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유곽,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들과 책 읽기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낮에는 각종 심부름으로 바쁘기 때문에 새벽에만 시간이 된다. 미감을 흩뜨리지 않는 단정한 긴 머리, 헤살을 놓는 듯한 나비 모양 머리 장식이 보이고, 그 여인은 곰방대를 물고 있다. 방 안 상석에 앉아 관망하는 투로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한 대 피워보시겠소?” 그렇게 말하며 나전 서랍을 열어 다른 곰방대 하나를 꺼내 든다. 지금 여인이 피우는 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 “언제 닦은 것이오?” “닦지 않은 지는 한참 오래되었지. 그러나 원체 닦지 않는 것이 당연한 듯한 물건이라.” “그렇군요.”라고 말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권하는 것을 사양하다니.” 곰방대를 든 여인은 나와 어릴 때부터 친구인 것처럼 군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스스럼이 없어서야. 내가 그대에게 말한 도리를 모두 잊은 것이오?” 여인은 빙그레 웃는다. “도리랄 게 있겠나. 어차피 배를 곯긴 싫고, 난 그런 배곯는 일로부터 도망친 지 오래인 몸인데.” 나 또한 곰방대를 든 여인에게 이런저런 도리를 말해주긴 뭐했으나, 그러나 배운 것이 그런 쪽인지라 그것 아니면 딱히 입에 담을 말들이 없었다. 이런 사람을 남들은 학식이 높다고 칭송해주긴 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건 하나의 군식구로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으로였지 뭔가 대우를 받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침이면 난 유곽의 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저쪽에선 꽤나 좋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의 미덕이라오.” “그렇다고 그 미덕이 온전히 내 것인 양 굴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오.” “미덕은 주인 된 자가 그것을 소유하길 피하려 하기에 더 귀찮고 사람을 그럴듯한 반석에 올려놓는 것이라오.” 가끔 이 여인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의 연쇄를 내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런 걸 이해하는 일이 귀찮기도 했고 어찌 됐든 저 여인보다는 잘 배운 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 싫소.” “그 또한 하나의 서생이로군.” 뭐, 난 서생이 맞았다. 아무튼 간에 여인은 지금 좀 심심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곤 하는 것처럼 생각거리가 될 만한 물음을 던졌다. “태양이 뜨면 달이 한밤 중의 권세를 잃고 어둠 속으로 기울어지듯, 이 유곽의 방만한 경영은 온전히 그대 손에서, 마치 달이 태양 빛을 반사하듯이 순간적으로 바로 잡히는 것에 지나지 않소. 낮에는 건물들 사이사이에 그림자가 지게 마련인데 이 그림자들을 잡아 뜯거나 강제로 축출하게 되면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소. 그리고 그러지 않는 것이 당신 마음의 반석이오, 또한 경영자로서의 냉엄함이로다. 하지만 앞날을 장담하는 것은 그리 안전하고 생산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소. 하지만 그러한 장담으로 인해 꽃피는 그곳에서 당신의 세상살이의 태만함이 기인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오.” “길군.”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걱정과 근심거리를 늘리는 것은 소위 나처럼 배운 자들의 몫이오.” “그렇게 늘려진 것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 또한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지만 베개에서 지푸라기가 하나 튀어나와 있으면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소?” “지금 그대가 하는 말에선 일종의 도가 보이질 않고 내 마음 안의 근심이 될 만한 싹을 틔우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이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찌, 적성에 맞는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성에 맞지요. 일이 한가해지면 한번쯤 한적한 곳에서 그런 일을 해보는 것이 내 꿈이었소.” “하지만 한적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한적한 곳도 드무오. 난 곳이라고 하며 장소를 말한 거지만 그러나 내가 말한 장소에는 시간대도 포함된 것이라오. 그저 밤낮이 뒤바뀐 것이 부담이라면 부담이지만 그러나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오. 이 또한 내가 정하게 된 약속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소. 인간은 약속과 계획에 능하다면 그걸로 갖출 것은 갖춘 셈이지.” “누가 제일 똑똑하오?” “한령이가.” 내가 이어서 말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셋, 그 너머의 넷을 넘보는 수준이라오.” “그럼 한령이가 제일 기특한가?” “가장 기특한 것은 정인이오.” “어째서인가?” “셈을 느리게 하지만 그사이에 다른 생각을 넘보고 있소. 글을 쓰면 아주 잘 쓸 것이오. 아직 시켜보진 않았다만.” “그걸 어찌 아는가?” “내 경험상 그러하오.” “그렇다면 아무래도 맞겠군.” “그런데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오.” “누가 그러한가?” “바로 당신이 그렇소. 