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인형 내부의 밀짚

인형 내부에 밀짚이 있다는 얘기는 어쩐지 당연한 얘기인 것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인형을 한 손에 안고 있다. 장난감 총을 쏘자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것은 시늉이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어서 별로 의미 없었다.

낡은 인형을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손잡이가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물에 닿은 손이 인형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인형 내부에 있는 밀짚, 그러니까 유토피아를 생각했다. 유토피아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하철 플랫폼에 비밀 통로를 만드는 것처럼 무난한 계기가 있어야만 했다.

우연히 거기에 손이 닿아야만 한다. 인형의 튿어진 데를 조금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밀짚을 생각하며 나는 수상쩍음과 겸연쩍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무엇이 평소와 같지 않게 이상하다는 것이 수상쩍음이고 괜스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 겸연쩍음이다.

에스퍼 계의 제약 인형 앞에서(그것은 어쩐지 수상쩍었다) 왠지 나는 겸연쩍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건 그다음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들고 있던 낡은 인형은 그 사이에 새로운 인형이 되었다. 내가 모자를 씌워주는 시늉을 내자 그렇게 되었다.

작은 비행기라면 손이 닿지 않고서도 공중에 띄울 수 있다. 나는 에스퍼 타입이었고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내 능력의 발동에 있어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형에 모자를 씌워주었다. 마법사 모자를 씌워주었다. 그것은 내 제약이 되었다.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행위를 내가 했다. 방금 엘리베이터에 있었던 순간은 나에게 중요했다. 나와 같은 타입의 사람들은 인형 같은 자기랑 비슷한 물건에게 자신의 것을 이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려면 우연히 손이 거기에 닿아야만 한다. 그것이 의식이라는 것이었고 방금 내가 한 일이었다. 내 것이 증폭되었다.

이 세상은 에디트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국면에 대한 확률 걸기가 불가능하다. 어떤 순간은 성공이고(무조건), 어떤 순간은 실패(무조건)다. 성공과 실패의 순간을 빠르게 넘어가게 할 수는 있었지만 특정 국면의 성공이나 실패 확률은 무조건 100%이고 방금 엘리베이터에 있었던 때는 내가 직감한 그 100%의 순간이었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예언사에게 찾아가 예언을 받는 데 많은 비용을 낸다. 나는 중간 즈음의 편이었는데 아까 전의 순간에는 확신했다. 손잡이에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물이 묻어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인형의 튿어진 데를 바늘로 기웠다.

여러 대의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 나는 더운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이런 공기 속에서라면 벌레들은 힘을 잃는다. 따라서 간드를 지향성으로 내보내 맞추기가 쉬웠다. 어른들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도 쏘아내곤 한다던데.

오늘 의식이 성공한 것은 그들이 알게 된다면 굉장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하느라고 나는 지난 1년간 고생했다. 인형과 감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튿어진 데가 있어도 인형을 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이로 밀짚이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나는 인형에 이입하고 몰입해야만 했다. 나는 인형의 내부에 있는 밀짚들이 천국의 것이라고 정의했었다. 천국은 쉽게 대상화되지만 정작 그곳에 누구가 살고 있고 무엇이 있는지는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간섭으로부터 안전한 편이었다.

인형의 존재를 그곳에다 두기만 한다면. 존재를 두는 행위에는 시늉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서 끌어온 도움으로 실제로 천국에 다녀왔고 인형의 존재를 그곳에다 두었다. 감응을 하려면 그 대상이 먼저 이렇게 안전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는 친해지는 것이다. 튿어진 데를 기우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여느 사람들의 사이나 관계와 다름없이, 쓸데없는 배려는 위화감을 만들 우려가 있었다. 마법사 모자를 쓴 인형은.

곰같이 생겼다. 원래 이름은 에리나였는데 여자 이름인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울리는 듯했다. 그것은 자신의 날개 안에 있는 천사의 이름이었다.

