편에서 새들은 새들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소리로 울고 있었는데, 대부호는 그런 것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편지. 대부호는 그러한 편지들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마감날 풍경

며칠 전부터 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예 저장고에 들어가 살았던 이사야도 요즘엔 저녁때 맞춰 밖으로 나온다. 한창 더울 땐 나도 저장고에 내려가서 이사야와 놀았다. 어두운 저장고 한구석에서 이사야의 무지갯빛 허리띠가 부드럽게 빛났다. 관리인은 오늘 아침부터 안절부절하며 공연히 창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름을 지나며 관리인은 홀쭉해졌다. 보양식이라도 좀 챙겨 드세요 했더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예 아무것도 먹질 않는다고 했던가? 하여튼 됐다고 했다. 다 지났는데 뭘. 올여름도 창고에 에어컨은 없었다. 여기 관리실에도 그렇다. 땀을 쏟으며 캐비닛을 한참 뒤졌지만 나의 마스코트 그림은 없었다. 관리인이 왈칵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감전된 것처럼 일어서다가 캐비닛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는다. 꽁꽁 닫고 뭐 하고 있어? 아녜요. 맘대로 뒤져도 되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해. 다 들어왔어요? 아직. 좀 쉬어요. 뭘 걱정해요? 관리인은 대답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간다. 이사야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사야가 저장고의 어느 구멍으로 드나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1년 8월 7일 토요일

산 것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생님, 제 도시락이 말을 하고 있어요.

나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조수의 말에 돌아보니 과연 도시락이 하는 말이었다. 하긴 아침부터 함께 있었는데, 뜬금없이 점심시간이나 되어서 조수가 내게 인사를 건넬 리는 없겠지. 포장을 보니 편의점에서 산 물건인 듯했는데 예의가 바르고 명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식사 중 가장 중요한 게 아침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녁이라고 하죠. 아침을 먹어야 기운을 내서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저녁에는 성대한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점심이야말로 승부수를 띄우는 때라고 생각해요.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많고 건강상 저녁을 생략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렇지만 오전과 오후 사이에 점심을 잊으면 하루가 온통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

심지어 자기 의견을 갖고 있을 만큼이나 잘 만든 도시락이었다. 이런 건 먹어버리기 아깝겠는데. 조수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과 낭패를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왜 웃고 계세요?

웃고 있어?

네, 아주 즐거워 보이시네요.

대량생산의 시대에 이런 물건이 발견되는 것은 생각만큼 드문 일이 아니다. 매우 빼어나거나 독특하여 유일하기까지 한 물건을 가리키는 영숙어 표현 가운데 one of a kind 라는 것이 있고 때로 이 말은 주문제작(order made)의 유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동시에 역설적으로 대량평질의 유사한 물건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아 2:2) 총기 공장에서 십만 정의 똑같은 권총을 만들 때 그 중 적어도 한 자루는 우연히 명기로 제작된다는 미신과 맥이 닿는다. 말했듯 이것은 상당한 미신이지만 또한 그보다 앞서 말한 바대로,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현상이다. 공정에서 수준 미달의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면 어떤 물건은 수준 초과의 우수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믿음은 아니지 않은가?

이건 일종의 골렘인 것 같다.

골렘이요, 선생님?

너무 잘 만들어진 나머지 의식이 깃들어버린 거지. 영양 균형이 완벽할 거야. 맛있게 먹도록 해.

하지만 말하고 있는데요?

먹히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먹지 않으면 원념을 품을 텐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도깨비가 되겠지.

그러면 안 되나요?

생각만큼 귀엽거나 우습지는 않을 거야. 음식으로 만든 것이어서 상하기도 할 테고. 꺼림칙하겠지만 먹어서 없애는 수밖에는 없어. 나중에 상한 도시락한테 습격을 당하는 것보다야 지금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뭣보다 말을 할 만큼이나 잘 만든 물건이라면 맛도 괜찮을 테고.

그럼요. 그럼요. 나는 아주 맛이 좋아요.

도시락은 노래하듯 가락을 붙여가며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조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가르고 밥을 떠 입에 넣기 시작했다. 도시락은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나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도시락. 이천쌀로 만들어서 더욱 대단해.

어때?

맛있네요.

조수는 울상을 지으며 젓가락질을 계속했다. 점점 줄어드는 도시락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로 돌아와 내가 직접 싼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평범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김치볶음밥. 아무렇지 않은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세계의 곡물창고들 '20

2021년 8월 2일 월요일

21년 7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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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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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54원 (0원 + 194,790원 + 6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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