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7일 화요일

양조장

언젠가 바다로 떠나고 싶던 적이 있었다. 계곡이라도 좋다. 나는 물이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이어폰이 귀에 반만 꽂혀 있어 노랫소리가 분명하지 않게 들렸다. 나는 열차에 타고 있었다. 그 어느 날의 일이다. 같이 온 사람들 중 몇 사람은 물에 들어가 있었다. 대절한 봉고차 안에는 삼겹살과 소시지 등이 놓여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기 전 무렵이었고 우리는 같은 양조장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일하는 그곳에 약간 거리껴지는 노란 하늘을 두고 왔다. 그 하늘은 용인들의 눈같이 무섭기도 했다. 전부가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양조장의 숙소에서 추리 소설을 보면서 누워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는 법이 없다. 나는 그 사실이 왠지 안타까웠고 이 자리에 그도 있었으면 했다. 그와 나 사이에 그리 깊은 유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여행을 준비한 입장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올 수 있었으면 했다. 바다에 들어가 있던 몇 명을 불러 이제 식사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들은 물에서 나오기 싫어했다. 그들은 물과 멀어지는 것이 외롭고 고독한 일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식사를 하는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까 물에 들어갔던 사람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물살이 급해지는데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듯했다. 그 사람은 노란 하늘에 빠져든 채로 혼자서 아직까지 물놀이를 했다. 곧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고 그 사람은 아마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겠지. 다음 날이 되자 그 사람이 입던 옷가지를 누군가가 정리하고 있었다. 불태워야 하냐고 물어보자 그것까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 선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도 추리 소설을 보고 있는 사람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옆에 있던 사람이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사람은 펼친 추리 소설을 덮고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사람은 나중에 탐정이 될지도 몰랐다. 일을 하질 않으니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건 곤란한 일이다. 탐정이 소설가에 가까울 수 있듯, 소설가도 탐정에 가까울 수 있다. 죽었다고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으나 우리들에게는 약간 암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놀러 와서 한 사람을 잃게 되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물에 젖은 발로 저쪽 해변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쾌활한 듯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살아 돌아왔으니까.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정으로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가끔 그러기 전에 결정이 필요하다. 그게 언제인지는 여기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으나. 그 사람은 멀리 있는 섬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을 해안에서 보내 수영에는 자신이 있다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게다가 그 사람의 발에는 오리발까지 끼워져 있었다. 다시 양조장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나는 그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아 있게 되었다. 요즘엔 그런 열차가 없다고 하지. 그 사람과 나는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는 듯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 큰 감흥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어떤 희미한 연결성. 거미줄 같은 것. 그런 주제가 나오자 우리는 조금 말이 많아지기도 했다. 양조장 숙소에 돌아가 보니 추리 소설 읽는 남자와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가 보였다. 나는 졸렸으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주 그런 광경이 보이곤 한다. 양조장에 경영자는 없었는데, 그것과 거의 비슷한 일을 내가 도맡아서 했다. 양조장에 들어서자 막걸리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일어나지 않는 남자가 있었고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제 발로 걸어서 돌아왔다. 나는 슬픈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더 이상 거짓 기록을 남기는 일은 할 수 없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사실 이 양조장은 없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누워서 책만 보는 남자도 없고 그를 설득하러 온 여자도 없다. 단지 우리 사이엔 그날 밤 물속에서 돌아오지 않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암묵적인 것이었고 지금은 저녁이 되어가는데 하늘의 색깔이 이상했다. 노란색이었다. 나는 당분간 이 양조장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곡물창고 2022년의 숫자들

안녕하세요 창고관리인입니다.
다가오는 2023년, 곡물창고는 운영 7년째를 맞습니다.
그간 뭔가 변했습니까? 안 변했습니까?
곡물창고에서 얻거나 곡물창고에 버린 것이 있습니까?
곡물창고의 2022년도를 다음의 숫자들로 남겨둡니다.



95

입하된 게시물

총 491개의 게시물 중 약 19%. 월 평균 7회의 입하가 있었습니다. 가장 입하가 많았던 달은 9월(14회), 가장 적었던 달은 10월(2회)입니다.


2.02만

조회수

22년 12월부로 곡물창고 총조회수는 10만을 넘었습니다. 게시물당 조회수는 평균적으로 30~50입니다. 22년도 단일 게시물 최고 조회수는 173, 최저 조회수는 7입니다. 조회는 한국에서 81%, 그 외 국가에서 19% 이루어졌습니다.


22~44

곡물창고 보름간

보름간은 22호부터 44호까지 발송되었으며, 현재 74분이 받아 보고 있습니다.


294

알림판

알림판의 팔로어 수는 290 내외를 오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알림판 개설 당시의 목표는 300이었습니다.