어차피 나한테서 뭘 배울 것도 아닌데 학사 취급은 왜 해주는 것이며 그리 한가하지 않은 시간대에 붙잡고 뭘 하는 것이오?”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지.” “그럴 것이라 짐작하곤 있었소. 뭐가 재밌는 것이오?” “인간들은 역할들을 갖기 마련이고 거기에 이율배반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는 것보단 그저 제 눈을 믿고, 상대방이 가진 역량의 순도에 순종하는 것, 그런 것이 나름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내가 세운 법칙 중에 하나라오.” “역할들이 지루한 것이오?” “그저 그렇게 말한다면 재미없는 것이 되지. 하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오. 맞소. 나는 역할들이 지루하오.” “그건 왜오? 이유가 짐작 안 가는 것은 아니나 당신의 말로 한번 들어보고 싶군.” “개중에 첫째는 인간이 자기 역할에 너무 깊게 몰입하는 것을 들 수 있겠군. 특히 그것은 여자를 상대하는 남자의 말투에서 잘 드러난다오. 그들은 어떤 부담감이나 겪기 싫은 상황 등을 매번 여자와의 만남에서 마주하는 듯하오. 그리고 그것을 상황의 명료함이나 권세의 우위로 미묘하게 찍어누르는 듯한 그림이 발생되지. 나라는 사람이 배운 것은 그저 그들이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면 그들이 잘 모면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것이오.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 같더군.” “두 번째 이유는?” “두 번째로 그들의 역할들이 지루한 이유는 역할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군다는 것이오. 이것은 첫 번째 이유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르오. 아마도 거기에도 어떤 이성이 작용하는 듯한데, 무슨 종류의 이성인지는 잘 알 수 없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여인을 상대하는 남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그림이라는 것이오. 하긴 지나온 일들이 그런 것뿐이 없었지만 말이오. 사람의 심성에 단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다 가릴 수 없고, 내가 날 때부터 그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아니라 배움으로 딛고 선 이들을 더 대우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나는 인간들의 선택을 신뢰한다오. 선택이란 것은 당신이 말하는 시간과 계획, 그리고 임기응변과 제각기 지닌 마음씨 등이 내가 역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굳어져 현상된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배움을 청하고 있는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지.” “뭣 때문이라는 것이오?” “한마디로 말해 그대는 좋은 선생이라는 것이오. 그리고 그런 선생 밑에는 제자들이 여럿 붙어 있는 게 보기 좋은 광경이지. 내 아래의 아이들이 그러한 그림을 그리겠다는데 어찌 기꺼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들은 나만큼이나 훌륭한 학생들이오.”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덕이로다.”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곰방대를 뻐끔, 피웠다.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과거학회1
우리는 과거의 스케일에 매료되어 있다. 다가올 미래를 모두 합해도 누적될 과거의 양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우리를 고양시킨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클 것은 과거의 규모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모든 행성과 힘과 원자가 죽음의 신에 의해 지나간 시간에 속하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가 극한에 다다르면 현재와 미래가 끝난다. 시간의 화살이 나아감을 멈추는 그 순간, 만사만물은 붕괴한다. 만사만물의 모든 속성은 폐기된다. 남는 것은 되감아보아야만 무언가였음을 알 수 있는 입자 미만의 물질들. 만물은 그렇게 ‘-였음’이라는 단일 범주로 통폐합되고, 그 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통폐합의 순간에 와서야 세계의 존재 이유가 드러나는데, 세계란 저 ‘-였음’이라는 휴거의 도래를 위해 미리 마련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물은 저 마지막 순간을 위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각자의 역사를 쌓아갔던 것이다. 그 역사‘였던 것’이 되기 위해서. 이것이 과거학회의 생각이며, 내 생각이다.
경쟁사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상태는 좋지 않다. 또는, 좋지 않은 상태가 우리에게 더 넓게 더 깊이 도달하고 있다. 한마디는 무슨 한마디? 하여튼 큰일이 났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거의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피곤한 상태다. 하는 것도 없이? 하는 것도 없이. 당연히 없진 않은데, 없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이, 더 넓게 더 깊이.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잡은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집단 자살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자연사더라도 자살이다, 자살이더라도 살인이다. 이거더라도 저거고...
