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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8일 금요일

미야



“일 년 전의 고양이는
아름답게 자랐을까요?
‘좋은 곳’으로 가꾼 그곳을
아무도 망가뜨리지는 않았는지
문득 궁금해하며,”



시집을 열었는데 미야의 안부가 적혀 있었다. 미야. 일 년 전 미야의 이야기. 잊고 있었던 고양이의 삶을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야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시인은 왜 이렇게 다정할까. 

미야는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를 보면서 입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귀 하나를 접었다가 펼쳤다가 등에 있는 검은 반점이 벌어졌다가 좁혀지는 순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그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는 듯 능청스럽게 손에 침을 묻혀 그루밍을 시작했다. 미야는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의 실패를 한참 바라보던 나른한 오후.

나의 은밀한 취미 중 하나는 낯선 고양이에게 적정거리로 다가가 눈을 느리게 깜박이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복권을 긁는 심정에 가깝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이 곁을 주지 않는 게 좋았으니까. “맞아. 잘하고 있어. 사람 믿지 마.” 나는 그들이 사람을 경계하고 믿지 않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이 사료를 주면 어떤 사람은 엎어버린다. 어떤 사람인지 사람도 알아볼 수가 없으므로 그들이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아서 좋았다. 개체로서 길가에 있는 존재라서 그 거리감을 좋아했다.

미야는 처음 만난 날,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인사해주었다. ‘안 되는데.’ 의아한 표정을 지은 건 사람이었다. 미야, 라고 부르자 원래 아는 사이처럼 다가왔다. 희디흰 운동화 코에 자신의 발을 꾹 눌러주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주변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사람을 따른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미야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미야의 정보를 들었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버려진 고양이, 다행히 여기에 있는 고양이들이 미야를 내쫓지 않아서 주차장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 미야는 산책을 하듯 그들과 함께 좁은 길가를 걸어다녔다. 미야의 밥을 주던 아래층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미야를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고양이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떤 이름으로 불렀을까? 몇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미야는 버려진 고양이, 모두의 고양이. 

“그렇게 좋으면 아줌마가 데리고 살든가.” 그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악을 질렀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창문에서는 “그러는 네가 더 시끄럽다.”라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멀리서 들리는 사람의 소리.

고양이의 겨울, 미야의 겨울, 미야와 미아의 겨울. 나는 미야, 미아, 반복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길고양이의 생은 짧다.

미야가 오래 살기를 바란다.

아주머니가 상자를 접고 그 안에 담요를 깔아주면, 저녁에는 재활용품을 가져가는 사람이 그 상자를 달랑 집어가고는 했다. 미야에게 집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집을 사는 것보다는 그것을 주차장 옆 블록에 둬도 되는지가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미야의 볼품 없는 상자마저도 재활용품 수거차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옆집 사람들에게로 잘도 사라졌다. 미야는 그저 사람들을 잘 따랐다. 털 관리도 할 줄 모르는 고양이, 씨앗을 털에 다 묻히고 돌아다니는, 엉덩이를 때려주면 좋다고 엉덩이를 번쩍 드는 고양이. (엉덩이를 자주 팡팡 때려주는 건 좋지 않다고도 들었던 것 같아서 조심했다.) 

어느 날, 미야가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을 해보니 주인을 찾았다고 했다. 주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가끔 미야의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면서 인사했다고 한다. 그 후, 겨울이 되기 직전에 미야는 주차장에 있었다. 다시 봐서 반갑긴 반가운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건 역시 사람이었다.

미야는 화단 구석에 있었다. 잠시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미야가 즐겨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고양이가 와 있었고.

둘은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다시 버린 거지 뭐.”



미야는 훗날 일산으로 갔다. 좋은 집에 분양됐다고 한다. 나는 길을 가다가 검은 점박이 고양이가 내게 반응하면 놀란다. 혹시 미야일까봐. 눈인사를 하는 취미도 귀퉁이에 밀어두었다. “사람 믿지 마. 언제나 멀리서 의심해줘.” 그렇지만 곁에 와서 꼬리를 다리에 말고 응석부리는 걸 보는 건 좋다.

“고양이 키울 마음 있어?”라는 말에는 언제나 단호하게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꾸 “우리집에서 개는 안 된다.” 말하고는 바닥에 드러누워 개의 얼굴만 쳐다봤다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나의 뒷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훗날 고양이의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바닥에 누워 있을 나의 모습이.

2021년 6월 15일 화요일

생화가 있는 집

“그들은 그들의 가슴을 열고 여네
그들이 심장 하나를 찾을 때까지
그리고 그 심장 안에서 도둑맞은 장미를 찾을 때까지”

― 바스코 포파,  「장미도둑」



떨어진 장미의 머리를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런 문장을 떠올리면서 장미를 바라본다. 꽃을 정기구독하면 어떤 꽃이 올지 모르고 기다리게 된다. 이번에는 미니 장미의 차례였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한 장면처럼, 삶이 피어나는 순간처럼, 일상의 한 부분을 보며 속으로 위태로운 내레이션을 까는 것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



어릴 때 장미 농원에서 살았다. 최상급의 장미는 사람의 키와 견줄 만큼 큰 편이다. 실제로는 접하기 어려운 상품이라 보통 만나기 어렵다는 것, 더운 여름철 팔 토시를 한 엄마와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 개가 언덕을 뛰어다니고 꿩이 짖는 곳에 화원이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랐을 수 있었겠지. 



비닐하우스의 습도가 기억난다. 거머리를 보던 기억, 비가 온 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뱀이 몸을 둘둘 말고 쉬는 풍경, 흙냄새와 산의 어둠과 밝음에서 자란 기억. 특별한 삶일까?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그런 시를 썼구나?” 선생님의 말에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는 건, 비밀로 해두자. 서늘한 꽃 냉장고에 들어가서 쉬다가 엎어져 장미를 쏟아버린 어린 시절이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종종 개와 함께 번갈아 들어가 장미의 향을 맡고, 몸을 식히고 나오고는 했다.)



엄마의 통통한 손은 온통 가시로 긁혀 자잘한 딱지가 많았다. 한 채의 비닐하우스가 쉽게 타버리기도 했다. 상품 가치가 없는 장미의 잎을 뜯으며 좋지, 싫지, 말하며 개랑 놀기도 했다. 비질을 할 때 쓰레기가 아닌 잎을 모았다. 버스가 없어 길을 걸으며 기도하던 밤은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뙤약볕, 대추나무, 반정도 눌린 짐승의 사체...... 



아무튼 그 당시 내게 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오듯이, 언제나 주변에 존재하는 것. 저 혀를 내밀고 나와 놀고 싶어 웃고 있는 개를 향해 뿌려줄 수 있는 것, 그 개의 이름이 장군이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장군이는 잘생겼고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 닭을 물어뜯어 긴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종자개 역할을 했고.



며칠 전 화훼농장 돕기 일환으로 생화를 산 뒤 생화가 있는 집은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집에는 꽃이 있던 기억이 없다. 사방이 꽃이니까 굳이 유리병에 넣어 장식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낀 것도 그러했다.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다시 어려운 일이 된다.



책상 화병에는 미니 장미가 꽂혀 있다. 좋은 장미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빛을 받고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내가 어디에서 살았는지 종종 기억하지 못한다. 능청 같지만 사실이다. 기억나는 건 장군이의 이름, 장군이의 눈매, 학교에 있을 때, 장군이가 팔려 갔다는 것, 그 많은 시간을 보내놓고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 그때 있었던 장미는 다 어디로 갔나. 라디오가 걸려 있던 벽, 그 벽을 보면서 라디오 디제이가 되고 싶다고도 느꼈던 것 같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약간 뒤틀려 있었으니까. 아주머니들의 곱슬대는 머리 사이로 비치는 햇빛, 비닐하우스에 꽂혀 있는 어색한 창문.