-2, +1

필진

두 분 필자의 등록이 해제되었으며, 한 분의 필자가 새롭게 등록하였습니다. 현재 필진은 7인(창고관리인 제외)입니다.


6

올해 입하가 시작된 태그

리뷰 비슷한 것
마이의 노트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외삽연극
환상 동화
헛간


4

올해 저장고로 들어간 태그

도시 전설 (37편)
바리에테 (23편)
외삽연극 (3편)
임금벌레 (6편)


13, 14, 18

개별태그 최대 입하

입하 중인 개별태그는 8개, 그중 가장 많이 입하된 세 개의 태그는
~같은 것 (13회)
환상 동화 (14회)
社名을 찾아서 (18회)
입니다.


3099

모금통

7회의 격려로 발생한 격려금 총액 90,000원 중 필자들에게 전달된 격려금은 7,000원입니다. 현재 282,494원의 기금이 있으며, 3,099원의 예금이자가 발생했습니다.



오늘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고 하는 동지입니다.
내일부터는 낮이 점점 길어집니다.
지난 일 년 괴롭거나 즐거우셨습니까?
이제부터 즐겁거나 괴로울 예정이십니까?
원하는 만큼 준비되시기를 기원하고,
기여하는 모든 이들의 노고를 치하합시다.

2022년 12월 7일 수요일

리비아 콜로라도

다른 뜻 없이 그냥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두 이름을 붙인 것뿐이야. 왜 맴도는지도 몰라.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콜로라도는 북아메리카 미국의 주(州)다.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해 뭐라뭐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 사전을, 인터넷을 뒤져서. 리비아는... 콜로라도는... 카다피는... 덴버는... 만약 내가 어떤 복수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늘어놓는 말들은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야. 맹세한 복수를 이루려면 때가 되기 전까지 뜻을 감춰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지만 리비아와 콜로라도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나의 복수심은 드러나고 말아. 전혀 무관한 것만 같은 정보들로부터, 나의 복수심과 연결된 뭔가가 반드시 하나쯤은 나와. 그것은 내가 복수심으로 지나치게 불타기 때문이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복수심이란 언제나, 합심된 세계가 내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나 콜로라도보다도 엉뚱한, 아주 딴소리를 해도, 그것은 이 세계의 것이고, 내 복수심은, 어디서든 갑자기, 하나의 문장으로, 단어로, 튀어나오게, 또는 피어오르게 되어있어. 자세할수록,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멀어질수록, 복수와도 같은 무늬가, 패턴이 발견돼. 그렇다면 그건 복수심을 감추려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복수심을 드러내려는 이야기인 거지. 이 돌기들과 냄새들은 나를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어. 이 놀이는 나의 복수심을 건넌방으로 데려가. 나 대신 울면서 말야. 그렇게 맹세했건만... 그렇게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닦으면서. 복수심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이끌려 간다. 왜 네가 우는 거야? 왜 울어? 누가 누굴 위로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모습. 만약 내가 정말로 쓸 사명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니까 사명들을 비석에 적어서 그냥 세워놓으려는 게 아니라면, ‘리비아 콜로라도’ 같은 식이라도 뭐가 어떻겠어?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문지기와 남자의 대사

