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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4일 수요일

역전

세계관은 자신이 가진 잔혹의 정도로 당신에게 말을 건다. 과학이 인간을 별로 좋게 보지 않음에 따라 밀려나고 별다른 주거가 없는 사람들은 안주할 수 있는 가상 공간에 대한 눈높이가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까다롭다는 것은 그 욕구 불만이 지속되는 경우 각 문화 산물들의 내용에 대한 감식안, 민감한 정도가 아니라 그 까다로운 기준을 어떻게든 무마, 후퇴, 폐기시키려는 어떤 성급한 활동을 추진하게 되기도 하는데 결국 돈은 유한한 자원이니만큼 그들의 생각 깊숙이에 그 불만족스러움은 쌓여가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잘 만족하지 못했는데 예전처럼 다수의 게임들을 사버린 뒤 몇 날 며칠이고 플레이하면서 자신의 만족과 불만족에 대해 뭔가를 알아가기에도 경제 불황으로 돈이 떨어져 버렸다.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무지향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떤 국소한 분야에 투신시켜 훈련하는 일을 즐겼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과학을 애호했다. 과학이 이토록 심각해진 뒤에도 과학이 심각한 위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는 논쟁적인 여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의 존재 탓도 있었다. 아키라가 성년이 된 이후로 현실에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그 일에 환호했다. 조금 기이하게도 현실이 게임을 닮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간 게임에서 괴물들을 베어버리는 기술을 연마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태를 위험하고 심각한 것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이 이미 작성했었던 이념이 작동하기 시작한 탓이다. 사회적 분위기의 변혁 주기가 빨라짐에 따라 다분히 레저 활동에 가까워보였던 길드들이 이번에는 앞질러 권위를 갖고 이익 집단이 되어 신입 공채를 진행하기도 했고 아키라도 한 집단에 소속되어 거기 소속될 만한 이들을 주변에서 찾는 일을 했다. 그들은 앞지른 것이었지만 아키라의 경우 이미 뒤늦은 느낌도 있었다. 그는 이 시대에 적합한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 괴물들이 나타나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일차적 해명이 끝난 상태였으며 그 조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각국의 기관들을 통해 권력자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현실에 일어나기 전부터 예측된 사실이었음을 아는 상태로 정책을 만들었다. 놀랄 일은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현실에 나타난 그 괴물들에 원더Wonder라는 이름을 붙였고 각국의 군대들은 그 괴물들을 배제하며 조사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각국의 권력자들에게 괴질이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으며 때로는 공포의 감정으로 진전되기도 했다. 세계는 분명 이전보다 더 잔혹스러워지고 있었고 그것은 과학이라는 체제가 인간을 적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어떤 컬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컬트가 아닐지도 몰랐으며 주로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 과학 쪽의 부정적인 뒷이야기에 대한 세계관이 뒤늦게 그려지기 시작했고 언론에 뿌려지는 보도 자료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지금껏 출시된 대부분의 사이버 펑크 게임이 그렇듯이 출시 초기에는 인기를 끌었으나 컨텐츠의 종료가 도래하는 시점이 빠른 탓에 금방 사그라지는 그런 부류들과 현실은 동일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후퇴할 곳 따윈 없었던 것이다. 의외로 사람들은 게임을 즐길 땐 완고한 면이 있었다. 지금껏 불감증이던 사람들이 현실에 일종의 게임 클리셰적 사건이 생긴 일에 몰래 기뻐하기도 했고 그런 이들은 그 일의 확산에 기여했으며(소문이나 풍문의 방식으로) 그런 사람들끼리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일도 빈번했다. 어떤 사람들은 물론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존재는 임의적으로 산재해 있었는데, 현시점 괴물에 대한 보도 자료들은 전부 경제의 원활한 범지구적 선순환을 위한 인간 배제적 체제, 일종의 소비재들에 대한 강압적 홍보 및 각 국가별의 통제 수단이라 주장하며 그것을 믿지 않음에 몸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꽤 많았고, 이 문명은 괴물을 시민에게 접근시킬 정도로 퇴락하진 않았다는 점이 그런 아젠다를 부추기는 데에 일조했다. 혹은 그 괴물이 실제로 그들의 말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그러한 입장에 대한 찬반 쪽의 입장들은 일반 시민이 접근 가능하게 하는 데에 신념을 가진 위키 문서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소 피상적이거나 혹은 이르게도 괴물 사냥꾼들이 등장함에 따라 그들이 갈아끼울 강화형 의수, 인체 파츠 등을 실제로 현실에서 판매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주로 이베이 옥션에서 거래되었는데 그것은 호들갑인 걸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진지하며 냉엄하였고 가차가 없었다. 마치 재난에 대비하는 특정 국가의 자가 주택 보유자들처럼 말이다.