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수요일

여기에서 저기까지

영화관 로비의 의자에서 매표소 직원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아홉 걸음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왼손 검지에 검은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두껍고 유광이고, 못생겼습니다. 본인도 그 반지가 못생겼다는 걸 알까요? 그래서 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온통 까맣게 입은 옷, 까만 옷 중에서도 개성이 소거된 까만 옷이고, 개성이 없는 게 개성인 것 같고, 오로지 손에 낀 못생긴 반지만이 그가 드러내고 싶은 무언가인 것 같으니까요.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이 시끄럽습니다. 매표소에서 저 구석까지는 열 걸음 넘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것을 볼 때면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저기에서 끝날까 봐 걱정됩니다. 그렇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슬퍼집니다. 아이들, 로비 반대편으로 달리고 지는 사람은 바보로 정해지는 시합을 하기로 합니다. 그들이 달리는 동안, 지면과 닿는 이백 밀리미터 미만의 면적을 제외한 모든 게 변할 것입니다.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로 걸어갑니다. 그의 것은 이백사십 밀리미터고. 열 개 맞고.

통유리로 된 출입문 너머로 검은 트럭이 멈춰 선다. 온통 검은 배경. 바깥이 없는 것만 같아, 함께 많이 걸었지, 이런 말들 목 끝까지 차오른다. 디안과 함께 걸을 때 그와 완전히 함께인 순간을 세고는 했는데 우리의 발이 동시에 지면에 닿을 때 그 면적의 수로 말이다 일어난 김에 여기에서 저기까지 걸어보는데 열세 개 달리는 아이들을 쫓는 모양새가 되었고 디안이 더는 발을 떼지 않으니 셈하기 방식이 반 나누어졌다는 생각 트럭, 떠나고 익숙한 풍경. 아무 조치 취하지 못고 다시 매표소로 돌아와 앉는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의사가 근처 부위를 이용해 최대한 움직이려 하는 재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을 열심히 해야 부드럽게 쓸 수 있다고. 재활 운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내가 취한 조치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손가락에 새로 산 반지를 껴 조심하는 정도. 저기에 앉아 관객인 척하는 디안이 여기에 있는 나를 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내 손도 빤히, 반지까지. 디안은 모르겠지. 이 반지 못생겨서 좋아한다는 거. 같이 걸을 때 우리 완전히 함께인 순간 세던 것, 그러느라 놓친 네 말 꽤 된다는 것 이런 건 일찍이 말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시합 한 번 더 한다. 진 사람은 바보가 될 것이다. 달린다.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두 번째 동네에서

오빠네 집에는 매일 초밥이 배달 옵니다. 둘째 이모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주문해두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살지 않습니다. 오빠네 집 아래 거리에 삽니다. 낮엔 자고 밤에 깨어 어린아이들이 하는 반복적인 연극의 관객이 되어줍니다. 관객이 참여하는 형태의 연극인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적절한 관객을 만날 때까지 무덤에서 관을 파고 옆으로 뛰어가기를 반복합니다. 아이들이 관을 파내고 옆으로 뛰어가면 관객은 관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나는 관 뚜껑을 여는 일을 많이 해서 열고 나면 근처 울타리 위로 올라가서 남은 연극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약간의 모래바람 속에 몸을 납작이 숨겨서요. 관 뚜껑을 열고 울타리 위로 올라오니 개들이 울타리 밑으로 몰려듭니다. 이 개들은 아주 무섭습니다. 오빠네 개들과는 아주 다르죠. 오빠는 개들이 아닌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갖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개는 깨끗합니다. 두 마리 다 아주 하얗고 큽니다. 그들은 나를 간지럽힙니다. 그러다 보면 초밥이 배달 옵니다.

오늘은 오빠가 자신의 집에 들른 나에게 아주 매운 라면을 끓여 갖다주었습니다. 왜 이걸 준비했지? “곧 초밥이 올 텐데.” 내가 말했습니다. 오빠는 당황한 듯합니다. 오빠는 매일 배달되던 초밥이 나를 위한 것이었단 걸 모르나 봅니다. 자신의 이 집에는 그저 원래 초밥이 매일매일 쉬지도 않고 배달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리고 초밥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달된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줄로만 알았나 보네요.