특별하지 않은 삶도 기록되어야 한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장미는 소파 옆에, 책상 위에, 화장대에 놓여 있다. 한 달 뒤에 다시 꽃이 도착할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꽃을 미리 생각하는 것, 심장 하나를 열어 장미를 찾는 순간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어떤 일을 불러오는지 지금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가상수


한때는 사람이면 슬픔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슬픔을 가상수처럼 낭비하면서, 쌀을 씹을 때, 콩을 씹을 때, 질긴 줄기를 씹어갈 때, 새로운 물질을 생산할 때 필요한 물처럼. 이제는 슬픔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는 더 많다는 말에, 새삼 놀라웠던 기억. 하나의 숨에 하나의 슬픔을 불어넣으며 물을 마시는 세상에서 다시 슬퍼지는 일상에서, 거품이 이는 슬픔을 구경하면서 고민했다.


가장 슬플 때, 보통은 꼬미를 생각할 때다. 가장 기쁠 때, 보통은 꼬미를 생각할 때다. 보통은 내가 사람이라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꼬미에 대한 글은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책에서도 조금 다뤘는데, 개를 말할 때 어떻게 해야 슬픔을 모르는 듯이 쓸 수 있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물발자국을 어떻게 안 남길 수 있나.



당근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건, 개가 당근을 아사삭 씹는 소리를 듣는 것.
안 봐도 알지. 얼마나 맛있게 아껴먹고 있을지.

반만 씹고 반은 바닥에 놓았다가 천천히 아득하게 다시 달달한
붉음을 어떻게 씹고 있을지.

당근의 꽃을 개는 본 적 없고, 작은 잎이 젖히고 갈라지는 걸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당근의 맛은 정확히 구별할 줄 아는 개, 너를 지켜보는 여름날의 오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외출 후 가방을 내려놓으면 가장 먼저 머리를 박고 가방을
뒤적거리는 너에게 당근을 멀리 던져주는 일.

도무지 당근을 좋아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말했지. 당근을
좋아하는 개는 안다고. 그러니까 나도 좋아한다고.

거기에도 있을까. 풀숲이, 도요새가, 천사가?
거기에도
당근이 있을까.

쏟아진 당근 사이로 너의 짧은 꼬리를, 명주실 같은 털을 본 것도 같은데,

당 근, 하면 너는 어디서든 달려왔지.
이쯤 되면 개는 달려와야 할 텐데.



「당근」 전문



일터에는 이 시가 오래 붙어 있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개가 당근을 좋아해요?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여전히 당근을 좋아하는 개는 알지만 당근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당근을 떠올릴 때마다 하염없이 당근을 보고 있는 눈망울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개는 당근 말고 오이도 좋아했다. 아무래도 아삭한 식감을 좋아했나 보다. 엄마는 외출을 할 때면 당근이나 오이 한 조각을 거실 한가운데에 놓고 문을 닫고 나서야 “먹어” 외치며 자리를 비웠다.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 외롭지 않게, 엄마의 역할을 채워주는 당근. 나는 당근을 말할 때마다 슬픔을 용수처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낮잠을 자다가 엄마의 외출 소리를 들었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삼십 여분을 더 잤을까. 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실 어둠 속에는 당근을 두고 한참을 쳐다보는 개의 모습이 보였다. 개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당근을 쳐다보며 어서 “먹어.”라는 말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 조각을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을 개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문이 닫힐 때 먹어, 라는 말이 안 들렸던 거겠지. 그래도 개인데 너무하다. 허락을 받지 않고 먹어도 개니까 괜찮은 거 아닌가. 


꼬미가 병원에서 혼자 떠난 것도 내 괴로움이다. 살 수 있을 거라고 근거 없이 믿었다. 그날은 비도 왔고, 그날은 시의 마감이 있었고, 그날은 대학원 수업이 있었고, 그날은 개의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알아봐야 했고, 거실 한가운데에 잠든 듯이 긴장이 풀린 얼굴로 누워 있는 개의 콧등에 입맞추기도 했다.


개의 장례는 역시 다른 문제다. 유골을 도자기에 담아오거나 유골을 압축해 돌의 형태와 가까운 엔젤스톤으로 담아올 수 있었다. 뼈의 무게와 개의 종류에 따라 돌의 색은 달라진다는데 꼬미의 경우 옥빛이 많았던 게 기억난다. 작은 상자에 돌을 담고 돌아오는 길. 따뜻한 돌이, 전혀 개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꼬미의 털 일부를 미리 잘라두었던 것이 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종종 옷장 작은 상자에 담긴 돌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마다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종종 꼬미의 털 몇 가닥을 보면서 지냈다. 술 먹으면 울면서 집에 돌아와 몇 가닥을 다시 만졌다가 잃어버리기도 했다. 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엔젤스톤을 할머니 산소 옆에 묻어두고 왔다는 것. 의아했다. 외할머니와 꼬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꼬미가 외롭게 옷장 안에 있는 것보다는 빛 좋은 곳에서 나비도 보고, 새도 보고, 바람도 쐬고, 할머니도 만나면 좋을 것 같아 묻어두었다고 했다. 어른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러나 지금 그 돌은 다시 책상에 있다. 두 개를 잃어버렸지만,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엄마, 근데 나는 엄마가 돌을 묻어두고 왔다는 날에 꿈을 꿨어. 빛 좋은 곳에서 꼬미가 뒷발로 귀를 탈탈 털고 있었어. 표정이 나른하고 평화로웠어. 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암튼 그런 꿈을 꿨다. 두 개의 돌이 남긴 기억일까. 나는 산보를 할 때도, 일터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지금 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도 꼬미라면 어디에 앉아 있었을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것을 냄새 맡고, 어떤 표정과 한숨을 쉬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까 생각한다.


꼬미는 잉글리시 코카스파니엘로 사냥 능력이 뛰어난 견종이었다. 비록 도시에서 살아 사냥을 해본 적 없는 슬픈 개였지만. 그런 이상한 슬픔이 있었다. 너무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우리는 결론지었다. 꼬미가 가고 몽이를 만났을 때, (몽이도 잉글리시 코카스파니엘) 어릴 때부터 사랑만 받아서 슬픔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다 꼬미 덕이다. 마냥 귀엽기만 할 것 같은 개의 이야기는 다시 방향을 틀어 슬픔으로 이동한다. 몽이는 현재 일곱 살이며 녹내장을 앓게 되어 이제 곧 눈이 멀 것이라 한다. 개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없다는 게 인간의 안타까움이다. 좋은 거 많이 봐야 해. 지금 내리는 저 눈송이를 텁텁 물면서 웃고만 있을 게 아니란 말이야.


몽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면 사람의 얼굴을 잊고, 어떤 걸 기억하게 될까. 평소라면 움직이지 않았을 텐데, 개가 앞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서러워져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 애견 펜션에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 몽이는 낯선 곳에서 탐색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날 나는 윗층에서 잠들었으며 새벽 어둠 속에서 몽이를 마주치게 된다.


앞이 잘 안 보이는 개가 나선계단을 올라와 잠든 나의 얼굴을 보러 온 것이다. 정말 개는 너무하지. 언제 너랑 나랑 같이 잤다고. 어둠 속에서 문 앞에 앉아 있는 털뭉치를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개들은 정말 너무하다.




