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갱 단원

수염 긴 남자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수염 긴 남자는 갱 단원이다. 역마차를 털어 반을 조직에 던 다음 나머지 반을 넝마주이 같은 자신의 코트에 욱여넣는다. 거물은 아니지만, 현상 수배 전단 뭉치 어디쯤에는 그를 수배하는 전단이 있다. 보안관에게는 그를 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들은 수염 긴 남자가 마셔온 브랜디처럼 사라져 버렸다.

수염 긴 남자는 수납장에서 브랜디를 꺼내 마신다.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그의 수염을 다 적셔 놓는다. 그는 병을 벽에 집어 던지고 더러운 침대에 눕는다. 천장을 본다. 전쟁은 이십 년 넘게 끝나지 않았고, 그의 머릿속에서 그는 갱이 아니라 병사다. 많이 죽였다. 전쟁이니까. 그는 교수대에 갈 기회를 놓쳐왔고 그가 속한 갱에는 오직 그런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기병대로부터 빼앗은, 이제 쓰레기가 되어버린 모자로 그는 얼굴을 덮는다. 그는 멋 내지 않는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전쟁통에 무슨 결혼이람? 그러나 전쟁통에도 결혼한 사람들이 있음을 그는 안다. 그들은 죽거나 전부 죽었다.

모자에서 나는 악취에도 불구하고, 수염 긴 남자는 자신이 죽지 않는 사람 같다. 썩어 달랑거리는 이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도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 같다. 죽을 기회를 이미 다 쓴 거라면 어쩌지, 섬망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아래층의 총소리를 듣는다. 동료 갱 단원들의 비명이 들리고, 조금 뒤에 그가 있던 방의 문이 열린다. 수염 긴 남자는 얼굴에서 모자를 내린다. 문턱에 있는 것은 노예놈도, 현상금 사냥꾼도, 그가 죽인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다른 갱의 남자다. 반다나로 얼굴을 가려도 알 수 있다. 목에 오천 달러가 걸려 있다는 거물 자식. 수염 긴 남자는 키득키득 웃다가 침대 위에 내던져 놓은 리볼버를 집는다. 라이플이 수염 긴 남자를 겨누고 있다. 수염 긴 남자는 약실에 탄약을 채우며 말한다. 죽을 기회가 와서 좋구나, 목 매달릴 자식아. 그는 손톱 없는 검지를 당겨 자신의 관자를 쏜다. 수염이 뒤로 젖혀진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인 모든 사람을 본다. 그들 머리의 뚫린 구멍 속으로 뛰어가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본다.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capitalist cyber realism


한국의 두 전직 웹툰 작가가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2020년 1월 1일 가상 해돋이를 맞이하는 영상의 비디오 공유 플랫폼상 미리보기 이미지(2020년 12월 29일 구글에서 검색, 무단 게재)

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18호 서신]


*동절기
- 동파 대비 철저.
- 건강 관리에 유의.
- 전염병 예방 솔선.

*추가된 사항
- 페이지 우하단, 위로 가기·아래로 가기 버튼.
- 곡물창고 집중비축.

*파일럿 프로그램 『집중비축』
- 특정 기간 동안 필자들이 공용태그 또는 개별태그에서 공통의 테마로 삼을 수 있는 시제를 선정하여 고지하는 프로그램.
- 대응은 각 필자의 자유 선택. 선정 방법 등은 미정.
- 파일럿 진행 후 구체화 개편.

*곡물창고 첫 번째 집중비축 ―사이버 송구영신
- 오래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함. 연말연시 기간 중 사이버 송구영신을 소재·주제로 삼는 게시글 집중비축.

*내년도 계절 마감
- 입춘: 2월 3일
- 입하: 5월 5일
- 입추: 8월 7일
- 입동: 11월 7일

이상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곡물창고의 마스코트를 생각해 봤다’고?

곡물창고의 마스코트를 생각해 봤어요. 이름은 쭉정이. 세 가지 버전이 있죠. 관이 들고 온 세 장의 그림은 다음과 같았다.




