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8일 금요일

논문

 

 

그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교수님을 만난다. 그곳은 6층이었고 두 사람은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는 어색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는데 느닷없이 교수님은 페르시아어를 하실 줄 아나요라고 묻는다. 교수님은 그 말을 유쾌하게 받아쳤지만 1층에 도착하자 한마디 말 없이 다른 길로 향한다. 그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교수님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늦었구나. 그는 최근 논문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가 탈락한 이유는 그가 말주변이 없고, 재미가 없으며, 너무 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었고 어떤 교수는 그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반대를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성이 없는 학생들의 논문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만큼 분위기를 잘 따른다. 그의 논문은 취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취미우선론을, 취미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취미와 돈 버는 일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는데, 아마도 교수들은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게 어때서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강경함보다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자는 입장을 펼친 다른 학생들의 쪽을 택한다. 그의 논문은 영원히 탈락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은 그의 관심 밖이다. 그 말이 그에게는 눈처럼 들린다. 지금 오는 눈처럼 말이다. 그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집은 ㄷ자 구조였는데, 시작점에는 거실이 있고 끝나는 지점에는 아빠가 쓰던 방이 있다. 그리고 ㄷ자의 중간에는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이 두 개 있는데, 그 방들은 습하고 곰팡이가 슬어 있다. 그는 그 방을 지나서 아빠가 쓰던 방으로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곳이 그의 집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여기는 누구 집이지 누구에겐가 묻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