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5일 화요일

작가훈련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바꿔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선 사람이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뭘 짜냈건 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짜냈다고 한다면 또한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려는 사람들의 뒤를 좇아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말세에 도달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말세의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법 하나를 꼽자면 말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쥐어짜내는 것이겠다. 그리고 말세의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 역시...

우리 ‘작가훈련소’는 이러한 말세적 상황을 모른 척하거나 피하거나 그런 게 없는 듯이 굴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매 순간이 말세였다. 그것은 끝나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핵심은 뭔가를 여럿으로부터 짜낸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만약 그 무엇으로부터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조차 많은 것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인데... 있는 것들 중 여럿의 합력으로부터 짜내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이든 여럿 중의 하나로 있지 않을 도리란 없다. 만약 여럿을 발아래 둔 듯이 굴거나 그렇게 굴진 않지만 실제로는 발아래 두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발아래 놓여 짜내여질 따름인 이들, 또는 여럿으로부터 아주 내쳐짐으로써 있기의 곤란을 겪는 이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여럿이라면 바로 그것이 불길한 징조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를, 말세적 상황이란 짜내기의 횟수, 위치, 유량, 도관 배치 등의 불균등과 관련 있는 것이며, 어딘가로 들어간 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터지는 수밖에는 없다. 작가란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건, 뭘 짜낸다거나 안 짜낸다거나 주거나 말거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뭉쳐진 덩어리와도 같다. 우리가 작가들을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들겨버릴 것이다. 두들겨서 고르게 펴버릴 것이다. 아주 얇게, 금박처럼 얇고 넓게, 원래 그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도록...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훈련을 ‘받을’ 것이다. 작가훈련소의 책에는 작가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고, 읽힐 권리 외에는 작가의 그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게 뭔가? 이것이 정신의 개조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가적 인식과 작가적 목표와 작가적 방법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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