관에게 괜찮으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물론 괜찮죠. 제가 안 괜찮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2020년 12월 4일 금요일

탐험

아이가 혼자 길을 걷고 있다. 그 아이는 길을 가던 도중 잠시 멈춰 강가에 손을 집어넣는다. 강물의 흔들림을 느끼며 그 아이는 공허를 만지고 있었다. 멀리서 어느 성가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강물에 집어넣었던 손을 빼고 계단 위에 올라간다. 계단 위에서는 이미 내려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선물을 들고 내려오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아이를 보곤 그것을 한 아름 건넨다. 아이는 선물을 받아 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선물은 내가 아이라서 준 것인가요.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아이는 다른 몇 아이들과 합심해 탐험을 나왔다. 강가에 손을 집어넣었던 이유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였다. 같이 탐험을 나왔던 아이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고. 한 여인이 아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기만 하다. 그 여인은 어려진다. 그렇게 된 이후로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까 그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를 만난 것이다. 인사를 한다. 그 아이들은 둘이서 움직이기로 한다. 그 아이들은 처음 보는 광경을 만난다. 어떤 마을가인데, 천막들이 즐비하다. 마을의 중앙에는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아이들 앞으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를. 그 아이들은 노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단지 뭔가 즐거워 보인다는 인상. 나귀를 끄는 사람이 천막들 앞에 짐을 풀고 장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까 강물에 손을 집어넣었던 아이는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 혼자란, 고독이란 무엇이죠? 아까 강물에 손을 집어넣었던 아이가 묻는다. 물음 받은 사람이 누구였을까? 아까 어려진 그 여인은 지금은 아이이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녀도 혼자란 무엇인지, 고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묻는다. 그 사람은 알까? 혼자란 무엇이죠? 난 장사를 해야 해. 아까 난 계단 위에 있던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그것을 받은 건 내가 아이이기 때문인가요? 난 잘 모르겠구나. 그 아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빈 공허를 만지고 있다. 나도 혼자란 무엇인지, 고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그 아이에게 대답해줄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질문이 주어져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혼자라서 선물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아이라서 선물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어려진 그 아이를 만났기 때문도 아니다. 이제는 같이 다니게 되어 혼자는 아니지만. 계단 위의 그 선물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선물이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한 아름 선물을 받아들었던 아이는 그 선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2020 연말특집, 말 않는 것들과의 결산 좌담회

