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일곱 개의 비유 중 하나

(이어서) ... 왜냐하면, ‘내가 틀렸는지 세계가 틀렸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정공의 세계에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손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쇄는 어쨌든 이루어진다. 메일을 쓰든 밀어붙이든 전화를 돌리든 모른 척하든 인쇄라는 최종심 전에 결착을 지어야 한다. 지어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통받고 있는 교정공의 기분만을 틀린 것으로 정하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오류는 반드시 집단적이고 종합적이다. 고통을 교정하려고 드는가? 그것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 보자. 고통을 교정해 보자. 교정공은 차원을 오가며 의심해야 한다. 어쩌면 고통도 가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 옳은 고통과 그렇지 않은 고통으로, 마땅한 고통과 그렇지 않은 고통으로. 마땅한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원인을 찾아낼 수가, 어떤 오류인지 알아낼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규범상의 오류일까? 일관성에 맞지 않는 걸까? 손가락의 잘못된 움직임? 밖으로 이어졌는지 안으로 이어졌는지, 오류의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을 따라간 끝에 만난 것을 교정한다면, 고통을 좀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는 것일 수 있다. 그게 바로 으뜸차원의 교정공이 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 이보십시오, 읽고 있습니까? 그게 바로 해야 하는 일이다!

찾아낼 수 없다고? 찾아내도 고칠 수 없다고? 머릿속이라는 화면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꼬집어 보자. 넓게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뭔가를 고쳐야 하는 사람, 고치려는 사람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사람 모두... 어쩌면, 뭔가를 고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좀 더 적절하게 말해, 그 정의상 일이란 뭔가를 고치는 행동인 것이다(‘돈이 나와야 일’이라는 얘기는 최신의 오류다). 뭔가를 뭔가로, 그것이 아닌 것을 그것으로, 씨앗을 열매로, 공터를 집으로, 철을 기계로, 식료를 음식으로, 1학년을 6학년으로, 아픈 사람을 덜 아픈 사람으로, 드러난 것을 덮고 덮은 것을 드러내면서, 맞추고 끼우고 바꾸고 표시하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한 상태를 다른 한 상태로 만드는 행동으로써 세계와 상관하여 얽고 얽히는 것이 일이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의 어떤 것과 이곳의 이것을 대조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과 뭔가를 주고받으며, 누군가와 함께 경험 가능한 이전과 이후를 자아내는 행동이 바로 일이다. 그것은 반드시 공동의 이전과 이후이므로, 오류 역시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걷어내고 말하자면, 바꾸고 싶은 상태 역시도 종합적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한 인간인 채로 그에 닿는 데에는 한도가 있다. 고치려는 이가 교정불가능성과 대면하는 것, 즉 막대하고 압도적인 고쳐져야 할 것의 더미 앞에서 무력(無力)을, 저·무능을 겪어 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로부터 받는 고통도.

집게손가락을 벌려 다시 확대해 보자. ‘고쳐지기 전’이라는 상상이 주는 막대함 앞에서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때... 선배 교정공들의 모르는 얼굴(데스마스크)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제는 물질을 떠나신 선배님들, 교정규범이란 짚더미를 등에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었던. 나와 같이 보이지 않는 동료 교정공들의 분투가 재 되어 날린다. 연기 맵고... 눈물 콧물 기침과 함께 ‘나 혼자’라는 상상의 오류는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집게손가락으로 꼬집어 보자. 두 번, 세 번. 만사가 이미 개입들이라고, 이미 협동이라고 생각해 보자. 일이란 어쩌면 사람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다. 만약 인간들의 상태를 인간 아닌 것들이 고치려고 한다면? 지금 여러 방향의 힘이 있다고도 해 보자. 자연, 문자, 자본... 이것은...? 어쩌면 고통의... 고통의 분배가 문제인 거 아니냐?

오 제발 정신을 좀 차려 봐...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사건의 전말

우리가 충분히 먼 곳에 있다면,
우리가 충분히 빛날 수 있다면,
우리가 충분히 오래된다면,
우리가 시작할 수 있다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너는 낡은 장판을 걷어 올렸다. 드러난 시멘트 바닥에서 4년 전 거길 비췄던 백색 LED 빛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적색, 녹색, 청색 광원은 장판 밑의 콘크리트 균열에서 4년간 대기중이었다. 네가 그 빛의 말단을 붙잡을 수 있었다면, 구겨진 광선을 천천히 펼칠 수 있었다면. 넌 그 빛의 말단을 붙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실패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어떤 빛은 네 등을 할퀴고 갔을 것이다. 어떤 빛은 네 정수리를 관통했을 것이다. 어떤 빛은 네 발 밑에서 무한히 진동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어떤 빛을 오른손으로 사로잡았고, 그 빛은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빠져나갔다. 어떤 빛은 네 망막에 걸려 사라졌고 어떤 빛은 아직도 네 배꼽에 고여있다. 어떤 빛은 결국 반사되어 다른 항성을 비추러 떠났을 것이다.

네가 처음 빛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수년치 새벽을 바친 뒤에야 내린 결정의 새벽을 보낸 네가 잠시 빛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인과가 어떠하든 그것이 네가 내보낸 첫 번째 빛이었다 임의로 정하기로 했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결정한 것은 것은 언젠가 응답하니까. 어쩌면 그 응답이 이미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네 손등의 빛에 대해 상상한다. 네 정수리와 손톱 밑의 빛에 대해서 상상한다. 이 빛이 각각의 광원으로부터 왔다면, 이 빛의 첨단을 빛의 시작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언젠가 이 빛의 말단이 결국 내게 닿을 것이라면 그걸 보증할 수 있다면 내 정수리의 시간대와 네 손톱 밑의 시간대가 다르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상상이 허용된다고 볼 수 있진 않을까. 그 빛들이 날 관통하던 순간에 내 정수리는 수억 광년 전에, 네 손톱 밑은 수백 광년 전에 있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진 않을까. 그 모든 시간들이 동시에 너와 날 관통했다고, 결국 우리가 이미 그 모든 시간들을 종단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일들은 매일같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 동시성이 충분히 그럴듯한 동시성이라 해도 우린 느려터졌으니까. 인과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너무 자명하니까. 우린 자명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아. 그것은 자명하니까. 입 밖으로 꺼내지는 것들은 모두 의심스러운 것들이니까. 충분한 대화와 충분한 한 해와 충분한 추돌과 널 추격하는 미래의 말단들. 난 너와의 대화를 모두 내 손톱 밑에 숨겨두었다.


창백한 푸른 점 게임

게임을 시작하기 전

  1. 이 게임을 위해선 적어도 세 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2. 각각 HQ, 보이저, 61억킬로미터를 맡는다.
  3. 최대 두 명의 참가자가 HQ를 맡을 수 있다.
  4. 이때 한 명은 칼 세이건을 맡는다.
  5. 최대 두 명의 참가자가 61억킬로미터를 맡을 수 있다. 이때 한 명은 지구 쪽 — 시작점 —, 나머지 한 명은 보이저 쪽 — 끝점 — 을 맡을 수 있다.
  6. 대화 중 61억킬로미터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7. 61억 킬로미터에 두 명이 참여할 경우 끝점이 61억킬로미터를 갱신한다. 증가량은 61억킬로미터 혹은 61억킬로미터의 끝점이 임의로 결정한다.
  8. 어차피 인간들이란 중요한 때엔 항상 느려터졌으니까, 얼마나 늘어나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게임 방법

  1. 세 팀은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해 상상한다.
  2. HQ와 보이저는 보이저로 전송된 신호에 대해 상상한다.
  3.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 사이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4. HQ는 그 신호를 보내기까지 지난한 회의와 행정의 장벽에 관해 상상해본다. HQ가 두 명일 경우 둘은 토론한다. 이 신호의 비용과 시간과 의미에 대해 토론한다.
  5. 칼 세이건은 찬성 측, HQ는 반대 측에 선다.
  6.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 사이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7. HQ와 보이저는 신호를 디코딩하고 처리하는 꼼꼼한 회선과 그 회선을 직조하던 손을 상상한다.
  8. 보이저는 결정한다.
  9. 보이저는 렌즈와 초기 Vidicon과 열과 우주의 냉기룰 상상한다.
  10. 일련의 장치를 작동시키는 기계 구조를 상상한다.
  11.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12. HQ는 회신을 상상한다.
  13. 61억킬로미터의 거리를 상상한다.
  14. 거리를 시간으로, 시간을 거리로 표기하는 경계에 대해 상상한다.
  15. HQ는 도취하는 영어권 국가의 백인 남성을 흉내낸다. 만약 HQ가 두 명일 경우 칼세이건이 해당 남성을 흉내낸다.
  16. 61억킬로미터는 지금까지 증가한 거리를 광년으로 환산한다.
  17. 보이저는 인간들의 게임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인간들이란 중요한 때엔 항상 느려터졌으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발 밑의 별빛과 달빛, 내 물통에서 한참 느려진 우주선. 내가 각각 다른 시간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 혹은 내게 전혀 다른 시간이 동시에, 충분히 동시에 관통했다는 것.

어떤 시간들은 단단하고 어떤 시간들은 눈앞에서 흩어진다. 어떤 시간에는 어떤 시간이 내 이마에 부딪쳐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어떤 시간들은 밀고 나아가야만 했고 어떤 시간들은 날 밀어내기도 했다. 우리의 방향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의 궤적도 옳을 것이란 믿음.

우린 어쩌면 다른 중력장에 속한 걸지도 모른다. 우린 한편 영원히 마주칠 수 없을 것이다.

올해 새벽을 지출해 나의 이름을 짓고 버렸다. 우주 어딘가에는 나와 당신을 떠난 새벽이 모인 별이 있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우리의 표면을 지나친 말들은, 어떤 빛들은 우리가 알기도 전에 어딘가 부딪친다. 우리의 표면을 지나친 말들은, 어떤 빛들은 결국 어딘가 부딪친 후 온 것들이다. 애초에 우리에겐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시작한 모든 것들은 이미 시작된 것들을 종단할 뿐이다.

올 한 해는 붉게 늘어지다 까맣게 얼어붙을 것이다.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정말로 나를...

이런 이야기를 들어 봤을 수도 있다. 한 단어에서 첫 자와 마지막 자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의 배열을 마구 뒤섞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문장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 인간의 정신은 글을 한 자 한 자씩 읽는 게 아니라 단어째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Aoccdrnig to a rscheearch at Cmabrigde Uinervtisy, it deosn't mttaer in waht oredr the ltteers in a wrod are, the olny iprmoetnt tihng is taht the frist and lsat ltteer be at the rghit pclae....
영어를 줄줄 늘어놓은 것을 용서해 달라...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으로 번역되어 재밌고 신기한 밈 정도로 알려졌는데, 교정공의 입장에서는 꽤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철자를 뒤바꿔도 문장을 읽을 수 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지라도 일어나게 두어선 안 된다. 독자이긴 독자이되 독특한 종류의 독자인 교정공은, 틀린 문자열을 재정렬해주려는 뇌의 자동 활동을 거슬러야만 한다. 기필코.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글자들을 뒤바꿔’ 놓는가? 저자, 디자이너, 당연히 교정공 자신까지 포함하여, 글자를 건드릴 수 있는 인간들 모두... 그리고 글자를 건드릴 수 있는 컴퓨터들. (여기서 인쇄 쪽에서의 오류까지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런데 틀릴 수 있는 것은 철자만이 아니다. 모르는 어문 규범, 잘못 아는 어문규범, 손가락의 잘못된 입력, 교정 사항이나 의견에 대한 잘못된 읽기, 망각, 누락, 도서 형식상의 통일 사안, 사실 자체, 번호들, 선들, ‘스타일’, 그 외 온갖 종류의 부주의, 똥고집, 마치 요정처럼 왔다 가는, 인터넷과 프로그램상의 전기적 오류들... 틀릴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말 그대로 상상초월이다. 책 만들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무엇이 틀렸는지’에 앞서 무엇을 틀릴 수 있는지부터도 알지 못한다. 저자들? 언어에 대해서도 문외한인데 책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디자이너들? 애초에 글자라는 걸 읽기 싫어하고 실제로도 읽지 않는다. 그 외? 그 외 녀석들의 관심은 누구의 관심이건 다 훼방일 뿐이다. (재차, 이렇게 쓰는 걸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틀렸는지 맞았는지 알지 못하는 정도라면 다행이다. 맞는데 틀리다 알고, 틀렸는데 맞는다 안다. 틀린 것을 안다 해도, 고쳐 달라 말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을 고치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고친다 해도, 어떻게 고쳐져야 맞는지를 모르고 맞게 고쳐졌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영역들에서 부분적으로만 맞고 부분적으로만 틀린다. 이 엉망 사태 가운데 던져진 사람은 교정공이다. 그 모두가, 교정공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게 바로 교정공의 일이다. 이제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자. 교정이란, 교정공을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이 어디까지 틀릴 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합심하여 만들어내는 온갖 상상도 못할 오류들을 찾아내 고치는 싸움이다. 뜻만 통한다면 그럴싸해 보이기 마련인 글을, 교정공은 읽지 말아야/읽어야 한다. 머릿속에만 있는 ‘무오류의 책’과 대조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교정공은 상상 초월의 오류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위로 날아가야 하고 지하로 파고들어야 한다. 모사든들람과 사아람닌것들이 합하심여 만내어들는... 앞서 말한 밈은 어떨까? ‘캠브릿지 대학의 연구’라는 것부터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제 나, 교정공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으뜸차원의 어떤 교정공이 있다고 하자. 그 교정공은 생각한다.
‘나를 좆되게 하려는 뭔가(들)가 있어서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은 그대로 두기 어렵다. 정말로 저 교정공을 좆되게 하려는 뭔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저 사람(또는 무엇)이 나를 해치려 한다’는 느낌, 악의 가운데 던져졌다는 느낌은, 그가 정말로 악의 가운데 던져졌는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그를 망친다.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적할 정도로 그러하다. 그것은 위험한 도식이다. 사자의 아가리 속에... 손을 넣은 상상만으로 그는 어깨를 쓸 수 없다. 그래서는 허공에 손을 물린 꼴이고, 도탄으로 빠져드는 미끄럼틀을 즐기는(당연히 전혀 즐겁지 않겠지만) 모양새다. 그가 아니라면 꼭 누군가, 일테면 악마가 즐기는 듯이. 미끄럼틀에 스스로 다시 오르는 것은 그다. 다시 양손을 허공에 뻗고... 다시 엉덩이가 갈리고 만다. 저 교정공은 정신적 위기에, 이상한 마음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 마음은 교정공이 품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맘에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한수의 비유를 들어서라도 교정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교정공은 좆되지 않는다는 걸, 교정공은 하나의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잉잉징징이 아니라 칙칙폭폭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버금차원의 교정공으로선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자, 무엇이 오류냐면...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삼일

하나 둘 셋, 당신이 숫자를 셀 때마다, 나는 이자를 계산했습니다.

