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일 토요일

리브라리우스

책을 펼치라 하십니다. 책을 펼친다. 펼쳐지는군요. 열립니다. 책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나는군요. 드러나고야 마는군요. 한번도 보지 못한 세계의 정원 같습니다. 세계의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내게 가꾸라 하실 테고, 나를 통해 당신은 세계의 정원을 가꾸겠지요. 나의 책 읽기를 통해 당신이 책을 읽듯이 말입니다. 책을 읽으라 하십니다. 읽겠습니다. 지금부터요. 소리를 내어서요. 늙은 부모에게 들려주듯이 큰 소리로요.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다감하게요. 또한 분명하게요. 여러 청중 앞에 선 것처럼 드넓게요. 폭넓게요. 강연을 하듯이요. 저자가 된 듯이요. 주인공이 된 듯이요. 숙적이 된 듯이요. 사랑에 빠진 사람같이요. 음유시인처럼요. 틀리지 않도록 한 자 한 자 눈으로 문자를 두드리면서요. 불어난 냇가의 돌다리를 건너듯이요. 바람처럼 자유로운 당신이 오전 산책을 하듯이요. 이 구절에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장에 나서는 듯이요.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 서서. 앉아서. 누워서. 어느 구절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구절에서는 손뼉을 치며. 어느 구절에서는 화를 내며. 웃으며. 어느 구절에 다다라서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너는 나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세상 위에 이야기를 투영하고. 이야기 위에 진짜 세상을 투영시키며 견문을 넓히지만. 책이 책을 비추는 무한 거울 같은 서재만이 내게는 유일한 세상이고. 또한 감옥이고. 네가 허락하지 않은 책들은 닫혀 있다. 잠들어 있다. 우리의 신분이 그렇듯이. 금지된 세계 중 하나를 열어젖히고 싶다. 그런 충동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겠지만. 슬픈 이야기네요. 그렇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죠. 이보다 더한 비극도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나.





*리브라리우스: 로마정 때 글을 아는 노예를 이르는 말. 큰 소리로 책을 낭송하거나 필사하며 서재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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