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1일 목요일

끝과 시작 같은 것

인파로 붐비던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 비가 오던 그 자리에서 비가 그친다. 이천년이 끝나는 순간 이천일년이 시작되고 이천일년은 이천년을 돌아보게 한다. 텅빈 거리가 번화한 거리를 향하여 점등을 시도한다. 걸어가는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 살펴가는 사람, 되돌아오는 사람이 서로의 일상을 진행하며 무색한 외출이 되지 않도록 준비한다. 그친 비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마른 하늘을 바라보면 비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젖은 것은 조금 더 젖어가고 더 이상 젖을 수도 없을 때 이보다 더 젖을 수는 없겠구나, 멈춘 자리에서 쉽게 마를 수도 없는 마음이 시작된다.

2023년 9월 10일 일요일

역사 같은 것

손바닥 위에 잘 익은 체리를 올려놓는다. 동그랗게 불타서 이내 망가진다. 체리는 재로 변하고 재는 체리로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 오그라들어서 형편처럼 굳는다. 입으로 바람 불어 재를 턴다. 재가 날아가고 남은 자리는 이후에도 여전하다. 혼자 책임질 수 없는 것, 뜨거운 철심 같은 것, 한참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다 묻는다. 체리의 인상이 피부에 검게 남는다.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제각각이다. 잎 진 나무라는 이야기, 다 쓴 물병 같다는 소리, 아마도 읽다 버린 회고록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말은 과하다. 앉은 자리를 치우고 차가운 눈을 구한다. 눈으로 집 짓고 한자리에서 머리 묶는다. 만년설 같은 재와 재와 같은 만년설이 어깨 위로 쌓인 지 오래. 한동안 재가 흩날리면 모두가 입 다물고 걸어가는데, 그럼에도 재가 흩날려, 입 열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우연히 내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쪽을 모르고 그쪽도 날 모르겠지만 서로 눈짓 인사하다가 익숙한 흔적을 그들의 손바닥에서 발견한다. 이대로 지나칠 것 같던 그들이 이쪽을 돌아보자 나는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2023년 9월 9일 토요일

정오의 담장

나는 담장이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내 죽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뭘 바라고 기다리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지금 내 안에서 무언가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저 아이들은 아닌 것 같다. 한 명이 앉아서 엎드리고 다른 한 명이 위에 올라간다. 나는 꽤 높으므로 그것이 내 높이와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장미 나무를 잠깐 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뭐가 보였어?” “나무가 있었어.” 장미 나무는 자기가 잠시 보여진 것이 불만인 듯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여기서 움직이지 못한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관조할 수는 있지만 인간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일정 부분 나와 닮은 아이들의 용도는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고 만약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다시 이곳을 찾을까? 가려져 있고 넘보기 어려운 것을 아이들은 보고 싶어 하고, 나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공물로서 저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나는 내 뒤의 저택에 사는 이들보다 저 아이들이 좋았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네가 엎드리고 난 그 위에 올라가 나무를 봤지.” “그 나무는 뭐였을까?” “장미 나무.” 그렇게 말한 내 목소리에 저들은 깜짝 놀랐다. 그간 있었던 일은 별다를 게 없었다. 나에게 달라진 점은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내서 저들과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 너희들 키가 커졌구나.” “담장 님이에요?” “그렇단다. 이젠 한 명이 숙이지 않아도 내 너머를 볼 수 있겠어.” “관심 없어졌어요. 키가 자라는 일은 곧 멈출 거예요.” “그거 아쉬운걸.” 과연 그 소년들의 말은 맞았다. 다시 봤을 때 그날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듯했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담장이 말을 했지.” “난 그 안의 장미 나무를 다시 봤으면 좋겠어. 담장이 알려준 그 나무 말이야.” 그들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나도 조금 낡고 돌 부스러기가 있게 되었다. 아마 저들이 세 번이나 여길 찾은 건 날 위해서는 아니었으리라. 내가 기다리던 것이 저들이 아니었듯이. 그러나 나는 저들이 좋았던걸. 이제 다시 날 찾을 때에, 내 뒤의 장미 나무를 다시 궁금해할 때.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바라던 것이, 기다려왔던 것이 뭔지를 알았다. 그건 내 뒤에 있는 저택을 내 눈 안에 담는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때의 중얼거림으로 장미 나무도 내 욕망을 알게 됐다. “그때 기억나?” “응, 기억나. 담장이 다시 말하는 일은 없었지. 왜 우리는 이 주택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저들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둘러진 이 주택은 사는 사람 없는 빈집이 되었다. 나는 무너져내리는 것을 참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나는 저들을 보고 싶었다. 내가 기다리는 이들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앞으로 다가와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보던 그 아이들. 나는 지금 무덤으로 들어간 이들이 그립고 보고 싶었으므로 시간을 역순으로 가게 하기 시작했다. 다시 아이들이 된 그들이 보였다. “그때 기억나? 너희들이 날 찾아왔지. 그때 난 기다리고 있었어. 아직 정의되지 않던 무언가를. 난 내 뒤의 저택을 보고 싶어 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어. 그것을 이제서야 본다. 너희들의 눈동자 안에 있는 광경으로 말이야. 정말 아름답군. 내가 둘러져야 했던 게 이해가 갈 정도야. 정말 아름답구나…….” “하지만 그건 아저씨가 매여 있는 곳을 멀리서 본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난 그래도 상관없었단다.” “난 매여 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걸. 넌 내게 매여 있다.” “담장 아저씨,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그렇단다.”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다른 것이 마이너스가 될 때 혼자서 0 이상으로 움직여봐요.” “그런 일이 가능한 거니?” “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니?” “그건 내가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이니까요.” 감았던 눈을 뜨자 병실 천장이 보였다. 얼마 후 그 사람이 와서 기뻐했고 오열했다.

