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2일 수요일

생각의자

요 몇 년 미술계(?)에서 출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 같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야기할 재간은 내게 없다. 어디 무슨 커리큘럼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원래 그쪽에서는 관심 많았는데 내가 관심이 없었던? 그냥 부수입 열풍으로 평균적인 관심도가 높아진? 역시 체감에 따르면, 문학 쪽에선 누가 이걸 썼느냐 어떻게 얼마나 읽었느냐가 더 중요하지 출판 그 자체로 표현되는 의미에 대한 ‘공식적인’ 흥미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테면 ‘공식적이라니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는 편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로, 하여간 책이 나오거들랑 축하를 해 주고, 이 부분이 특히 좋았고, 하여튼 축하를 하고... 책이 예쁘게 잘 나왔고... 어느어디 출판사가 좋고... 그뿐이면 족하지 그 이상의 관심을 이런 초분업시대에 굳이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접 감각 가능한 형상을 만든다는 면에서, 따지자면 출판은 문학보다 미술에 더 가까운 일이 맞겠다. 한편 도서가 아닌 텍스트의 생산에 관하여서는, 나의 너무나 짧은 식견으로도, 미술계에서 나왔다 하는 글들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대체로 끔찍한 수준(미안합니다)이었는데, 옳게 쓴다는 데 대한 무신경함이야 차치하고, 가치 있는 글에 대한 감각을 다같이 통째로 어디다 내버린 듯한, 그런 게 있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구는 그런... 즉 문학계 저자의 글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 교정했지만 미술계 저자의 글은 밖으로 눈물을 흘리며 교정했다는 말이다. 내가 너무 성급히 일반화를 하고 있나? 누구나 모든 걸 조금씩은 안다 하며 누구나 모든 걸 조금씩은 말하려는 시대, 석박사니 교수들이니 기라성이니 하는 이들조차 개소리를 서슴지 않는, 다같이 성급한 초비상시대(이게 도대체 무엇에 대한 비상함인지?)이니 나의 성급함도 약간 상쇄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는 결국, 만약 우리 출판사에서 ‘뭐 이 정도면 됐군’ 하면서 책이랍시고 대충 만들어서 냈다가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어떤 하찮은 미술계 독자 나부랭이가 그 만듦새를 보고 나와 똑같이 느낄 수가 있다는 뜻이겠다. ‘美的으로 끔찍한 수준이야...’ 그런 건 참을 수 없다.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우리는 참을 수 없다! 나는 출판에 관여하는 여러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 중에서도 특히 저자와 디자이너 사이의 그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생각의자’ 출판사 특색의 도서 생산 시스템은 직무순환제다. 그것은 우리의 노동계약서(우리는 ‘근로’라는 단어를 지양하기 때문에)에 명시되어 있다. 생각의자 출판사에서는 교정 편집 기획 홍보 디자인... 모든 직무를 구성원들(대표 포함)이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 못하면, 서로 이를 악물고 가르쳐서라도 한다. 생각의자 출판사 최대의 목표는 직무순환제의 제한 없는 확장이다. 인쇄, 포장, 운송, 환경관리... 예외적으로 여기서는 당신의 책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저자도 돌아가면서 할 테니까.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