우리가 모인 그날
여기서 제외된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꼬박 삼일이 되어서 호명이 끝났어요

우리가 모여 그 일에 대해 의논할 때
너는 그 말을 해선 안 되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어젠

당신이 세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젠
당신이 들은 것보다 더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어젠
우리가 주운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흘렸답니다
손끝에선
당신의
숨소리가 가지를

쳤어요 그리고 당신은

“우주 어딘가에는 불면의 밤이 모여 만들어진 행성이 있다지. 나는 새벽 내내 너에게 거짓말을 늘어 놓았지. 네 음성은 새벽 내내 나를 부수어 놓았지. 침대 아래 흩어진 나를 너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

새벽은 영원 근처에서 도려내지고, 아침이 그 자릴 채웠습니다

부서진 나는 하나씩 침대에서 일어나 너를 찾아갔다 흠뻑 젖은 나는 너를 안고 잔뜩 화난 나는 너를 안고 썩은 나는 너를 삼키고 아픈 나는 너를 해치고 너는 나를 달래고 너는 나를 달래고 나는 네게 사과하고 사과하고

“… 우주 어딘가에는 불면의 밤이 모여 만들어진 행성이 있다지. …”

너와 내가 위 아래로 줄줄 흐르는 영원의 근처에서 거짓말이 줄줄 흐르는 꼬박 삼일이 되어서야 모든 것이 끝나는

너는 그 말을 해선 안 되었어

2023년 12월 8일 금요일

논문

 

 

그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교수님을 만난다. 그곳은 6층이었고 두 사람은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는 어색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는데 느닷없이 교수님은 페르시아어를 하실 줄 아나요라고 묻는다. 교수님은 그 말을 유쾌하게 받아쳤지만 1층에 도착하자 한마디 말 없이 다른 길로 향한다. 그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교수님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늦었구나. 그는 최근 논문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가 탈락한 이유는 그가 말주변이 없고, 재미가 없으며, 너무 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었고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반대를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성이 없는 학생들의 논문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만큼 분위기를 잘 따른다. 그의 논문은 취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취미우선론을, 취미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취미와 돈 버는 일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는데, 아마도 교수들은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게 어때서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강경함보다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자는 입장을 펼친 다른 학생들의 쪽을 택한다. 그의 논문은 영원히 탈락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은 그의 관심 밖이다. 그 말이 그에게는 눈처럼 들린다. 지금 오는 눈처럼 말이다. 그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집은 ㄷ자 구조였는데, 시작점에는 거실이 있고 끝나는 지점에는 아빠가 쓰던 방이 있다. 그리고 ㄷ자의 중간에는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이 두 개 있는데, 그 방들은 습하고 곰팡이가 슬어 있다. 그는 그 방을 지나서 아빠가 쓰던 방으로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곳이 그의 집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여기는 누구 집이지 누구에겐가 묻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

2023년 12월 1일 금요일

23년 1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58)
―――
곡물창고: 1 (20)


이달의 총격려금

10,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24 / 10,000원 ― 곡물창고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98,270원 (10,000원 + 287,889원 + 381원)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개꿈

그냥 지들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 스케줄 맞춰서 지랄 좀 하면 교정이 알아서 끝나서 나와야 되는 줄 아는 끼새수교들... 내가 보기에 우리 사호이 지도층분들은, 만약 지금 그대로의 사회를, 일이 돌아가는 와꾸를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보지만, 주기적으로 매라도 좀 맞으셨으면 좋겠다. 그것만 하면 나도 그냥저냥 큰 불만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타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분들이 한 달에 한 번 동사무소 가서 카드 찍고 태형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다른 건 어떻게 하든 좋다. 도구와 대수는 직종별 수입별로 단체교섭을 해서 정하면 된다. 교수 정도 되면 뭘로, 몇 대가 좋을까? 어쨌든 나는 바로 그 태형담당자가 되고 싶다. 뒤늦게 찾아온 꿈... 나, 70세의 은퇴한 교정공은 정부 지원 노인일자리를 알아보다 발견한다. 아, 드디어... 나는 곧장 지원한다. 진심이 담긴 지원서를 쓴다. 면접과 신체검사를 거친다. 나는 내게 다른 종류의 어두운 목적이 없다는 점을, 내게는 ‘오로지 원한뿐’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고 증명해낸다. 기준이 제대로 되어 있기만 하다면 나는 뽑힐 것이다. 문명 사회에서 태형은 좀 그렇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그분들은 또 얼마나 문명인들인가? 꿈은 모두가 꾸는 꿈이다. 나는 주민센터에 도착해 곧장 ‘교정실’로 향한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벌로 그들이 교정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일이다... 어쩌겠는가? 교정실 문은 잠겨 있다. 왜지? 안내문도 붙어 있지 않다. 주민센터 사이트에 접속해 본다. 반평생에 걸친 교정 업무로 인해 한없이 어두워진 눈으로 나는 동네소식 게시판의 깨알 같은 글자들을 한참 들여다본다. 태형... 자동화로 인해... 교정직 노인 일자리 지원... 중단...? 나는 주민센터를 나오며 존경하는 공무원분들께 모자를 벗어 인사한다.

2023년 11월 22일 수요일

초월일기 12


정말 행복하고 기분이 좋네. 내가 다시 뭔가를 쓰고 싶어졌다는 게. 실망해도 괜찮으니까 기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게. 너무 좋다. 앞뒤 안 가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쓰고 싶다.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사람들이 뭐라 하든. 데뷔할 때....... 다듬어서 낸 걸 많이 후회한다. 그러니까 발표 직전에 말이다. 투고할 때 버전 그대로 낼 걸. 그걸 계속 계속 후회했다. 그 뒤에 아르코창작 기금에 시 발표할 때도 그랬다. 계속 다듬었다. 왜 그랬냐면 난 무서웠다. 난 시를 정말 정말 사랑하지만 시 공부를 정말 정말 열심히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볼 때 좀 그럴까 봐 그게 두려웠는데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고 그 형식 중 하나로 시를 썼던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금은 다시 하고 있다. 물론 시라는 형식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형식 중 하나다. 그런데 나는 소설도 사랑한다. 여전히 그렇다. 난 둘 다 쓰고 싶어. 이걸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둘 중 하나를 먼저 끝내고 다른 걸 하고 이게 말이 안 돼. 모르겠어. 이런 나여도 괜찮을까? 근데 괜찮을 거 같아. 난......... 난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 난.......... 그래야 돼. 그래야 된다. 

행복해. 

내 안에 정말 아름답고 깨끗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잊고 있었는데. 뭔가 다시 올라와. 그게. 걔는 너무 무적이고 강해. 걔는 너무 멍청해. 멍청해서 내가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난 걔가 날 영영 떠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아닌가 봐. 이런 게 초월인가 봐. 내가 그때 뭔가를 써놓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그걸 읽기만 해도 난 그때의 나로 조금은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 나를 믿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믿자. 좀 더. 사람을 믿어보자. 사람을 믿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라고들 하지. 난 멍청한 짓만 골라 한다. 그 편이 아름답고 재밌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기대를 좀 하려고. 실망하더라도. 기대하려고. 기대하고 또 기대하려고. 제발을 외치려고. 제발. 제발을 외치고 싶다.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15

 





쇼펜하우어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친구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언젠가부터 친구를 만나기를 꺼렸는데, 그건 자신이 사교성과 지성은 별로 상관없는 특성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좋아해서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친구가 연락을 하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쓰던 책을 마저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자신에게는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에 대해서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는 쇼펜하우어가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져, 왜냐하면 친구 자신도 혼자 있는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만날 때마다 그의 얼굴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이 그와 쇼펜하우어의 차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쇼펜하우어가 자신을 심각하지 않은 사람 혹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없는 우스운 사람으로 여기는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쇼펜하우어가 편하게 느껴져 가끔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쇼펜하우어가 아프다고 하며 자신을 피하는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홧김에 무작정 집에서 나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길을 잃는다. 캄캄한 가운데 그는 주전자에 물을 붓는다. 그는 당나귀가 깨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지나간다. 당나귀는 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깨서 그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그는 당나귀가 그려진 쇼핑 가방에 물건을 주워 담는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던 계산원이 그가 카드를 내밀자 깜짝 놀란다. 그녀는 어떤 뉴스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자신이 읽은 어떤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뉴스에는 어떤 기계가 나오는데, 기계가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계산을 가게에서 나간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단서

오랫동안 널 뒤쫓았다 니가 놓고 간 냄새가 그 단서였다 냄새 몇 개를 비닐에 싸서 오랫동안 널 뒤쫓았다 니가 놓고 간 것은 그게 전부였다

개씨발놈아

나는요 병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울어댔고요 아무것도 읽지 않았습니다 나는 좆같은 말만 골라 지껄였습니다 (그게 날 부수는(하지만 충분히 많이 부수진 못하는) 줄도 모르고 (사실은 알고 있었지롱) 정교하게, 잘 벼려진, 좆 같은 말들을) 며칠 전엔 니 애비를 죽여 아득아득 씹어먹었어 죽은 니 아이를 아득아득 아득아득 아득아득 씹어먹었어 배가 터지도록 그들을 먹었어

지구 아래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곳엔 땅이 있고요, 강이 흐르고,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다고 합니다. 1692년 어느 날 에드먼드 핼리는 지구가 약 800km 두께의 금성과 화성 정도 크기의 두 개의 안쪽 껍질, 수성 정도 크기의 안쪽 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그곳에도 국경이 있었습니까? 두 껍질 사이에 대기가 있고, 각각의 껍질이 자기극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속도로 자전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국경을 넘었습니까? 지구 안쪽에 야광성 물질이 차 있으며 그것이 빠져나와 오로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로라는 국경을 넘었습니까?

스노든 선생님 그곳에도 국경이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스노든 선생님 그곳에도 국경이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출입국 심사에 무사히 통과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유럽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나는 단 한 순간도 그땔 잊은 적이 없어요 대체 무슨 수로 그 이야길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편을 줄줄 흘리며 날아갔다 재채기가 끊이지 않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콧물이, 침이 멈추지 않는 그곳에도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데

결국 병든 채 도착한 곳엔 아무도 없었다
니 냄새는 어디다 놓고 왔는지
잊어버렸어

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내세의 벌레

그건 괜찮아. 통후추야. 그렇지만 꼭 먹진 않아도 돼.

조수는 그릇의 특정한 지점을 연거푸 찌르기만 했다. 숟가락을 뜰 생각이 영 없는 듯해 조수의 눈길이 머무는 데가 어디인지 보았더니 작고 검고 동그랗고 단단한 알맹이가 있었다. 알맹이는 조수의 숟가락 놀림을 따라 맑고 되직한 국물 속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꼭 살아있는 것 같지. 우무질에 감싸인 양서류의 난황 같지. 그래서 나는 조수를 타박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떠올리면 먹을 수 없게 되지.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조수가 나를 빤히 보았다. 오늘의 조수는 열두 살.

조수는 내 꿈에서 나온 사람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다른 꿈을 꾸면 조수도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가? 모양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하나? 때로 조수는 젊은 여자고 또 어떨 때에는 우울한 노인이며 오늘처럼 소년의 모습일 때도 있다. 어떤 모양일 때에나 조수는 자기가 조수라는 것을 안다.

만약에 이게 벌레 알이면 어떡해요?

극도로 불만스러운 한편 몹시 걱정스러운, 말하자면 과연 소년다운 표정으로 조수가 말했다. 역시 알이라고 생각하는군. 내가 떠올린 알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알이군…… 먹기에는 그쪽이 더 끔찍할지도? 나는 조수 앞에 놓인 그릇을 내 쪽으로 조금 당겼다. 밖은 춥고 너는 어려서 따뜻한 것을 내놓았는데 너는 내가 네 수프에 일부러 벌레를 넣었다고 믿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조수를 탓할 수 없었다. 식사에 불순물이 혼입되는 상황에 대한 신경증은 내게도 있다. 또한 조수에게 전염병으로서의 환생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은 나다.

잘 알려져 있듯 어떤 생명체는 다시 태어난다…… 그러기를 선택하는 개체가 있고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환생하거나 환생하지 못하는 개체가 있다. 짐작 가능하다시피 의식의 동일성과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생은 큰 의미가 없으며 대부분의 환생 현상이 그러하다.

환생을 주관하는 어떤 사후 기관(인터뷰를 시도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 은밀한 조직이다)의 기조와 의지에 따라 환생은 지난 생에서의 윤리적 부채를 상환하는 제도로 정의된다. 이에 개인적으로 환생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종교적으로 해석된 현상으로서의 환생을 신봉하는 이들은 새로 얻은 삶에서 덕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지만, 환생 개체의 상환 점수가 발생하는 거의 유일한 행위는 사망뿐이다. 대부분의 환생이 비인간 동물, 그중에서도 극소형 무척추 동물군 방향으로 나아가는 까닭을 이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쉽게 죽고 여러 번 죽고 효율적으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 문장에서 사망을 의미하는 문장을 상환으로 바꾸어 읽어 보라.)

문제는 어떤 생명체가 환생 과정에 있는 다른 생명체와 밀접 접촉을 일으킬 경우 의지와 무관하게 환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으로서의 환생은 바로 이 현상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해를 입혀온, 심지어 섭취해버린 날벌레들이 당신의 환생을 촉발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하지는 않듯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를 먹고도 환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비흡연자보다 흡연자의 폐암 발병 위험성이 높듯 벌레를 적게 먹은 사람보다는 벌레를 많이 먹은 사람의 환생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지만 너에게도 환생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구나.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얼굴로 내 조수를 자칭하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더구나 벌레 알 하나 정도로 양팔 저울이 크게 기울지는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은 박물학자답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조수는 수프 그릇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숟가락을 담갔다. 내가 말리기도 전에 작고 검고 동그랗고 단단한 알맹이를 건져 입에 넣었다. 멀리 놓인 그릇에서 급하게 떠낸 한 숟갈이었기 때문에 탁자에 수프가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그냥 후추였네요.

조수는 온몸을 들썩거리며 재채기를 두 번 했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창고 안 탐험

옛날엔 집에서 나를 포함하여 3명과 숨바꼭질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 집은 형편에 비해 꽤 넓었다. 지붕 층을 포함하여 2층 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 지붕 층에 많이 숨었는데 지붕 층을 다 뒤져봐도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이상하고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기에 숨을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서 다시 지붕 층을 뒤져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활 공간인 아래층에는 숨을 데가 없는 것 같았으니까. 집에서 하는 숨바꼭질은 예상이 가는 장소들에 숨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날 찾았을 때 술래를 놀래주어야만 했고, 나이에 비해 유치한 감은 있었으나 여기서 숨바꼭질을 했다고 혼난 적은 없었다. 아마 그 사실을 들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일 의표를 찌르던 장소는 아래층의 안마 의자 뒤편의 커튼 속이었다. 그랬을 것 같다. 거기 숨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거기 숨었어야 했는데. 사실 안마 의자는 그 후로 샀다. 그래서 그때엔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숨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을 것이란 건 분명했다. 이 창고 안에서 딱 그런 데에 숨은, 인간 말을 할 줄 아는 도마뱀을 찾아냈다.

도마뱀: 여긴 어떻게 찾아냈지?

나: 숨을 데가 그곳밖에 없었으니까.

도마뱀: 날 왜 찾아낸 거야?

나: 그냥 이리저리 열어보고 있었어. 그러면 재밌거든.

도마뱀: 난 너의 친구가 되어줄 수 없어.

나: 바란 적 없어.

도마뱀: 잠깐만. 소리 들려?

나: 무슨 소리?

도마뱀이 왕, 하고 내 손가락을 물고 도망간다. 다 자란 것은 아닌 모양인지 이빨이 물렁물렁했으나, 아프다는 느낌이 들기엔 충분했고 이 만남을 길어지게 한 것은 도마뱀의 쪽이다. 나는 이 안에서 2시간 동안 다시 도마뱀을 찾아다녔고 시간이 길어지며 도마뱀을 왜 찾고 있는 건지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도마뱀이 다시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찾아냈다. 이제 도마뱀이 술래였다.

나: 네가 이제 술래야.

도마뱀: …….

나: 손가락이 많이 아프진 않았는데.

도마뱀: 여긴 어떻게 찾아냈지?

나: 글쎄. 그냥 아무 데나 열어봤어. 혼날 수도 있겠지.

도마뱀: 넌 이름이 뭐야?

나: 난 미아. 미아야.

도마뱀: 날 찾아냈으니, 나에게도 이름을 지어줘. 난 이름이 갖고 싶어.