눈 멀고 있는 작은 동물에게





말을 해주면 좋겠어

    오렌지나무의 흰 꽃송이가

        눈에 젖은 잎사귀가

            눈송이를 따라 허공을 콱콱 무는

                귀여운 주둥이가







오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니







            아파 이건 뭐야

                놀라워

                두껍고 질긴 생물

                                앞에서 컹컹 짖으며







말해 주면 좋겠어







                바다에 떨어진 슬픔이 눈송이가 되어 흩어질 때







                눈멀고 있는 개의 눈으로







                                신은 빛을 보고 있다







말해 주면 어떨까







                                폭설에 발 감겨 울고 싶은

                                                                                누군가

흔들리는 꼬리를 보며 웃는다는 걸







                                                    그저 입 벌리고 있는

                                                                작은 동물 때문에





                                                                        살려는 사람, 저기 있다고







「눈 멀고 있는 작은 동물에게」 전문



이 시는 웹진 〈문장〉에서 발표했는데, 쓸 때도 고민이 많았다. 쓰고 싶은 문장은 사실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으로 발표를 한다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았다. (원고료를 그냥 받아가는 기분이니까.) 아무튼 개의 온전한 사랑을 받아본 경험자로서, 나는 저런 사랑을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슬프겠지만 웃긴 개의 이야기. 몽이는 이제 화곡동 멋쟁이, 화곡동 힙스독*으로 유명하다. 고글을 쓴 개, 고글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냥개.



아무래도 나는 개와는 이별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킴몽과 고글






* 킴몽을 그린 낙서 1, 2.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찢어진 페이지

영화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소설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사진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시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철학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음악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그림에서는 어떻게 헤어지나? 우리는 왜 헤어지나? 헤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붙잡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떠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과 어떻게 헤어지나? 가족과 어떻게 헤어지나? 친구와 어떻게 헤어지나? 연인과 어떻게 헤어지나? 동물과 어떻게 헤어지나? 사물과 어떻게 헤어지나? 종교와 어떻게 헤어지나? 직업과 어떻게 헤어지나? 작업과 어떻게 헤어지나? 도시와 어떻게 헤어지나? 자연과 어떻게 헤어지나? 피, 살, 뼈, 털이랑 어떻게 헤어지나? 영혼과 어떻게 헤어지나? 사랑과 어떻게 헤어지나? 아름다움과 어떻게 헤어지나? 여백과 어떻게 헤어지나? 과거, 진실, 정치와 어떻게 헤어지나? 형이상학과 어떻게 헤어지나? 쓰레기와 어떻게 헤어지나? 책과는 어떻게 헤어지나? 육식과는 어떻게 헤어지나? 침묵과 어떻게 헤어지나? 슬픔과 어떻게 헤어지나?, 정의와 어떻게 헤어지나? 시와 어떻게 헤어지나? 노동과 어떻게 헤어지나? 헤어짐과 어떻게 헤어지나?


사람?

어떻게 헤어지나?

2021년 6월 9일 수요일

바퀴하우스



“선생님의 시집,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일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있는데,

저와 달리 선생님은 이곳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시는 듯 했어요.”



그는 내게 스피노자의 《지성교정론》을 선물했다. 앞에는 짧은 편지가 적혀 있었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나. 역시 이 시선도 옳지 않다고 느꼈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만 보려 하나. 물론 일터가 진흙이라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는 힘이 있어 기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퀴벌레 이야기를 꺼내본다. 이 이야기는 꽤 더러울 수 있고, 또 이런 말을 하면 읽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본인이 선택을 하거나 귀를 살짝 접어두어도 되겠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산문에서 쓰면서 별도로 두고 싶으나 가끔은 모든 것이 이 생활에 함몰되어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나를 강사로 두는 시간이 있고, 그들이 “선생님이 시인이에요?”라고 물을 때 퍼뜩 어딘가로 돌아올 때가 있고, 그런 것과는 별개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수업을 할 때도 있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이야기하다가 “바퀴벌레”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스피노자의 책을 말하다가 바퀴벌레로 가는 이 삶이 요즘의 내 삶처럼 느껴진다.



바퀴벌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다.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이 변하고 몇몇은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이럴 때는 뜸을 들인다. 굳이 해야 할까? 물론 아이들은 이런 뜸에 더 요동친다. 우리는 바퀴벌레의 생존력에 대해 토론한다. 공기가 없어도 살고 방사선도 견디고 죽기 직전에는 아이큐가 올라가는 존재에 대해. 번식력이 뛰어나 암컷을 죽였을 경우 알집이 남아 있다면 그 알에서 새끼가 다시 태어나는 무한궤도와 택배 상자에 작게 알을 까고 기다리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누군가 샌드위치에서 몇 마리의 바퀴벌레를 발견하면 가장 괴로울까, 질문하고. 이제 그들은 샌드위치를 못 먹겠다고 떠들면서도 마리 수를 떠든다. 정답은 반 마리. 누군가의 비명. 다시 수업으로 돌아왔다가도 다른 반에서 이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들에게 바퀴벌레는 사실 머나먼 이야기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벌레는 실험 때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벌레, 혹은 산에서 사는 바퀴벌레 정도이고, 실제 목격한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조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변기에서 다이빙을 하며 만화경의 유리조각처럼 퍼졌다가 다시 좁아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평소 적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다시 물어보며 영화의 제목을 적으려 한다. “선생님, 조? 뭐라고요?” 카프카는 소설 <변신> 에서 한 마리의 갑충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를 표지 그림으로 그리지 말아달라 요청했지만 그러거나 말았거나 해맑은 바퀴벌레의 얼굴로 표지를 만든 카프카의 책도 떠오른다. 나는 바퀴하우스에 대해 (종이에 그려진 바퀴벌레 가족의 얼굴) 혹은 어린 시절 일찍 하교하고 집에 왔을 때 목격한 검은 새와 닮은 바퀴벌레에 대해, (이 바퀴벌레는 새처럼 날아다녔다. 그때 가진 가장 두꺼운 과학 교과서로 때려잡았는데, 그 두께감이 볼록하여 책을 덮어두고 그 방을 빠져나왔던 적도 있다. 며칠 뒤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온 슈퍼 바퀴벌레가 문제라고 떴었다.)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다윈의 진화론으로 넘어간다. 선생님은 어릴 때 곰보 여성의 매끄러워진 피부, 바퀴벌레의 괴담을 들으면서 자랐는데, 이거는 숨겨두도록 하자. 마치 내가 바퀴벌레로만 수업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시간은 매우 짧다.



이런 이야기로 산문을 몇 페이지는 더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장롱 아래 바퀴하우스에 있는, 끈끈이에 붙은 작은 바퀴의 가느다란 더듬이가 빛을 받아 사르륵 움직이는 걸 한참이나 지켜보던 아이였으니까. 가끔은, 어딘가에 기록하기도 애매하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도 애매한 일을 남기지 않는 걸 잘못이라고 느낀다. 잘 써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생각이다. 우리는 수업을 잘 끝냈지만,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선생님. 만약에요. 샌드위치에서 발견된 반 마리가 암컷이었으면요.”


“알.”


어디선가 알, 이라고 외치며 고개를 숙인다. 아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암컷의 경우 알집이 그대로 있었으면 제가 먹잖아요. 그러면 목에서 알을 까나요?”



