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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6일 금요일

현충

뭐 했는지도 모르게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이제 교정공이 아니다. 의료 대란에 의한 경영 악화로 3대 사장님과 작별. 나 좀 잘라줬으면 좋겠다 좋겠다 했는데 올 것이 온 것이다. 그 회사에 남은 실무자는 둘뿐. 건투를 빌며 나왔다. 월요일에는 실업급여를 타먹기 위해 고용노동청에 다녀왔다. 예비군 훈련도 이따위로는 안 하겠다고 생각하며 집체교육인지 뭔지를 받았다. 내가 이제껏 얼마나 괜찮은 시스템 위에서 얼마나 잘 훈련된 이들로부터 얼마나 상냥한 가르침을 받았는지 지난날의 교육과정을 새삼 돌아볼 정도. 연단에 올라 그저 뭔가를 해야 하니 하고 있는 그 직원-강사에 대해서도 노동자로서 너무나 이해가 된다는 것으로, 아침부터 하해와 같은 모욕감과 동지애와 혐오감이 뒤섞여 만사 우스운 기분이 되었다. 전에 어머니가 무슨 인터넷 강의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좀 틀어달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강의라는 것도 듣는 방법과 내용 양면에서 형편없는 쓰레기였다. 무슨 교수 녀석이 나와 가지고는... 대체 그따위로 누구에게 뭘 가르친다는 건가? 마땅히 쉬워야 할 것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은 마땅히 어려워야 할 일이 쉽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 약한 곳에서부터 이해는 모르는 줄도 모르게 무너진다. 책임이란 배려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배려는 마음보다도 그것의 흔적을, 내가 그쪽으로 가는 역지사지를 가능케 하는 선대의 경사로를 말하는 것이다. 이해는 강물처럼만 될 것이 아니고 파도처럼 시냇물처럼 빗줄기처럼 눈처럼도 되어야 하는데, 이해가 무너진 데 고이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만사의 우스움이고... 꼴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서는 한참 잤다. 당분간인지 앞으로인지 어쨌건 당장은 교정공이 아닌 나의 교정정신도 금방 희미해졌다. 앞날에 암운뿐인데 별 아무 말을 만들고 싶지가 않다. ‘될 대로 돼라’ 상태에 자꾸만 이르러 헛소리를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그리고 다음 날은 대선. 지지 후보의 득표율은 1%를 넘기지 못했다. 기도 안 차는 개소리들과 기가 차는 개소리들의 대격돌을 다시 봐야 하는 것에 가슴 답답.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이론과 실천이... 오늘날의 의식화와 조직화가 필요하다... 다시 오늘날의 지혜와는 무관한, 크나큰 염불 속에서 자고 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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