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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오게 두어라: 부동층 (19년 11월 다섯째 주)


"Lich Queen Mei" BY VanHarmontt

PIMPS 시즌2를 마치면서, 11월 다섯째 주에는 향후 남한과 세계의 정치를 크게 좌지우지할 내년 21대 총선의 키 플레이어, 민주주의 대축제인 선거판의 영원한 숙제이자 주인공, [부동층]을 다룬다. 부동층이란 뜰 부浮 자를 써서 어느 한 편에 마음을 붙박지 않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투표층을 뜻한다. 언뜻 아니 부不 자로 혼동되어 ‘움직이지 않는 층’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실은 유동층과 그 의미가 같은 단어이고, 흔히 고정층의 반대말로 쓰인다. 선거는 고정층을 단속하면서 부동층 표심을 잡아야 이긴다고들 한다. 30.5에 20.5를 더해 51을 만든다는 얘기.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동층의 기묘한 균형감각은 ‘좌-우 사이에 중도파가 있다’는 식의 2차원적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그리고 그것이 부동층 본인들의 판타지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부동층에게도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믿음의 없음이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부동층에게 있어 선거란 ‘우리편 이겨라’가 아닌, ‘이기는 편이 내 편, 진 편은 너네 편’인 싸움이다. 그런 종류의 참여로 무슨 재미를, 열광과 낙담을 느낄 수는 없다. 이들은 선거로부터 단지 ‘효과’를 추구할 뿐이며, 선거에 참가하는 이들 중 이들보다 더 ‘선거를 통한 변화’의 요체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없다. 특정한 종류의 집단 인사권을 발동시키는 일일 뿐인 선거 제도가 민주주의의 총화로 상찬되는 데 대한 냉소적인 회의감이, 선거가 실은 정치로부터 대중을 소외시키는 수법으로 작동하고 있음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자각이, 이 부동층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 ‘저 새끼들만은 절대 안 된다’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규정하는 고정층과 비교하자면, 부동층은 ‘그런 건 믿지 않는’ 이들이다. 저 개새끼들과 이 개새끼들 사이의 차이를. 이들에게 있어 정치란 일어날 일(아마도 우리가 선거만으로는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들에 의한)의 연속적인 일어남에 불과하며, 선거란 그러한 어차피 일어날 일들을 대표할 얼굴들을 바꾸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얼굴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아예 선거판에 끼지 않는 기권층과 이들은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치는 하나의 끝나지 않는 연극이고, 정치인들은 배우들이며, 선거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승리자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은 패배자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는 이들 역시 없을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패배자는 누구인가? 당선인이다. 부동층은 자신들이 무엇보다 ‘해임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이들은 어딘가에 뭘 걸어 보고 싶다기보다는, 도박판의 승부를 조정하는 진정한 주인, 균형의 수호자가 되고 싶은, 테이블 바깥에서 무조건 이기고 싶은, 진정하고도 최종적인 정신-승리를 유지시켜 보려는, 무책임을 잘 배운, 자신의 내용을 갖지 못한 채 도착적 현실주의에 붙들린 주체, PIMPS가 추구하는 종류의 위기적 인간상에 꼭 들어맞는, 그림자다. 부동층은 ‘좌도 우도 아닌 중앙값’이 아니다. 좌인 동시에 우인 존재다. 진실로 이들이 선거의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그림자라면, 선거라는 양식 위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은 부동층의 이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즉 선거는 이 대단한 평화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립한 제도이며, 선거는 이들의 이념 그 자체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전 세계적인 상황 관리의 실패를 맞이하고 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제 부동층은 그게 무엇이든 뭔가를 진정으로 믿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균형의 유지를 통해 실현시켜 오던, ‘조금 더 낫게, 다만 지금 이대로!’라는 이념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만약 한 명의 정치인으로 볼 수 있다면 부동층 씨는 명백히 큰 위기에 빠져 있는 정치인이다. 이전까지는 다들 부동층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이제는 욕을 먹을 차례다. 그를 적대하면서 회유하고, 또 살게 하는 온갖 것들, 언론과 일터와 향락과 도박이 그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다. ...우리는... 굶주렸다. 네? 뭐라고요? 이 미증유의 위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솔루션은 없다. 이것으로 PIMPS를 두 번째 마친다. 세 번째는 없기를 바란다. 그간 읽어 주신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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