나는 건조하게 답해준다. 우리에게는 위산이 있어. 단백질 먹은 거야. 때론 바퀴벌레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단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 여전히 이런 질문 속에 파묻힌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몇 번 웃는다. 과연 이걸 산문집에 실을 수나 있을까.



며칠 전에는 집에서 커다란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모든 이야기가, 나의 죄업이 돌아온 것 같아서 기절하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대신 잡아줄 애인이 있어 다행이었다. 비가 온 날에 방충망도 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 들어온 모양이었다. 다음에 또 보면 세스코를 부르자고 난리를 치는 내가 의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상상 속에서 무수한 바퀴벌레의 알을 보았는걸. 그게 마지막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와 헤어진 이야기는 잘 마무리된 걸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나 때는 화장실 가려다가 비누를 갉아 먹고 있는 쥐도 보았는데.)


아직은, 좋은 거 많이 봐야 하니까.

2021년 6월 7일 월요일

달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있어

최근에는 술자리에 갈 일이 없다.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나는 술자리에 가서 술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기이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다. 누군가는 우리는 친해지기 어렵겠네요, 라고 말했다. 자리를 떠야 하는 타이밍을 몰랐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뼛속까지 유교걸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커다란 테이블에 안주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흡연자의 몫도 나였다. 접시에 놓여 있는 젓가락, 붉은 국물이 묻어 있는 냅킨이 반쯤 접혀 선풍기에 흔들리는 걸 보는 남겨진 사람. 6인용 테이블을 혼자 지키는 사람. 대부분의 술자리는 몸이 힘들었던 기억뿐이지만 취기가 올랐을 때 예상치 못하게 들려오는 음악 같은 걸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쉽다.

선생님들과의 자리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어리숙하다. 그때도 나는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요령껏 자리를 이동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을 구경한다. 때로는 앞에 놓인 치킨의 살만 유심히 발라 먹는다. “얘가 그런 애가 아닌데.” 나를 데리고 온 누군가가 부끄러울 만큼 집요하게 먹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그게 컨셉이냐?” 물어본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컨셉으로 잡는지? 그러다가 문득 내가 앉은 자리에서 두 칸 옆으로 이동하게 되면 달이 잘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재빠르게 그 자리로 옮겼다.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에 “이 자리에서는 달이 예뻐서요.”라고 말했고 옆에 그는 “정말 시인이네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조롱이든, 칭찬이든, 취해서 아무 의미가 없든 간에. 그때는 머쓱했고, 속으로만 생각할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달이 예뻤으니까 됐다.

자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건 일터에서 자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지난주에 퇴사한 동료의 자리다. 그는 자리를 떠나면서도 내가 서랍을 잘 쓸 수 있게 메모를 남겨두었다. 그는 내게 정답 주머니 같은 사람이었는데.

일터에서는 사소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물어보기도 애매한 문제들이 생긴다. 나는 그런 질문이 생기면 그에게 물었다. 가볍게 톡톡 두드리면 빛깔 고운 정답 통이 굴러나오듯이, 중요한 단어를 건네주는 사람이 존재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융통성 있게 해결하라, 가 정답이지만 나는 타인의 오락가락한 감정의 곡선을 같이 타고 가다가 갑자기 나뒹굴며 떨어져 바닥을 짚고 있는 그 기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수업 때까지는 마냥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 이후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가 내 반일 때, 같은 반 아이의 목소리가 커서 자기 아이가 괴롭다는 학부모의 컴플레인을 받을 때, 아이가 사춘기라고 엄마와 아이가 서로 말을 하지 않아 결국 가운데에서 전달자가 되어 버렸을 때,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막연한 책임감을 질 수도 없는 애매한 것들의 정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내 감정이 다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건 선생님의 비법이라 적지 않습니다. 절 만나면 물어보세요.) 합리적이었다.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즐겁게 배웠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뛰어난 아이들을 만나서 숟가락을 얹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너희보다 일찍 태어나서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세상에, 이런 말을 하는 선생이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결혼을 한다.

나는 그를 만나서 “축하드려요.” 인사를 했고 그는 “아, 뒷이야기는 못 들으셨군요?”라는 대답을 받았다. 그는 결혼을 하면서 오랜 직장을 떠난다. 그가 남성이었기에 퇴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단 것이, 생각의 폭이 좁았다는 증거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는 떠날 때도 경쾌하게 떠났다.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소식을 갖고 연락할게요.” 이 말에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돈 빌려달라는 말이면 어쩌게요?” 이 말에는 “적당하다면 괜찮아요.”라고 답할 수 있었다. 나는 저런 말에는 언제나 농담을 섞지 않는다. 보통 상대방은 농담으로 듣지만.

그의 책상에 앉아 그가 봤을 법한 풍경을 본다. 책상은 좁고 벽은 깨끗하고 그의 서랍에는 예전에 쓰던 필기구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여기에서는 뭐가 보이려나? 나는 보이지 않는 창문을 그려낸다. 여기서도 달이 보이려나?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한 여름 밤, 농담들

미디액트 <한 여름 밤, 농담쓰기> 강좌가 처음 열린 건 2017년 8월이다. 첫 외부 강의라 커리큘럼을 짤 때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에 접근할 수 있을까? 당시에 나는 시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가볍게 쓰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한 여름 밤, 월요일에 모여 시를 씁니다. 시 같은 농담을 써도 됩니다. 자신의 농담 같은 시를 찾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 주변에서 어슬렁대며 한 줄 이상을 공들여 쓰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당신은 여유가 있어야 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거리, 기분, 취향을 빠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해와 애정이 바탕이 돼야 자연스러운 농담이 만들어집니다. 설명하고 싶은 욕망도 억누를 줄 알아야 하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강의는 그런 태도로 진행됩니다. 몇 가지 사항은 즉각적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농담이라는 가벼움을 내세웠지만 여성들의 시집을 매주 강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멍하니 여름밤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던 건 수업 도중에 그런 틈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 강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재미없는 사람을 위한 농담을 써봅시다, 라고 썼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수명 시인의 시집과 정한아 시인의 시집, 에밀리 디킨슨,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타인의 목소리로 듣는 시간은 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여기 모여 있는 걸까 생각했다.


Q.1. 왜 이 수업을 듣나요?

―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써보고자 합니다. 요즘의 생활이 좋습니다.
― 자신의 취향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점점 알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 재밌을 것 같아서. 개그 욕심이 있어서.
― 강의는 많이 듣지만 실제로 글쓰기는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
― 살기 위해 홀로 새벽에 끄적였던 소수의 글을 제외하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저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요.
― 시를 한 줄도 쓰지 않는데, 시를 쓴다,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요. 거짓말쟁이로 살고 싶지는 않았네요.
― 다른 사람이 어떤 농담을 쓰는지 궁금하다.
― 멋진 농담을 하고 싶어서.



Q.2. 싫어하는 것 or 이것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 갑자기 다가오기.
― 집에 같이 가기.
― 딱히 없음.
― 엄청 진한 초코 브라우니를 다른 사람 혼자 먹는 걸 바라보게 하는 것.
― 등단이 목표가 아니어서 고강도의 합평은, 괜찮습니다. (사양해요.)
― 직장 상사.