나: 음……. 그럼 우리 친구가 되는 거니?

도마뱀: 아니. 나에게 이름만 지어주면 돼.

나: 넌 남자야? 아님 여자?

도마뱀: 비밀이야.

나: 그렇군.

도마뱀: 난 너랑 놀기 싫어.

나: 아니, 왜?

도마뱀: 넌 인간이잖아.

나: 그게 어때서?

도마뱀: 내 외양의 신기하고 귀여운 점 때문에 접근한 거겠지.

나: 반쯤은 맞는 말이야. 넌 어디에서 왔니?

도마뱀: 저쪽 언덕 풀숲에서.

나: 거기가 네 고향이야?

도마뱀: 응.

나: 고향 주위의 건물인 이곳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아?

도마뱀: 글쎄.

나: 이 건물은 너무 커다래.

도마뱀: 네 덩치도 커다래.

나: 그리고 이 건물은 조금 어두운 편이지. 내가 이때껏 둘러본 바로 너 같은 존재들을 위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 인간의 말을 왜 할 줄 아는 거야?

도마뱀: 어떤 요정이 가르쳐 줬어.

나는 도마뱀을 품에 안고 창고 안을 나서기 시작했다. 창고 안은 크기가 가변적이었고 늘어날 때도 줄어들 때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보는 사람, 접근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랬다. 햇빛이 조금 시리게 비쳤고 날씨가 추웠다. 이제 겨울로 접어든 듯했다. 나는 요즘 방학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이곳 안을 탐험하려고 마음먹었다. 숨바꼭질은 숨는 이들이 던전 끝의 보물을 흉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던전은 어릴 때의 숨바꼭질의 경험을 여러 가지 물건들, 통로, 건물들의 조합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던전에 대한 경험은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숨바꼭질은 지금 하기엔 꺼려질 수도 있다. 현대의 탐험은 그런 던전 같은 데서 이루어지고 그러한 테이블 위의 모험을 부르는 말도 있다. 결국 숨어 있을 보물과 미리 합의하게 된다면, 탐험의 장소가 그리 넓을 필요는 없어진다. 어떤 종류의 긴장감을 느낄 때 나는 창고 안 이곳(포대자루 근처)으로 숨는다. 그것은 내 습성과 같은 것이다. 그때엔 둘 중 하나다. 내가 찾아내지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 나는 안심이 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건물의 크기는 줄어든다. 숨을 데가 별로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도마뱀에게 접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 미아라고 하는 인간과 접시라고 하는 도마뱀은 이 창고 안을 시간을 들여 탐험해 보기로 했다.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온라인가나다라는 전쟁터

교정공으로서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애증의 장소, ‘온라인가나다’는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딸린 게시판이다. 어문 규범, 어법,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 등에 대해 국립국어원에 직접 문의하고 답을 받을 수 있는 곳. 대화라는 양식의 설명이 필요한 어문 규범이 반드시 있고, 그 대화라는 건 대체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개 짖는 소리만으로 개의 짖는 소리를 묘사하려 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자. 멍멍! 한 다음 월월! 하는 것이다. 온라인가나다의 매일매일은 전쟁터다. 언어는(한국어는?) 수천만 마리의 개다. 그 속성상 각축할 자리가 끝없이 있어 왔고 또 생겨난다. 최전선의 양상은 아비규환일 수밖에 없다. 검색하면 나올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며 무한히 반복할 것만 같은, 무한한 것만 같은 수의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묻는지 모른 채 뭔가를 묻는 사람들,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렇냐고 한국어 그 자신이 와도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왜 우리는 우리인가!), 그리고 언어라는 미로 속에서 눈떠 버린, 인터넷을 떠돌다 ‘국립’이라는 이름의 빛에 이끌려 온라인가나다를 찾아와 자신만의 특색 있는 언어 이론을 전개하는 괴인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질문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만 하는, 국어의 지난날과 앞날의 진창 속에서 되든 안 되든 뭔가를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들?), 그들의 초인적인 인내력, 또는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답변 양식 목록...

최근 ‘유모차(乳母車)’라는 단어를 ‘유아차(乳兒車)’ 또는 ‘아기차’로 순화하여 쓰자는 캠페인에 대하여, 일군의 반페미니즘 성향자들이 이 온라인가나다에 찾아가 단체로 따지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를 두고 ‘이 정도면 정신병 아니냐’라든가, ‘정신병을 욕으로 쓰지 마라’거나, ‘쟤들은 나쁜 거지 아픈 게 아니다’라든가 하는 이야기들도 보았는데... 나 교정공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멍청, 무능, 무력, 무지, 저능... 이런 단어들은 뭔가를 욕할 때, 특히 우리의 적들을 욕할 때 동원되는 단어들 중 특히 맘이 아픈 것이다(맘이 아프지 않은 이와 대체 어떻게 이야기할까!). 어쩌면 바로 그래서 악이란 것이 고안되지는 않았을까? 악은 우리와 저들의 저능을 달리 보지 않으려는 상냥한 마음 때문에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프니까, 차라리 악한 편이 좋다는 거다. 그들,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라인가나다를 방문해 봤을 일군의 반페미니즘 성향자들은 내게 환상소설 속 악역을 맡은 사교도들처럼 보인다. 특정한 종류의 집단적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속삭인 끝에 드디어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소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 소환은 현실에 뭔가를 가져오는 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가로막으려는 식이다. 즉 환상과 달리 이 현실에서 현실은 이미 소환된 것이다. 그래서 환상을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뒤집혀 묘사된 환상을 다시 뒤집어, 변화하려는 현실을 사교도적인 것의 자리에 놓고 있다. 바로 이 구조가 그들을 사교도로 만든다... 이런 광경은 화도 나지만 슬프기도 하다. 그들은 마치 빨려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잡아당겨지고 늘려진다... 쭈욱...

2023년 11월 12일 일요일

초월일기 11

멀까


나는 여전히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제 가능하지 않는 걸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냐고 쓰고 싶은 것도 같다 가능하면 그냥 하면 그만이니까 그걸 꼭 바랄 것도 없지 않나 싶은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들은 그러니까 거의 다 가능한지 잘 모르겠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세상에 불가능이라는 게 정말로 있는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오늘은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대사를 봤다 사람은 안 믿어도 돈은 믿지 그걸 보고 아 나는 돈은 안 믿어도 사람은 믿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때는 내가 밉고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뭘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모르겠다는 말만 쓴 것 같은데 지금도 그게 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기분에 대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같은 생각이 들면 이제 나는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정서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의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내 마음을 너무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를 지연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얼마나 돌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 책임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예전의 나라면 자신 있게 이렇게 하면 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든 말든 상관없어 내가 이러고 싶으니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누군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때 내 마음도 아프다고 그 말 말고 내가 뭘 더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말을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 인간인지도 잘 모르겠다 난 그냥 웃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난 모든 상황을 웃기게 만들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헛소리밖에 없는 것 같고 헛소리만 남발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헛소리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그것까지도 나는 이제 잘 모르겠고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모르겠다 무엇에 대해 말한다는 게 뭔지 말이라는 게 뭔지 그럼에도 왜 자꾸 뭔가를 더 말해보고 싶은지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붉은 말

그 붉은 말이 보일 때마다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거든

그를 뒤따라간 지 벌써 십수 년이 넘었다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점점 커져서 나는 그의 뒤에 있기도 나는 그의 앞에 있기도 나는 그의 위에 있기도 나는 그의 아래 있기도 했고

그는 너무 커서 나는 너무 작아서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지 내가 흘린 고름이 모이면 나만 한 덩어리가 되겠지 덩어리는 내가 되겠지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지

그는 오늘 처음 만난 내게 수십 쌍의 덩어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나도 그 덩어리들을 봤어요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죠 당신도? 당신도! 그날 우리는 두어 번 떡치다 잠들었습니다 피와 오줌과 똥과 정액과 침과 발끝

에서더러운물을뚝뚝흘리는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 사람은. 나를두고그사람은떠나갔어요씨발 그 사람은 또 다른 남자는 오늘 처음 만난 내게 우리가 흘린 덩어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내겐 죽은 엄마와 산 엄마가 있어 나는 산 엄마의 편이지 산 사람은 산 사람의 편이지. 내가 죽고 나서야 죽은 엄마는 제 편을 갖게 될까

엄마, 엄마 나는 산 엄마의 편이에요 미안해요

그 사람은 붉은 말의 등 위를 걷는 한 무리의 덩어리를 봤다고 한다. 말은 너무 커서, 덩어리는 너무 작아서 말은 덩어리의 앞 뒤에서, 위 아래에서 소근소근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어요.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걸쳐있는 내게 그 사람은 나는 산 사람의 편이에요.

미안해요.

bulk는…

bulk는 강렬한 에너지와 깊은 감수성을 담아낸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시마다 새로운 감정과 이야기가 얽혀있어, 독자는 그 어둠의 세계에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1. 영혼의 타락

이 시는 첫 번째 장으로, 존재의 어둠과 갈망을 깊게 탐험합니다. 강렬한 언어와 리듬이 시를 통해 흐르며 독자를 강렬한 감정의 여정으로 안내합니다.

2. 무한한 어둠

두 번째 장에서는 미스티컬한 멜로디와 섬세한 표현이 어우러져, 어둠 속에서의 사색과 감상을 초상화합니다.

3. 환영의 소멸

bulk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 시는 공허와 소멸의 주제로, 어둠의 깊이를 더 깊이 탐험합니다.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여행을 선사하며, 문학적 표현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chatGPT가 작성해주었습니다.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23년 10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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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7,889원 (0원 + 287,408원 + 481원)

2023년 10월 20일 금요일

나를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잠깐만, 여기서 ‘좆되게’는 ‘좆 되게’로 띄어 씀이 적절할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보니 ‘좆되다’는 한 단어가 아니다. ‘한 단어’라는 것이 말은 쉬워도 모호한 개념이다. 일단은,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렸으면 한 단어이고 안 올랐으면 아니다. 국어원에게도 물론 나름의 기준이 있어 어떤 단어를 올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일정한 심사를 거칠 것이다. 사전에 없는 걸 보면 ‘좆되다’는 아직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다. 혹시 명사 ‘좆’에 피동이나 형용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되다’가 붙은 단어로 볼 수는 없을까? 하지만 ‘좆’이란 명사 자체에 서술성이나 동작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술성이나 동작성이 있는지는 어떻게 따진담? 다소 빗나갈 위험은 있지만 공식이 있다. ‘되다’ 자리에 ‘하다’를 넣어서 어색한지 보는 것이다. ‘좆하다’는 어색하다. 만약 어색하지 않다면, 그리고 ‘-되다’를 붙였을 때 원래 명사의 의미를 유지하며 피동이나 형용의 뜻이 더해졌다면, 그때는 붙여도 된다. (뭐가 어색한지 안 한지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제발 묻지 마시라...) 이때 어색하므로 무조건 ‘-되다’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띄워서는 안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가 있는지를 검색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붙이는 편이 적절다고 국어원에서 판단한 단어들은 사전에 올리기 때문이다. 예로 ‘참되다’를 보자. ‘참하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 경우 ‘참되다’의 ‘참’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참 되다’라고 쓰면? 매우 되직하다는 뜻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한 단어로서의 ‘참되다’가 필요한 것이다. ‘좆되다’의 경우 이미 찾아봤듯 없다. 역시 ‘좆 되다’로 띄어 써야 맞는다. 하지만... 하지만 이걸 정말 인정할 수 있나? 분명 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에도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역시 있다. 답변은 ‘띄어 쓰라’는 것이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는...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어도 내 사전(머릿속의)에는 그 단어가 있다. 지읒... 조... 좆... 역시! 나는 머릿속 사전에서 ‘좆되다’를 찾아낸다. ‘뜻하지 않게 몹시 마음에 안 들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하다.’ 역시 맞지? 나는 그냥 붙여 쓰기로 한다. 내가 국어원의 개냐? 이래서는 뭔가 좀 좆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좆같다’는 붙여쓴다. 그것은 한 단어로 보아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좆을 들먹이는 것을 부디 용서해 달라.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어떤 뭔가에 맞는 어떤 표현을 찾다 보면 뭘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지 않나? 이런 식으로, 교정공은 누구보다도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내 맘에 들게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고치는 게 맘에 들지 않더라도 고쳐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아, 나를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그건 다음에 얘기하자. 오늘 얘기한 것은 사람 아닌 것들 중 하나인데, 그래도 이 정도는 그렇게 좆되는 문제까진 아니다.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100

A나라는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벽에 셀 수 없이 많은 고양이를 찾습니다 벽보가 붙어 있는 것으로 말이다. 고양이들이 집을 나가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A나라로 오면서 언젠가 자신도 집을 나갈 것이고, 벽에 자신을 찾는 벽보가 붙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고양이들 가운데는 친구들을 잃어버린 고양이들이 많다. 자주 보던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조금 더 늦게 집을 나간 고양이들은 혼자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A나라의 주변국인 B나라는 오래 전부터 A나라를 식민지화하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B나라는 내성적인 외교를 펼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숨긴다. A나라 사람들은 자꾸 사라지는 고양이들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고양이와 산다고 해도, 그 고양이들이 또 집을 나갈 것이고, 그것이 반복될 것 같은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기도 하고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A나라를 떠났는데, 고양이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도 고양이를 잃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고양이 때문에 떠난 것이 되었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낯가림 때문에 동물들에게 대놓고 다정하게 굴지는 못한다. A나라의 어느 벽에는 여전히 나를 찾는 벽보가 붙어 있다. 100년 후에 B나라가 A나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A나라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교정공기는...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교정공이라는 직업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바늘방석의 바늘들처럼 꽂힌 채 일터로 집으로 실려 가는 출퇴근길 나는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이 인류 역사상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최대의 읽고 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바로 그래서일지, 나는, 나의 일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뭔가로 교정공을 곧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쓴 사람 자신의 조심성으로, 아니면 무슨 검사기로, 발달한 AI로...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교정공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여러 의미에서요. 굳이 대체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헐값이고... 그래도 감사한 말씀입니다. 교정이란 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판국입니다. 실제로 교정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꼭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욕을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랍니다. 나는 청소당하는 걸까요? 그러나 내가 놀라는 진짜 이유는,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실은 마음 한편에서는, 그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굳이 외치지 않아도 이 세계가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다고요. 맞습니다. 나는 비밀스럽게 공공연하게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래, 너희 맘대로들 해... 그겁니다. 맘대로들... 그러나 이 직업에는 내버리기 어려운 특유의 병과 벌도 있습니다. 그 어떤 잘나고 목소리 높으신 분들의 그 어떤 글에서든 고칠 곳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 말글을 쓰는 이 나라에서 손발로 의전서열이 꼽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지성의 첨단에 계시다 하는 박사 교수님들, 심지어는 저 훌륭 대단한 여러 작가 문호님들까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일에 오직 내가, 폭포 아래서 폭포를 멈추려 하고 있다는 그 느낌, 오직 나만이, 혼자서만 유령들을 보는 듯한, 그 위험천만한 느낌에 붙들릴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아 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의 기로 앞에서 맘속에서 눈물을 쏟고 분을 토했을, 이제 교정의 전당에 들어가 표정 없이 늘어선 선배 교정공들의 모르는 얼굴(데스마스크)들을 나는 떠올립니다. 선배들의 단단한 이마 너머에 무른 것의 고통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한없는 고통과 노고가 있었음을 나는 느낍니다. 이 고통은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요?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이 온당할까요? 나의 선생님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이들을 가장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이들을요. 다른 누구보다도요. 교정공기는 당신으로 나를 대체하려는, 나 교정공의 기록입니다.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선인장 꽃