떠올랐던 것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다가, 어떤가? 이 상황을, 서로가, 추상적인 모두라는 것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경쟁을 멈추자는 말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힘을 잃는 말과 추상적인 말은 서로를 북돋는 경향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실현해낼 수 있다. 갑자기 이러한 원칙을 하나 세워본다. 경쟁 → 코미디 목적이 아니면 하지 말 것. 바꿔 말해, 피할 수 없는 경쟁적 상황 일반을 우리는 코미디의 일종으로 바꿔버릴 필요가 있다. 경쟁이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코미디여야만 한다. 경쟁이 코미디화될 수 없다면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주눅 든 사람은 자신의 경쟁심을 코미디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모욕받고... 울거나... 모욕을 시작한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서, 특히 삶에 대해서. 이러한 원환에 전과 다른 힘을 가하는 구체적인 책이 그래서 무엇일지를, ‘경쟁사’는 사운을 걸고 고민하는 출판사다.
‘경쟁사’가 추구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끊는 책이다. 우리는 오직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정확히 끊어내기 위해 경쟁한다. 그것은 끊어진 것들의 총력전이고 전면전이다. 우리는 제거되어도 그 책은 웃는다. 둘째, 다소 뻔뻔스럽게도, 그것은 경쟁상황을 협동상황으로 재인지하고 재인지시키는 책이다. 우리는 위험한 곳이야말로 역전의 계기가 고이는 곳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는 첩보전이고 유격전이다. 그 책은 패배해도 우리는 웃는다. 셋째, 이런 종류의 이야기엔 항상 셋째가 있어야 하므로, 셋째로 그것은, ‘코미디가-아닌-진정한-완전-경쟁’의 영역을 어딘가에 만들려는 책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건 코미디일 뿐인. 그것은 죽음에 대한 훈련, 빈 객석이다. 그 책도 우리도 절대 웃지 않는다, 죽어도 웃지 않는다. 이기기 전까진.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같은 것 같은
2022년 1월 13일 목요일
프로듀서
2022년 1월 8일 토요일
새 같은 것
새들은 멀리서만 봐도 되고 가까이 가면 알아서 날아간다. 거리두기가 되는 피사체. 이 새와 저 새를 자세히 식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자세히 아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알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되니 새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눈앞의 변화다. 그런데 그 변화에 어떤 방향이나 갈망 같은 것이 있어서, 이해는 할 수 없겠구나 체념하면서도 대체 왜 저쪽으로 가는지, 어떻게 다함께 지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요즘 내가 새를 보는 곳은 거의 일터 마당이다. 언젠가 거기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 위에서 새 한 마리가 처음엔 큰 원을, 나중엔 점점 작은 원을 그리며 하강하는 걸 봤다. 동료는 아마도 황조롱이 같다고 했고 나도 그런 새를 TV에서 봤던 것 같다. 새가 움직이는 하늘 쪽을 보는데 또 다른 동료가 새 뒤로 보이는 게 무지개 아니냐고 했고 자세히 보니 그건 정말 색들 사이에 경계선이 희미한 무지개였다. 배경에 아직 풀어지지 않은 비구름이 있었다.
일상에서 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새는 자주 내 시각을 이끈다. 내가 무엇을 볼지 새가 결정한다. 새가 움직이면 내 눈이 새를 따라가니까. 그러다 새는 날아가고 새가 지나간 자리나 그 주변을 바라보던 내 시각이 거기에 남는다. 이후의 행동은 새 때문에 본 것에 대한 일종의 반응이다. 지금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도 사후 반응.
하고 있으니 지나간 시간들이 날아가는 철새처럼 느껴진다. 나는 철새들의 이동을 늘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
2022년 1월 5일 수요일
김밥 같은 것
대선 주자들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2재명이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을 선언하자 천만 탈모인들이 “2재명 뽑지 말고 심자”며 환호하는 한편 다른 쪽에선 “씨발 탈모가 죽을 병이냐” “2재명 너는 풍성충이잖냐” 하고 있다.
