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일 수요일

김밥 같은 것

일터에서 점심에 다같이 김밥을 먹었다. 모두 참치김밥을 주문했는데 실은 서로 다른 김밥을 먹었다. 한 사람은 햄을 빼고 또 한 사람은 단무지를 빼고 나는 오이를 뺐으니까. 주문받는 김밥천국 직원도 피곤했을 것이다. 김밥 한 줄도 그대로 먹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배달 온 김밥 포장 위에 ‘햄X’ ‘단무지X’ ‘오이X’ 같은 옵션을 빨간 매직으로 적어놓은 걸 보고 순간 섬찟했다.

대선 주자들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2재명이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을 선언하자 천만 탈모인들이 “2재명 뽑지 말고 심자”며 환호하는 한편 다른 쪽에선 “씨발 탈모가 죽을 병이냐” “2재명 너는 풍성충이잖냐” 하고 있다.

아무튼 김밥 포장을 연필깎이 돌리듯 세로로 뜯어서 한 칸 한 칸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가 나무젓가락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내가 쓰지 않겠다고 고개를 젓자 그는 “마음이 바뀌면” 쓰라고 했다.

사실 “마음이 바뀌면” 못할 게 없다. 젓가락 써서 김밥을 먹는 게 뭐 대수라고. 2재명이나 윤석10조차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젓가락도 갖다주고. 친절을 베풀어주고. 사실은 아주 고마운 일인데. 나는 쓰레기가 나오는 게 싫다.

김밥을 다 먹고 호일을 손바닥으로 몇 번 밀었더니 아주 작은 공 모양이 되었다. 손끝으로 꾹꾹 눌러서 더 단단하고 작은 공으로 만들어버렸다. 기름이 묻어 약간 반질거리는구나. 속으로 생각하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점심시간 끝.

그런데 “마음이 바뀌면”이라고 여지를 준 동료에게는 정말 고맙다. 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여유나 유연함을 갖고 싶었다. 며칠 뒤에도 선택의 여지 없이 김밥을 먹을 텐데,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내가 유연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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