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3일 월요일

격돌! 대권훈련소: 낙연/교안 (19년 9월 넷째 주)



9월 넷째 주 PIMPS는 현 시점 대권주자 지지율 1위와 2위에 빛나는 이낙연과 황교안 두 사람을 함께 다룬다. 둘을 묶는 것은 여야의 밸런스를 맞추는 공정한... 그런 뜻은 없고, 다른 뜻도 없고, 두 사람이 여러 가지로 서로 비슷한, 이대로는 별 가망이 없어 보이는 동병상련의 처지이기 때문도 아니고, 단지 서로의 이름의 자모를 뒤섞으면 서로의 이름이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먼저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 한 달을 앞둔 낙연. 낙연이 사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인물이 일단 호감상이고 기자-대변인 출신으로 말과 글에 능하며 정무적 능력도 검증됐다는 평가. 보통 약점이라고들 하는 이념적으로 애매하다거나 세가 없다거나 그런 것은 역으로 좋은 러닝메이트와 함께라면 큰 강점(온건함과 신선함)이 될 수 있다. 상상력이 미치는 한에서는 그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그림이지만, 한편 그렇게 곱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다이내믹 코리아 정치판에서는 모쪼록 가장 일어날 것 같은 일이 가장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기 마련으로, 아마 내 생각뿐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분명히 낙연밖에 없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누가 낙연을 진정 차기 대통령으로 믿는다는 말인가? 본인도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자꾸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데서 그의 혼란스런 마음도 드러난다. 진짜 한번 해봐? 에이 주책인가...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김무성도 비슷한 시기에는 지지율 1위(으스스한 사실)였다.

2위는 굳이 내가 말을 얹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이미 잘하고(?) 있는 교안. 전 정부 마지막 총리 출신으로 동아시아 최초 스킨헤드 당의 스킨헤드 당대표라는 유례없이 역사적인 느낌으로 낙연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 현 국면 보수 주자들 중 교안의 강점은 적어도 웃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삭발할 거란 소식을 듣고선 내심 쾌재를 불렀다. 삭발은 내가 손학규보고 하랬는데 왜 갑자기 자기가... 어쨌든 나의 내밀한 기대와 달리 막상 밀어 놓고 보니 그 두상이 아주 좋고 세간에서도 무슨 야성이 보이는 것 같다며 대체로 호평이다. 홍준표가 응원을 하다가 갑자기 겐세이를 놓은 데에도 이유가 있는 것. 김문수가 따라 밀며 뭔가 조금 우습게 되긴 했는데... (나는 김문수가 실은 전향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명절에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께서 내게 머리 좀 깎고 오지 말씀하시던 그 생각도 났다. 머리는 명절이 되기 전에 깎는 게 통상적인 감각에 맞는다는 뜻. 열성 지지자들 눈물의 난입으로 도중에 중단되어 그냥 투블럭 느낌으로 위를 남겼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 어쨌든 담당 선생님의 혼신이 담긴 스타일 연출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낙연으로선 교안과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교안과 격차를 벌릴수록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중구난방 흩어진 지지를 모을 수 있다. 그 첩경은 당연히 머리를 기르는 것이다. 곱슬머리이기 때문에 처치 곤란한 느낌을 주면 또 안 되기에 그 당연한 귀결은 ‘매직’이다. (안경을 딱 벗는 게 당연함은 이제 애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 또 지금도 약간은 먼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눈썹을 한 단계 더 정리하여 처진 끝을 올려 주고 사이를 더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 양미간이 거의 이어지기 직전인 교안과 큰 대비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막걸리 같은 것도 좀 더 확확 호쾌하게 마시고,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는 모습을 매체에 노출해 전도사 교안의 바른 생활 이미지와 차별화한다. 좀 소박한 인상이기 때문에 피어스를 두엇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첩? 수첩에 깨작깨작 뭘 적고 있는 것은 교안의 화려한 색소폰 연주와 쌍을 이루니 다른 의미로 괜찮다. 이렇듯 교안과의 대비를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함은 무슨 뜻인가? 낙연은 교안의 멱살을 콱 붙들 때에만 빛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붙으면 아슬아슬하다.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유시민도 이재명도 다른 누구도 아닌 교안을 꽉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교안과 가까이 지내라. 교안과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 집무실로 교안을 불러라... 밖으로 교안을 불러내라... 교안네 집에 찾아가라... 교안의 교회에 찾아가라...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말다툼을 해라...

