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9일 수요일

유곽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유곽,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들과 책 읽기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낮에는 각종 심부름으로 바쁘기 때문에 새벽에만 시간이 된다. 미감을 흩뜨리지 않는 단정한 긴 머리, 헤살을 놓는 듯한 나비 모양 머리 장식이 보이고, 그 여인은 곰방대를 물고 있다. 방 안 상석에 앉아 관망하는 투로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한 대 피워보시겠소?” 그렇게 말하며 나전 서랍을 열어 다른 곰방대 하나를 꺼내 든다. 지금 여인이 피우는 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 “언제 닦은 것이오?” “닦지 않은 지는 한참 오래되었지. 그러나 원체 닦지 않는 것이 당연한 듯한 물건이라.” “그렇군요.”라고 말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권하는 것을 사양하다니.” 곰방대를 든 여인은 나와 어릴 때부터 친구인 것처럼 군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스스럼이 없어서야. 내가 그대에게 말한 도리를 모두 잊은 것이오?” 여인은 빙그레 웃는다. “도리랄 게 있겠나. 어차피 배를 곯긴 싫고, 난 그런 배곯는 일로부터 도망친 지 오래인 몸인데.” 나 또한 곰방대를 든 여인에게 이런저런 도리를 말해주긴 뭐했으나, 그러나 배운 것이 그런 쪽인지라 그것 아니면 딱히 입에 담을 말들이 없었다. 이런 사람을 남들은 학식이 높다고 칭송해주긴 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건 하나의 군식구로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으로였지 뭔가 대우를 받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침이면 난 유곽의 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저쪽에선 꽤나 좋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의 미덕이라오.” “그렇다고 그 미덕이 온전히 내 것인 양 굴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오.” “미덕은 주인 된 자가 그것을 소유하길 피하려 하기에 더 귀찮고 사람을 그럴듯한 반석에 올려놓는 것이라오.” 가끔 이 여인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의 연쇄를 내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런 걸 이해하는 일이 귀찮기도 했고 어찌 됐든 저 여인보다는 잘 배운 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 싫소.” “그 또한 하나의 서생이로군.” 뭐, 난 서생이 맞았다. 아무튼 간에 여인은 지금 좀 심심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곤 하는 것처럼 생각거리가 될 만한 물음을 던졌다. “태양이 뜨면 달이 한밤 중의 권세를 잃고 어둠 속으로 기울어지듯, 이 유곽의 방만한 경영은 온전히 그대 손에서, 마치 달이 태양 빛을 반사하듯이 순간적으로 바로 잡히는 것에 지나지 않소. 낮에는 건물들 사이사이에 그림자가 지게 마련인데 이 그림자들을 잡아 뜯거나 강제로 축출하게 되면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소. 그리고 그러지 않는 것이 당신 마음의 반석이오, 또한 경영자로서의 냉엄함이로다. 하지만 앞날을 장담하는 것은 그리 안전하고 생산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소. 하지만 그러한 장담으로 인해 꽃피는 그곳에서 당신의 세상살이의 태만함이 기인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오.” “길군.”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걱정과 근심거리를 늘리는 것은 소위 나처럼 배운 자들의 몫이오.” “그렇게 늘려진 것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 또한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지만 베개에서 지푸라기가 하나 튀어나와 있으면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소?” “지금 그대가 하는 말에선 일종의 도가 보이질 않고 내 마음 안의 근심이 될 만한 싹을 틔우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이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찌, 적성에 맞는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성에 맞지요. 일이 한가해지면 한번쯤 한적한 곳에서 그런 일을 해보는 것이 내 꿈이었소.” “하지만 한적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한적한 곳도 드무오. 난 곳이라고 하며 장소를 말한 거지만 그러나 내가 말한 장소에는 시간대도 포함된 것이라오. 그저 밤낮이 뒤바뀐 것이 부담이라면 부담이지만 그러나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오. 이 또한 내가 정하게 된 약속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소. 인간은 약속과 계획에 능하다면 그걸로 갖출 것은 갖춘 셈이지.” “누가 제일 똑똑하오?” “한령이가.” 내가 이어서 말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셋, 그 너머의 넷을 넘보는 수준이라오.” “그럼 한령이가 제일 기특한가?” “가장 기특한 것은 정인이오.” “어째서인가?” “셈을 느리게 하지만 그사이에 다른 생각을 넘보고 있소. 글을 쓰면 아주 잘 쓸 것이오. 아직 시켜보진 않았다만.” “그걸 어찌 아는가?” “내 경험상 그러하오.” “그렇다면 아무래도 맞겠군.” “그런데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오.” “누가 그러한가?” “바로 당신이 그렇소. 어차피 나한테서 뭘 배울 것도 아닌데 학사 취급은 왜 해주는 것이며 그리 한가하지 않은 시간대에 붙잡고 뭘 하는 것이오?”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지.” “그럴 것이라 짐작하곤 있었소. 뭐가 재밌는 것이오?” “인간들은 역할들을 갖기 마련이고 거기에 이율배반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는 것보단 그저 제 눈을 믿고, 상대방이 가진 역량의 순도에 순종하는 것, 그런 것이 나름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내가 세운 법칙 중에 하나라오.” “역할들이 지루한 것이오?” “그저 그렇게 말한다면 재미없는 것이 되지. 하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오. 맞소. 나는 역할들이 지루하오.” “그건 왜오? 이유가 짐작 안 가는 것은 아니나 당신의 말로 한번 들어보고 싶군.” “개중에 첫째는 인간이 자기 역할에 너무 깊게 몰입하는 것을 들 수 있겠군. 특히 그것은 여자를 상대하는 남자의 말투에서 잘 드러난다오. 그들은 어떤 부담감이나 겪기 싫은 상황 등을 매번 여자와의 만남에서 마주하는 듯하오. 그리고 그것을 상황의 명료함이나 권세의 우위로 미묘하게 찍어누르는 듯한 그림이 발생되지. 나라는 사람이 배운 것은 그저 그들이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면 그들이 잘 모면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것이오.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 같더군.” “두 번째 이유는?” “두 번째로 그들의 역할들이 지루한 이유는 역할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군다는 것이오. 이것은 첫 번째 이유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르오. 아마도 거기에도 어떤 이성이 작용하는 듯한데, 무슨 종류의 이성인지는 잘 알 수 없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여인을 상대하는 남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그림이라는 것이오. 하긴 지나온 일들이 그런 것뿐이 없었지만 말이오. 사람의 심성에 단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다 가릴 수 없고, 내가 날 때부터 그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아니라 배움으로 딛고 선 이들을 더 대우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나는 인간들의 선택을 신뢰한다오. 선택이란 것은 당신이 말하는 시간과 계획, 그리고 임기응변과 제각기 지닌 마음씨 등이 내가 역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굳어져 현상된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배움을 청하고 있는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지.” “뭣 때문이라는 것이오?” “한마디로 말해 그대는 좋은 선생이라는 것이오. 그리고 그런 선생 밑에는 제자들이 여럿 붙어 있는 게 보기 좋은 광경이지. 내 아래의 아이들이 그러한 그림을 그리겠다는데 어찌 기꺼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들은 나만큼이나 훌륭한 학생들이오.”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덕이로다.”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곰방대를 뻐끔,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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