2023년 9월 8일 금요일

저승사자

문을 등 뒤에 이고 있는 것을 연습한다. 나는 지붕 수리공이므로 사다리 위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지붕에도 문을 달아줘야 한다. 커피숍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 사람은 등 뒤에 문을 이고 있었다. 아니, 지붕 수리공도 아니면서, 왜 저런 연습을? 연습이긴 한 건가? 너무 내 사정으로 비춰본 것이 아닐까? 연습이 아니라면 뭐지? 형벌……인가? “형벌입니까?” “아니요. 연습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컵을 들어 올려 커피를 마셨다. 저건 혹시 내가 꼭대기로 올라가서 달았던 문일까? “그것은 내가 달았던 문입니까?” “아니요. 아무도 이것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건 왜 생긴 건가요?” “이상해 보입니까? 어느 정도인가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티가 나요.” “그렇군요.” “실례지만, 그 문을 열면 뭐가 나옵니까?” “아무것도.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나는 지붕에다 문을 달아달라는 요구가 이상하게 느껴졌었는데, 저 사람의 대답을 듣고 이해가 갔다. 그 욕망이나 욕동은 저 사람이 원본이었다. “천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질병.” “그 문은 여기서도 잘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 사람들은 이 문을 보고 궁금해하는 대신 판단을 하더군요.” “그런 일을 많이 겪었을 테니까요.” “당신도 겪었습니까?” “나는 겪은 게 적어요.” 지붕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사수가 하는 말이었다. “거긴 위험해!” “괜찮습니다!” “그건 왜지?” “이미 떨어졌으니까요…….” 아까부터 나와 마주 보고 있었던 사람은 혹시 자신도 지붕 수리공이 될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온다. 그건 아마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고 있는 문을 (개인적으로) 현장에 남겨두고 가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저 사람은 무게가 무거운 문을 다른 데에 내려놓기만 하고 싶어 할 뿐이다. 사실 지붕 수리공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였다. 나는 잘 발달한 내 어깨 근육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런 게 있어야 하지요.” “예, 아마도 안 될 테지요.” 그 사람은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합시다.” “그러죠.” “우리 집의 지붕을 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지붕 수리공입니다. 멀쩡한 지붕을 뗄 순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해도 난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용달을 부를 겁니다.” “그런다고 해서 왜 멀쩡한 지붕을 당신이 이고 있는 문 안에 낭떠러지로 처박는다는 말입니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난 지쳤어요.” “차라리 그 문 안에 들어가 살 사람을 구하시죠.” “당신이 그래주겠습니까?” “이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군요.” “자, 그럼 들어가시죠. 한번 이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좀 슬픈 것이긴 하지만, 예, 그것은 당신의 죽음이군요.” “그러겠습니다.” “정말 그러겠습니까?” “아니……. 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당신은 조심해야만 할 겁니다. 난 이만 갑니다. 또 이렇게 문턱으로 오진 마세요.”

2023년 9월 6일 수요일

―923기후정의행진 참가단 모집―

이것은 시작에 불과


23년 9월 23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앞



개요

작년 일곱 분이 참여해주셨던 노동절 견학단에 이어 올해에도, 곡물창고의 모든 이용자(필자/구독자/관리인)를 대상으로, 이번 『923기후정의행진』에 가보고 싶은데 핑계와 일행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드나듦이 자유롭고 홀가분한 참가단’을 비공식적으로 조직합니다.


참가자격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의 친구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의 가족
· 위 해당자의 일행


프로그램

· 9월 23일 토요일 오후 1시, 시청역 9번 출구 앞에 집결(주황색 가이드 깃발)
· 1시 20분, 간단 인사 후 집회 장소로 이동
· 이후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하여 부스 구경부터 행진까지
· 오후 5~6시(?)경, 눈치 봐서 마무리
*구체적인 장소와 프로그램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

· 드레스 코드: 결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배지(당일 대여 가능)
· 길바닥에 누워도 되는 옷,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엉덩이 깔개 등 앉기 대책
· 걷기 편한 신발, 활동성 있는 복장, 여타 이동수단 등 행진 대책
· 손수건, 모자, 선크림 등 개인 위생 및 일광 대책
· 개인 식수, 간식 등
· 손피켓에 적을 문구 또는 원하는 손피켓
· 그 외 치장물


미리 알림

· 참가 전 923기후정의행진 사전 학습 必(아래 참고자료 참조)
· 별도 신청 없이 그냥 약속 장소로 털레털레 오시면 됩니다.
· 점심 먹고 오세요.
· 일대 도로교통 마비가 예상되므로 오실 때 지하철 이용을 강력 권장합니다.
· 지각 또는 지연 합류 시 곡물창고 게시판에 문의하세요.
· 집결성사가 참가단의 목표이며, 그다음은 같이 다니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간단 손피켓 제작 재료를 제공합니다.
· 곡물창고 관련 기획 일체 없습니다.
· 주최자는 참가단과 관련하여 최소화된 가이드와 중재만을 제공합니다.
· 상호 존중과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참고자료

· 923기후정의행진 홈페이지
· 가이드북 다운로드
· 정보와 일정표

2023년 9월 1일 금요일

23년 8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7,021원 (0원 + 286,620원 + 401원)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