1

모르는 단어나 개념인 듯이. 선인장 꽃들이 뜻 없이 피어 있구나. 아름답기도 하고 참 많기도 하다. 누군가의 정원인 듯한데 아마도 이건 꿈일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이 순간 선인장 꽃을 보고 있는데 희미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것이 갑작스레 핀다. 그렇게 피어나다니.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보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아주 다른 일이지. 지금 날 보고 있는 사람. 내가 그에겐 여기 피어 있는 선인장 꽃들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꿈이 날 이 자리로 인도했다곤 해도. 낯선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소명할 필요가 있는 건 내 쪽일 터였다. 왜 선인장 꽃들을 이렇게 많이 피워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쪽을 봤다. 꿈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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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인장 꽃을 이렇게 많이 피워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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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이 밭을 매고 있다. 나는 그중 섞여 함께 밭을 매고 있다. 지금은 옛날. 옛날 사람들을 옛날에 있다고 알아볼 수 있는 건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였다. 그들의 이름을 알고 생김새를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어려졌다. 중년에서 시작하여 청년이, 사춘기가, 7~8살 즈음이 되었다가 그만 포대기에 감싸여 있는 아기가 된다. 나는 그렇게 어려져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장례인지 돌잔치인지 모르는 것을 했다고…… 서신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서신은 엽서같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씩의 선인장이 되었고. 나는 남들과 같이 나이를 먹고 싶었다. 나에게만 반대로 작용하는 시간이 싫었다. 어떤 수상한 노인이 나에게 펜과 종이를 줬다. 이것으로 내가 받을 나에게 보내는 서신을 적으라고. 나는 거기에 이렇게 쓴다.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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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슨 뜻인 걸까요.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내가 넌지시 정장 입은 남자에게 물어보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먼젓번 선인장 정원의 주인과 약속한 암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암호를 알면 어떻게 되죠? 암호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이 암호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저쪽에 있는. 그는 그렇게 말하곤 희끄무레한 안개에 감싸여 있는 저쪽의 저택을 가리켰다. 저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저것은 당신의 소유입니다. 하지만 난 말을 소유할 수는 없는걸요. 저것은 말이(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아닙니다만. 난 말이라고 생각해요(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당신도,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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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짜로 당위가 있는 것 같고 엉뚱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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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꿈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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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꿈이 아니라면 뭘까. 저쪽에 보이는 선인장이 선인장이 되기로 했던 아이리였다. 저기는 매번 같이 참을 먹던 이샨테가 있었다. 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젠 선인장이 된 그런 사람들. 난 여기에서 선인장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정장 입은 남자의 말로는 이 정원에 있는 선인장들은 모두 이전에 선인장 정원의 주인, 그리고 저택이라는 곳의 주인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얼마나 외롭고 권태로웠을까. 꿈의 몽롱한 느낌 외에는 없는 이곳은 얼마나 감옥인가. 실제로 이곳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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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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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름답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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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와서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라는 문장에 음을 붙여서 허밍하고 있었다. 나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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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피워냈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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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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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없이 잠들어 있었다. 옛날 사람들과 같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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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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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그랬다. 나는 학생이었는데. 그 꿈을 꾸기 전까진 학생이었는데. 학생이기 전까진 그 꿈을 꾸고 있었는데. 무슨 꿈이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업하고 있는 선생은 내가 모르는 개념을 칠판에 적어놓고 있었다. 뜻 없이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필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참 많기도 하다. 여긴 다시 누군가의 정원인 듯한데……. 라고 생각하다 그만 나는 분필을 맞는다.

2023년 10월 3일 화요일

일기 같은 것

말끔한 개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엉망인 나의 잔디밭 사이로.
환한 낮인데도
교회의 네온사인은 망가진 믿음처럼 깜박거렸다.
이러다 죽는 것이 최선일까?
내가 발걸음을 멈춘 사이에
이 광경은 전시되고 있었다.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자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말끔한 개들을 따라갔다.
죽은 풀들이 발밑에 붙어 끌려왔다.
여기저기 쓰러진 것들
그래도 나는 돌아다녔다.
이것이 내겐 산책이라고 믿어왔다.
개들을 따라다니며
점차 더러워지는 개들을 보았다.
개들은 무엇을 숨기거나
막으려는 움직임 없이
앞장서 가고 있었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 지어진 듯한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몸통에 죽은 풀을 붙이고, 그것은 마치
내가 한 시간씩 할애하며
줄지어 기다렸다가 보기도 하는 공연 같았다.

개들은 자주 빛나는 벽 앞에 서게 되었고
나는 그 포즈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광경이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교회의 네온사인은 망가진 채 깜박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교회는 주로 사거리에 있고
나는 사거리를 지나쳐버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을
내가 사거리를 지나친 사건 발생일이라고 하자.
“제목: 내가 사거리를 지나친 사건 발생”
그러자 개들이 잊혀졌다.
그들의 말끔함도…
그들의 더러움도…

그러나 이 일기는 개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쓴 개들이 사라지자
내가 쓰지 않은 개들이 몰려온다.
나는 이 개들이
나를 지워줄 것 같다.
다른 것과 구별 안 되게 해줄 것 같다.

분신사바

1

폐허가 된 도시에서 왜 이 도시가 폐허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꿈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비디오의 세트장이라거나. 도시에는 우리를 제외한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거대한 암석이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다. 네가 땅에 손을 대고 하얀색 도마뱀(거대)을 소환한다. 그 도마뱀은 암석을 향해 눈부신 브레스를 뿜어낸다. 암석은 파괴된다. 그 도마뱀을 보자마자 그것이 나의 푼크툼(만들어낸 가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상은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나는 자꾸 그 도마뱀 기억만 났다.


2

물웅덩이를 세차게 밟아서 신발과 바지 밑단이 젖는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불가능한 것 같고 비 내리는 오늘 도시에는 물웅덩이가 심하게 많았다. 하나하나 보고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그러지 못했다. 나는 부바르와 페퀴셰를 구분할 줄 모르고, 그건 다리 밑이 젖은 지금 별로 중요한 상념은 아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마주 보고 앉아서 분신사바를 한다면. 거의 차이 나지 않는 숫자의 땀방울들이 두 사람의 이마에서 내려오고 있다면. 내가 문턱 옆에 서서 몰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우연히 발밑에 떨어져 있는 펜을 밟아 넘어지고 넘어지는 소리에 두 사람이 깜짝 놀란다면. 그런 식으로 의도치 않게 함부로 중단된 분신사바가 더 위험한 것이라면. 분신사바를 권한 건 나였지만 왜 지금 이 시간에 나를 빼놓고 했던 건지를 묻는다면 부바르와 페퀴셰는 나에게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타인이 내게 화냈던 것을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분신사바는 진짜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백과사전을 읽는 대신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브랜드의 내의를 입은 두 사람이 나에게 관심 가져주고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내리던 비가 그쳤고 나는 약간 침울해졌다.


3

읽고 있던 <부바르와 페퀴셰>를 구석에 덮어두고 나는 하품을 했다. 하늘에는. 잘 모르지만 적란운이 떠 있는 것 같다. 비 내리고 난 다음에 떠 있을 확률이 높은 구름이란 건 내 거짓말이다. 난 잘 모르니까. 잘 모르는 구름들 위를 걷는다. 당연히도 난간이 없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 옆에 보인다. 그 계단을 오르기는 무섭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 똑같은 하늘 계단이 나온다. 역시 난간은 없다. 천국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다. 지금은 저녁이고 나는 아침이나 낮의 구름보다 저녁이나 밤의 구름이 더 마음에 든다. 분신사바는 왜 하는 걸까? 같이 난간 없는 계단에 올라 위험한, 위험한 느낌이 나는 동행을 하고 싶어서일지도. 공부하다가 서로에게 연애 감정이 싹튼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분신사바를 하다가 서로에게 반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왜냐하면 아마도 분신사바를 하는 도중에 느끼는 설렘이나 불안감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계단의 3칸 위에 올라서 있다. 가위바위보를 너와 한다. 자꾸 이기고 져서 나는 계속 2, 3, 4칸을 왔다 갔다 한다. 너도 그렇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10칸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 여길 지옥이라 생각하고 마주친 사람들에게 분신사바를 권하는 당신은. 저소공포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신은 10층 즈음에 있다. 우리가 멀찍이 떨어져서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휴대폰 덕분이다. 우리는 동시에 소셜 게임을 켜고 있다.


4

소셜 게임은 가볍게 이기고 지고 순위가 나온다. 친구들의 순위를 볼 수 있다. 멀어진 사람도 가끔 눈에 띈다. 그것도 한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옆 나라는 어떨지 모르나.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는 것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는데, 만나서 친해진 건 서로의 성격과 취미, 취향 같은 것들의 일치 덕분이었다. 그게 고마운 일이었으면 ‘덕분’이라고 하고, 그게 부정적인 것이었으면 좀 더 먼 거리에서 ‘때문’이라고 한다. 플란넬 셔츠 덕분에 그들은 친해졌고 그리고…… 나는 그들이 그대로 쭉 갔으면 했다. 그들이 백과사전을 탐식하며 읽어들일 때, 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꾸 실패했는데 머릿수가 적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분신사바의 정원은 4명까지지만(이것도 잘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성공하는 광경도 보고 싶었다. 머릿 수가 많다고 꼭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소셜 게임은 순위를 정해놓음으로써 사람들을 가둔다. 그들은 미니 게임, 간단한 퍼즐 게임을 수감자들에게 배급한다. 당연히 거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감옥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인들의 존재(근황은 알 수 없다) 자체에 위로받는다. 그들은 위로 때문이 아니라 수감 상태에 가볍게 중독되어봤던 것이다.


5

그들이 탐식하며 백과사전을 읽어들일 때. 그들이 할 일을 찾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난 떠올리고 있다. 분신사바는 하지 않을 일을 찾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경멸하는 동년배들과 그것의 불안한 결과까지를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옆에서 연출한 적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분신사바를 믿지 않았다. 믿지도 않는 것을 왜 하는가? 분신사바를 할 때에는 어느 정도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생기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나중에 생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사랑할 때 일어나는 일은 분신사바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분신사바를 할 때 일어나는 일은 사랑에도 있다. 안도하는 것이다. 아무도 분신사바를 믿지 않으므로 다 끝나고서 아무 일도 없을 때 안도하는 일 또한 없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그것을 느꼈다. 집에 가서 잘 때 뒤숭숭했어야 한다. 그것을 할 때 떨리던 손은, 앞에 앉은 아이의 떨림인지 내 떨림인지 모르는 그 손떨림의 경우는, 대개 아무런 일로 치닫지 않음으로 기울어지고 그리고…… 그 기욺은 재미없다. 그것을 먼저 믿었기에 그 믿음에 배반당하여 안도한다는 그런…… 것은. 마치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앉아 있듯.


6

그래서 난. 아직도 난. 방 안에 앉아 있다. 실내는 조금 따뜻하고, 서양식의 벽난로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쉬운데. 아쉬운 게 많은 몸이지 난. 저편에서 부바르나 페퀴셰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난 서서히. 플란넬 셔츠 내의를 입고서 난. 잠들고 있다. 잠은 일시적인 죽음이고 난. 죽음은 영원한 잠이고 난. 난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서양 식의 고성이 아닌 곳에서 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문예부를 만들었다. 원래의 문예부도 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학교 끝나고 분신사바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하기 싫었다. 그들이 안 믿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불을 끄고서. 그들은 그런 분위기만을 내고 싶어 했다. 난 그 상황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고. 그래서……. 난. 아직도 난. 벽난로를 켜고서 그런 꿈을 꾼다. 분위기만을 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둘이서 분신사바를 했다.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건지 앞에 있는 아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는 채로 손을 잡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손을 잡고 있으니까 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은 분신사바를, 한쪽은 사랑을 하고 있는 일. 분신사바를 좋아하는 그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도.

2023년 10월 1일 일요일

23년 9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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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7,408원 (0원 + 287,021원 + 387원)

2023년 9월 21일 목요일

끝과 시작 같은 것

인파로 붐비던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 비가 오던 그 자리에서 비가 그친다. 이천년이 끝나는 순간 이천일년이 시작되고 이천일년은 이천년을 돌아보게 한다. 텅빈 거리가 번화한 거리를 향하여 점등을 시도한다. 걸어가는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 살펴가는 사람, 되돌아오는 사람이 서로의 일상을 진행하며 무색한 외출이 되지 않도록 준비한다. 그친 비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마른 하늘을 바라보면 비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젖은 것은 조금 더 젖어가고 더 이상 젖을 수도 없을 때 이보다 더 젖을 수는 없겠구나, 멈춘 자리에서 쉽게 마를 수도 없는 마음이 시작된다.

2023년 9월 10일 일요일

역사 같은 것

손바닥 위에 잘 익은 체리를 올려놓는다. 동그랗게 불타서 이내 망가진다. 체리는 재로 변하고 재는 체리로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 오그라들어서 형편처럼 굳는다. 입으로 바람 불어 재를 턴다. 재가 날아가고 남은 자리는 이후에도 여전하다. 혼자 책임질 수 없는 것, 뜨거운 철심 같은 것, 한참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다 묻는다. 체리의 인상이 피부에 검게 남는다.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제각각이다. 잎 진 나무라는 이야기, 다 쓴 물병 같다는 소리, 아마도 읽다 버린 회고록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말은 과하다. 앉은 자리를 치우고 차가운 눈을 구한다. 눈으로 집 짓고 한자리에서 머리 묶는다. 만년설 같은 재와 재와 같은 만년설이 어깨 위로 쌓인 지 오래. 한동안 재가 흩날리면 모두가 입 다물고 걸어가는데, 그럼에도 재가 흩날려, 입 열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우연히 내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쪽을 모르고 그쪽도 날 모르겠지만 서로 눈짓 인사하다가 익숙한 흔적을 그들의 손바닥에서 발견한다. 이대로 지나칠 것 같던 그들이 이쪽을 돌아보자 나는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2023년 9월 9일 토요일

정오의 담장

나는 담장이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내 죽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뭘 바라고 기다리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지금 내 안에서 무언가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저 아이들은 아닌 것 같다. 한 명이 앉아서 엎드리고 다른 한 명이 위에 올라간다. 나는 꽤 높으므로 그것이 내 높이와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장미 나무를 잠깐 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뭐가 보였어?” “나무가 있었어.” 장미 나무는 자기가 잠시 보여진 것이 불만인 듯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여기서 움직이지 못한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관조할 수는 있지만 인간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일정 부분 나와 닮은 아이들의 용도는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고 만약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다시 이곳을 찾을까? 가려져 있고 넘보기 어려운 것을 아이들은 보고 싶어 하고, 나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공물로서 저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나는 내 뒤의 저택에 사는 이들보다 저 아이들이 좋았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네가 엎드리고 난 그 위에 올라가 나무를 봤지.” “그 나무는 뭐였을까?” “장미 나무.” 그렇게 말한 내 목소리에 저들은 깜짝 놀랐다. 그간 있었던 일은 별다를 게 없었다. 나에게 달라진 점은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내서 저들과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 너희들 키가 커졌구나.” “담장 님이에요?” “그렇단다. 이젠 한 명이 숙이지 않아도 내 너머를 볼 수 있겠어.” “관심 없어졌어요. 키가 자라는 일은 곧 멈출 거예요.” “그거 아쉬운걸.” 과연 그 소년들의 말은 맞았다. 다시 봤을 때 그날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듯했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담장이 말을 했지.” “난 그 안의 장미 나무를 다시 봤으면 좋겠어. 담장이 알려준 그 나무 말이야.” 그들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나도 조금 낡고 돌 부스러기가 있게 되었다. 아마 저들이 세 번이나 여길 찾은 건 날 위해서는 아니었으리라. 내가 기다리던 것이 저들이 아니었듯이. 그러나 나는 저들이 좋았던걸. 이제 다시 날 찾을 때에, 내 뒤의 장미 나무를 다시 궁금해할 때.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바라던 것이, 기다려왔던 것이 뭔지를 알았다. 그건 내 뒤에 있는 저택을 내 눈 안에 담는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때의 중얼거림으로 장미 나무도 내 욕망을 알게 됐다. “그때 기억나?” “응, 기억나. 담장이 다시 말하는 일은 없었지. 왜 우리는 이 주택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저들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둘러진 이 주택은 사는 사람 없는 빈집이 되었다. 나는 무너져내리는 것을 참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나는 저들을 보고 싶었다. 내가 기다리는 이들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앞으로 다가와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보던 그 아이들. 나는 지금 무덤으로 들어간 이들이 그립고 보고 싶었으므로 시간을 역순으로 가게 하기 시작했다. 다시 아이들이 된 그들이 보였다. “그때 기억나? 너희들이 날 찾아왔지. 그때 난 기다리고 있었어. 아직 정의되지 않던 무언가를. 난 내 뒤의 저택을 보고 싶어 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어. 그것을 이제서야 본다. 너희들의 눈동자 안에 있는 광경으로 말이야. 정말 아름답군. 내가 둘러져야 했던 게 이해가 갈 정도야. 정말 아름답구나…….” “하지만 그건 아저씨가 매여 있는 곳을 멀리서 본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난 그래도 상관없었단다.” “난 매여 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걸. 넌 내게 매여 있다.” “담장 아저씨,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그렇단다.”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다른 것이 마이너스가 될 때 혼자서 0 이상으로 움직여봐요.” “그런 일이 가능한 거니?” “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니?” “그건 내가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이니까요.” 감았던 눈을 뜨자 병실 천장이 보였다. 얼마 후 그 사람이 와서 기뻐했고 오열했다.