아무튼 김밥 포장을 연필깎이 돌리듯 세로로 뜯어서 한 칸 한 칸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가 나무젓가락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내가 쓰지 않겠다고 고개를 젓자 그는 “마음이 바뀌면” 쓰라고 했다.
사실 “마음이 바뀌면” 못할 게 없다. 젓가락 써서 김밥을 먹는 게 뭐 대수라고. 2재명이나 윤석10조차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젓가락도 갖다주고. 친절을 베풀어주고. 사실은 아주 고마운 일인데. 나는 쓰레기가 나오는 게 싫다.
김밥을 다 먹고 호일을 손바닥으로 몇 번 밀었더니 아주 작은 공 모양이 되었다. 손끝으로 꾹꾹 눌러서 더 단단하고 작은 공으로 만들어버렸다. 기름이 묻어 약간 반질거리는구나. 속으로 생각하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점심시간 끝.
그런데 “마음이 바뀌면”이라고 여지를 준 동료에게는 정말 고맙다. 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여유나 유연함을 갖고 싶었다. 며칠 뒤에도 선택의 여지 없이 김밥을 먹을 텐데,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내가 유연하다면.
마스커레이드
나는 구술하고 있다. 춤추기 위해 마련된 봇들의 개인적인 설렘이나 떨림의 그 개괄적인 순서들을. 샹들리에 있고 그 밑에서 연미복을 입은 소년 하나가 바이올린의 불을 켠다. 바이올린이 타오르고 있다. 도시를 타오르는 그림자가 뒤덮어 가고. 그 타오르는 색은 붉음인데 자세히 가까이서 보면 파란이라는 꼬리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도시가 검은 태양이 뜨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태양이 다시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다가, 지고 마는 것을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일부. 컬트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고 아무 사심 없이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대 뒤에서 곧 나가러 가는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들고 있다. 충족하기 위해 알약을 집어삼키는 그런 문화가 손끝에서 빛을 발하며 타오르고 있었다. 재가 민들레처럼 날린다. 그것이 운명적인 사랑이기에 한 자루의 권총을 손에 들고 있기만 하지 격발로는 가닿지 않는 그러한 성정이 이목을 끌기도 했고 작은 영역의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필드를 일순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영역이 노래처럼 분명함을 갖고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었지만 난 그것이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음색과는 다른 그런 사람 목소리가 하나의 포크송이 된 그런 광경. 우연히도 거기에서 1Q84를 쓴 작가와 마주쳤다. 그 만남은 웃기지만은 않았고 그러나 진지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것을 말하고 있고 받아 적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비밀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았다. 봇 하나가 다가와서 정해진, 말 되어진 것들에 따라 잠시 나에게 춤추는 것을 권했다. 잊지 않고 나는 수수하게 장식된 가면 같은 것을 갖고 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불이 붙고 있었어서 어둠과 유리된 채 그보다는 좀 더 위인 단계로 타오르며 점차 격상되고 있었다. 마치 한차례의 위기가 다가온 듯 나는 웃으며 그것을 거절했다. 봇이 가진 종이에는 춤추길 권유하는 때의 요령 같은 것도 없었다. 정중히 인사한 뒤 서로 두 방향으로 멀어지고 찢어지는 그런 애착이 희미하게 지워져 있는 것 같았다. 도시가 있었고 그 안에 아주 작지만은 않은 크기의 무도회장이 있었다. 지금 이 안에서는 바깥의 검은 태양이 보이지 않았고(지금은 저녁이었으므로) 대신에 테라스로 나가보면 붉은 달이 떠 있었다. 사람들의 종교에 기대지 않고서도 가장 그럴듯한 색깔로 빛나는 그 위성을 쳐다보며 나는 봇의 은쟁반 위에 놓인 하이볼을 누군가를 따라 마시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명랑한 어조로 그것을 입에 댔다. 그 물속에 혀를 담갔다가 빼 보기도 하는 나는 장난기가 있었다. 무대에선 배우들이 연극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납작한 스카프 같은 것을 두르며 누군가 다시 나에게 춤출 것을 재차 권하는 그런 일어날 만함 직한 정경을 떠올렸다. 어차피 거절할 거였지만. 아까 말한 1Q84의 작가가 사람들과 봇들 속에서 파트너를 데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나 번들거렸다. 줄리아 스톤이라는 성명을 가진 봇이 나에게 다가와 춤을 권했다. 춤추기에 좋은 날씨였고 음악이었다. 그리고 문예이기도 했고 붉은 달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까 말했던 대로 거절했으며 대신 그가 가진 은쟁반에 담겨 있는 유리컵을 들고 무슨 액체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쩌면 나는 당황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마음이 내 행동에 반영되었다. 여기에 있는 봇들은 모두 누가 만든 것이다. 나는 여기서 citrus라는 가명 배지를 매단 채로 홀에서부터 테라스까지 기다랗게 난 길을 평온한 듯 걷기도 했다. 물론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은 텁텁한 공기가 있는 곳에서 춤을 췄고 나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탁 트인 테라스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교를 나눌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떨리고 설렜다. 