교안의 경우 담당 헤어 선생님의 수익뿐 아니라 본인 지지율도 올라가게 하려면 그가 총리였다는 사실을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을, 특히 낙연을 피해야 한다. 낙연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수염을 기른다거나 하면 총리 대 총리의 프레임에 말려들고 만다. 절대로 낙연의 눈을 보지 마라. 만나자고 해도 거절해라. 교안은 자신을 자꾸 쫓아다니는 낙연을 뿌리치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한다. 이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한 가지는 절대 깡패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당 사람들이 다같이 밀면 특히 위험하다. 국민들이 우파의 순정을 몰라 주면 그때는 깡패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본인만 현재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삭발 엄금, 이미 한 사람은 가발을 씌우도록 하자. 사람들은 깡패가 깡패일 때나 (구경을) 좋아하지 정치인이 된 깡패나 깡패가 된 정치인 같은 건 인기가 없다. 예전에 홍준표의 가죽점퍼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던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본인도 이 정도는 아는지 최근 스티브 잡스 흉내를 냈던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잘못하면 병자나 수도사, 그 비슷한 뭔가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미관을 피하려다 요양병원이나 도심사찰, 스타트업처럼 되면 그것대로 곤란하다. 기왕에 머리를 민 황교안에게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대권보다 더 큰 그림이다. 머리를 밀고 안경을 썼던 초중량급 정치인을 꼽자면 가까이로 김구, 멀리 간디가 있다. 둘 다 실권은 못 잡았어도 역사에 남아 ‘민족 지도자’가 되었는데 저승에서 무엇이 부러우랴! 물레를 돌리거나 일기를 꾸준히 써도 좋다. 색소폰은 왜 요즘 안 불지? 그거도 좀 불자. 산이나 강에서 불면서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릴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인데 썩히면 아깝다. 낙연을 꼭 피해 다닌다는 것만 유념하면...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명절 지나

이제 얼마나 됐지? 마당을 쓴 뒤 관리대장을 쓰다가 오랜만에 맨 앞장을 펼쳐 봤다. 창고가 열린 지는 3년이 되어 가고 있다. 쥐잡이가 보이지 않은 지는 6개월이나 7개월. 겨울 전엔 돌아올 것이다. 그끄저께 아침엔 개다리소반에 사과와 배, 밤, 송편을 올리고 향을 피웠다. 저번에 누가 내다 놓은 제기 더미를 뒤져 깨끗한 걸 추렸기 때문에. 없었으면 그렇게 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편은 그 전날 교정의 요정과 함께 빚었다. 반죽을 맡겼는데 형광 녹색이 되어 놓았다. 자기가 그렇게 여기저기 묻어나도 별 상관없다는 기색. 특별히 무슨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니 나도 별 상관없었다. 소는 콩. 요정이 한 개 먹어 보더니 자기는 앞으로 콩 송편 같은 건 안 먹을 거라 했다. 나도 한 개만 먹었다. 우리가 두 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송편의 송 자는 소나무 송 자다. 솔잎은 태풍에 쓰러진 담장 밖 소나무에서 따 온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부터 톱을 갖고 가서 치울 것이다.

2019년 9월 7일 토요일

포병은 전쟁의 신이다: 심상정 (19년 9월 첫째 주)



답답한데 심상정 얘기나 하자. 이미 주요 정당 대표급들을 다 다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을 추구하는 PIMPS에서는 정의당 대표 심상정을 다루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심상정이가 누구인가? 심상정이 좌파 생활을 갓 스물 무렵에 시작했다. 그 나이 때 좌파 시작한 녀석들이 백 명이라 치면은, 지금 심상정이만큼 잘나가는 좌파는 심상정 혼자뿐이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인 건 아니고 하여튼 그것이 심상정이다. 만약에 좌파 그만뒀으면? 예전에 김종인(aka KINGMAKER)이 심상정더러 거기서 그러지 말고 그냥 진작 민주당 가서 어쩌고 저쩌고 했으면... 그랬던 적도 있는데, 더 나갔으면 더 나갔지 덜 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여하간 심상정은 좌파라는 이야기, 그 뭐 무슨 참좌파까진 모르더라도, 어떻게 그가 좌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심상정은 그냥 좌파도 아닌, 육분칠열된 이 나라의 한 줌 좌파 중 다수를 그나마 중재하고 대표 비슷하게라도 나설 수 있는 좌파다. 그것은 그가 여기와 저기 사이를 잇는 소통의 연결고리가 되는 그런 식이라기보다는, 그의 (좌파에게는 매우 드문 종류의 덕성인) 강력한 카리스마로 밀어붙이는 일에 더 가깝다. 야 너 그렇게 하지 마라고! 서로를 욕하며 말싸움만 하지 결과적으로 아무런 정치 행위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 앞으로 쑥 나와서는 어 그러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할게! 하는 것이 심상정식 ‘중재’다. 양쪽 얘기를 들어보니까 결국 이렇게 해야 돼, 내가 하란 대로 해, 책임은 당연히 내가 진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기 싫어? 그럼 빠져. 못 빠져? 그럼 내가 빠질게, 불만 없지? 있으면 빨리 말하고, 없어? 땅땅땅. 그렇게 어? 어어? 하면서 심상정이 하자는 대로 하거나, 아니면 심상정이 거길 나오는 결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구는데도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 모여 있다는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어떤 핵심적인 명분을 수호해 내고(또는 이어지는 사건과 정세의 결과가 그로부터 명분을 거둬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되는 일을 한다, 그런 걸 권력의지라고 불러도 좋을까?