2023년 9월 8일 금요일

저승사자

문을 등 뒤에 이고 있는 것을 연습한다. 나는 지붕 수리공이므로 사다리 위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지붕에도 문을 달아줘야 한다. 커피숍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 사람은 등 뒤에 문을 이고 있었다. 아니, 지붕 수리공도 아니면서, 왜 저런 연습을? 연습이긴 한 건가? 너무 내 사정으로 비춰본 것이 아닐까? 연습이 아니라면 뭐지? 형벌……인가? “형벌입니까?” “아니요. 연습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컵을 들어 올려 커피를 마셨다. 저건 혹시 내가 꼭대기로 올라가서 달았던 문일까? “그것은 내가 달았던 문입니까?” “아니요. 아무도 이것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건 왜 생긴 건가요?” “이상해 보입니까? 어느 정도인가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티가 나요.” “그렇군요.” “실례지만, 그 문을 열면 뭐가 나옵니까?” “아무것도.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나는 지붕에다 문을 달아달라는 요구가 이상하게 느껴졌었는데, 저 사람의 대답을 듣고 이해가 갔다. 그 욕망이나 욕동은 저 사람이 원본이었다. “천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질병.” “그 문은 여기서도 잘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 사람들은 이 문을 보고 궁금해하는 대신 판단을 하더군요.” “그런 일을 많이 겪었을 테니까요.” “당신도 겪었습니까?” “나는 겪은 게 적어요.” 지붕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사수가 하는 말이었다. “거긴 위험해!” “괜찮습니다!” “그건 왜지?” “이미 떨어졌으니까요…….” 아까부터 나와 마주 보고 있었던 사람은 혹시 자신도 지붕 수리공이 될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온다. 그건 아마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고 있는 문을 (개인적으로) 현장에 남겨두고 가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저 사람은 무게가 무거운 문을 다른 데에 내려놓기만 하고 싶어 할 뿐이다. 사실 지붕 수리공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였다. 나는 잘 발달한 내 어깨 근육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런 게 있어야 하지요.” “예, 아마도 안 될 테지요.” 그 사람은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합시다.” “그러죠.” “우리 집의 지붕을 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지붕 수리공입니다. 멀쩡한 지붕을 뗄 순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해도 난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용달을 부를 겁니다.” “그런다고 해서 왜 멀쩡한 지붕을 당신이 이고 있는 문 안에 낭떠러지로 처박는다는 말입니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난 지쳤어요.” “차라리 그 문 안에 들어가 살 사람을 구하시죠.” “당신이 그래주겠습니까?” “이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군요.” “자, 그럼 들어가시죠. 한번 이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좀 슬픈 것이긴 하지만, 예, 그것은 당신의 죽음이군요.” “그러겠습니다.” “정말 그러겠습니까?” “아니……. 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당신은 조심해야만 할 겁니다. 난 이만 갑니다. 또 이렇게 문턱으로 오진 마세요.”

2023년 9월 6일 수요일

―923기후정의행진 참가단 모집―

이것은 시작에 불과


23년 9월 23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앞



개요

작년 일곱 분이 참여해주셨던 노동절 견학단에 이어 올해에도, 곡물창고의 모든 이용자(필자/구독자/관리인)를 대상으로, 이번 『923기후정의행진』에 가보고 싶은데 핑계와 일행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드나듦이 자유롭고 홀가분한 참가단’을 비공식적으로 조직합니다.


참가자격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의 친구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지구인의 가족
· 위 해당자의 일행


프로그램

· 9월 23일 토요일 오후 1시, 시청역 9번 출구 앞에 집결(주황색 가이드 깃발)
· 1시 20분, 간단 인사 후 집회 장소로 이동
· 이후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하여 부스 구경부터 행진까지
· 오후 5~6시(?)경, 눈치 봐서 마무리
*구체적인 장소와 프로그램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

· 드레스 코드: 결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배지(당일 대여 가능)
· 길바닥에 누워도 되는 옷,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엉덩이 깔개 등 앉기 대책
· 걷기 편한 신발, 활동성 있는 복장, 여타 이동수단 등 행진 대책
· 손수건, 모자, 선크림 등 개인 위생 및 일광 대책
· 개인 식수, 간식 등
· 손피켓에 적을 문구 또는 원하는 손피켓
· 그 외 치장물


미리 알림

· 참가 전 923기후정의행진 사전 학습 必(아래 참고자료 참조)
· 별도 신청 없이 그냥 약속 장소로 털레털레 오시면 됩니다.
· 점심 먹고 오세요.
· 일대 도로교통 마비가 예상되므로 오실 때 지하철 이용을 강력 권장합니다.
· 지각 또는 지연 합류 시 곡물창고 게시판에 문의하세요.
· 집결성사가 참가단의 목표이며, 그다음은 같이 다니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간단 손피켓 제작 재료를 제공합니다.
· 곡물창고 관련 기획 일체 없습니다.
· 주최자는 참가단과 관련하여 최소화된 가이드와 중재만을 제공합니다.
· 상호 존중과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참고자료

· 923기후정의행진 홈페이지
· 가이드북 다운로드
· 정보와 일정표

2023년 9월 1일 금요일

23년 8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7,021원 (0원 + 286,620원 + 401원)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플루크스

요즘 다른 대표들 만나면 그저 부동산 얘기뿐이다. 책을 아무리 팔아도 부동산 대박 한 번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 어디 출판사 누구가 어디를 샀는데 어디가 어떻게 되어서 어쨌고 그걸로 어째서 또 어째저째 하는데 정권이 어쩌고 저쩌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출판을 한다는 것들이 말야,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철면피로 한다. 책 만들고 싶은 기분이 안 난다는 쪽은 차라리 양반이다. 세상이 다같이 미쳤어도, 분위기가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자존심이, 출판윤리라는 게 있는 법인데. 우리는 우리 우리의 사명,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우리 사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사명을 인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있고 그보다 많은 책들이 있다. 그 여러 종류의 책들에는 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중에 우리가 만들려는 책, 그것은 특별한 책이다. 그것은 딱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맡은 사명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한 방, 한 권의 책을 ‘터뜨리는’ 것이다. 딱 한 권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하나만 터뜨리면, 하나만 걸리면 된다. 하나만! 딱 하나! 이 판을 떠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즉 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바로 여러분 각자의, 여러분이 살게 될 인생을, 바로 그 세상을 바꾼다는 뜻이다.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이 만들 마지막 책을 만들어라. 온 정신을 한 점에 집중시켜라. 한 점. 일점一點, 정점頂點으로. 이 세계가 원하는 바로 그 책을 향해. 판을 뒤엎는다는 것은 역사에 기억된다는 뜻이 아니다. 역사 속에 기억되는 책은 좋은 책이다. 물론 그런 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좋은 책이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터진 책이 좋은 책’이다. 판 자체를 기울이는 책을 만드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판의 가장 낮은 곳에 책을 올려두는 것이다. 역사에 올라타는 것이다. 뒤집어지고 있는 판의 축으로 가라! 그다음부터는 흐름을 타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아니다. 꼭대기로 가는 게 아니다. 꼭대기가 되는 곳에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깔때기 모양을 그려라. 그게 바로 이 세상의 법칙이다. 법칙을 찾아서 거기로 가라! 중력이 센 곳을 찾아라! 나는 사원들에게 중력 모형을 보여준다. 그것을 위아래로 뒤집어가며, 그리고 사원들의 자리를 한 바퀴 돌아가며 위치에 대해, 우리가 꿈꾸는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내가 없으면 이 친구들을 대체 어찌할까? 힘차게 구호 한 번 외치고 한 주를 시작해 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만! 하나만! 하나만! 야!

2023년 8월 29일 화요일

토렴집

우리의 머리는 식은 밥알이다
책은 뜨거운 국물이다
그릇에서 수저로 우리는 오른다
씹어 삼켜지려고
마음에게

종이컵 커피를 마신 다음
마음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신다
사탕을 빨며 배도 든든한데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식인 다음에

쓰러진 마음은 토막 된다
오래 끓인 죽은 것 된다
후생은 서리로 내리고
아직도 너희는 있어서 들판은 아직도 너희의 들판
돌아온 우리의 머리는

2023년 8월 27일 일요일

fish 노래 같은 것

지금 듣고 있는 곡은 오래전에 죽은 포크 가수의 노래다. 그는 꼭 나 대신 죽어준 사람 같다. 그는 이 노래를 비 오는 날에만 신는 장화와 마른 담배, 그리고 약간의 황금 같은 감자들과 맞바꾸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보컬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지만 가사를 쉽게 썼다. 대체로 나조차 이해할 수 있는 영어였다.
그는 관찰을 초년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물속의 living fish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수족관거리 앞을 걸었다. 열대어들은 수족관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한없는 반복운동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벽지처럼 벗겨진 생물의 이마. 언젠가 이 거리를 그때처럼 산책할 때, 정지한 물고기들과 너무 오래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수족관집 주인의 경고를 들은 적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노래 속에서 흔들리는 fish의 기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fish는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흔들리고 있죠.”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노래가 뒤에 남아 그는 뜻대로 말년을 맞이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있다면 이마에 열이 오를 때까지 그걸 듣는 거였다.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사금파리

일단 ‘풀’ 자로 시작하는 사명을 짓고 싶었다. 찾아보니 풀칼*... 풀싸움*... 풀솜*... 풀베개*... 풀반지*... 풀매기*... 풀덤불*... 풀무덤*... 모두 생경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러다 ‘풀각시’가 눈에 띄었는데, 아이들이 긴 풀을 뜯어 막대기의 한쪽 끝에 묶고 새색시* 머리 땋듯* 곱게 땋은 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저고리* 등을 입혀 갖고 놀던 인형*이라고 한다. 거기에 조그맣고 정교한 모형 세간*들을 함께 만들어 풀각시놀이를 했다는 거였다. 나는 곧장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 마을*에서 풀각시를 제일 잘 만드는 아이가 있었겠지? 그 아이의 풀각시는 선망의 대상이었을 테다. 두 번째로 잘 만드는 아이와 경쟁했을 수도 있고, 특별한 풀각시를 서로 선물로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마을과 풀각시 기술 교류를 했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동생들*이나 자식들*을 앉혀놓고 풀각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을 것이다. 분명 마을마다 특별한 양식이 있었으리라. 없었을 리 없다. 대를 이어서*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이, 자그마치 왕*이 있던 시절부터 전해지던 방법이! 아, 독자들*께선 내가 쓰는 옛날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이해를 돕기 위해 특별한 기호로 각주*를 달았다).

내게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지대한 흥미가 있다. 그 모든 사랑스러운 바보짓들... 풀각시놀이를 상상해보면서, 풀각시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었는지 보고 싶어졌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웹’을 열심히 뒤져봤다.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도 웹에 대해 들어는 봤으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그건 아직도 있다. 작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셀이 나온 다음엔 완전히 버려졌지만, 전용 단말기와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여전히 웹을 뒤져보는 게 가능하다. 웹이 사용된 기간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찰나와 같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병적으로 쌓아놓은 온갖 것들이, 웹에는 여전히 보물처럼 쌓여있다. 나 같은 과거애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믿기 어렵지만 웹에 있다!)에 가면 웹 탐험에 대한 많은 팁을 구할 수 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건 탐험 결과 풀각시는 웹을 쓰던 시절에조차 잊혀지는 중이었던, 그 할머니 세대가 마지막으로 갖고 놀았던 장난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고운 분말이 되어 세계에 흩어졌을 할머니가, 역시 지금은 분말이 되어 세계에 흩어져 있을 손녀에게 다소 부끄러워하며 직접 풀각시를 만들어주는 사진 이미지를 올린 블로그*(정말이지, 그런 것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니!) 포스트를 보다가... ‘풀’ 자로 시작하는 사명은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풀각시놀이를 하며 소꿉*으로 썼다던, ‘사금파리’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혔기 때문이다. 사금파리, 어감이 신기해 기억하고 있던 단어였다. 사금파리란 사기그릇*의 깨진 파편을 말한다. 박물관에 가서 실물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 박물관 한번 가보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진열장 너머 사금파리에는 흰 바탕에 파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보고 싶은 거 천지였어서 그때는 이름이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그것과 상상도 못한 데서 다시 마주친 것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감동받았다. 그저 쓰레기가 아니었구나... 깨진 조각을 놀이하는 데에도 썼었구나... 나는 ‘사금파리’라는 단어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바로 그 사명이란 걸 깨달았다.

