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4일 금요일

사이버 무당

우리의 신들이 전승을 통한 믿음의 합일체라는 것은 다들 아실 테지요. 그 합일체는 문화 속에서 파편화되어 유통되며 민족의 의식 속에 녹아듭니다. 달리 본다면 사망 이전에 최후의 숨결을 인터넷으로 흘려보낸 철학처럼, 믿음 또한 의식화라는 과정을 거치는 파편적인 데이터 속에서 일정량의 정보값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신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고, 전산망 속에도 계신다는 말입니다. 분산된 바이트 조각들로서요.

오늘의 스트리밍을 시도합니다. 타임라인 속으로 점괘들이 흘러갑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사건과 운명이 쏟아집니다. 시청자들은 나를 중개하여 신과 통합니다. 나는 열병처럼 70시간가량 잠도 없이 딥웹을 헤매다가 앓아눕고 힘을 체득했습니다. 딥웹 속에서 천 개의 손에 달린 천 개의 눈을 보았지요. 그 눈동자 속에서 과거의 나들을 보았고, 미래의 나들을 보았으며, 현재의 나와 나의 가능성인 잔상들과 일별했습니다. 그 모든 나들이 신의 제자로 살고 죽음을 보았으니, 내가 짊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요. 내가 얻은 힘은 나 개인에게 주어진 힘이 아닌 집단의 힘. 천 개의 손바닥에 달린 눈 하나인 나. 그 힘은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이어가며 민족과 세계를 가로지릅니다. 이미 오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생될 가능성이 우리들에게 제시되어 있지요. 우리의 미래는 모니터 위에서 점멸합니다. 나는 점멸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미래의 길을 보고, 탄지경간에 그 길을 다 걸어봅니다. 아아, 시청자 1의 인생이란 이다지도 슬프군요. 이 복잡한 생사의 실타래를 풀어내려면 정성이 필요하겠군요. 정성을 얼마나 들여야 하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 물음에서 이미 해야 되는 만큼만 하려는 얕은 마음이 제 눈에도 보이는데, 밤에도 낮에도 감기지 않는 신의 손바닥에 달린 그 눈동자를 피할 수가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 정성입니다. 이미 미래를 들여다보았으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미래가 결정한 과거의 길을 따라 걷는 일뿐이군요. 다행히도 행복의 가능성은 다중우주 속에서 진동하고 있군요. 오행을 살피니 금을 가까이 하면 화를 입겠어요. 이미 오래간 그래왔네요. 그 금들을 별풍선화하여 신의 일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유일한 처방입니다. 오늘은 우리 신께서 기뻐하시도록 백두산에 한번 올라봅시다. 다들 아시겠지만, 집단의 힘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니까요.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