개인적으로는 심상정이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는지 따져야 하는 입장이지만, PIMPS에서는 내가 심상정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마침 조국 청문회 국면(이 얘길 아직까지 하고 있다니!)을 맞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심상정의 입을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그 건에 대해선 장고를 거쳐 드디어 내일 발표라는 걸 한다는데, 뭔 소리를 해도 욕먹는 게 분명(이 글이 읽힐 즈음에는 아마 욕을 먹고 있는 중이겠다)하니, 어차피 먹을 욕 그냥 하고 싶은 아무 얘기나 해라! 지금은 그런 시시한 일보다는 심상정을 위한 이미지메이킹 솔루션이 필요한 때다. 도대체 어떻게? 심상정을 어찌해야!??! ...침착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정치인은 웃기면 안 된다고 누차 내가 말했는데, 일테면 심상정은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는 케이스다. 아예 보좌진이 나서서 그를 밈meme화하고 있다. 심블리, 내루미, 1초 김고은... 전부 보좌진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열심히 흘리는 얘기들이다. (아니면 도대체 누가 그러한 관심과 애정으로 그를 돌보겠나?) 물론 그러는 데에도 수긍할 만한 까닭은 있다. 만약 그냥 둔다면? 심상정의 위엄이 도를 넘어서 버릴 것이다! 경험치와 연륜과 슬픔이 쌓이며, 눈빛도 날카로워지고 속머리도 희끗희끗해지면서, 지금 그에게선 말이 안 되는 중후함이 나와 버리고 있는 실정. 오늘에 이르러선 어디 가서 굽실대는 심상정을 상상할 수가 없어져 버렸다. 이건 건방지다거나 안하무인이라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다. 말하자면 심상정에겐 이제 윗사람이란 개념이 없다. 자세나 낯빛, 거동,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 풍격이 이미 대통령을 넘어섰다. 보통 정치인이 되어 보겠다면서 떠밀리듯 어찌저찌 나선 좌파들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후배들이 어쩌고 젊은 세대가 어쩌고 하면서 약간 무책임하게 그냥 스리슬금 퇴장해 버리곤 하는데, 심상정의 권력의지는 그가 내외적으로 좌우적으로 받는 비판들에 비례하여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듯 보인다. 차라리 그의 뜨거운 위엄을 부하들(미안합니다)의 조롱으로 겨우 억누르고 있다고나 할... 이건 유사한 다른 예를 찾기 어려운 기묘한 이미지다. 대처? 메르켈? 한심한 우파 녀석들! 심상정은 ‘그것’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 경우는 시기의 선정만이 진정한 문제다. 즉, 그의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를 위한 모든 이미지메이킹이 중단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심상정은 날아오른다. 염색을 중단하는 것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해라. 머리가 완전히 백발이 되는 때부터 이미지메이킹은 끝난다. ‘데스 노트’요? 노트 같은 건 필요 없다. DEATH뿐... 지금까지 역사에서 그 어떤 좌파 여성 정치인도 ‘대통령 너머’의 자리에 올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김여정이 아마도 최초가 되리란 전망도 있지만은, 이웃 나라에서의 일을 기다릴 이유가 있을까?

※추천 아이템: 통이 넓은 바지, 품이 넉넉하고 4개의 주머니와 5개의 단추(반드시 목 끝까지 채울 것)가 달린 윗옷(색은 노란색만 아니면 된다). 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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