내가 천국에 갔었을 때 변태하고 있는 벌레 고치들인 것처럼 천사들은 다들 자신의 날개를 닫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걸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흥미 본위로 빌려온 마음을 보는 돋보기로 그들을 살펴보았는데 다들 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만을 했다. 천국은 상상보다 평화로운 장소였다. 그러나 나는 유토피아와 천국을 같은 데라고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거기서 날개를 닫고 있으면 유열 속에 있는 것이다. 밀짚은 비어져 나오려고 하고 그것을 주워다 다시 넣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내 생각에 유토피아는 여느 놀이공원처럼 수고로운 장소여야만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것이 아니라면 비극이었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몌구에서

별것도 아닌데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너는 지금. 이거를 딱 들고 착착착 넘겨보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거를 골라. 입에 감기는 거를. 입에 들어오고 눈에 감기는 거. 고르고서 거기다 출판사! 하고 붙여, 아니면 북스니 프레스니 뭐니 하여튼 붙인 다음에 뜻은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면 돼. 뜻이 뭐 대순가? 갖다 붙이면 붙으니까 뜻이지, 뜻! 뜻! 이거 봐, 소리가 꼭 붙는 소리 같잖어. 뜻! 뜻! 그럼 되는 거지. 그런가? 근데 붙는 소리보다는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같지 않아? 너는 지금 너무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어!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된다는 듯 이걸 한번 보라며 품에서 꺼내 손바닥에 쳐대고 있는 것은 단어카드집이다. ‘뜻!’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챠륵챠륵 경쾌한 소리가 나고 있다. 자기가 일하면서 마주친, ‘끌리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단어집이라는 거였다. 단어집은 고리로 꿸 수 있게 구석에 구멍을 뚫은 31장의 민짜 카드로 이루어져 있고, 카드마다 위쪽에는 번호가, 그 아래에는 적게 둘에서 많게 여섯까지의 단어가 적혀있다. 뜻은 없고 단어들만, 덩그러니 가지런하다. 찬찬히 넘겨보니 앞쪽에선 ‘두발짐승’이나 ‘목각음’처럼 좀 묘한 정도, 아니면 ‘신서의 비밀’처럼 뭔가의 제목 같은 느낌이지만, 뒤로 갈수록 뭐라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왔다. 20번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일일이 묻기에도 많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이런 단어들을 봐둔 것인지, 왜 이것들을 이렇게 정성껏 모았는지 궁금해졌다.

23번 카드의 다섯 번째 단어에 눈이 꽂힌다. 몌구... 소매 몌(袂)에 입 구(口)로, 옷소매에서 손이 나올 수 있게 뚫려 있는 부분, 소맷부리를 말한다. 이거야? 이거 골랐어? 이걸로 가. 쓸데없이 한자어니까 기왕이면 뒤에 뭘 좀 붙여. 에서? 몌구에서? MGES야? 그래 그걸로 해. 뭔들 어떻겠어. 이제 뜻은 만들어. 왜 소맷부리야? 너는 보통 속옷만 입고 읽는다고? 뭔 소리야? 이렇게 해. 옷과 책은 어쩌면 비슷한 것이다. 꺼내서 붙드는 때가 있고, 그때가 아니면 보관된다. 이걸 첫 문장으로 해. 그다음엔 이거야. 그러나 옷과 책은 다른 것인데, 사용되는 시간 동안 옷은 가리고 책은 드러낸다. 그래서 책이면 뭐야, 딱 붙들고 슬슬 넘기면서 읽어야지, 소맷부리면 뭐야, 팔을 꿰고 손이 쑥 나와야지 입은 거지, 이거야. 손 없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그럼 그 없는 손이 중요한 거겠네. 맞아. 여기 책은 입지 않은 옷이야. 손이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이 없는 거야. 이런 건 어때? 옷은 어지간하면 두 번은 입는다, 책은 두 번 읽힌다면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 가려주는 책이고, 두고두고 읽힐 책이다, 몌구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손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읽힐 필요도 없다, 이걸로 해. 됐지? 간단하지?