오늘은 초밥 배달을 주인이 직접 하였습니다. 초밥집 주인아저씨가 내게 새해에는 너네 집 어르신과 밥이나 차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받나 봐요. 그래서 고맙나 봐요. ‘밥이나 차라도 같이’라고 준비해온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누군가 자꾸 생각하며 준비한 말은 들으면 저에게도 자꾸 생각나기 마련이에요.

오빠네 집에 자주도 오래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나의 거리에서 오늘도 잠자긴 글렀네, 라면서 손으로 은박지를 헤뒤집어서 나오는 다크초콜릿을... 그리고 침을 자주 옷 근처로 아슬아슬하게 뱉습니다. 커다란 카페로 가서 카페 주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모든 카페에 대한 책자를 구경합니다. 시작은 분명 그랬습니다. 그 카페의 냉동고를 뒤지면 냉녹차 음료를 준비하는 통이 있습니다. 탁한 녹색 물과 얼음들 속에 제가 언제나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이 들어있습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네요. 통 속에 손을 하도 넣었더니 먹기엔 조금 더러워졌습니다. 안돼. 이렇게 가다간 아이들의 연극까지 전부 망하겠어. 카페 주인은 절대 나타나지 않아. 카페 주인을 위해서 나는 제대로 된 손님이 되어줘야 해. 역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고 머리카락도 정리합니다. 너무 큰 거울은 내 앞에서 스스로 번쩍입니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된 메뉴를 먹습니다. 지금은 밤이지만 이것은 아침 식사라는 메뉴입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더 불편한 자세를 하고. 바깥은 온통 까맣고 무겁습니다. 번개가 지나가자 멀리서 아이들이 개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그제야 바깥의 빗소리가 의식됩니다. 크고 무거운 비입니다. 바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무표정한 저 아이들은 관을 파내서 옆으로 뛰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필요합니다. 개들은 나를 쫓고 싶은 것입니다. 울타리 위로 빠르게 올라가서 절대 물 수 없는 나를. 나는 곧장 출구로 갑니다. 그리고 카페를 돌아봅니다. 이곳은 나타나지 않는 주인의 공간. 바깥이 훤히 보이는 곳.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곳. 커다란. 맥빠진 분홍색과 금색 그리고 맥빠진 털 카펫과 철과 얼음과 크림 그리고 메뉴판 그리고 사장이 쓴 세상의 모든 카페에 대한 책자가 있는 곳. 아무도 없는 곳.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까.

원래 살던 동네는 산 너머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고개를 들면 산 위쪽에 아주 높은 계단으로 이어진 하얀색의 최신식 집이 있습니다. 오빠의 집입니다. 오빠의 집은 놀랄 만치 밝습니다. 이 동네는 달도 해도 뜨지 않습니다. 희뿌옇다가 다시 까매질 뿐입니다. 오빠의 집으로 가는 계단은 아주 가파르지만 전등이 아주 많이 달려있고 하얘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동고 소리. 비바람 소리. 바깥의 눈알들은 아이와 개 둘 중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습니다. 저기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황무지에서 달려와 무덤을 파내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달려가고,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중에, 관 뚜껑을 열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곤 울타리로 뛰어 올라가고, 개들이 나를 쫓아와 아래에서 짖을 테지요. 아이들은 어둠 속에 납작 엎드려 조용히 나를 바라봐요. 그러면 오빠네 집 하얀 고양이와 하얀 개가 그리울 거예요. 그들을 찾아가면 나를 간지럽힙니다. 하지만 나는 바깥에서 오늘도 자긴 글렀네, 하며 은박지를 뒤집게 되지요.

카페에서 나왔습니다. 카페에 바짝 붙어서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밤에도 하늘은 잘 보입니다. 하늘에서 비나 눈이 내려도 하늘은 잘 보입니다. 빗줄기가 어디서부터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지를 재어봅니다. 눈, 코, 입에 빗물이 들어옵니다. 이마를 타고 곧 머리카락을 전부 적시는 큰 비입니다. 양쪽으로 늘어뜨린 손이 무겁고 저립니다. 움직일 수 있을까 꽉 쥐어봅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여름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게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는 어둑어둑하고 시끄러운 시간대의 여름을 상상합니다. 분명 나는 이런 황무지가 아닌 우림에 살았습니다. 해가 질 때 식물들이 전부 검어지고 그 속의 벌레 소리가 아주 시끄럽게 울립니다. 검고 거대한 식물들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은 해가 져서 낮의 열기를 한바탕 잃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맥빠지게 어두워지다니요. 그렇게 압도당하다니.

