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4일 화요일

도서관

이번엔 뭘 쓰면 좋을지를 생각중이라고 하니 조수가 다음과 같은 메모를 건네주었다.


안녕하세요 조수입니다. 지난번엔 번제가 있었습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 그 연기로 박물학자에게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것은 박물학자 조수 시험이었는데 저는 용 일곱 마리와 공주 일곱 명하고도 조수 후보 일곱 친구를 제물로 바쳐서 조수가 되었습니다. 여하간 박물학자는 아주 멋진 선생님입니다. 조금 미친 것 같지만 그와 다닌다면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지만 후략하겠습니다. 후략 이후에 우리는 다시 등장하겠습니다.


조수는 자신의 메모가 박물지에 수록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충만해 보였지만 못본 척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한은 그 어떤 박물학자도 번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에 조수와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의 제본 과정을 직접 견학하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사서에게 물어보면 대강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제본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을 보는 편이 낫다. 그대로는 여기에 기록할 수 없으므로 사서의 말을 간추려 옮기면 이렇다: 사후 훼손의 흔적이 없는 시신을 구한다. 소독과 방부처리를 마친 뒤 축성한 날붙이로 전신에 기록을 남긴다. 그 위에 향유를 덧바르고 서늘한 곳에서 건조한다.

하여 내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이 곳의 서가에는 관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알고 싶은 주제를 들려주면 사서는 적절한 관을 서가에서 찾아 준다. 도서관에 입장하면서 받은 향에 불을 붙이고 책의 손에 쥐어주면 책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기 몸에 기록된 것을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책의 말은 자기에게 남겨진 기록의 총량을 초과한다. 책은 멸종된 동물의 울음소리를 모사할 수 있다. 생전에 배운 적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를 세운 민족의 아주 오래된 풍습을 재현할 수 있다.

신에 대해 쓰인 책은 없는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아직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다. 천사를 다룬 책은 있다. 매우 귀한 책이어서 열람 신청을 무수히 거절당했다. 열람에 성공한 이들에 따르면 천사에 대한 책은 춤을 추고 예언을 한다. 그건 살아 있는 인간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의아함을 느낄 만도 하지만, 이와 더불어 생각해야 할 점은 천사의 책이 무수한 도난을 시도당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이 도서관의 장서를 도난하는 일은 전혀 쉽지 않은데, 도난 시도가 발각되면 제본 대상이 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일들에 대해서 조수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번제에 대한 책을 함께 열람했다. 나는 책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고 조수는 향을 쥐고 있지 않은, 책의 다른 편 손바닥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동시에 같은 책을 보면서도 다른 체험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조수는 내게 당신 자신의 연구를 기록한 책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후라도 해도, 그것은 너무 자아도취적인 소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을 솔직하게 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책이 되면 어떨까요. 언젠가 조수와 함께 천사의 책을 열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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