책상 안쪽에는 그들이 적어서 준 메모가 아직도 있다. 이 강의는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총 4년이나 진행됐다. 수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 여름의 농담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왔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있었고, 보기 좋게 뒤뚱거리는 농담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의 문장처럼, 우리는 밤에 앉아 저마다 농담을 나누고 반복되는 여름 없이 헤어졌을 것이다.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30대 여성의 몸



최근에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일단 턱을 집어넣고 허리에 힘을 주어 자세를 바르게 하시길 바란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근육의 문제, 자세의 문제, 식습관, 스트레스, 운동, 수면 부족, 모든 생활 패턴이 연결되어 통증이 생긴다. 나는 어떤 것에도 의아한 부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몸에게 했던 모든 것이 되돌아온 셈이다. 특히 작가들의 경우 일자목은 흔한 증상이라고 보인다. 가끔 작가들의 목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운다. 외국 프로게이머와 한국 프로게이머가 서 있었을 때, 앞으로 쏠린 목을 보는 순간 바로 깨닫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일터에서 주변 선생님들의 몸을 보면서도 격한 감정이 생긴다. 대부분은 허리 디스크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수술을 경험한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이 그렇다면 나는 괜찮다고 볼 수 있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룰렛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턱관절에 문제가 있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배 부분이 딱딱했고, 허리 관절이 약간 비틀려 있고, 일자목이라 머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있으며 허리 역시 일자인지라 충격 완화가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목을 고치고 싶다면 허리의 힘을 길러야 하고, 허리의 힘을 기르고 싶다면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전체적인 생활 태도와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근본적인 이야기를 듣고 오는 셈이다. 

최근에는 “제때 샐러드를 먹고 있어요.” 라는 변명을 한다. 선생님은 30년 동안 누적된 걸 생각하셔야죠, 웃으면서 대답한다.

조금이라도 다리가 올라가면 선생님은 웃으면서 답한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그 칭찬이 뭐라고 약간의 힘을 얻게 된다. 그는 어떤 운동이라도 하라고, 근육이 붙기만 하면 된다고, 균형은 그 다음 문제라고 말한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글에 대한 생각이 동시에 불어났다. 나의 삶은 글과 노동의 균형 사이에 있다.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나? 작가라고 말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재빠르게 나는 노동자야, 라고 덧붙였던 건 퇴근 후 후진 글을 쓰고 있을 내가 괴로웠기 때문이다.

작가 테오도르는 <다시 쓸 수 있을까>에서 “글을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글을 시원찮게 썼더라도 내가 그걸 알아차리기나 할까? 아니면 내 책을 내줄 너그러운 출판사가 대신해서 벌벌 떨게 될까?”라고 말했다. 죽어서도 후진 글은 쓰기 싫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지만 후진 글이라도 써서 정확하게 엎어지겠다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내게 필요한 처방일 것이다. 

도수 치료를 받고 나서는 매일 글을 쓴다. 근육이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산문을 쓴다는 건, 시를 쓰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고 느낀다.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균형은 나중에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올 때. 아마 도수치료 선생님과는 헤어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가 얼마나 일을 했는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아내의 직업은 무엇인지, 어떤 환자를 만나 힘들었는지, 어떤 체격을 가졌고,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는 안다. 그가 내게 어떤 용기를 불어 넣어줬는지도.

치료가 끝나면 달라져 있을까? 30대의 몸과 헤어진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리막으로 향하는 코스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주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여성의 몸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으니까.

2021년 5월 18일 화요일

식물의 기억



식물을 처음 키우는 이들이 고심하는 부분이라면 물 주는 방법일 것이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세요.”

화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면 겉흙을 눌러도 축축한지 모르고 속을 깊게 파도 알 수가 없다. 과하게 애정을 주면 과습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원망하듯이 축 처져 죽는 식물의 세계. 빛이 좋지 않으면 색이 변색되고 과하면 타버리고 통풍이 좋지 않으면 시들해진다. 바짝 마른 미라의 일부분을 화분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면 물을 주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언제 물을 주면 될까?

어제 잎의 각도와 오늘 잎의 각도가 멀어져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물을 준다. 어제의 각도를 알아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애매한 레시피 같은 말이다. 이틀에 한 번 정오에 50ml의 물을 흠뻑 주면 된다, 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식물에게는 그런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은 퇴근 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왔니? 신경 안 쓰면 확 죽어버린다?”

여름이 되면 방법은 더욱 난해해진다. 어제의 주기와 오늘의 주기가 빠르게 바뀐다. 주기는 짧아졌다가 비가 쏟아지면 다시 길어졌다가 반복된다. 

몬스테라, 호프셀렘, 스파티필름, 더피고사리, 뱅갈고무나무, 튤립, 체리세이지, 고수, 로즈메리, 라벤더, 고구마, 대파, 당근, 상추. 식물의 이름을 부르면 식물의 기쁨을 알려준 박지혜 시인이 떠오르고 그의 손길이 닿은 식물의 표정이 생각난다. 식물에게는 사람의 그림자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엄마는 이사를 가면서 모든 화분을 정리했다.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동생이 심은 아보카도를 영양제까지 주면서 기다란 나무 마냥 키워 놓았다.

무심하고 다정한 사람이 식물을 잘 키우는 것 같아요.

당신이 이런 말을 건넸을 때,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사람이 떠날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식물을 생각한다. 텅 빈 화분을 떠올린다.

꽤 많은 식물을 죽였다. 세로그라피카가 아름다워 들였다가 곰팡이가 슬어 버린 날을 기억한다. 장수 식물로 수명이 20년이었으나 1년을 채 못 살았기에 한 잎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울적함을 떨칠 수 없었다. 변산에서 만난 장미 허브도 생각난다. 장미 허브 화분을 들고 해안 일대를 산책하며 허브에게 강인한 이름도 붙여 주었다. 

술자리에서 “식물 물을 줘야 해서요.”라는 말을 하고 떠났을 때, 다들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택시를 타고 급하게 돌아가 물을 주고 편히 잠들었던 건 식물만이 아는 기억이다. 목화의 꽃이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는 것도 시인이 준 씨앗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식물을 말했는데,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집 식물에도 나의 기억이 스며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화분들과는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



2021년 5월 17일 월요일

은경이


불안은 편지를 쓸 때의 기분과 닮아 있다. 그때의 기분을 기록한다는 게, 한 사람을 위해서 말을 건다는 게 내게는 힘든 일이다. 은경에게는 하루에도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편지를 썼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열네 살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편지 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편지에는 줄곧 뭐하니, 나는 마음이 아파, 이런 말들이 가득하다. 왜 그렇게 마음은 아팠을까? 왜 그때도 맞춤법을 신경 썼을까? 왜 쓸 말도 없으면서 글을 쓰듯이 끄적였을까. 왜 스티커 사진은 붙여둔 걸까?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건 내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학을 가는 날, 은경은 울먹이며 그동안 받은 편지를 모두 돌려주었다. 선물로 다시 돌려준다고 했다. 작은 낙서까지 버리지 않고 모은 편지를 박스에 담아 다시 돌려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받으라니 받았다. 편지는 20년이 넘도록 처박혀 있었고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중학생 때의 나를 본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은경이 준 건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다. 한 장씩 찢거나 불태우고 싶은 기록이다. 그럼에도 왜 은경이를 못 잊나. 그는 쾌활했고 유머가 있었다. 단발이 잘 어울렸던 은경, 긴 눈으로 곧잘 웃었다. 앞니가 조금 튀어나온 그와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코카콜라 병에 담고서는 깔깔댔던 적도 있다. 그 물고기는 어디로 갔더라?


온갖 불분명함 속에 은경이가 돌려준 내가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편지를 찾았으나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발견될지 모른다. 나는 편지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이번 편지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시간을 나눈 만큼 우리는 친밀해질까?