모든 게 어두워질수록 오른쪽 산 위편의 오빠네 집은 반짝거리는 빛을 내었습니다. 관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비록 어둠이 우리보다 강하더라도... 다시는 카페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은박지 안의 다크초콜릿이 동나더라도. 내가 뱉은 침이 내 옷자락에 떨어지더라도. 개들이 무섭게 쫓더라도. 아이들이 어둠 속에 납작이 엎드려서 뭔갈 기대하기 때문에. 카페 주인이 카페를 마련했기에. 둘째 이모가 내가 이곳에서 잘 지내기를 바랐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자기는 글렀고, 오빠네 집 하얀 고양이와 하얀 개가 그리울 거예요. 아이들이 마련한 관 뚜껑을 열어야 해요. 눈을 뜨고 하늘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봅니다. 비 또한 더는 내리지 않습니다. 기이함이라는 그릇 안에 꽉 차 있는 감정은 강하고 약해요. 즐겁고 슬퍼요. 사랑스럽고 미워요. 현명하고 어리석어요.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차고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에 관한 소고

게르테나 씨가 그려내려고 했던 것은 한 폭의 풍경이었다. 아니 게르테나 씨가 그려내려고 했던 것은 차라리 한 폭의 장면scene이었을 것이다. 그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였다. 56×66 cm 크기의 「차고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가 걸려있는 벽면으로 향하는 기다란 복도 벽에 나열된, 동일한 제목의 수많은 크로키와 에스키스 작업은 게르테나 씨가 연출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한 리허설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곳은 오래된 차고를 개조한 카페였다. 셔터가 완전히 올라가 있어서, 차고를 가로지르고 있는 도로의 건너편에서도 카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형 테이블 네 개. 각 테이블당 의자가 두 개씩 놓여있고 카운터는 비어있었다. 카운터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구석 쪽 테이블 자리에 단 한 명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셔츠 차림의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흰 찻잔에 담긴 무언가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의 눈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찻잔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이따금 바깥을 향해 의미 없어 보이는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긴 다음 돌아와 보면, 다시금 찻잔에 골몰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곧 카운터를 비우고 있던 점원이 들어와서 그에게 폐점 시간이 찾아왔음을 알릴 것이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열려있는 셔터 문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가 서있는 이곳―도로를 끼고 차고를 마주 보고 있는 바로 이곳―으로 건너올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고의 네모난 프레임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발걸음을 꺾어 왼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나는 본다.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본다.

그러고 나면 어디선가 게르테나 씨가 나타난다. 그에게 돈을 받는다.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돈을 받아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가벼운 목례로 게르테나 씨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에서 나온 남자가 걸어갔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귀가한다. 돌아와서는 우선 뜨거운 물로 씻고, 카페인이 없는 차를 하나 끓여서 파란 머그컵에 따라 마시며 휴대폰을 들고 밀린 메시지에 답장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30일간 이런 식으로 돈을 벌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차고 카페를 가로지르는 도로 건너편에 서서. 1시간 동안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돈을 벌었다. 카운터의 점원은 늘 똑같은 시간에 자리를 비웠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는 늘 입고 있는 검은 셔츠의 소매 커프스를 딱 한 단만 걷어 올린 채, 늘 똑같이 생긴 흰 찻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게르테나 씨는 내게 처음 만났던 당시의 옷차림을 30일 동안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때 나는 중지손가락을 다쳐 드레싱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완전히 나은 상태로 드레싱을 제거하고 도착했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게르테나 씨가 몹시 곤란해 하며 근처 약국에서 붕대를 사와 나의 중지손가락에 감아주었다.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은 나의 상처 부위를 어찌나 조심스레 다루던지, 과할 정도로 섬세했던 게르테나 씨의 손길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이어지는 기억들은 불쑥 나타난 두툼한 손. 갈색 가죽지갑에서 꺼낸 현금을 대충 세어 건네던 아주 일관되고 두툼한 손이었는데, 바로 그 손에서 나는 딱 한 번뿐이었던 섬세함과 신중한 얼굴을 자꾸만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약속한 30일을 다 채우고 나서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게르테나 씨에게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다. 기온은 낮아졌고 늘 입고 나섰던 감색 니트와 헤링본 무늬 치마는 더 이상 외투 없이 입을 수 없었다.