뒷마당의 동백 앞에 모였다. 모였다기보다는 모았다. 램프, 가죽 포대, 썰매, 오함마, 모금통. 이사야는 한동안 이것저것 냄새를 맡으며 이마를 비비다가, 이제는 빨간 체크무늬 식탁보 위에 드러누워 외국 동전들과 함께 햇볕을 쬐고 있다. 줄무늬가 여전하다. 꼬리는 한껏 툼툼해져 있다. 장갑을 끼고 나올 것을 그랬다. 관리실에 가서 장갑을 끼고 나온다.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났네요. 오는 10일이 곡물창고의 공식 건립일이에요. 이걸로 다섯 번째 해를 맞습니다. 공중에 인삿말을 꺼내고 보니 더 이상한 기분이다.
…….
다들 올 초 관리인과의 대담은 읽고 오셨나요? 아닌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돌아보면 이번 한 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거의 없어진 것처럼요. 다 이유가 있겠죠. 이런저런 이유가. 서로 알고 모르는.
…….
만약 우리가 2020년이라는 비상사태의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실패, 더할 나위 없는 실패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백신의 일면은 또 다른 재앙인 셈이죠. 안티백신운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만약 우리가 백신으로부터 ‘돌아갈 수 있다’는 빗나간 희망만을 짜낸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지옥을 향해 회복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백신의 다른 면, 그것의 생산부터 배분까지의 전 과정, 새로이 만들어낸 약속들에 집중해야 해요. 그 약속들은 바이러스와 백신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아득히 넘어섭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향해 뻗어 나가지요. 또 다른 면과 면의 연결로요. 사태를 둘러싼 바로 그 총체적인(총체적이어야 할) 연쇄 개입들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래시킬 세계의 일각이에요. 그것은 이전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분명히 중단시킬 수 있었지만, 그저 사태들이 마음껏 발생하도록 내버려두기만 했던, 비정하고 무참하게 닳아지고 있던 우리의 세계를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고요.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 위에서야 백신이 희망 비슷한 것이죠. 요구되어 왔던 경험, 돌이켜지지 않는 경험을 세계와 우리에게 남긴다는 점에서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더 이상 나는 할 말이 없다. 창고의 흰 처마를 본다. 이사야가 몸을 돌려 엎드리며 요옹 하고 운다. 나는 너무나 슬프고 또 후련합니다. 우리는 준비가 된 걸까요? 실패할 준비가? 아니면... 모르겠어요. 겪기 전엔 모르겠어요. 말하기 전엔 모르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다음과 같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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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인사말은 끝이에요. 창고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관리인한테 받아온 자료를 발표하려고 해요. 캐비닛을 뒤지고 있는데 들어와서 딱 마주쳤어요. 있으면 내달라 하니 반색을 하면서 꺼내 주더군요. 관리인이 이런 거 좋아하죠. 같이 가자고 하는 데엔 손을 젓더군요. 들어보세요. 현재 곡물창고에는 총 309개의 게시물이 입하되어 있고, 총 조회수는 약 5.1만이에요. 지난 1년만 따지면 108개 입하, 조회수 약 1.48만이고요. 국가별 조회수 비율은 한국 81%, 미국 8%, 독일 3%, 그 외 7%입니다. 브라우저별 조회수 비율은 크롬 76%, 사파리 16%, 파이어폭스 3%. 운영체제별 조회수 비율은 윈도우즈 51%, 안드로이드 21%, 아이폰 11%, 매킨토시 10%, 리눅스 3%네요. 뭐 하러 이런 자료까지 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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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판의 팔로어 수는 160 내외입니다. 알림판을 통해 발생한 지난 1년 조회수는 2,000 정도로 잡혀요. 요즘 게시물당 평균 조회수는 20에서 40 정도입니다. 관리인은 곡물창고에 입하된 글을 무조건 읽는 고정독자가 최소 10명 이상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현 시점 필진이 7명이니, 관리인의 계산을 따르면 필자들과 비슷한 수의 애독자가 있는 셈이겠죠. 관리인이 말하는 ‘정예독자진’이 그들이에요. 그들이 창고의 진정한 자랑이라느니... 전 잘 모르겠네요. 그런 식으로 따질 수 있는 건지? 그냥 단순히 필자들이 다른 필자의 글을 두 번씩 읽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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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조회된 글 목록이에요. 조회수는 177부터 61까지입니다.
1. 사서 ― 직업 전선
2. [15호 서신] ― 경비서신
3. 2020 신춘특집, 관리인과의 대담 ― 곡물창고에서
4. 저격수 ― 직업 전선
5. 도서관 ― 박물지
6. 사형수 ― 빙터
7. 가정주부(농부의 아내) ― 직업 전선
8. [17호 서신] ― 경비서신
9. ― 사자를 만나고 있을 때 사자가
10. 음악은 인민의 아편이다 ― 방공호
10. 정원과 거미 ― 단편
10. 모험 상인 루디거 ― 기괴하고 엉뚱한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의 탄생에 관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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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가장 적은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물은 세계의 곡물창고들 '18 ― 방공호예요. 1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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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에 설치된 모금통을 통해서는 7개월 동안 31회의 격려가 이뤄졌습니다. 필자들에게 전달된 총 격려금은 52,800원, 기금으로는 121,741원이 모였어요. 그중 거의 삼분지일 정도는 회비 겸 고료 겸 운영비 겸 겸겸사사로 제가 넣은 것 같군요. 모인 기금을 통해 매월 약 50원가량의 ‘금융소득’이 발생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기금을 갖고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영원히... 자료는 여기까지가 끝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들을 사람도 없으니. 이사야는 자고 있다. 이사야로부터 뻗쳐 나오는 온기가 느껴진다. 이상한 줄무늬가 생긴 뒤로는 그렇다. 관리실에 같이 있으면 난로를 켜지 않아도 될 정도다. 병 같지는 않다. 이사야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초능력을 얻은 걸까? 관리인의 농담처럼, 꼬리를 굿즈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잘 모르겠다. 나는 이들과 함께 뒷마당에 있다. 관리인에게 송년회를 하자고 해야겠다.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20년 1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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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21,741원 (0원 + 121,683원 + 5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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