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7일 월요일

은경이


불안은 편지를 쓸 때의 기분과 닮아 있다. 그때의 기분을 기록한다는 게, 한 사람을 위해서 말을 건다는 게 내게는 힘든 일이다. 은경에게는 하루에도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편지를 썼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열네 살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편지 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편지에는 줄곧 뭐하니, 나는 마음이 아파, 이런 말들이 가득하다. 왜 그렇게 마음은 아팠을까? 왜 그때도 맞춤법을 신경 썼을까? 왜 쓸 말도 없으면서 글을 쓰듯이 끄적였을까. 왜 스티커 사진은 붙여둔 걸까?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건 내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학을 가는 날, 은경은 울먹이며 그동안 받은 편지를 모두 돌려주었다. 선물로 다시 돌려준다고 했다. 작은 낙서까지 버리지 않고 모은 편지를 박스에 담아 다시 돌려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받으라니 받았다. 편지는 20년이 넘도록 처박혀 있었고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중학생 때의 나를 본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은경이 준 건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다. 한 장씩 찢거나 불태우고 싶은 기록이다. 그럼에도 왜 은경이를 못 잊나. 그는 쾌활했고 유머가 있었다. 단발이 잘 어울렸던 은경, 긴 눈으로 곧잘 웃었다. 앞니가 조금 튀어나온 그와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코카콜라 병에 담고서는 깔깔댔던 적도 있다. 그 물고기는 어디로 갔더라?


온갖 불분명함 속에 은경이가 돌려준 내가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편지를 찾았으나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발견될지 모른다. 나는 편지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이번 편지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