어쩐지 차고 카페 앞을 지나가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지나칠 일이 있어도 일부러 그곳을 빙 돌아서 다른 거리를 이용하곤 했다. 차고 카페와 차고 카페 앞의 도로와 그 건너편의 길. 하루 한 시간동안 나의 시야 범위였던 그 공간은 하나의 구역이 되었다. 전혀 무관한 다른 누군가의 사유지 혹은 공유지임이 분명한 그곳을, 속으로는 ‘게르테나 존zone’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리곤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30일 동안 하나의 세계에 초대받았었다고. 재미는 있지만 남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은, 이상한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그곳에 다시 진입한다는 것은 게르테나 씨의 세계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방문이라기보다는 침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침입은 좀…… 꺼림칙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여기 차고 카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지금이 몹시 추운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고 카페의 셔터가 완전히 닫혀있다는 뜻이고 더 이상 차고 카페 바깥에서 차고 카페의 안을, 차고 카페의 안에서 차고 카페 바깥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셔터의 닫힘과 시야의 차단으로 인해, 카페-도로-도로 건너편으로 이어져야 할 ‘게르테나 존’이 쪼개지고 붕괴되며, 게르테나 씨의 세계가 일시개방된 것이다. 지진 난 지역의 남의 집이 열린 공간이듯이. 그것은 기회였고, 놓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상가의 옆문을 통해 카페 내부로 들어왔다. 늘 고정된 위치에서 바라보던 장소였기 때문일까? 익숙해야 할 공간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플로어스탠드의 노란 불빛에 벽면의 테이프 자국이 희미하게 빛났다. 갑작스레 높아진 해상도에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누구를 향해?). 카운터에는 머리가 짧은 점원이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카운터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구석 자리의 테이블엔, 남자가 앉아있었다.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카푸치노를 한 잔 시키고, 남자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직 저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했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저를…, 모르시겠나요?” 그는 또다시 당황했고, 나는 상심했다. 아주 이상한 마음이지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시개방 되었다고 생각하여 입장한 세계가 애초에 개방된 적도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라면? 게르테나 씨의 세계에서 나는 방문객이거나 침입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가 30일 동안 지켜보았던 이 남자의 세계에서 나는 기껏해야 불청객일 뿐이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한순간 지배했고, 비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상심하고 있는가? 이런 마음들을 겨우 숨겨가며,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말을 걸었다.

“게르테나 씨를 알고 계신가요?”
“아, 혹시…,”

그가 검지를 들었다. 그의 검지가 하늘을 가리키는 듯하더니, 잠시 방향을 잃고는, 제 목적을 찾았다는 듯 안경을 올렸다. 그는 말했다.

“저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게르테나 씨가 일러두셨어요. 부디 그 사람을 무시해달라고,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계획이 끝장날 것이니 30일 동안만 참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군요.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찻잔 속에 든 커피나 바라보는 일이었어요. 고개가 아파서 머리를 들면 누군가의 인영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애써 초점을 맞추지 않았어요. 차 지나가는 소리에 잠깐, 사람들 걸어가는 소리에 잠깐. 타이밍을 맞춰서 고개를 들어보곤 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시선은 느껴졌어요. 귀신이나 유령이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를 꿰뚫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무섭고, 기분이 이상해서 정확히 15일쯤 되었을 때 게르테나 씨에게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아야겠다고 연락했어요. 게르테나 씨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게 게르테나 씨와의 마지막 연락이었어요. 1시간만 참으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데, 그걸 저버릴 이유도 없었어요. 3시간 같은 1시간이었지만 명상한다고 생각하고 버텼어요. 저 사람은 귀신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다…… 그래 저 사람은 천사다!” 그가 검지를 들었다.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러 온 존재다.”
그의 검지가 하늘을 가리키는 듯하더니,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낫더군요.”
잠시 방향을 잃고는,

“그날 카페 나와서 걸어가는 길에는……”
제 목적을 찾았다는 듯 안경을 올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충만함마저 느꼈어요.”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라는 문장을 고쳐 쓴 것이다.)