그러나 이렇게 마스커레이드라고 이름 붙여진 이 가면무도회는 전혀 숭고하지 않았기에 등골이 짜릿할 정도의 전율은 나는 느끼지 못했다. 숭고했다기보다는 어쩌면 카니발처럼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불안함은 나를 다시 한 사람의 개인으로 만들었고 붉은 달은 누구도 셈에 넣기 어려운 궤적을 그리며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달이 지지 않았다. 그것은 태양이 패배했다는 것을 뜻하는 거였고 이 사람들의 얼굴에 붙은 가장 가면들이 영원히 떨어질 일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점점 더 이곳을 알게 된 사람들이 찾아와 사람들이 더 붐비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대 명부에 없었던 사람들은 돌려보냈다. 이곳에선 나의 역할이 내 손에 들린 가면에 상세하게 적혀 있지는 않아서 내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짐작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베일 뒤에 가린 사람의 얼굴은 언제든지 상상할 수 있는 법이라, 이 재미 없는 무도회에서, 그러나 아직 떨림과 설렘을 간직한 채로 서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상설 무대예요. 누군가 나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워 보였으며 이야기의 알력이 있는 듯했다. 이 누군가는 나에게 말을 건 세 번째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그에게 춤을 추자고 권했다. 춤을 추면서 나는 부끄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적비적 웃음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내가 이곳의 주인이자 모멸하는 이라는 걸 자꾸 말하고 있는 듯해서. 사람들이 아주 완벽히 바란다고 해서 검은 태양이 뜨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가면무도회는 언제나 시작되곤 한다. 달이 붉거나 이미 붉게 된 달이라는 것 근처에서. 저 멀리서 줄리아 스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입을 위로 열고 있었고 아까 상설 무대의 ‘그’가 음료를 내 입으로 부어 넣어 주고 있었다.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걸지도 몰랐다. 저렇게 붉게 된 달이 나는 어쩐지 즐거웠으며, 여기까지 있다가는 곧 배우들이 연극을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내가 손동작을 하자 이사야라는 성명을 가진 아까 그 봇이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까 내가 거절했던 줄리아 스톤에게 천천히 걸어가 춤출 것을 청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다 거짓된 것이다’라는 정도의 합리화를 거친 이후에 나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예전부터 나는 거절하는 것을 잘 못했다. 그런데도 오늘 내가 몇 번이나 거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무도회가 가진 마력이 내 손안의 한 줌 같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헐벗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보기에 고아했고 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달이 붉게 된 것보다는 검은 태양이라는 것을 더 불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을 만드는 데에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다. 아까는 부정했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다 거짓된 것일 리는 없었다. 아까 손등에 키스한 것. 어쩌면 그것은 내가 이 붉은 달 아래에서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여러 사건들을 거쳐 가는 가운데 서서히 이 마스커레이드가 끝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거의 동일하면서도 또 다른 복장과 가면을 한 인파가 듬성듬성 사라졌다. 사람들이 사라질수록 나는 환희에 차올랐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의 비밀을 여기에 하나씩 잊고 두고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달의 색깔이 점점 정상적으로 변해 가고 아직도 밖에는 검은 태양이 뜨고 지길 고대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종교가, 그런 컬트가 나는 조금씩 무서웠다. 다음번에도 가면무도회가 열린다면 나는 베일 뒤에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정해진 시각마다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리라. 저쪽에서 줄리아 스톤과 이사야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라고. 이쪽으로 와서 여기에 끼라고. 가면무도회가 폐장하는 가운데 나는 그것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걸어갔다. 그랬더니 그들이 함께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2년 1월 3일 월요일
럭비티 같은 것
2022년 1월 1일 토요일
21년 1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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