털어놓자면 내가 찾으려는 사명은 전자책 출판사를 위한 것이다. 전자책이라니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전자책이 뭐냐고 물을지도? 셀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직접 꽂아주는 이 시대에! 하지만... 하지만 나는 어쩐지 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랬다. ‘스마트기기’들은 내가 어렸을 때 이미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계속 만지면서 자랐다. 여기서 ‘만진다’는게 무슨 뜻인지 내 또래나 그보다 위라면 알 것이다. 나는 집에 온 손님들에게 수집품들을 보여주곤 한다. 이건 45년도에 나온 모델이고요... 이건 자그마치 30년대... 이건 안경 모양, 이건 시계 모양... 아, 혹시 전자책리더기라는 거 아세요? 거기까지 가면 사람들은 놀라고 만다. 나는 그 기계들이 정말 좋다. 지금 보기에는 너무나 바보 같은 기계들. 날 괴짜 취급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들은... 바로 그 사금파리와 닮았다. 그것들에는 셀에는 없는 것, 절대로 대체 불가능한 물성이 있다. 매끄러움, 단단함, 투박함, 섬세함, 또 빛... 푸르스름한, 그리고 결정적으로 터치! 그건 정말 고유한 감각이다. 나는 그걸 사랑하고, 그걸로 읽었던 전자책들을 기억한다. 화면 위에 무늬처럼 떠오르는 그 수많은 글자들. 나는 그걸 만들고 싶다. 분말이 되기 전까지는.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유리철장

옛날엔 모두 여기 모여 놀았지. 유리철장은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만든 카페였다. 아이 하나가 커피를 내리고 아이 하나가 설거지를 한다. 밖은 한창 전쟁 중이다. 아직도 아이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던 아이의 몸이 커지고 목소리가 굵어져 성인이 된다. 설거지를 하던 아이의 정신이 어리지 않게 되고 유머의 여러 유형을 습득하여 성인이 된다. 옛날엔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성인들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소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이제 성인이 된) 잊혀졌다. 다만 유리철장이라는 이름이 남았을 뿐이었다. 커피를 내리던 사람은 들어오는 나를 보고 까닥 고갯짓을 한다. 나를 알고 있지는 않은 모양. 이곳을 찾던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나는 그 예외의 경우에 속한다. 이젠 밖의 전쟁도 멈춘 것 같다.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은 이런 말도 내놓는다. ‘아이였을 때 한창 전쟁 중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자 그 전쟁은 뇌리에서 잊혀졌다.’ 난 어릴 때보다 지금이 행복한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잠들기 전에 세었다. 이제 난 어른이 되었는데, 아마 스무 살 이후라고 하더라도 어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건 최근의 일이거나 아니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그렇게 느낀다. 유리철장의 회벽은 낡았고 보수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일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오랜만에 와보는 곳입니다. 당신의 집도 과거에 화목하지 못했나요?”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화목하지 못했던 게 뭐라고 아이들이 모여 돈을 걷고 카페까지 만들었던 걸까? “저의 경우엔 그렇습니다. 아마 그랬던 아이가 꽤 많았겠죠. 그 시절의 컴퓨터 게임이란 것은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돈을 걷은 건 동정 때문이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이 카페는 전쟁의 반대항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어요. 그저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선 견딜 수 없기에 단순히 놀 장소가 필요했던 것뿐이죠. 그 아이들이 돈을 낸 이유는 아마 같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어린 나이에 어린 아이들의 그 성향을 일부 이용했지요.” “그렇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잠시 주억거리더니 설거지를 하고 있던 사람을 불러왔다. “내가 알기로는. 서로 안면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잘은 모르지만요.” “글쎄요. 그 시절에도 얼굴을 본 적은 없어서.” “여기서 아는 사이였다고 밝혀지면. 만일 그때 많이 친했더라면.” “조금 어색하고 곤란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피하는 것이랍니다. 그쪽은 어떠시죠?”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무엇이 좋다는 건지 모르는 체로 그렇게 말했는데 내 앞의 두 명이 웃었다. 나는 그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든 뒤 카페를 나섰다.

2023년 8월 21일 월요일

기원 같은 것

*
꿈에 못 보던 무덤 하나가 나왔다.
일어나 종이 위에 동그란 무덤 하나를 그린다.
혼자 있어 외로운 무덤.
한켠에 누군가를 그려넣었는데 나도 모르는 여자다.
그로 하여금 참배차 무덤가를 서성거리게 한다.
석물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비석 또한 그린다.
엊그제 신문에서 본 억울한 이름들을 써넣을까 하다가
내가 그린 여자의 이름조차 알 수 없어 그만둔다.
이름을 물어보기엔
여자는 피곤해 보인다.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볼까.
기다린다.
여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지면의 물감이 마른 뒤에도 무덤가에 있다.
그는 나와 무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알 것 같다.

*
며칠 뒤 나는 연작에 해당하는 그림을 한 점 더 그린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무덤을 전면에 배치한다.
비석은 화면에서 잘라내고
상석에 빈 유리병을 하나 놓아둔다.
오늘도 찾아온 여자를 그릴까 하다가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신 유리병 속에 꽃 한 송이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그려본 꽃 중에 가장 화사한 노란꽃 한 송이를.
조금 전 여자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만
이곳을 다녀갈 정도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만 그리고 싶다.
아마도 그건 꿈이겠지.
꿈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꿈이어도 좋다.

침팬치

‘침팬지’가 맞는 표기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든과 던의 구분이, 로써와 로서의 구분이 흔적도 없이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힘, 그 어떤 초일류의 교정공들을 불러오더라도, 교정의 악마가 수만 번 강림하더라도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문자 생산력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그것들을 구분해주던 피부가 벗겨내지는 것을, 곤죽으로 합쳐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여기서 그를 떨어뜨리는 것은 수많은 입들이다. 신의 정체가 그렇게 밝혀지고, 그것은 가까워지는 중일까? 그것은 오는 게 아니라 모이는 것이었나? 감히 말을 멈춰 세우려 하느냐? 침팬지가 침팬치로 바뀌어도 바뀌지 않아도 뭘 어쩌겠는가? 미천한 교정공의, 절망 속의 사명감 같은 낭만적인 것은 다 접어두고, 그게 어디 눈썹 한 올만큼이라도 중요한가? 이 엄청난 함성 가운데, 침팬치와 침팬지 사이에 차이라고는 전혀 없다고나 할 것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심판해야 한다는 상황, 심판의 성립 불능이 최종심판이다. 아니면 공판 시작이거나. 우리가 바로 각자의 표를 들고 강림한 수억... 교정의 악마다.

나, 옛날에 교정공이었던 침팬치는 손깍지를 베고서 가짜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나지 않는 화면의 잔상과 어지러이 춤추는 글자들을, 이상한 말이지만 눈을 빠르게 깜빡여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이지? 그러다 알았다. 아니, 인정하게 되었다. 압도적인 문자 생산력 그 자체... 세계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천사를 악마로 그 반대로도 만드는 그것: ‘인터넷에 가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가짜라는 개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교할 만한 진짜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진짜가 인터넷 외부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가짜정보를 생성하기 쉽다거나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 같다는 느낌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던 경험, 나는 그것과 인터넷 자체가 완전히 같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인터넷에 관하여, 참/거짓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1) 확대하면 할수록(적은 관측 대상) 해상도 떨어짐. 2) 축소하면 할수록(많은 관측 대상) 해상도 떨어짐... 말인즉슨 인터넷은 규모가 문제이던 시기를 넘어섰다. 그것은 이제 어떤 영역이 아니며, 연결 따위의 문제도 더 이상 아니다. ‘인터넷이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그다음, 그다음이다. 이것은 언어의 두 번째 강림이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현실에 대하여 갖던 그만큼의 후줄근한 해상력이 여기에, 전적으로, 자신을 펼치며 도래 중이다. 이제 인터넷은 재현 일체를 언어화시키는 무엇이다. 이는 언어에게는 대도약이고 인간에게는 재앙처럼 보인다. 우리를 혼란 가운데 작게 남겨버리고 자신은 도약하는 것, 말과 문자 사이의 심연 중에서 그것은 입을 벌렸다가, 그 이상의 크기로, 모든 것들을... 엮여버린 우리를... 함성과 함께 뒤덮고, 빨아들이며, 다른 종류의 우리를 남겨버리는 것이다. 나의 깍지 낀 손가락들이 뭉그러진다. 나는 합쳐진 손 덩어리를 위아래 양옆으로 휘두르며 우끼! 라고 외치고 우끼끼! 라고 덧붙인다. 이게 나의 결론이었고 ‘침팬치’ 출판사의 출발이었다.

우리 앞에 남겨진 문제는, 그렇다면 언어의 이 새로운 상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 한때 교정공이었던 침팬치의 견해로는, 인터넷을 하나의 거대한 2차 창작으로 대한다면 가장 현상태에 부합한다. 우리는 실로 점점 더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어떤 종류의 문학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이 바로 거대한 문학, 겪어본 적 없는 문학, 유례없는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문학이라고... 나는 말하려는 것 같다. 나의 확신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저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확신, ‘문학적’인 확신이! 아마 인터넷에 대한 이보다 더 적절한 평가는 없을 것이며, 이미 누군가가 이와 같이 평가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평가했든 뭐가 중요한가? 여기서 아이러니가 있다면, 총인류의 입장에서 따지자면, 그럼에도, 이것이 어떤 후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 그것이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침팬치들은 읽기를 갓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의 손에는 동화책이 들려있다. 우리는 이렇게 배우는 줄도 모른 채 배우고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고 있는가? 내가 아직 교정공이었던 시절 뭔가를 배웠다고 느꼈을 때는 반드시 반복의 실패, 종료, 감탄이 있었다. 우리는 작별을 통해 배운다. 지금은? 현실을 끝없는 원작으로 만들어버리는, 드디어 심판을 시작한, 언어라는 자동기계와 마주하면서, 나 춤추는 침팬치의 털가죽은 녹아내리고 있다. 여기에 무엇이 남겠는가?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랑데부

주저앉아 그 나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곳들도.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했지? 나라였던 게 잘못? 서기장의 잘못? 바보같이. 그게 벌써 언젠데... 그때, 망할 때, 환호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왜 없었겠어. 지금 그 사람들은 어떡하고 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행복할까? 앉아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 한심한 생각 외엔 다른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겠어.

지금은 어때?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우리는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우린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코를 막고서, 눈을 막고서, 아직 아니고, 아직 아니야! 이미 지났기에 아직 아니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눈물이 흐르는 세상이다. 내것은 아니다. 눈물도 세상도 아니고, 막힌 데서 우리는 소리치고 있다. 주저앉아서, 눈물이 나는 세상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으억! 으으억! 우린 무릎으로 기고 있다. 허벅지로 기고 있다. 여기를, 배로 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탓이다! 우리의 탓! 그것은 터진 것이다. 폭탄들은 터졌다. 진작에 터졌다.

야 일어나봐라, 그러지 말고. 지금 너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 어쩌려고 그럭하고 있어, 안 되면 어쩔라고, 야 그러지 말어, 어쩌려고... 안 되면, 공산 안 되면...

우리는 붙잡았어야 했다.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읊고 있다. 핥으면서. 답은 이미 나왔다. 그때 어떻게든 열었어야 했다. 못 열었고, 긴 엔딩, 그 생각이 천지 사방에서 누른다. 나온 답을 집어던진, 손잡이를 부숴버린, 우리는 지금 어둠 속에서 벌레가 꾸는 악몽이다. 우리는 내 속에 있다. 만약 돌아가더라도 그대로 하리란 걸

그러리란 걸 깨달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자유를 얻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앉고 싶을 때까지 앉을 수 있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고, 우리는 기쁘고, 여기서 꾸물텅거리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 있다.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고 더 버티다 죽을 수도 있다. 주먹이 으스러지고 있다. 어디서 개들은 짖고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인간들이여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라! 우리의 움찔대는 배를 적시고 있는 이것은 눈물이나 배설물이 아니다. 우리는 따라서 짖고 있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우리는 복수했다. 우리의 피로.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를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흔들고 있다. 저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저것은 우리여선 안 돼! 그러나 그것이 우리라니. 우리는 관 속에 있다.

우리는 읊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저 멀리 깊고 넓은 데 있는데 우리의 말은 터무니없이 짧구나.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닿을 수 없다. 아니면 우리는 지르륵 지르륵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우리를 웃게 한다. 지르륵 지르륵.

이걸 받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해졌다. 받은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걸 정말? 그러나 나는 이미 받았다. 머리털 끝까지 열이 뻗쳐 눈물이 흘러도 이걸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입 속에서 세차게 말이 흐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이토록 불행과 악이 만연한, 그리고 틀림없이 더해갈 세상에서,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그러니까, 아직은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봤어? 어떻게 이런... 이런... 이런 걸 갖고 나가라고?

다시 생각해봐. 너는 바보짓에 놀아나고 있어... 적들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듯 저것이 중요하다는 듯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두고 홀린 듯이 하고 있어. 너는 낙심해서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야. 생각을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 싸우다 진 게 아니야. 싸웠던 이들은 오늘날을 위해, 사후세계를 위해 싸웠던 게 아니야. 어떤 뭔가에서 다른 뭔가로, 네가 바꾸는 게 아니야.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야. 무한이 유한으로 바뀌는 게 아니야. 이기겠다는 생각,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고쳐먹어. 이기는 게 아니야. 거짓으로 거짓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진실은 거짓을 이기지 않아. 아니라고?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니야, 그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어. 그 말이 그 뜻이야! 유한이 유한을 향해 나가는 거야. 나가는 거야...

그러나 너는 이미 흩어졌다. 유언처럼 된 너의 말이 계속 해변으로 도착하고 있다. 여전히 끌려가고 있고 머리 깨지고 있다. 으스러지고 있다. 어쩌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쪽은 나인지도 모른다. 네 죽음은 멀수록 좋을 것이다. 네 죽음도 언젠가 내 머리통과 함께 흩어지고, 완전히 잊혀지는 날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때는 거짓도 서로를 붙들고 운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해 울지 않는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진실로 혼자다. 세계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세계가 그토록 쉽게 끝났다는 데에, 그들은 드디어 도달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내려가는 것이 그들이다. 왜 이 일을 계속하느냐고? 내가 이 일을 그만둬도 누군가는 하기 때문이다. 그 한심한 생각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도로는 여기서 끊겼고 우리는 떨어진 별처럼 쏟아져 있다.

2023년 8월 10일 목요일

공포 같은 것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그는 잠을 자고 있다.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미련이다.

그 긴 것이
왔니, 하며 눈을 뜨고 내게 무언가를 묻기 시작할 때
나의 안부는 발생하는 것이다.
동그란 주먹을 쥐고 눈을 비비듯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인은 있니, 돈은 좀 있니,
기대할 때마다 무조건 나는 알았어, 알았어, 하는 것이다.
그래도 먹다 뱉은 수박씨처럼 마음의 허벅지에 와서 찰싹찰싹 달라붙는 것이다.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이토록 그는 나를 걱정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요.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의 불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거실을 나서지 않고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의 불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어코 그가 방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나는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인데 그저 방바닥에 누워 조용히 침을 흘리고 있는 침묵이었을 텐데.

사실 침묵 속에는 조그만 독채 하나가 있어
불경한 꿈이 칩거하고 있는 것이다.
집 안에 흙 둔덕이 있고 거기에 새가 많이 찾아오고
까마귀의 등에 까치가 올라탄 것을 그가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

꺼져 있던 형광등이 켜진 것이다.

그때 일어난 일에 대하여 나는 말을 아끼려 한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쥐 두 마리를 꺼낸 것, 그리고 쥐를 풀어 새를 쫓은 것.

그리 조용한 일은 아니었다.

쥐가 쥐의 함성을 지르고
새가 새의 박수를 칠 때,

놀란 그는 방으로 뛰어들었고 양손에 커다란 쇠망치를 들어

빨갛게
빨갛게

쥐와 새를 두들겨주었다.

다시 새로운 안부를 물을 듯한 얼굴로

팡!
팡!

두들기고 있었다.

2023년 8월 8일 화요일

초월일기 10

내가 날 배신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럼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2023년 8월 4일 금요일

원뿔 같은 것

그는 살아 있다.
찻잔에 묻은 입술 모양의 얼룩이 그걸 잘 말해준다.
적당히 잊혀질 하루의 한 조각,
조각을 만지면 차가웠다. 한 주간 한파였다.
집집마다 동파가 이어졌다.
그는 이 조각을 적당히 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세게 쥐면 망가질 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질 수도,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을 헹구러 갔다.
물을 틀면 차가웠다. 흘린 그의 일부가 역류했다.
이런 시대엔 대단히 어색하게도,
그는 이 지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돌과 나무로
손수 집을 지었는데 차돌같이 단단했던 생활은
한 조각이었다. 정말 한 조각만 남았다.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고 새로운 원뿔 모양인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처음이자 마지막 원뿔이다.
그리고 그의 당부라면,
만약 여기까지 읽고 있는 당신에게,
차가운 줄도 모르고 원뿔을 만지고 싶은 당신에게,
원둘레에서 솟은 정점까지 진심으로 닦아주길.
어느 집에나 보풀 많은 수건이
하나쯤 있으리라 믿는다…….