J는 왼쪽 유리 가벽에 기대앉는 걸 좋아한다. 뒤에는 Y가 앉아서 긴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다. 옆에는 K가 앉아 허리를 튕기듯이 웃고 있다. 그들은 다른 빛을 뽐내는, 꼭 맞게 끼운 스테인드글라스 같다. J의 각진 안경테와 맞춘 듯이 J는 글씨도 반듯하다.

종이를 던진 아이가 모른 척하지만 그 안에 적힌 글씨체를 확인하면 범인을 알 수 있다. 이름이 없는 노트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쉽다.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제 글씨도 알아보세요? 아이들의 눈빛이 빛날 때, 언제나 수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이들을 갑자기 만나 익숙해졌듯이 헤어짐도 익숙한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시간표가 맞지 않거나 학습의 변화가 필요하거나 선생님이 바뀌거나. 이유는 타당하기에 능숙하게 헤어짐의 말을 준비할 차례만 남았다. 하필이면 말 많던 아이는 왜 이때 침묵을 할까.

괜찮아. 다시 만날 날 있겠지.

기껏 꺼낸 말이 이거라니. 우리는 매주 2시간씩 만났다. 웃고 쓰고 묻고 시간을 보냈다. 한 선생님의 통계에 따르자면 나는 아이의 시간에서 15% 정도 관여한 것이라고 한다. 

통계는 몰라도 J가 여전히 맨 왼쪽에 앉을 것은 안다. Y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이다. K는 여전히 허리를 튕기면서 몸 전체로 웃고 있겠지.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말이 나에게 거는 암시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을 유리 조각 같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헤어진 날에는 공원 흔들의자에 앉아 이팝나무를 들여다보았다.

문득 궁금하다. 아이들은 어떻게 헤어지는 걸까.

“아휴. 그러다 보니 십 년이 지났지 뭐야.”

선생님들의 말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의 숙제 노트를 잘 포개두었다.

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세월 다 갔다

지압을 받고 세신을 하다가 각각 들은 말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젊었을 때 고생하고 이제 돈도 좀 생겼는데 세월이 가버렸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그는 이 말을 끝내고 내 목을 꾹 눌러주었다.

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저 우는 거, 알았죠

노동절에 쉬는 일은 드물다. 이번 노동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휴일이 생겼다.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 사람 없는 곳에 가고 싶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 가게 된 건 그 이유였다. 가깝고 자연을 볼 수 있으니까.

근처에는 소각장이 있었고 쇠를 태우는 냄새가 났다. 철새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은 고장이 나 있었다. 둘레길 조성이 잘 되어 있었으나 보수 중인 곳이 많아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가 다시 크게 돌아서 되돌아 나왔다. 운 좋게 습지 근처에서 백로를 보았다. 백로는 묘한 기품이 있다.

집에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반대편으로 갈수록 점점 이상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었다. 육교를 올라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도로였다. 길이 없었다. 먼지에 벌어진 튤립이 엉뚱한 곳에서 보였다. 예상치 못한 하루에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처럼 도로를 걷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할 일이 생길까?

며칠 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에서 요청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강연을 하면서 다시 그때의 풍경을 그려봤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보수 중인 문턱에서 돌아갔다가 자전거를 피했다가 돌고 돌아 백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노들야학 강연장 안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있었다. 긴 책상 하나에 대부분 한 사람씩 앉았다. 오늘의 테마는 <배리어 프리, 핫플레이스를 찾아라>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쓰기 강연이라고 해서 시인, 작가들이 쓴 여행 책을 자료로 가져갔으나 제한적이었다. 내가 아는 세계는 비좁았다.

여행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건 경사도다. 작은 문턱도 그들은 산의 정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장소를 제공한 노들야학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턱이 없었고 문의 간격도 넓었다. 저런 문의 간격을 보는 건 익숙치 않았다. 이제 궁금해졌다. 이들이 어디를 가고 싶은지. 배리어프리 시설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가 더 필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는 목을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마이크를 끌고 돌아다니면서 글을 읽었다. 그들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바닷가에 그들이 있는 풍경을 그리면서, 강연을 마쳤다. 그려진 풍경마저 제약이 있었다. 끝나고 돌아서는 길에 행사를 진행했던 분이 다가와 말했다.

“작가님, 저 우는 거 알았죠?”

강연을 할 때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감정 변화를 느끼지만, 울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다. 가끔은 느끼고 때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면서 사람의 감정을 듣는다. 나는 그의 질문이 오래 생각난다. 그는 어떻게 그가 울고 있었음을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을까. 

내 옆에 있는 문은 여전히 비좁다. 어떻게 이런 문이 설계되어 있나.


*고령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물리적이며 제도적인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털보네 만물상

망원에는 털보네 만물상*이 있었다. 아저씨는 중고물품에 가격을 투박하게 적어놓고 몇몇 물품은 가져가면 꽁짜!* 라고 적어두기도 했다.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폐업한 가게의 컵이 즐비한 날도 있고 책장이 고스란히 있는 경우에는 책을 골라 구매하기도 했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물품은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장기판을 샀고 때로는 시집을 서비스로 받기도 했다. 시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함이 느껴졌다. 시집이 있는 만물상.

그날은 애견용품이 많았다. 애견 기저귀와 약을 먹일 때 쓰는 투입용 주사기, 작은 방석, 개의 여름 옷, 겨울 옷, 오래 물고 놀아 색이 벗겨진 장남감, 유산균, 개와 함께 지낸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개를 보내고 남은 주인이 떠올랐다. 개의 흔적이 너무 많았다. 집을 꽉 채우고 있었을, 구석을 기꺼이 내주었을 법한 물건을 보다가 돌아섰다. 개의 아픔과 사람의 아픔이 같을 수 있을까.

날이 더웠다. 작업실에 돌아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할 수 없는 일 주변에서 어그적대면서, 개의 꼬리를 그렸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면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던, 우리 개가 생각났다. 그 개는 비가 오는 날 왔고 비가 오는 날 떠났다.

털보 아저씨는 비가 올 것 같으면 비닐을 덮어두었다. 비닐의 유무로 그날의 날씨도 알 수가 있었다. 때로는 맞았고 때로는 틀렸다. 그럼에도 그가 친 비닐을 보고, 비닐 안에 들어가 있는, 나는 꽁짜다!를 앞에 두고 오래 시간을 보냈었다.


*털보 중고 재활용센터. 
*그는 꽁짜,라고 적었다. 가끔은 이것도 꽁짜, 나는 꽁짜! 등 다양한 문구를 적기도 했다. 

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세신사

그날은 휴가였고 목욕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대중목욕탕에는 포박*이라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음료수를 들고 탕에 들어가기 전에 문앞에서 얼쩡거렸다. 매점 아주머니는 속마음을 읽듯 뭘 받을 거냐고 물었고 손목을 확인한 후 30분 뒤에 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65번이라고 불렀다.

포박을 살 때 65번이었고 세신을 받을 때도 65번이었다. 마침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미국 드라마에 심취해 있었다. 맨몸에 현금을 봉투에 담고 수건으로 둘둘 감싸고 있는 게 마약 밀수를 하는 착각마저 들어 헛웃음이 났다. 이런 비약은 좀 심하지 않은가.

물속에서 또렷해지는 생각이, 어째서 물 밖으로 나가면 맹탕이 되는지 골똘히 느끼면서 이벤트탕과 온수탕을 오가며 몸을 불렸다.

