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9일 수요일

경쟁사

뭐였더라? 어제 퇴근길에 분명 이거다 싶은 이름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나의 마음은 요즘 한스럽다. 모두가 서로를 욕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두를 욕하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욕하고 있다. 모두를 욕하는 모두를 욕하고 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만드는 조건들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보아도 모두 그렇지는 않다. 한편엔 울고 있는 사람들, 울고 있진 않더라도, 우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이 있다. 아니... 아니다. 울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화가 나 있다, 화를 참고 있다. 엉뚱한 화를 내고 있다. 아닌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상태는 좋지 않다. 또는, 좋지 않은 상태가 우리에게 더 넓게 더 깊이 도달하고 있다. 한마디는 무슨 한마디? 하여튼 큰일이 났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거의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피곤한 상태다. 하는 것도 없이? 하는 것도 없이. 당연히 없진 않은데, 없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이, 더 넓게 더 깊이.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잡은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집단 자살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자연사더라도 자살이다, 자살이더라도 살인이다. 이거더라도 저거고...

떠올랐던 것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다가, 어떤가? 이 상황을, 서로가, 추상적인 모두라는 것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경쟁을 멈추자는 말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힘을 잃는 말과 추상적인 말은 서로를 북돋는 경향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실현해낼 수 있다. 갑자기 이러한 원칙을 하나 세워본다. 경쟁 → 코미디 목적이 아니면 하지 말 것. 바꿔 말해, 피할 수 없는 경쟁적 상황 일반을 우리는 코미디의 일종으로 바꿔버릴 필요가 있다. 경쟁이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코미디여야만 한다. 경쟁이 코미디화될 수 없다면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주눅 든 사람은 자신의 경쟁심을 코미디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모욕받고... 울거나... 모욕을 시작한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서, 특히 삶에 대해서. 이러한 원환에 전과 다른 힘을 가하는 구체적인 책이 그래서 무엇일지를, ‘경쟁사’는 사운을 걸고 고민하는 출판사다.

‘경쟁사’가 추구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끊는 책이다. 우리는 오직 경쟁과 제거 사이의 연관을 정확히 끊어내기 위해 경쟁한다. 그것은 끊어진 것들의 총력전이고 전면전이다. 우리는 제거되어도 그 책은 웃는다. 둘째, 다소 뻔뻔스럽게도, 그것은 경쟁상황을 협동상황으로 재인지하고 재인지시키는 책이다. 우리는 위험한 곳이야말로 역전의 계기가 고이는 곳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는 첩보전이고 유격전이다. 그 책은 패배해도 우리는 웃는다. 셋째, 이런 종류의 이야기엔 항상 셋째가 있어야 하므로, 셋째로 그것은, ‘코미디가-아닌-진정한-완전-경쟁’의 영역을 어딘가에 만들려는 책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건 코미디일 뿐인. 그것은 죽음에 대한 훈련, 빈 객석이다. 그 책도 우리도 절대 웃지 않는다, 죽어도 웃지 않는다. 이기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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