문지기는 그를 향해 깊숙이 아래로 몸을 숙인다.
“대관절 아직도 무엇이 더 알고 싶은 겁니까?"
문지기는 묻는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
그 남자는 말한다.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라고 누가 말한 걸까?* 그 앞에 바로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이 있다. 이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의 위아래로 세 문장의 대사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누가 말한 것인지로 보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어 보인다. ‘대관절 아직도 무엇이 더 알고 싶은 겁니까?’는 문지기가 말한 것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바로 그다음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래로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가 있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라는 대사를 문지기가 아닌, 쇠약해진 남자가 말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렇게 보면 그 답답하고 어수룩한 남자는 끝에 와서 특별한 앎을 얻게 된 것이다. 남자가 문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지기의 상세를 계속해서 관찰해왔던 것이라면, 그 관찰을 통해 문지기에 대해서 뭔가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남자가 쇠약해지는 것이 문지기가 바라는 것이며, 이렇게 쇠약해진 후에도 더 쇠약해지길 바라고 있는, 바로 문지기의 그러한 점을 남자는 말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 또한 남자가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보인다. 남자는 끝내 죽음에 대한 어떤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법을 따라 죽는 것’이다. 그것은 문지기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다. 이 <법 앞에서>의 세계는 시간이 흐르지 않거나 비선형적인 곳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전부가 문지기가 남자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시간은 남자에게만 흐르는 것 같고, 남자는 점점 쇠약해진다. 맨 마지막의 ‘이제 나는 문을 닫고 갑니다.’라는 문지기의 말을 보면 남자에게는 죽음이라는 안식이, 그리고 문지기에게도 일의 종료라는 안식이 찾아오게 된 것이겠으나 이후가 그려져 있지는 않다. 어쩌면 문지기가 문을 관리하는 것은 여기서 나온 최후의 진실(당신 외의 누구도 입장 허가를 얻을 수가 없었던 바로 그곳이 여기)로 미루어보아, 문지기에게도 이곳은 법 앞에서의 관문들이다.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그 어수룩한 남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자는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어쩌면 문지기보다 남자가 뛰어난 점이다. 문지기의 경우 이미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남자보다 문지기가 더 인간적이다. 어쩌면 이 세계관은 남자가 쇠약해진 뒤에 문지기가 되어서 다시 다른(혹은 같은) 남자에게 입을 굳게 다물고 법 앞에서의 문지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까 ‘문지기는 묻는다.’의 뒤로 두 문장의 대사가 남자가 내뱉은 말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라는 말은 사실 남자가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 혹은 그 특별한 인식을 얻게 됨과 동시에 마치 연극의 정해진 대사를 내뱉는 것처럼, 아니 내뱉어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도 알고 있고, 혹은 그 너머의 어떤 진실까지 알고 있다. 이런 관점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을 문지기가 내뱉은 것이다. 이 경우 쇠약해진 남자는 문지기에게 아직도 뭔가를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문지기는 그런 사실을 담담히 말한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은 문지기가 쇠약해진 남자를 조금쯤 동정하면서 내뱉은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두 대사를 쇠약해진 남자가 한 것이라면 좋겠다. 정리해 보자면 ‘문지기는 묻는다.’와 ‘그 남자는 말한다.’ 사이로 두 문장이 있고, ‘문지기는 묻는다.’의 위에 한 문장, 그리고 ‘그 남자는 말한다.’ 아래에 한 문장이 있다. 중간에 있는 ‘문지기는 묻는다.’라는 지칭에 따라 위의 세 문장이 전부 문지기가 말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내 해석에 따라 아래의 세 문장(맨 밑은 그런데 어째서 운운)을 남자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그것은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와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를 남자와 문지기가 각각 말한 것이다. ‘당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를 문지기가 말한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법에 따라 죽습니다.’라는 말을 한 남자는 문지기에게 있어 끝없이 뭔가를 갈망하는(자기처럼) 법이라는 국면에 있어서의 상위자이다. 즉 반대로 문지기에게 문지기 역할(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법에 대해)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 일종의 역-안내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쇠약해진 남자는 문지기보다 먼저 죽지만 문지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반대의 경우(당신은 만족할 줄 운운이 남자, 모든 사람들 운운이 문지기)라면 문지기는 일종의 살아 움직이는 법 그 자체가 된다. 그 법의 진상은 사실 ‘악의를 갖고 있는’, 혹은 ‘인간을 적대하는 법’이다. 이것을 따라가자면 ‘그런데 어째서 수년 동안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오?’라는 질문의 뉘앙스는 ‘어째서 나에겐 이 바보 같음을 알고 나서 법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이 없는 것이오?’라고 읽힐 수도 있다. 이렇게 고려하다 보면 문지기는 이전의 남자(문지기로부터 뭔가를 배운)이고 남자는 그 이전의 문지기(법은 차등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만났던 남자를 따라 하고자 애쓰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방금 말한 것처럼 이전의 그 문지기가 남자(정해진 운명을 오시하며 따라가는 입장에서, 점점 몸이 쇠약해짐을 받아들이는, 그러나 정공법으로 나아가는)고 어쩌면 죽기 전의 그 남자는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닫혀 있지 않은, 열려 있는 ‘법’의 시대를 열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남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나, 그것은 이 글의 진행에 따라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된 것이지 일반적으로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지는 않는다. 느린 시간을 사람들은 살고 있다(고 이 글은 말하는 것 같다). 아직 이 남자처럼 쇠약해지지 않은 몸으로.

*<법 앞에서>, 323p~327p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마이의 노트

추운 겨울날, 오늘부터 한동안 마이는 죽은 작가의 초단편을 하나씩 읽고 감상문을 쓰기로 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매번 다른 장면들이 꿈을 꾸는 사람에게 휴식을 부여해 주는 듯이. 마이는 왠지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아서 엉엉 운다. 그런데 이것은 오해이다. 마이는 그런 것으로 별로 그러지 않는다. 마이에게는 언니가 있는데 가끔 이 노트에 등장할 수도 있다. 짧은 작품들을 엮은 그 책은 <칼다 기차의 추억>(하늘 연못)이라고 한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을 하나에서 몇 개씩. 저쪽에는 벽난로에 불이 켜져 있다. 활활 타오르고 있다. 왠지 힘든 일은 다 해놓은 것 같은 추운 겨울날. 마이는 멀뚱히 의자에 앉아 있다. 안락의자가 있는데 거기엔 눕지 않는다.

22년 11월의 모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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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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