세신을 받는 동안 나는 온순하게 몸을 맡겼다. 옆으로 누우라면 옆으로, 다리를 움직이라면 그 자세로, 아주머니 손길에 미끄러지면서 조금은 익숙한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리드미컬하게 들썩이는 몸을 느꼈다. 날렵한 손길에 탄복할 뿐이었다.

“부지런한 것도 타고나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름 모를 장미가 다 폈다잖아. 꽃구경도 못 가고.”

세신사들이 이름 모를 장미인지, 이름 없는 장미인지, 말하고 있었다. 귓가에 물이 들어가 먹먹했다. 그는 알이 굵은 장미 귀걸이와 원석 목걸이를 걸쳤고 업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멋쟁이네, 잠시 생각했다. 그가 미지근한 물을 온몸에 부어주었다.

“언니, 이거 가져가야지.”

그는 나를 65번 언니라고 불렀다. 몸이 매끈했다. 숙련된 솜씨로 부드러워진 몸. 밝은 물속에서 오래 떠있었다. 유연한 것처럼, 혹은 방금 영혼을 잃은 익사체처럼. 

세신을 한 번도 안 받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머리를 말리며 세신사들의 방에 걸린 속옷을 봤다. 작업복이어서 그런지 단단해보였다. 65번은 신발을 갈아 신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다 진 장미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8월이었지만.



*포박
(포카리스웨트와 박카스를 합친 음료수)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우울하고 친절하세요

몸살이 나고 힘들 때, 엄마는 그랬다. 한 번씩 크게 아프면서 늙음에 다가간다고. 사람이 늙을 때, 크게 아프면서 한 번씩 꺾이게 되는 거라고.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바스러지는 광물이었고 온몸이 축축한 생물이었다. 지나간 이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떠다닌다.

엄마는 철야예배에 자주 참석했다. 먼 곳까지 다녔다. 엄마의 친구도 교회 사람이었다. 그는 명랑했고 친절했다. 똑똑한 아들을 두었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자주 아팠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는 미안해했다. 나는 궁금했다. 누구한테 미안할까. 엄마의 친구는 철야예배에 참석했고 교통사고로 인해 즉사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적어도 되는지 언제나 모르겠다. 

주변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큼 건조해진다. 짧은 뉴스를 통해 찌그러진 차를 목격했다. 익숙한 교회 이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는 그날 같이 참석한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내게 같이 갔어야 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 벌초를 하러 갈 때, 엄마는 그에게도 인사한다.

“아들이 다녀갔나 보네. 깨끗하다.”

엄마가 보는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 한쪽에는 할머니의 무덤과 한쪽에는 엄마 친구의 무덤이 같이 있다. 산의 빛은 여전히 좋다. 나무들도 여전하다. 나는 속으로 인사한다. 예전부터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아프면 별생각이 다 난다고 하던데, 그런 순간일 수 있다. 나는 자주 우울해지고 친절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가엾게 느껴진다.

서른이 넘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도 선생님은 친절해서 좋다고 말했다. 의아했다. 인간의 슬픔을 이해한다면, 마흔이 넘어도 나는 친절할 것이다. 우울이 천성이라면 이것은 태도에 가깝다. 나는 사람에게 늘 미안하다. 엄마가 맞는 말을 했다. 그래서 역시 어른인 건가.

2020년 10월 15일 목요일

베데스다의 집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베데스다의 집>은 사회복지시설로 정신지체 노인 및 결손가정을 돌보는 곳이다. 낭독을 하러 도착했을 때 그들은 짧은 시간에도 환대해줬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들의 맨얼굴에 깃든 햇빛이 기억난다. 그날 나는 프린트된 시를 손에 쥐고 통유리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모두는 아니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사람은 뭘 해야 할까?

활자가 필요 없는 몇몇 사람들 앞에서 종이를 쥐고 낭독하는 사람. 그들이 열심히 듣고 있을 때, 지금 이 소리는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소리라는 것이 온전하게 전달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떤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 왜 진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를까. 사람은 이런 순간에 진심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날의 공터를 보았다.

가끔 낭독을 할 때면, 여전히 그날의 풍광이 반복됨을 느낀다. 어디에 있든 다시 전라북도 완주가 펼쳐지고 그날의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종이를 쥐고 있다. 

2020년 10월 13일 화요일

우리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

나는 어린 친구들을 가르친다. 저학년일수록 종말, 핵, 총 이 세 단어를 좋아하고 언제든지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신을 부정하기도 한다. 신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없다고 증명할 수 있는지 질문이 오고 가지만 오늘은 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수업을 하는 것이니 결국 딴짓을 하고 싶을 때 창의력은 증폭이 된다는 하나의 장면을 보여준 셈이다. 이들은 아마겟돈이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환경으로 인해, 공장식 축산을 만든 인류로 인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다.

여기에 신이 있나요? 이 질문에는 있다면 신은 사람들을 이렇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열 살짜리의 말이기도 하다.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 이유는 그날 우리가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속보로 올라왔고 미국 독감의 사망자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가 천산갑인지 아르마딜로인지, 어떤 정보를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 모두 말하고 있는 날에도 우리는 앉아서 수업을 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과학을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문학을 배우고, 그들은 또래들을 통해 유튜브도 배운다. 지금은 신의 증명까지 말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교재와는 상관없는 말로 떠들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신이 있다면 자신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엎드려 절하고 자기가 먼 길을 떠나 신선한 물을 한 잔씩 바치겠다고 과장스럽게 창문을 향해 절을 한다. 그는 어째서 물을 선택했고 굳이 창문을 향해 절을 한 걸까. 그는 신이 창문 너머에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까? 그에게 신이 없다고 증명해볼 수 있겠냐고 물으면 그는 다시 수업에 집중할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이 개기일식을 두고 커다란 괴물이 해를 삼켰다가 토하는 과정이라고 믿었음을 알려준다. 이 내용을 들으면 그들은 비실재물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괴물의 크기나 혹은 입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아까까지 신에 대해 논하던 애들이 맞는지 싶을 만큼 그들은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이들과 태양의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 뜨거운 걸 삼킬 수 있는 식도가 있는지, 토한 것인지, 배설한 것인지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뒤섞인 초월적인 세계를 펼쳐낸다. 상상력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재잘댄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친구도 있다.

옛날 사람들 참 멍청했네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왜 믿었을까? 이들은 200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앞으로 20배만 더 살면 비슷한 말을 본인들이 들을지도 모른다. 시대의 시선을 생각해보는 건 의외로 즐거운 일이다. 인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때의 우리는 왜 믿었고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똑똑해진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이 내준다는 숙제는 엇비슷하다. 그중에서 반복 되는 주된 내용이 있다면 바로 꿈을 주제로 한 페이지의 글을 쓰라는 것이다. 보통은 직업을 꿈이라고 적어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어떤 과정이어도 괜찮다고 귀띔을 해주면 글의 결은 달라진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꿈이 구름이라고 적었다. 이 친구는 자신은 처음에는 물이었다가 훗날 구름이 되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유유히 떠다니는 게 꿈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약간의 이성적 판단이 들어갔는지 전문직종을 하나 쓱 넣고 다시 그 일을 했다가도 하늘에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느끼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친구들은 자신이 이런 꿈을 적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많다. 인상 깊었다고 말하면 “제가 그런 글을 썼단 말이에요?” 묻는 게 대부분이다.

이들은 시대에 맞게 속담을 바꾸는 것도 잘한다. 예를 들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한 친구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판타스틱하다’라고 적었다.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라는 속담은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다'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나를 웃게 했던 건 좋다, 부분인데 아직은 글씨가 정돈되지 않아서 ‘좋다’만 크게 강조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런 친구들에게 문제를 내본다고 하자.