2023년 8월 3일 목요일

18

 


프랑스의 시인 A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벨기에로 간다. 나는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벨기에에서 자랐으며, 벨기에를 떠난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자신의 시를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그런 나라에 태어난 게 싫었으며, 그런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나라만 아니면 될 것 같았고, 그걸 도피라고 부른다면 그냥 도피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는 벨기에로 간다. 그가 벨기에가 자신의 나라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약간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더 각박하리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으로 강한 무관심을 받고, 그건 프랑스에서 받은 무관심보다 더한 것이고, 그래서 그는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서서히 모든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듯한 기분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빵을 사러 가면 가게 주인이 자신에게 인사조차 해주지 않았고, 가게 주인은 그날 저녁에 술을 너무 마셔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가게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열지 말자고 결론을 내린 후, 가게까지 왔다가 발걸음을 돌릴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며, 숙취가 심하지만 가게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가 거리를 걸어다니면 모두가 그를 향해 비난의 눈빛을 보내는 듯 했는데, 나는 비둘기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비둘기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는 나중에 가서는 차마 길을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알아봐주지 않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런 식의 적대감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머리가 텅 비어 있고, 그래서 자신의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그날 이후에 매일 매일 벨기에 사람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벨기에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책을 떠올리며 약간 미소지었다. 벨기에에 와서 거의 처음 보인 진정한 웃음이었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이 웃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레스토랑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것은 불쌍한 벨기에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저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A는 도무지 그 책을 끝낼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벨기에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벨기에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벨기에 체류 동안 그에게 일어난 변화라면 변화였다. 비둘기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은 어떤 먼 친척이었는데, 그는 유럽을 여행했고, 유럽을 일주일 만에 일주했고, 유럽에 대해 다 아는 듯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자 취리히라고 대답해 나는 벨기에의 수도가 취리히가 아닌 건 알지만 그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서, 누군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면 취리히라고 말한다. 내가 벨기에가 수도가 취리히라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지금은 이름이 기억도 안나는 그 먼 친척이 된 것 같다. 

2023년 8월 2일 수요일

콘테나-추레라

사람을 욕한다는 것은 이제 지겨워졌다. 난 사람 욕하기를 그만두고 싶다. 사람을 욕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을...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마주치는 것들이란 다 개새끼 아니면 버러지들이다. 죽이고 싶은 녀석들 콘테나로 한가득이다. 아니야, 난 그러지 않기로, 사람을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죽이면 될 거 아닌가?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콘테나 속에는 개버러지새끼들, 추레라엔 내가 타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음악을 틀었다. 듣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낼 수 있도록 음악을 틀었다. 마음이 약해져 사람 욕을 시작하지 않도록. 그렇게 가는 중이다. 쓰레기장으로다. 죽이고 싶은 것들 파묻어버리러다. 이것은, 이 도로는, 이 운반은, 보람도 뜻도 결과도 없는, 조용하게 확실하게 마음들과 삶들을 파괴 중인 전쟁이다. 누가, 무엇을, 누구에게,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바로 이렇게다. 죽이고 싶은 것들...

그런데 이 세상에, 콘테나에 꽉꽉 처넣은 저것들보다도 더 증오스러운 치들이 있다. 개작살이 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런 건 아주 모르는 듯이 굴고 있는 녀석들, 죽이고 싶은 것 파묻어 버리고 싶은 것 따위는 없는 듯이 구는 그런 녀석들이 있다. 그래? 그런 곳이 있다는 거야? 너희는 그런 곳에 있다는 거야? 진실로 나는 베인 풀더미처럼 선한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있고 가까이 있는 이들, 말이 없는 이들, 그런 이들이 아니라, 쓰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것 따위 없는 듯이 쓰고 있는 이들, 내가 증오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 마음이 꼬인 세상에서 같이 꼬였다면, 그들의 마음은 꼬인 세상을 돌리고 있다. 어떻게 너희는 그럴 수 있는 거야? 어째서 그렇게? 우리 중 가장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너희가? 쓸 줄 아는 너희가! 우리...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그래도 서로를 매달고 있다. 쓰레기 같은 노래를 들으며 함께 쓰레기장으로 가고 있는 처지다. 나만 죽이고 싶은 것들이 있는 게 아니다. 나를 죽이고 싶은 이들이 각자의 콘테나에 나를 싣고 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 죽이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수습해주고 싶은 것들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마음이 그래도 우리 사이에 통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교차로가 있다. 매일 지나며 어두워지는 마음,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마음이 있다. 고개를 빼고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보면 거기 버러지의 홑눈 겹눈이 있다. 이것은 어둠의 교육이고 훈련이다. 그러나 이런 건 아무래도 좋은 그 녀석들... 이런 것 따위 배우지 않는... 배울 필요도 없다는 듯이 구는... 그 녀석들은 정말이지 참아줄 수가 없다. 당연히 참아주기 어렵다. 매달아 끄는 게 아니라 쳐버리고 싶은 녀석들. 하지만 유령인 녀석들. 도로 한가운데 멍청하게 서있는 한 녀석을 피하려다 뒤집어질 뻔도 했다. 그렇게 죽이고 싶은 것들을 쏟아버리면 부서지도록 이를 깨물고 도로 주워야만 한다. 여전히 녀석은 도로 한가운데 서있는 동안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죽이고 싶어 하면? 오히려 좋아하지. 울면서도, 흐뭇하게 여긴다는 걸 안다. 핍박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들! 그게 그들의 진짜 목적이다. 나는 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쓰려 드는 걸까? 이건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여튼 꾹 참고 있다. 녀석들이 거의 없는 듯이.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못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 쏟아진 개소리 위에 비린내 나는 우리를 쏟아붓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냐? 있다는 말이냐? 우리도 진실로 이 도로를 벗어나 떠돌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아니다. 그들처럼은 싫다... 이 도로, 이 밤의 도로를, 이걸 당겨서 끊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어떻게?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어려워도 추레라의 후진보다 어려울까? 곧 나들목을 돈다.

2023년 8월 1일 화요일

23년 7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6,620원 (0원 + 286,098원 + 552원)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해골박

구區 내에서 손꼽히게 큰 A 공원에 이번에 새로 조성되었다 하는 테마관광숲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무슨 유치한 이름, 멍청한 이름을 붙였던데... 모르겠다. 하여튼 그 숲길 조성은 구청장 공약 사항이었다고 한다. 큰 나무를 줄지어 심고 캘리그래피 시가 들어간 표지판을 주르륵 세웠다는 모양이다. 지금 정확히 그 표지판들 중 하나를 보러 가는 중이다. 다른 게 아니라 구청장 본인이 쓴 시가 거기 있다지 않던가? 시 표지판이란 것만 해도 대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우리는 시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청장 녀석이 자기 시를 거기 갖다가 넣었다고? 정말이지 대갈통이 얼얼해지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 출판사가 찾던 바로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좀 뻔한 얘기인 것도 같지만, 우리 ‘해골박’ 출판사는 만들어져야 할 책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책을 찾고 있다. 우리는 역사 또는 작품 속에서 여러 양상으로 펼쳐진 책(넓게는 문화) 파괴와 관련된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조사했다. 새삼 그 의미에 대해, 왜 우리가 거기 매료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것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조금은 맞지만. 우리는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하지만... 환영한다. 우리는 어떤 파괴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어떤 파괴에 대해서는 절대로 아니고. 우리가 특히 흥미를 갖는 부분은 구분이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가? 우리의 관심은 지금 여기에서 편달 중인 구분자에게로 향하고 있다.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만들어지지 않은 책은 파괴된 걸까? 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파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파괴하지 말아야 할 가치는 있는가? 책을 파괴한다는 건 그러니까 대체 뭘까?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고 싶다.

구청장 B씨의 시가 답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장 먼저 야구방맹이를 챙겼다. 수박 한 통과 피냐타, 글러브도 챙겼다. 근방에서 눈 가리고 수박·피냐타 깨기, 아니면 야구를 하다가 부숴버렸다고 하면, 혹시 걸리더라도 참작해주지 않을까? 일종의 문화실습동호회라고 하면? 어쩌면 야구방맹이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문제를 두고 우리는 토론했다. 징벌적 의미에서 내려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가능하면 표지판 자체를 부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톱이나 망치, 빠루 등의 공구도 무겁지만 챙겼다. 불태우는 방안이나 페인트를 부어버리는 방안은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기각되었다. 만약 (표지판의 입장에서) 운이 좋다면, 시만 감쪽같이 바꿔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까지는 합의했다. 가능해 보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딱 맞는 크기의 백지를 준비해 거기 두 번째로 방문할 것이다. 정말 구청장 B씨가 거기에 자기 시를 (거의) 영원히 남길 생각이었을까? 그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다. 아예 거기서 캘리그래피를 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그 도구는 안 챙겼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는 데 우리는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우리는 무슨 퍼포먼스나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다. 완전 그 반대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차분하다. 우리는 먼저 확인할 것이다. 구청장 B씨는 정말 뛰어난 시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짐을 들고 그 테마관광숲길로 가고 있다. 해골박... 우리는 확인한 다음 집행할 것이다.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밀고와투서

계간 『밀고와투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합 경제문화지로서, 우리 자본과 안보의 예술적 동반자입니다. 『밀고와투서』에서 여러분은 국체를 책임지고 있는 각계 리더들의 탁견과 혜안,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투자 전망과 고품격 트렌드 분석을 비롯, 불온노동계와 시민사회운동·정세 동향 보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며 고급부터 대중까지 아우르는 시와 소설 에세이 등 동시대와 소통하는 문학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창간부터 『밀고와투서』는 문화계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자유가 꽃피던 시기 『밀고와투서』는 첨단 지성의 집결지이자 창조적 파괴의 산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경영과학과 글로벌 트렌드·반운동과 문학을 결합한 종합지로서의 구성은 세계적으로도 전위적인 시도로 평가되었으며 지금까지 다채롭고 혁신적이면서도 대중친화적인 기획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밀고와투서』의 옆을 지켜준 것은 의식 있는 사회 지도층이었습니다. 대중문화를 앞에서 선도하고 뒤에서 밀어주는 지도층의 선한 영향력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런 한국 현대사 가운데서도 『밀고와투서』가 끊임없이 독자를 확장하며 가치를 증명하고 자기를 갱신하여 너른 상업적 성공을 이룩함으로써 제 몫을 해낼 수 있게 이끌어준 진정한 원동력입니다.

『밀고와투서』는 독자와 함께 다시금 ‘저항과 창작의 거점’으로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을 새깁니다. 주목받는 작가들과 함께 문단에 문학적 폭과 깊이를 더하며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시각으로 우리 것을 소중하게 보듬으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지혜를 세계적 전망 아래 모으기 위해 힘쓰고자 합니다. 날로 새롭되 한결같은 모습으로 『밀고와투서』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2023년 7월 17일 월요일

할매틀니

할머니의 작은 틀니가 떠오른다. 그것은 부분틀니였다. 할머니의 가지런한 앞니들이 물 찬 플라스틱 컵 속에 있었다. 그것이 책과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었나? 나는 생각한다. 글 모르는 아기가 집어던지기라도 한 듯 아무렇게나 펼쳐진 책,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할머니는 담배를 즐겨 피웠다. 지금은 팔지 않는 담배다. 담배를 피울 때는 틀니를 빼놓았던 할머니, 말이 별로 없었던 할머니, 너와는 아무 통할 말이 없다는 듯, 개를 보듯 나를 보던 할머니. 지금은 여기에 계시지 않는, 그러나 모든 곳에 계시는. 전 인민의 할매化를 나는 오늘 생각하고 있다. 전 인민이 할매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 컵 속의 틀니에 관한 것, 곧 사이보그화를 말하는 것이다. 교합면의 복잡도를 한정하지 않는다면, 인민은 다만 아직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미 할매화되어 있으며, 할매화란 교합면에 대한 인지와도 같다. 그리고 또한 물컵 속의 틀니가 자신이기도 함을, 유리 너머 연기에 휩싸인 할매의 약간 왜곡된 이미지 앞에서 축축하게, 그러나 완전히 침범당하지는 않은 채 인준하는 것이다. 나, 인민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유는 재다. 한때 할머니였던. 이것이 인민의 대답이다. 자유가 되려는 것이 우리를 입으로 가져간다. 아이가 집어던지기라도 한 듯 아무렇게나 펼쳐진 책처럼 생긴 것을. 불멸의, 그러나 무한하진 않은 추억 속에서.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흡혈문화사

지금은 거적때기를 두르고 있지만 나도 어엿한 흡혈귀다. 피... 신선한 피 새로운 피를 찾아서 나는 헤매고 있다. 전에는 젊은이들의 피를 많이도 마셨지. 지금은 거적때기를 두르고 있지만, 망자의 말라비틀어진 목을 지금은 빨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새로운 피가 좋다. 아무리 맛 좋던 피라도 늙어버리면 지린내가 나고, 죽어버리면 녹을 핥는 거 같지. 시체들이나 예비시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새 피를 원한다. 늙은이나 죽은 이의 피를 좋아하는 녀석들도 물론 있다. 난 그런 변태들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맛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맛이 아니야. 나는 지금 여기 이 땅의 젊은이를 찾는다. 눈이 빛나는 젊은이, 그러나 확신 없이 두려워 하는 젊은이, 교만한 젊은이 건방진 젊은이, 겸손하고 또 예의를 아는 젊은이, 옛것을 숭배하면서 경멸하는 젊은이! 무엇이든 배우려는 젊은이! 너무 많이 배운 젊은이! 거짓말을 하는 젊은이이고 진실에 튀겨질 준비 중인 젊은이를, 아, 소용돌이치는 젊음이여, 젊은이의 혈관 속에 소용돌이치는 피여! 잔뜩 목을 빼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저렇게나 많다. 떫고 역한 풋맛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개성이 있어야 좋다. 그것은 즉 새로운 피여야 한다. 새로운 피는 어디에 있나? 나는 검증된 피를 원한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피도 원한다. 우유처럼 부드러운 향을 원한다. 조금 비려도 좋다. 나는 열대의 과일향을 원한다. 나는 고소한 맛 산뜻한 맛을 원한다. 다채로운 맛을 원한다. 나는 깊은 맛을 원한다. 무너진 맛, 완전히 빗나간 맛도 나는 원한다. 나는 조금 이상한 맛을 원한다. 뜨겁고 차갑고, 달고 써도 좋고, 맛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양할수록 좋다. 다양한 피를 나는 원한다. 예전에 보았던 맛을 오늘날 다시 보길 원하고, 전례 없이 새로운 맛을 원한다. 나는 이 피의 맛과 저 피의 맛이 섞이면 어떤 맛이 나는지 알길 원한다. 피 위에 피를 더하고 싶다. 피와 피를 나누고 싶다. 나는 그렇게 피 칠갑을 하고 싶다. 나는 피 칠갑을 원한다. 나에게 뛰어들어라! 나에게 뛰어들어도 좋다! 나는 피 칠갑을 원한다! 나는 피 칠갑을 원한다! 피 칠갑을! 컴온!

