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일 월요일

럭비티 같은 것

(스스로 남자라고 믿고 있는) 남자들은 이 옷을 바지춤에 넣어 입는다. 드러난 허리선이 제법 꼿꼿해 보인다. 물론 가능한 체형을 가진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진술이다. 럭비티 안에는 다른 셔츠를 겹쳐 입을 수 있다. 색을 맞춰 예쁜 스카프를 목에 감으면 포인트가 된다. 내가 이걸 입을 수 있는 몸이라면 혹은 내가 이걸 입어도 괜찮은 몸이라면 하고 가정하면서 상상 속의 내 몸 위에 때론 초록색의 때론 노란색 줄무늬의 럭비티를 입혀본다. 적당한 중량감의 옷감, 그래서 수직으로 탁 떨어지는 그런 옷. 대개 비슷해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디자인의 럭비티들을 구경하다가 이걸 입기 위해선 내 몸에 얼마나 많은 물리적 조치가 필요한지 꼽아보게 된다. 가슴과 엉덩이를 줄이는 대신 뭘 해야 할까. 내가 남자라면 더 구체적으로 잘 알 텐데? Take IVY 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매혹적인 사물(적어도 내겐)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걸 너무 갖고 싶어서 덩달아 내가 원하는 몸 내가 원하는 성별, 운동성 같은 걸 떠올려보게 되는 자연스러운 수순. 웃통 벗고 운동하는 남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는데 사실 남자들이 자유롭게 웃통을 벗을 수 있다는 게 더 부러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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