1950년대에 호주에 급격하게 늘어난 토끼를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은 믹소마 바이러스를 살포했습니다. 토끼의 99%를 죽이고 수를 줄였다고 좋아했지만 살아남은 일부 토끼들이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기면서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적어보세요.

몇몇 친구들이 내게 좋은 답을 주었다. 한 친구는 정답으로 ‘토끼처럼 살자’라고 적어두었다.

나는 다시 생존을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 어디에서 어떤 일로, 우리는 어떤 일을 벌인지도 모른 채 놓여 있는 생명체.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어린 친구들이 귀하게 여기는 쉬는 시간까지 미룰 수 있는 건 오로지 이야기를 생산할 때만 가능하다. "까짓껏 쉬는 시간을 미루죠. 더 말해주세요."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사연을 들려준다거나 아니면 “조금 커서 들어. 대략 십 년 후?” 내가 말을 안 하려 할 때.

그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더 이상의 질문도 하지 않고 집중한다. 이 친구들은 창의적이고 그들의 질문은 뛰어나지만 자신의 생각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쓸 것이다. 매우 즐겁고, 때로는 아픈 이야기를.

이런 시간을 공유한 것을 기록하면서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나, 해의 움직임이나, 토끼의 생존력이나, 신의 존재 유뮤에 대한 열 살짜리를 위한 답변이나 혹은 내가 쉬는 시간에 저 멀리 화성에서 감자를 심고 있을 우주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며칠 사이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4관왕을 했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에서, 이 경험을 공유한다.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것이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우리가 어떤 수업을 했는지 모르고 헤어졌다. 어린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신의 질문을 기억할까? 나는 출근 길에 그들의 질문과 얼굴을 떠올리며 걷는다. 여전히 그렇다.

신이 있다면 창문에 물을 뜨고 절을 하겠다던 K
구름이 되어서 지구 멸망을 기다리겠다던 J
토끼처럼 살자, 적고는 토끼 출판사를 차리겠다며 벌써 두 명의 친구 직원을 두었던 Y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다, 글씨가 유독 돋보이던 B
태양을 삼킬 수 있으려면 괴물의 식도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N

2020년 10월 9일 금요일

읽기모임


‘[읽기모임]을 모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여성들의 책을 읽습니다. 열일곱 번째 책은 <헤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입니다. 대화를 나누거나 의견을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읽고 메모지에 기록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읽기모임은 여성들의 책을 읽는 모임으로 2017년 12월에 시작해 2년 정도를 유지했다. 총 16권의 책을 읽었으며 한 번의 모임에 4명부터 12명까지 참여하여 꽤 많은 이들이 오고 갔다. 처음 포스터를 만들어준 건 뮤지션 아를이었다. 운영을 할 때는 이소호 시인이 도와주었고 유희경 시인의 도움으로 혜화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에서 두 시간가량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교류가 없는 모임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책을 두고 “있다”를 느끼기 위해 공을 들인 느슨한 연대 공동체였다. 참여자들이 읽고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면 사진을 찍어 그날 기록을 읽기모임 트위터 계정에 남겨두는 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Poststickbook)

여성들의 책을 읽었지만, 골라서 읽었던 적은 없었던지라 책을 고르는 것도 일이긴 했다. 기꺼이 읽혀야 할 여성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출퇴근만 4시간을 하며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고 퇴근 후에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운영자가 빠져도 되나?’ 고심하며 이를 악물었다. 직장인의 마음이 더 커져버린 탓이다. 막상 가면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안도와 사람들이 모여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그 모든 것을 잊게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부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제2의 성: 상, 하 /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닌 엔딩 / 수잔 맥클러리>, <사진에 관하여 / 수전 손택>, <브레이크-에이지 / 바토 치메이>*, <호텔 / 조애나 월시>,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 르 귄>,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로이스 W. 배너>, <무정한 빛 / 수지 린필드 >, <오늘 너무 슬픔 / 멀리사 브로더>, <캣콜링 / 이소호>, <거부당한 몸 / 수전 웬델>, <공감연습 / 레슬리 제이미슨>, <연대기 / 한유주>, <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읽었다.

책을 나열한 이유는 그들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 모임의 성격은 결국 어떤 책을 읽었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책을 선정하면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서 신청했다. 책에 따라 사람들이 바뀌었다. 낯선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니까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필체도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곧 잊어버렸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읽은 16권과 포스트잇들은 도대체 어떤 걸 남겼을까?

나는 이소호 시인에게 다음 읽기모임을 하게 된다면 그땐 일 년치의 책을 미리 선정하고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의견이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주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어도 응원해줬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비대면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줌(zoom)에 접속하여 각자의 책을 읽고, 포스트잇을 보여주면 캡처해도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모여야만 여무는 마음이 있어 나는 미래의 책을 기다리기로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하니까.






*1992년 첫 연재를 시작으로 1999년 완결된 코믹스. 바토 치메이(馬頭ちーめい). 여성 작가. 현재 작품은 이게 유일하다고 한다. 만화책을 읽었던 시간도 있어서 이 책은 나만 가져가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0년 10월 8일 목요일

맹인 안마사


그는 서른여섯 살에 시력을 잃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온전히 앞을 볼 수 없었을 때 맹인 안마사를 뒤늦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일이 없어서 의아했다. 그는 습관처럼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고 대화한다. 여전히 안경을 낀다. 많은 이들이 너 사실 보고 있는 거 아니야? 붙들고 시비를 건다.

자신이 시력을 잃었음을 증명하면서 그는 일을 한다.

“손을 내밀어 주면 되는데 자꾸 끌고 가요. 그러면 모든 균형을 잃어요.”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며 엉덩이를 내빼고 조명 아래 끌려가는 흉내를 냈다. 라디오에서는 휴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그는 내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를 일 년 정도 만났지만 여전히 처음인 사람이다. 최근의 그는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안경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의심해서 맨얼굴로 다니다가 부딪혀 수십 바늘을 꿰맨 이후로는 더욱.

“이 직업도 보람이 있어요.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죠. 하지만 노래를 하고 싶네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최근에 오디오북을 들었다고 했고 제목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들어도 제목을 읽을 수는 없다고 했다. 몇 달 뒤에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게 완전 다른 세계예요.”

나는 그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똑같이 질문한다. 그가 운동하냐고 물으면, 나도 어떤 운동을 하냐고 묻는 방식이다. 그는 주로 계단을 올라가는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고층 건물을 오를 때면 계단을 이용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는 찜질을 가져왔고 언제나처럼 나는 천장을 보며 누웠다.

그를 보면서 심재휘 시인의 <중국인 맹인 안마사>를 떠올렸다. ‘손으로 더듬어도 잘 만져지지 않는 것들아 /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늘어지는 것들아 // 숨을 쉬면 결리는 나의 늑골 어디쯤에 / 그의 가게가 있다’*

최근에는 캐치볼을 하고 종종 찾아간다. 그는 캐치볼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침착하게 공을 던지고 받는 간단한 놀이라고 말했다. 다치지 않게 주로 연식구를 던지고 글러브로 잡고 대부분은 공을 잡으러 뛰는 시간을 보낸다고. 그는 야구 같은 거네요?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내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었고, 다시 그가 지압해줬던 유명한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지압을 받았다.

*그의 지압 솜씨는 좋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늘어지는 것이 있을 때, 나는 그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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