22

 


그냥 갑자기 쓰게 된다. 그냥 갑자기. 지금은 7월 15일이고, 35도이며, 토요일이다. 수요일마다 쓴다고 했는데, 수요일에 쓴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오늘은 토요일에 갑자기 쓰게 되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더웠으며. 잠깐 걸어다녔는데도 땀이 많이 났으며. 수영장에 사람이 몰려서 샤워실이나 화장실에서 온갖 악취가 났으며, 문을 한 시간 후에 닫는다고 하는데도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으며, 짜증을 내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어이가 없었으며, 어이가 없어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제부터 나랑 약속한 게 있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수영장에 갔으며, 악취가 나는 와중에 샤워장 이용도 잘하고 나와서 머리를 35도의 더위에 말리면서 잠시 어딜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냥 갑자기 예고도 없이 쓰게 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턱관절에 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턱관절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했다. 사실 자신은 심장 전문의인데, 어쩌다보니 턱관절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가면 아무나 만나게 된다. 내 문제는 턱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품을 할 때마다 말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하품을 너무 자주 해서 가끔 턱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피곤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일단 외출을 하게 되면 하품부터 난다. 하품을 하면서 걸어다니다 보면 피곤하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외출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외출을 하는 시늉을 하려고 외출을 한 것이다. 근데 누구에게 그 시늉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게 내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백퍼센트 자몽으로만 만든 자몽주스에 탄산수를 타서 마시면 정말 상쾌하다. 백프로 상쾌하다.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23호 서신]

*23년도 3사분기 진입
- 과過 또는 저低활동 모니터링
- 수면/섭식 위생 관리 철저
- 저기압으로 인한 급작스런 정서변동·의지상실 대비
- 점점 격렬해지는 국내외 정세 대비(주변 조직화)
- 수해 대비 점검 및 상황발생 시 요령 숙지

*독자 투고 및 모금통 현황
- 올해 1월 최초 투고 이후 이후 투고 없음
- 모금통 5개월 연속 무격려 레이스

*환경정리
- 입하장부 개선 및 매뉴얼 작성 완료
- 연재 태그 소개저장고 페이지 제작
- 관리/검색 편리화를 위해 4자릿수 입고 코드 도입(저장고 페이지 참조)

*알림판 관련
- 트위터 서비스 불안정 및 장래불투명
- 알림판 기능 상실 등의 충격 대비 심적 물적 준비
- 모든 채널로 의견 수신 중

*권장사항
- 공용태그 작성
- 장기 연재중단 태그 입하
- 투고 권유
- 이메일 구독 권유
- 게시판 활용방안 강구 등

이상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도시 전설 2

*

도시가 물에 젖고 있다. 조용히 여기서 보고 있으면 도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도시에 비가 내린다. 도로에 있는 자동차들의 배기음이 빗소리에 묻히고 있다. 빗소리에 묻히니까 나는 여기서 노래 부를 수 있다. 우산을 쓰고 있다. 흰 신발을 신었다. 별이 떠 있다. 나는 옥상 위를 걷고 있다. 조금 빨리 걷는다. 내 끝머리에 물이 조금씩 묻는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도 잦아든다. 비의 차가움이 우릴 사랑하고 있다. 비의 미적지근함이 너흴 사랑하고 있다. 당신은 뒤에서 우산을 쓰고 있다. 조용한 음정으로 당신은 말하고 있다. 빗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크게 말해줄래요?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단지 도시에 비가 내리고 있다. 도시가 물에 젖고 있다. 그뿐이다.


*

당신은 얼굴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 동아리실의 문 너머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을 떨어뜨리고 있다. 당신도 얼굴을 떨어뜨린다. 그걸 보고 익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안이 아늑하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알맞은 분위기를 찾은 것이다. 대부분의 것이 다 분위기지만 그 이상의 것도 우리는 글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른 이상한 말이 없는 것이다. 여기는 누구나 환영하는 동아리이고 얼굴이 없는 것은 감수해야 해요. 조용히 책을 읽던 부원이 옆에서 말한다. 안경을 코에 걸고 있는 부장이 당신에게 질문한다. 여기에 사람이 부족한 건 왜라고 생각하나. 오후 6시가 되었다.


*

여기서 동아리 부원들이 모이고 있다. 뒤편에는 믹스 커피 박스가 있다. 지금 이 시간이 주로 모이는 때다. 여기서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거나 한다. 페이스리스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은 부장의 주장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차분한 동아리가 갖고 있는 ‘등록만 해두고 동아리 활동을 안 하는’ 부류에 의해 곤란을 겪고 있다. 이 동아리에서는 세계관 창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고 또 권장되고 있다. 그 세계관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세계-관념이라고는 한다.


*

동아리 선배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학교에 미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꽤 당연한 일이다. 나도 그랬으니. 우리는 졸업반이고,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그림을 그리는 어떤 선배가 우리 학교에 와서 그 직업에 대해 40분 정도 알려준 적이 있었다. 되게 재밌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커서 뭐가 되는 걸까? 여기가 소설 속 세계라면 재밌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세카이계나 뭐 그런 거. 세카이계가 소설이 맞나? 부기팝……? 어쨌든. 여기가 소설 속 세계가 아니라면 나는 재미없는 직업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백수가 되겠지. 어쨌든 이 세계선이 소설 속 세계인지 아닌지는 비밀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마추어 세계관 창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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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동아리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루히 같은 일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건 많은 사람들의 연습이 필요하니까. 밖을 보니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닌다. 동아리실은 여러 가지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

그뿐이다. 도시가 물에 젖고 있다. 단지 도시에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크게 말해줄래요? 빗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아요. 조용한 음정으로 당신은 말하고 있다. 당신은 뒤에서 우산을 쓰고 있다. 비의 미적지근함이 너흴 사랑하고 있다. 비의 차가움이 우릴 사랑하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도 잦아든다. 내 끝머리에 물이 조금씩 묻는다. 조금 빨리 걷는다. 나는 옥상 위를 걷고 있다. 별이 떠 있다. 흰 신발을 신었다. 우산을 쓰고 있다. 빗소리에 묻히니까 나는 여기서 노래 부를 수 있다. 도로에 있는 자동차들의 배기음이 빗소리에 묻히고 있다. 도시에 비가 내린다. 조용히 여기서 보고 있으면 도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도시가 물에 젖고 있다.


*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도시가 바다 아래에 있다는 듯이.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사타내셔널

친구한테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 난처해하는 걸 그냥 우겨서. 커피를 한잔씩, 밥을 한 끼씩 사주면서. 갑자기 무슨 시를 쓰겠다는 거야? 시라도 쓰면 좀 나을까 해서. 많이들 쓰는 거 같던데? 많이 누가? 그리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아. 너한테 아무 도움도 안 돼. 네 생각은 그렇다는 거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시라도 쓸 생각. 답답하니까. 뭐가 답답해? 굳이 대답하지 않을게. 그래. 친구는 내가 써 들고 간 시를 두고 여러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했다. 이게 여기 있으면 이쪽이 좀 그래. 그럼 어떡해? 이렇게? 그래 그것도 좋아. 미안하네. 내가 가르칠 만한 입장이 아니어서. 하지만 노력 중이야. 이건 괜찮고 이건 아니야. 왜 아닌데? 글쎄... 이건 여기 이게 있으니까 아니야. 만약 이걸 그냥 둔다면 이쪽은 이게 좋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화내려는 게 아니라, 뭐가 괜찮고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 그걸 다 말하려면 너무 길어. 듣기 좋은 얘기도 아닐 거고. 그런 건 설명해줘야지 무슨... 맞아. 나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궁금하면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나 같은 아무나하고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 일도 훈련이 필요하고 나는 훈련되어 있지 않아. 그 사람들이 괜히 돈 받는 게 아니라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계속해봐. 이건 여기에 되니까 이렇게도 걸리거든? 내 생각엔 이게 여기로 오면 더 좋을 것 같아. 어때? 근데 이러면 상관이 없어지는데? 없어도 돼.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해. 근데 이러면 네가 쓰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래. 그런 거야. 그런 위험이 있는 거야. 그걸 기억해. 네가 쓰는 거야. 하지만 위험에 노출시키는 거야. 너는 자신을 놓치는 거야. 다른 걸 얻는 거야. 위험에 노출시킨다... 난 사장님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어. 사장님을? 그래. 그럼 그렇게 해봐. 하지만 또 기억해, 사장님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그렇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사장님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래. 네가 노출된 위험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네가 노출된 위험과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위험에 사장님은 노출되어 있어. 그 어떤 사장님이라도 그래. 그 어떤 너라도 그렇듯. 그건 정말 답답해지는 얘기야. 그렇다니까?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지... 그런데 왜들 그렇게 쓸까? 네가 쓰려는 이유하고 비슷하겠지. 그런가? 사실 사장님, 사장님이 시집을 낸다고 난리야. 어떻냐고 자꾸 나한테 물어보잖아. 이상한 시를 뽑아서 주면서. 뭐가 별이 어쨌느니... 별을 무시하지 마. 기억해. 별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아니 이제 됐어 그 얘긴. 그럼 사장님 시를 평가해야 하니까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한 거야? 아니야. 아니지 당연히. 기억해줘. 악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2023년 7월 5일 수요일

무자비

자비출판을 고려하는 당신! 출판사명이 고민이시죠?
출판사 ‘무자비’가 답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당신 책의 출판사명 자리에 ‘무자비’를 넣으세요.
무자비 출판사는 어떤 형태의 독점적 권리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무자비 출판사는 어떤 책이든 품을 수 있는 하나의 개념입니다.
무자비 출판사는 허상이 아닙니다.
메일 한 통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무자비 출판사의 여러 채널들에 신간 알림을 띄워 드립니다.
아무 대가 없이요.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
무자비가 당신의 비전을 돕습니다.
이것이 무자비 출판사가 제안하는 새로운 출판입니다.
그것은 출판사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도서목록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몇 명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책이 무슨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무자비의 전당에 당신의 책을 들여보내십시오.
무자비의 미래는 잠정적으로 무궁무진하고
거의 무한히 변화무쌍합니다.
당신의 책이 어떤 책이든 괜찮습니다.
당신의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무자비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로고 스탬프와 스티커를 구매하셔도 좋습니다.
책등용, 표지용, 내지용의 세 가지 종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자비의 전당에 책들을 들여보내십시오.
당신이 책을 만들지 않아도 좋습니다.
무자비의 비전을 당신이 채우는 것입니다.
지금 가십시오!
밝혀지지 않은 어둠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2023년 7월 1일 토요일

신곡에서 삭제된 지옥의 해부도

 

 끝내 신을 박멸하지 못한 축생들의 눈물을 저버린 채 살아서 무덤에 묻힐 날을 기다린다. 누가 나의 전부를 열어젖히려 다가올 것인가. 무저갱은 하늘과 대지를 관통하려 용의 아가리를 벌린다. 나는 타락한 천국도, 성스러운 지옥도 아닌 제3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하세계는 육십사괘의 벌레구멍으로 끝 간 데 없이 전개되어 있다. 망각의 액체 헬륨이 흐르는 미친 암흑에 잠식된 음부에 닿은 나의 메아리는 농축된 신비에 질식한다. 동굴의 정령들이 반딧불을 켠 채 날아다니다 수은중독으로 바스러진다. 4미터 너비의 갱도에는 초전도체 자석이 박힌 100km 길이의 초합금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가상입자가속기의 미궁에 갇힌 채 차오르는 망령된 방사성 가스를 피해 허우적거린다. 그때 대전된 입자 빔 두 가닥이 찰나에 수억 번이나 충돌한다. 입자 검출기는 악의 천둥 번개에 관통당해 제어시스템이 망가진다. 우라늄 238의 원자핵이 방사성 붕괴를 일으켜 중성자와 양성자로 쪼개져 핵분열하며 불안정한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를 뱉어낸다. 그것들은 광속으로 가속되자마자 서로 충돌하여 진공 속에서 폭발한다. 소형 블랙홀이 생성되어 물경 만 쌍의 눈동자를 끔뻑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공포를 쏟아낸다. 어둠으로 구성된 빛은 매번 등 뒤에서 나의 내면을 비춘다. 나는 이글거리는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그 순간 빛으로 아름답게 빚어진 나 자신과 완벽하게 동일한 형상과 마주한다. 그 빛사람이 왼손을 뻗어내자 오른손을 빼앗긴 나는 거울에 비친 울렁대는 허상으로 전락한다. 간섭무늬 없는 후광 속에서 빛사람은 심장 속에서 세계를 끄집어낸다. 나의 육체는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사후경련에 사로잡힌다. 나의 영혼은 림보를 순례하는 듯한 전신마비에 비틀거린다. 나는 어둠을 발음하지도 못하는데 어둠은 나를 드높여 발휘한다. 어둡고도 두껍고도 두려워서 어두워진 어둠의 이전으로, 아직 빛이 당도하지 못한 미지를 예언하듯 회상한다. 


 ……없다. 사지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려보지만 아무것도 감각되지 않는다. 없다. 있는 힘껏 악을 쓰고 고함을 쳐도 들리지도 울리지도 않는다. 없다. 거대한 행성이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듯 나는 나의 무력함에 압도당한다. 없다. 끝없이 작아지며 멀어지는 나를 멀리서 내가 지켜본다. 없다. 우주는 순환하며 빛을 발하기도 거둬가기도 하며 나의 죽음을 축복하는 듯하다. 없다. 진공 속에서 온몸의 생기가 증발하자 내면의 부정성이 개방된다. 없다. 나는 정신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한다. 없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기억과 정체성마저 희미해져 간다. 없다. 계속해서 추락하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없다. 위치와 속도를 잃어버리자 자유의지의 나침반이 얼어붙는다. 없다. 진공은 강력한 자기장을 발하며 티끌과 연기를 뿜어낸다. 없다. 허공조차 희박한 공간 속에서 감압된 시간은 바람소리도 없이 가라앉는다. 없다. 전류의 꽃들은 불규칙적으로 부풀어 올라 거품을 방사한다. 없다. 나의 육체는 흐린 무지갯빛으로 얼룩진다. 없다. 나는 먹구름의 장막을 뚫고 계속해서 추락한다. 없다. 대지의 풍광이 보이는 듯하다. 없다. 지표면에 충돌하기 직전 나는 혼절한다. 없다 나는.


 폐허의 찢어진 4차원 오감도. 지구의 어딘가. 어디에도 없는 영역. 망각된 영토. 수목한계선. 불살라진 지도. 버려진 계획도시. 지하의 비밀연구소. 나는 무저갱된 나. 흩날리는 피의 눈 결정체. 크고 작은 싱크홀들. 금 간 바닥과 천장. 산산조각 난 유리창. 관측 불가능한 이상현상. 거리엔 흩날리는 서류더미. 터져버린 소화전과 솟구치는 시궁창. 느려지는 사이렌. 백지를 찢는 지진계. 폭주하는 시뻘건 가이거계수기. 낡은 모루와 없는 망치. 피 흘리는 석고상. 찢어진 풍경화. 장인의 아뜰리에. 용도가 없는 소품과 희귀한 진품. 함몰된 가정집들. 끝없이 가라앉는 나로부터의 탈출. 실험실과 고문실. 기계를 고치는 기계. 인간을 기계하는 기계. 생체실험부터 핵실험까지. 금지된 만물이론. 가동되는 입자가속기. 발사 직전 우주선을 비추는 과거의 영상. 동시다발 박살 나는 화면들. 역전된 임계점. 위험수위. 천지사방 들끓는 빛에너지. 순간 휘어버리는 철근과 구조. 순간 바스러지는 벽면과 내면. 풍경을 벗어난 폴리스라인. 녹슨 장대비 내리는 거리. 접근금지구역의 찌그러진 철책. 텅 빈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비명. 회칠 벗겨진 건물들. 공원을 점령한 오물의 늪. 까만 피 솟구치는 분수. 재가 내려앉은 광장. 경악의 얼굴이 새겨진 파사드들. 악령의 무인지대. 원시와 야만. 무력한 문명. 과거가 박제된 골방들. 나뒹구는 살림살이와 잡동사니. 뒤섞여 방치된 골동품과 유품. 낡은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 조율을 벗어난 음계 속 감춰진 보물상자. 상자 속 앨범과 종이책들. 몇 개의 추억.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