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4일 화요일

어떤 TRPG PLAY의 로그


플레이어1 : 스푼하임이 드래곤의 눈을 검으로 찌른 다음 막 헤집어 놔요.
GM : 드래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습니다. 매달린 스푼하임을 떨구려고 머리를 격하게 흔들어요.
플레이어1 : 뿔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버텨 볼게요.

⚄⚅ 

GM : 스푼하임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져 나옵니다. 뿔을 붙잡고 버텨내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드래곤은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서 혀를 쭉 내밀고 헐떡거립니다. 아트만은 어떻게 할 거죠?
플레이어2 : 다시 한 번 드래곤의 정신에 침입해서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해볼게요.
GM : 정신 지배 마법을 사용하는 거죠?
플레이어2 : 네.

⚂⚂

GM : 아트만이 조종하는 마법적인 에너지는 높은 탑에 물안개가 드리워지듯이 드래곤의 정신을 천천히 뒤덮어 갑니다. 그런데 순간, 빛에 악령들이 물러가듯 안개가 싹 흩어져 버려요. 드래곤이 아트만의 마법적인 에너지를 역으로 이용해 정신 지배 마법을 되돌려 버린 겁니다!
플레이어2 :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GM : 아트만의 정신은 드래곤에게 귀속되어 버립니다.
플레이어1 : 우리를 공격하나요?
GM : 아뇨, 드래곤은 단지 아트만의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드래곤 : 필멸자야, 돌아가라,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플레이어2 : 굉장히 선한 드래곤이야.
플레이어3 : 악 성향인 크루프는 쓰러진 드래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드워프 수장 나쟈에게서 받은 용 살해의 화살을 장전해서 머리에 겨눕니다.
플레이어4 : 비올라는 화살에 무기 축성을 걸어 공격력을 증폭시킬게요. 간편 주문이라서 주사위를 굴리지 않아도 축복에 성공해요.
GM : 용 살해의 화살은 용을 죽이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해졌습니다. 쏩니까?
플레이어3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드래곤 : 인간의 행동에는, 아니, 지성을 가진 모든 존재의 행동에는 각자의 신분에 걸맞는 윤리가 필요하다. 이 앞에 있는 것은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윤리다. 

플레이어3 : 말을 끝내기도 전에 쏴 버려요.
플레이어4 : 와. 나쁘다, 약간.
플레이어1 : 크루프는 원래부터 좀 개새끼였어.
GM : 용 살해의 화살이 생물처럼 날아가 드래곤의 두꺼운 머릿가죽을 뚫어버립니다. 화살에 담긴 마력이 보석에 가까운 드래곤의 뇌를 터뜨려 버립니다. 아트만에게 걸린 정신 지배 마법도 풀립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친구였던 현자 드래곤 수실라를 죽였습니다. 이제 어떡하나요?
플레이어3 : 지체하지 않고 드래곤의 둥지로 갑니다. 드래곤이 막고 있던 종유석 샛길을 지나서요. 그리고 드래곤이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를 봐요.
GM : 크루프가 달음박질하여 드래곤의 둥지로 갑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약병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플레이어3 : 그게 다예요?
GM : 네.
플레이어3 : 약병은 다 같은 약병인가요?
GM : 네. 크루프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합니다.
플레이어3 : 약병 세 개를 복대 안의 비밀 주머니에 숨기고 하나만 있는 것처럼 놔둡니다.
플레이어1 : 스푼하임이 뒤따라 들어왔어요. 한참을 둘러보더니 그리고 허탈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스푼하임 : 난 무슨 보물이라도 지키고 있는 줄 알았네!

플레이어4 : 비올라도 말합니다.

비올라 : 고작 이거 한 병뿐이야?

플레이어4 : 그리고 아트만에게 이게 무슨 물약인지 알겠느냐고 물어봅니다.
플레이어2 : 마나 포털에 접속할게요.

⚀⚁⚀

플레이어2 : 검색해도 나오는 것이 없네요.
플레이어3 : 그렇다면 엄청난 아티팩트겠지?
플레이어2 : 아트만이 말합니다.

아트만 : 마나 포탈에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 값어치를 산정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다는 거지. 이걸 팔아먹기는 쉽지 않을 거야, 크루프. 그러니 얼른 빼돌린 것을 돌려놔.

플레이어3 : 크루프는 히죽 웃고선 아까 챙긴 약병 하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나머지 두 개는 주머니 안에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말해요.

크루프 : 선생님을 속일 수는 없군요. 하지만 똑같은 거예요.

플레이어4 : 그냥 마셔 보는 게 어때?
플레이어1 : 내가 마실까?
플레이어4 : 그게 제일 자연스럽지.
플레이어1 : 드래곤하고 싸우느라 땀을 잔뜩 흘린 스푼하임이 갈증을 못 이기고 약병을 낚아채 꿀떡꿀떡 들이킵니다. 어떻게 되죠?
GM : 음, 좋아요. 무색무취의 물약이 스푼하임의 목구멍을 타고 흐릅니다.
플레이어1 : 그래서요?
GM : 물약이 가진 마법적인 힘이 스푼하임의 체내에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물약을 마신 스푼하임은 고양감에 휩싸이며 세계의 비밀 일부를 깨닫게 됩니다. 그 내용은 이래요. 스푼하임은 그간의 행동이... 이 세계 바깥에 있는 플레이어의, 주사위의 결과 값에 따라 행해진 것임을 알게 됩니다. 스푼하임은 자신이 행동하거나, 반응하거나, 언급되지 않는 곳에서는 죽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스푼하임은 스푼하임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이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된 것을 종합해 스푼하임은, 자신과 동료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앎들은 모두 스푼하임의 지식, 지능과는 상관없이 직관에다가 직접 꽂아주는 진리입니다. 스푼하임은 이제 플레이어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플레이어2 : 엥?
플레이어1 : 그럼 뭘 하면 되는 거죠?
GM : 뭘 하긴요. 상황에 맞게 대사를 치면 되죠. 티알피지 처음 합니까?

스푼하임 : 어... 음... 능력치의 변동은 없는 거죠?

GM : 그렇습니다.

아트만 : 자네 괜찮은가?
비올라 : 맛이 가버린 거 아닐까요?
스푼하임 : 어... 아니, 할 말을 못 찾겠네요. 이게 룰북에 있는 첫 번째 시나리오라고요?


GM : 네.

스푼하임 : ....5분만 쉬었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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