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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서재극

클로짓 드라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오로지 읽기 위해 쓴 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네요. 한자어로 다시 쓰면 서재극. 이 분야의 유명한 작품 제목을 따서, 우리말로는 ‘안락의자 연극’이라 부르기도 한대요.

상당히 근사하게 들리는 얘기죠. 이 형식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번영했습니다만, 연출가의 역량에 따라 어떤 텍스트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는 전위・실험적 연출 사조의 등장에 밀려 서서히 저물었다는 모양입니다.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은 듯도 합니다만 곱씹어보면 조금 역설적이기도, 하지 않나요. 희곡 작가가 무대라는 제한을 벗어나 최대한의 자유도를 추구한 결과, 상연되지 않을 극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연출가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연출적 자유에 밀려 결국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는. 

송출되지 않을 라디오의 대본을, 그것도 오프닝만 쓰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이런 형식이라면 무슨 이야기든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것을 쓰기로 했습니다만, 언젠가 이것이 더이상은 클로짓 오프닝이 아니게 되는 날도 올 것 같은 예감도 벌써부터 들고, ‘최대한의 자유도를 보장하는 형식’, 바로 그것에 오히려 걸려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도 느낍니다.

그럼에도 일단은, 이렇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열린 옷장 방향으로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옷장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말난 김에 안락의자를 하나 살까요? 이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은, 내 집에 아직 안락의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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