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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요일

BEST DRIVER

꿈을 꿨는데 죽은 친구가 사실은 살아 있었다는 걸 밝히고 다시 함께하는 내용이었다. 걔랑 걔가 좋아하는 카페(마닐마닐)로 가서 각자 할 일을 하는데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따로 앉았고 내 앞에 있는 걔의 등을 보면서 아 이걸 보고 싶었어 조금 더 나이 든 네 등이라고 생각할 때쯤 깨서 아쉬웠음


BEST DRIVER

그게 계속 보고 싶어 좀 더 나이 든 네 등. 하지만 너는 죽었다고 한다. 나는 네가 살아 있는 시간이었던 차를 몰고 부산에서 전주로 간다. 거대한 가로수, 버드나무 옆에 차를 세운다. 포도 한 바구니를 사서 운전석에 누워 먹는다. 손이 보라색으로 물든다. 번개의 속도로 잠든다. 눈뜨니 쏟은 포도알들이 몸에 짓눌려 있다. 얼룩덜룩한 보라색 몸으로 차 문을 연다. 할리우드 촬영장의 컨테이너 숙소 문고리를 잡은 채 목에 스태프 네임 카드가 걸려 있는 걸 본다. 장비를 싣는 차 중 가장 큰 차의 운전수라고 영어로 적혀 있다. 문 닫고 차 몰아 촬영장 밖으로 나간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서 일출을 보고 뉴욕으로 가서 햄버거를 먹는다. 화려한 밤거리를 지나 고요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갑작스레 비가 많이 내려 운전하기 어렵다.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빛이 보여 가까이 간다. 깜빡이며 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아래에 시네마라고 적혀 있다. 차를 세워두고 지하의 극장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 근처에 서서 스크린이 있는 자리라고 느끼는 곳을 응시하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영사가 시작되고 극장 안이 어느 정도 밝아진다. 내 눈앞 중앙이랄 곳은 관객석 중앙이었다. 관객석 중앙에는 네가 앉아 있다. 옆자리로 가서 앉아 함께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본다. 너는 눈물 흘려가며 웃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에 “BEST DRIVER JOO YOON JOO”라는 글자가 뜬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끝나고 극장의 조명이 켜진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극장 밖으로 나온다. 세상에 내 차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차를 몰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다.

M의 음악 감상문

조금 전 <시네마 천국>을 예매하고 나갔던 관객이 다시 돌아와, M에게 아이스 카페라테를 건네며 친절한 응대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M은 일할 때 액체류를 받으면 위험이 있어 폐기한다. 하지만 M은 생각한다. 이 관객은 <시네마 천국>을 좋아해서 몇 주 전에 들러 언제 상영하냐고 물어도 보고, 오늘은 친구랑 같이 보러도 오고, 며칠 후 부모님 모시고 또 올 거라는 사람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M은 그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신다. (‘괜찮을 거니까.’)

응대를 잘하는 M. 영화관 매표소 직원으로서 친절한 M이다. M은 자신이 친절한 이유를 생각하기 두려워한다. 두려워진 M. 아이스 카페라테의 영향으로 여자 화장실로 향한다.

쓰레기통. 생리혈로 추정되는 피가 묻은 휴지와 소변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젖은 휴지와 대변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접힌 휴지를 본다. M은 변기를 사용하고 나면 휴지를 많이 뽑아 두텁게 만든 다음 자신의 살이 닿았던 자리를 닦고, 휴지통 근처 떨어진 휴지들을 휴지로 집어 쓰레기통에 눌러 놓는다. 휴지들. M. 이곳의 직원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닌, 어디서나. 여자 화장실이라면.

M은 여자 화장실에서, 더러운 휴지들을, 보고, 만지며, 결심하곤 한다. 오늘의 결심. ‘앞으로 나를 영화감독이었다느니, 영화감독이라느니 하는 말을 이야기를 특히 과거에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굳이는 먼저는 말하지 않아야겠어.’ M은 이제 그게 너무 옛일이라고 생각하며, 터무니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옛날 일이 현재 M의 내면 깊은 곳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없는 일로 칠 수 있다면, 없는 일로 칠 의향이 들었기 때문이다. M은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저는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오르막 맨 위에 있는 반지하 집으로 가는 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전에 애인이었던 친구와 이층 침대로 나눠 쓰는 작은방에는 제가 만든 식물 선반 위로 식물이 가득하지요 저는 그 선반에 직접 쥐색 페인트칠을 했고 식물을 들인 이후로 집 안을 날아다니게 된 벌레들 때문에 옆의 큰방에 사는 전 애인의 동생이 나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요 오르막 너무 힘듭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가위로 다 자를 것이다.’ M은 왼손에 식물과 흙을 담을 쓰레기봉투를 쥐고 있다. 그리고 M, 음악을 듣고 있다. SWEET TRIP의 SEPT다. M은 달리는 말의 닳고 있는 발굽을 아주 가까이에서 본다.

이제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의 2층 계단에 붙은 집으로 가는 평지를 걸어 귀가하고 있어요 전세사기를 당하여 계약 기간 종료 이후인데도 살고 있지요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때문에 썩고 앓는 부분이 여기... 저기... 그리고 일, 그만둘래, 나는, 끝을 냈어, 나는, 방금, 끝을, 냈어... 저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또 영화를 만들 거랍니다. 화곡동의 집으로 가며 퇴사를 결심한 순간, M, 음악을 듣고 있다. SWEET TRIP의 SEPT다. M은 천 미터 앞의 나무를 끌어당기고 싶다. M은 옆의 아파트를 한 줌에 우그러뜨리고 싶다. ‘용을 만나고 싶다. 용을 타고 밤하늘에서 훨훨 날고 싶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의 높은 계단, 달, 아, 앞으로는 다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잘 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며 뭐라도 잘 되지가 도저히 않는다고 해도 괜찮으니 그러니까는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서울시 중구 신당동 이제 다 괜찮다고 쓰겠다.

M은 지난 몇 년간 영화 극장에 앉아 괜찮다는 대사를 듣는 족족 울어댔다. 제일 필요한 말이었다. 괜찮다는 말이 말이다. 봉천동에서도 화곡동에서도 신당동에서도. 그리고 This time maybe it's true. 바로 그때 용이 M의 가슴을 통과한다. M은 눈을 찌푸리게 했던 모든 빛을 응시한다. ‘신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신에게는 손이 있겠다. 택시 기사, 고서점 사장, 영화 속 친구들, 그들이. 그들이 내게 말했어. 민경, 괜찮다고. 신의 손이 미세하게라도 움직인다면 그런 소리가 날 것이다. 신의 손이 아주, 아주 미세하게, 나에게, 나에게, 닿는다.’

SWEET TRIP의 SEPT에는 가사가 “This time maybe it's true”밖에 없다.



붉은 천장

A24와 NEON의 공동 제작지원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후, 할리우드에서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내 나이 27세에...

그렇진 않았고 목욕하는 동안 금융사에서 독촉 메시지가 온다. 자정쯤 목욕을 하고 있다. 집 근처 모텔 중 욕조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은 곳이고 고장 난 버튼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욕실이 붉다. ‘완전히 썬-댄스네.’ 눈을 감는다. ‘유명한 호텔에 가고 싶다. 욕조가 더러울까 봐 마음 졸이며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호텔. 거기서 파는 와인도 사 마시고 그러는 거지.’ 눈을 뜬다. ‘그거면 될 것 같아. 정말로 그거면 될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서 일기장에다가 정말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졌다고 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