2022년 7월 9일 토요일

호러연극

연극이 시작되면 귀 찢어지도록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대 중앙 아래에 개와 사람이 있고 그들 위 up center에 개와 사람의 귀신이 있다. 개와 사람의 귀신은 개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 개와 사람은 귀신을 피해 도망간다. 군인들, 등장. 개와 사람의 귀신을 총으로 쏜다. 총알은 귀신을 피떡으로 만들지만, 그들을 멈추지는 못한다. 상수 쪽 가림막에서 사격된 횟수만큼 자살자, 초등학생, 장애인, 여성 귀신이 등장한다. 군인들,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령부로 돌아간다. 그사이 개와 사람은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제의와 설득을 시도하지만 무용하다. 그들은 알았다는 듯 귀신에게 죽어 귀신이 되어준다. 기관총을 가지고 돌아온 대령이 그것을 목격하고 이병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귀신이 되기 전에 죽여 버렸어야지!” 죽이려 들면 죽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는 이병, 참호를 빠져나간다. 이병이 귀신이 된 시점부터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귀신에게 죽어주는 짧은 장면들의 연속이며, 이 시점부터 병장 역을 맡은 배우는 객석으로 와 관객이 된다.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서, 이 연극에는 커튼콜이 없다. 관객은 원할 때 어느 때든 극장을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무대는 극장 중앙에 있고 입출구는 그 뒤편에 있어 나가는 길을 막고 있다. 극장을 나가려면 무대 위에 올랐다가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관객은 들어올 때 그랬듯 사람이 귀신 되고 있는 무대를 밟아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2022년 7월 5일 화요일

작가훈련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바꿔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선 사람이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뭘 짜냈건 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냈다고 한다면 또한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려는 사람들의 뒤를 좇아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말세에 도달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말세의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법 하나를 꼽자면 말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쥐어짜내는 것이겠다. 그리고 말세의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 역시...

우리 ‘작가훈련소’는 이러한 말세적 상황을 모른 척하거나 피하거나 그런 게 없는 듯이 굴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매 순간이 말세였다. 그것은 끝나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핵심은 뭔가를 여럿으로부터 짜낸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만약 그 무엇으로부터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조차 많은 것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인데... 있는 것들 중 여럿의 합력으로부터 짜내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이든 여럿 중의 하나로 있지 않을 도리란 없다. 만약 여럿을 발아래 둔 듯이 굴거나 그렇게 굴진 않지만 실제로는 발아래 두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발아래 놓여 짜내여질 따름인 이들, 또는 여럿으로부터 아주 내쳐짐으로써 있기의 곤란을 겪는 이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여럿이라면 바로 그것이 불길한 징조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를, 말세적 상황이란 짜내기의 횟수, 위치, 유량, 도관 배치 등의 불균등과 관련 있는 것이며, 어딘가로 들어간 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터지는 수밖에는 없다. 작가란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건, 뭘 짜낸다거나 안 짜낸다거나 주거나 말거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뭉쳐진 덩어리와도 같다. 우리가 작가들을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들겨버릴 것이다. 두들겨서 고르게 펴버릴 것이다. 아주 얇게, 금박처럼 얇고 넓게, 원래 그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도록...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훈련을 ‘받을’ 것이다. 작가훈련소의 책에는 작가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읽힐 권리 외에는 작가의 그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게 뭔가? 이것이 정신의 개조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가적 인식과 작가적 목표와 작가적 방법이 이와 같다.

2022년 7월 2일 토요일

22년 6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2 (54)
―――
외삽연극 +1 (1)
환상 동화 +1 (1)


이달의 총격려금

4,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30일 / 2,000원 ― 외삽연극
30일 / 2,000원 ― 환상동화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외삽연극 [入] ☞ 2,000원
환상 동화 [入] ☞ 2,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7,569원 (0원 + 257,363원 + 206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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