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9일 토요일

헌병 수사관


헌병 수사관이 된 이후로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것, 바로 유서다. 논리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살인에 관한 소설들을 읽었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영정(할아버지의)을 처음 봤을 때부터일까. 나는 죽음에 일찍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에 관해 생각해왔다. 정확히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내 죽음? 알 게 뭔가. 나는 죽지 않을 텐데.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 세상에 문자로 된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는 점은―그것이 시일지라도―인간이란 존재가 최후까지 생각을 놓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늘 나에게 재확인시켜준다. 죽기 전의 유서 쓰기, 그것은 세상에 영혼의 잔량을 새기는 일인 것이다. 영혼이란 개념을 믿는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인생은 안에서 볼 때엔 더없는 비극이지만 바깥에서 보면 우스운 희극이다. 지난 이 주 동안 발생한 두 건의 자살 사고는 그 점을 더 분명하게 알려준다. 이 주 전 A중령이 죽기 전에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평생 나라에 충성하고 전우를 믿으며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뿐이구나. 허망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는 주어진 진급 기회를 모두 놓쳐 중령 계급으로 퇴역을 준비 중인 군인이었다. 와중에 평소 의지하던 B중령이 솔깃한 투자를 제안했다. A중령은 퇴직금을 몽땅 B중령에게 맡겼고, B중령은 사라졌다. 다른 여러 군인들의 목돈과 함께.
그리고 한 주 전에 B중령이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멍청한 군인들.
개 같은 내 인생.

B중령은 A중령을 포함한 여러 동료들에게 사기를 쳐 10억을 모았고, 그 돈을 100억으로 만들어준다는 외국 투자자에게 맡겼다. 투자자는 사라졌다.
나이 많은 군인의 자살 사례는 대부분 돈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군 생활만 해서 세상의 이치에 밝지 않으니(나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사기를 쉽게 당하는 것이다. 반면 젊은 간부의 자살은 크게 두 가지가 주된 자살 사유로 조사된다.

주희(가명)야.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니 나도 더는 갈 곳이 없구나.
부모님 죄송합니다.

처럼 연애 문제이거나,

내가 죽는 이유는 다음 달 있을 전군재물조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초급 장교로서 심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다. 이 정도로 나약한 내가 한심하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사단장님이나 대대장님 등 다른 간부, 병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죽음은 오로지 나의 모자람 탓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처럼 업무상 스트레스 문제 등이 있다. 장교일수록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비중이 높고, 부사관일수록 연애 문제로 인한 자살 비중이 높다.
병사의 자살 사유는 여러 가지인데, 가정 환경으로 인한 비관 자살이 가장 빈번하다. 대개 집안에 돈이 없고, 부모 사이가 좋지 않거나 이혼했으며, 자신이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최근 자신이 살던 시골집의 비닐하우스에서 나일론 줄로 목을 졸라 자살한 병사의 유언은 이랬다.

군에서 남은 2년을 보내려니 막막하다. 나와서도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잘하는 것도 없고…
미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떠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선규(가명)야, 짐을 얹고 가서 미안하다.

많은 자살자의 유서엔 공통적으로 죄의식이 나타난다. 혼자 죽는 게 인간이지만, 혼자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일까?
오늘도 우리 부대에서 병사 하나가 죽었고, 나는 현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죽은 병사 가족의 집이다. 자살자는 두 시간 전에 아파트 15층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병사는 신병 휴가 중이었고, 오늘은 복귀 예정일이었다.
사고자 부친의 진술에 따르면(모친은 충격으로 입원해 있다), 사고자는 휴가 내내 자신의 방 안에서 지내다가, 두 시간 전 자기 방에서 나와 큰방에서 티브이를 시청 중이던 부모에게 “어머니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친 후 그대로 베란다까지 달려간 뒤 뛰어내렸다고 한다.
부대로 돌아가 같이 생활하던 병사들의 진술을 들어 종합적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겠지만, 사고자 아버지의 진술과 유서를 살펴볼 때 단순 비관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 사고자는 학창 시절 간에 질병이 있어 입 냄새가 심하게 나는 사람이었고 이때 받았던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입 냄새가 치료된 이후에도 자신에게 끔찍한 입 냄새가 난다고 믿어왔다.
사고자의 유서를 읽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다. 물론 사고 현장, 죽은 사람, 유서 등을 보는 건 언제나 좀 찝찝하고 씁쓸한 일이지만, 이 유서는 뭐랄까, 조금 평범한 언어로 쓰인 것 같지는 않다. 유서 쓰기가 세상에 영혼의 잔량을 새기는 일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그렇다면 이 병사의 영혼은 매우 불쾌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괴퍅한 문투와 지독한 악필은 뭔가에 오염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오늘도 계속되는 세상과의 불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 맨손체조.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하면 잠이 온다. 이 위치가 가진 에너지를 설명할 수 없음. 중력이 내 몸을 처박기 전까지. 땀을 흘리면 기분이 낫다. 메들로 풍비의 지각의 현상학은 학수에게 주겠다. 정신의 테니스. 공은 내가 치려는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오늘도 행인들이 비웃었음.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 잠이 온다.

메들로 풍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고자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작가인 것은 명백해 보인다. 친구에게 저작을 유증으로 남길 정도이니 말이다. 전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와 책의 이름은 사악한 자력이 있는 것처럼 나의 영혼을 끌어당긴다. 매우 불쾌하다. 그가 최후까지 놓지 않은 망상, 피해의식을 읽노라니 구토가 일 것만 같다. 뭔가를 써두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펜, 당장 펜이 필요하다. 지금 써두어야 한다. 나는 지금 당신의 시체가 아니라 당신이 쓴 글을 보고서 극렬한 구토감을 느꼈다고. 나를 그렇게 만든 건 죽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