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5일 수요일
―
silo
"서정시"-골분
입국 신고서에 ‘골분’ 항목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일정 금액을 넘는 사치품, 검역이 필요한 농축산물 목록 사이에,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Human Ash. 운송 케이지의 규격도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는데, 그게 꽤 신경 쓰였다. 누가 이 칸을 만들었을까? 아마 오전 11시부터 회의를 했겠지. 누군가는 스크린에 국제 규정을 띄워놓고 읽었을 거고, 누군가는 다른 나라 신고서에도 다 있는 항목이라고 했을 거고, 케이지 규격은 어느 항공사 기준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을 것이다. 질문 없음. 이견 없음. 그 회의는 아마 점심시간 전에 끝났을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일어난다.” 이건 방금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아주 상투적인 말이라서 마음에 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의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상관없는 징후를 느끼게 하고. 종이 한 장짜리 신고서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와 깊숙이 체결되는 것 같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하나? 저기 볼펜 쥐고 있는 사람들도 하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여길 통과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야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항을 나서면 뭘 먹지 생각하고 있을 수도.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내가 죽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네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렇지?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혐오했으니까. 이 정도는 각자 알아서 처리할 일 아닌가? 그런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펜은 든 채로. 케이지 하나를 비워둔 채로. 오래전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사람들 같았다. 가루 피. 가루 뼈.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나부터 순서대로, 그리 아프지도 않게 포슬포슬 날아간다. 누가 이렇게 정교하게 순서를 짜놓았을까. 심장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건 조금 다정한 설계 같다. 가루 눈, 가루 입의 내가 어디로 갈까? 누구에게 가볼까? 정말이지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가는 중인 채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