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아랫지방에 다녀왔다. 도착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 태양 아래서 타 죽어가는 뱀파이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고 기온 39도. 올여름이 앞으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과학자들이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사전점검 기간에 사용되는 전기료와 가스비는 시공사에서 부담해야 한다. 때문에 여름에도 세대 내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현장들이 더러 있다.
시공사A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은데, 이제껏 여름에 에어컨을 가동해 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다행히 이번 현장에서는 예외적으로 틀어줬다.)
그러나 에어컨 하나 틀어주었다고 시공사A의 악명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풍문에 의하면 시공사A는 흔히 건설사 설립 일화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전철을 모두 밟았다고 한다. 깡패 출신의 회장이 임대업을 하다가 건설업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닫고 시공사A를 차리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회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조직 문화는 조폭과 같아서 신축 아파트 현장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현장 분위기는 살벌하다. 사전점검 대행업체와 관련해 시공사와 입주민 측의 사정이 다른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공사A는 과도한 대응으로 문제가 되곤 한다. (다른 시공사들은 고객의 권리를 우선시 해 대행 업체를 쫓아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가령, 입주예정자와 가족 관계인 사람이어도 가족관계증명서를 지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경우를 본 적도 제법 있다. 그뿐인가. 고객들이 하자를 신청해도, 다른 시공사였다면 충분히 보수를 받았을 법한 하자를 처리해주지 않는 등의 문제도 심각했다. 그나마 주택법이 개정되고 시행되면서 시공사A의 보수율도 높아졌다. 이런 걸 보면 역시 기업은 합의가 아니라 규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시공사A는 유난히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뭐 우리야 현장 상황이 어떻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점검을 해야 하므로, 어떻게든 입장하고, 쫓아오면 도망가고, 쫓겨나면 다시 고객과 동행해 들어가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며 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도 화장실도 못 쓰게 하는 건 정말 너무하다 싶지만, 백 한 번 양보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그건 진짜 너무하다는 생각이 무한반복 된다.
그래도 시공사A의 좋은 점을 꼽아보자면, 그곳에서 나눠주는 펜이 참 좋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훠얼씬 너프되었음에도 술술 써지는 그 펜만큼은 모두가 입을 모아 최고라고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