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눈높이가 까다로워져 있던 사람들은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쪽으로 치달음에 따라 과학이라는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작용하는 체제에 대한 팔자 좋은 관념화를 잠시 그만두고 그나마 익숙했던 일에서 생계 수단을 구하게 되었다. 어떤 순박한 게임사는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를 다분히 취재하는 방식으로 이 현실의 체제와 아젠다, 문제 사항들을 기삿거리처럼 만든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는데 그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었다. 그 게임의 경우 앞서 말한 까다로운 눈높이의 사람들을 거의 만족시킬 정도였다. 아주 방대하고 구체적인 볼륨들의 가상적 공간을 주거 공급하듯이 전 인구에 필적하는 단위로 서비스하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가상적 공간은 현실을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이 즈음에 게임 산업 속의 컨텐츠 경쟁이 잠시 냉각된 채 시대를 다년간 지배할 만해 보이는 이 게임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항 IP와 원천기술들에 대한 논의들이 시작되었다. 아키라는 지금껏 알고 지낸 지인들과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어떤 과열화 양상 속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한 뒤 그 거대 게임에 대한 게임 접속용 이어셋을 구매하고 그것을 생계 수단으로 삼을 작정을 했다. 그들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숙한 기미까지 있었다. 그들은 돈을 벌기도 전부터 정기적으로 보육원에 후원을 하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고, 그 액수는 여러모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들은 수입원을 찾아낸 뒤 점점 잔혹스러워지고 있는 세계의 어떤 분위기에서 휘발성의 음악들을 즐겨들었다. 그 세대의 메이저한 취향이기도 했다. 그 게임은 흥분의 요소뿐만 아니라 안주하고 안온한 휴식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기회 및 장소들을 제공하는 데에도 성공적이었고, 그들은 점점 그 게임에 익숙해져 가며 여러 가지 전투 기술들을 배웠다. 그 세계관에서는 전투 또한 아주 중요했다. 다른 게임들처럼 말이다. 아키라는 대형 기업으로 도약한 그 게임사에 대한 감사함까지 들기도 했다. 그들은 그 게임을 하는 데에 비교적 아주 적합했던 것이다. 과학의 잔혹을 그 세계관 내에서 과장시켜 보여주는 것의 반대는 과학이 보다 덜 잔혹함을 어떤 세계관 컨텐츠 내에서 보여주는 것도 있었고, 혹은 현실이 게임보다 더 잔혹스러워지면 된다는 것도 있었다. 후자의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대의 범인이 과학 체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과학 체제에 대한 저항 정신이나 수상쩍게 그들이 쥐고 있었던 권력 조건들에 대한 강력한 감찰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놓는 주의 주장이 점차로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경제 상황 때문에 현실이 보다 더 잔혹스러워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익숙했던 사이버펑크라는 어떤 세계로의 변화, 도약이 이뤄지기에 적합한 상황이 되고 있는 듯했다. 시대의 그런 변화는 낯설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젠 과학 기술이 시대 정신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기민했던 것이다. 어느 독재 국가에서는 이 시점에서 죄질이 있는 과학에 대해 총력을 기울여 원천 기술을 서둘러 발전시키려 한 탓에 국제 사회로부터 아주 심각한 수준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사항들에 대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은 이미 효용을 다했다는 데에 아키라는 어쩐지 재밌기도 했고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게임 안의 생계활동을 위해 현실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했다. 그것은 인맥 쌓는 일과 어느 정도 유사했다. 게임에서 나온 아키라는 이어셋을 낀 뒤 잠을 잤다. 현실은 벌써 어떤 악의나 범인의 존재 없이도 그가 바라고 염원하던 것과 유사해지고 있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아키라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달리고 있다.

커다란 배기통과 높이 솟은 손잡이,

검은색 가죽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아키라는 어느 카페에 들어선다.


자주색 테이블과 의자,

검은색 커피 머신.

아키라는 커피 머신 앞에 가서 커피를 내린다.

곧이어 다 내린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가죽의 삐걱이는 질감이

불편해 보이지만

아키라의 몸짓엔

주저함이 없다.


석양이 든 저녁,

창밖은 강렬한 소음과 배기 연기가 희끄무레하게 나고 있고

먼저 와 있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것을 들여다본다.


조금 뚱하고

무미건조한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스마트폰을 본다.

이빨로 껌을 질겅이며.


아키라도 용병이 될 수 있어?

아키라가 지닌 브로치 안의 여아가 묻자

될 수는 있지만 안 할 거야, 그런 일은.

아키라가 답한다.


폭력에 대한 암순응들이 자주 보이는 시대.

그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사이버펑크의 느낌은

아직 나지 않는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