「차고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는 밤거리, 그리고 셔터가 굳게 닫힌 차고의 외관을 그린 그림이다.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바라보던 그 방향과 각도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나중에 속을 수도 있는 일

휴 모텔이 있는 골목을 걷다가 길고양이와 눈 마주친다. 이런 우연을 붙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나의 포즈가 딱딱하게 굳을 이유도 없었을 것.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행동의 목적이 감정뿐이면 삶이 마음에 든다. 자기 유연함에 너무 관대한 거 아니야? 눈으로 묻는다.

우, 우. 음음!

도시비둘기의 울음소리를 묘사하자면 이렇다.

없어야 할 것이 들린다면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만 당신의 삶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신의 일기에 적힌 사소한 내용들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무늬가 들린다.

정녕 내가 그랬던가?
돌처럼 몸을 뭉치고 있는 중인데도?

길바닥에 희고 작은 털 뭉치가 춤추고 있다.
휴대폰을 들어 그것을 따라가며 찍는 동안 바람에 대한 생각은 멈추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저녁 약을 먹고 어둠 기다리기. 처음부터 감추려는 목적으로만 울어왔던 것인데 억울하다. 이 억울함으로도 눈물이 났으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않고. 여행 와서 감상에 젖고 싶은 마음을 내가 도와주진 않고(능력 부족으로).

처음부터 감추려는 목적으로만 울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미워하는 마음 없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주인공 자신만이 가진 단 하나의 불꽃같은 진실이 담긴 영화다.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성폭행을 당했지만 신고하지 않고 더는 떠들지 않는 마음의 이유 같은 것일 거다. 가해자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이 겪은 일은 성‘폭행’임을 정확히 인지하는 사람, 가해자의 비자와 아내와 세 명의 딸을 신경 쓰는 사람, 자신의 부주의를 인정하는 사람, 자신의 부주의를 인정하는 일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전을 침해하는 일임을 알고 입을 닫는 사람, 타인을 이해하여 위하려는 사람, 터무니없을 정도로 천진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주인공일 것이다. 이런 거, 영화적으로 진실이 될 수 있는가. 해당 진실이 영화가 되려면 그 영화의 감독은 노력해야 한다. 그는 성폭행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을 것이다.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느릿하게 만류하는 힘없는 손짓,
[Close-up].

우리의 주인공은 그 손짓이 거부인지 뭔지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제대로 거부하지 못하는 만취 상태. 만취의 무거움을 받아내기 위한,
[Low angle].

좁은 화장실 칸 안,
[Bird's-eye view].

여자의 뒤에서는 인도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바깥에서 다른 남자가 문을 두드리고, 칸 안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문,
[Eye level].

다른 남자의 노크는 분노의 노크인데, 그것은 폭력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먹잇감을 누군가 뺏어갔다는 분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폭행 장면 전에, 그 남자가 주인공의 몸을 더듬는 장면 또한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나와. 당장 나와. 뭐 하는 거야?” 영어로 말한다. 그 남자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바닥에 있는 것을 걷어찬다. 바가지 같은 것일까. 나오라는 게 영어로 컴 아웃인가. 나는 나오라는 뜻의 영어를 들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한다. 나? 나는 내 이야기를 감상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다. 그 눈물은 나만이 가진 단 하나의 불꽃같은 진실이기 때문에 나는 눈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용하여 나를 지우고 싶고, 내가 아니게 되고 싶고, 수많은 나와 작별하고 싶다.

수많은 나 중 한 명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모르는 번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는다.

Do you remember me?
나 아니 영화의 주인공은 말한다. 
너 그 술집 근처 인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 맞지?
Yes.
너한테 아내가 있고 딸이 셋 있다고 들었어.
So what?
너는 어제 나를 성폭행했어.
What do you want?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읽고 답 없음)
왜냐하면 내가 수치스럽기 때문이야.
Ok.

그리고 주인공은 친구에게 전화한다. “바텐더 언니들에게 신고하지 않는다고 전해줘.” 친구는 잠시 후 그 술집의 스태프 단톡방을 캡처해서 보낸다. 신고 안 하는 건 방조한다는 거잖아, 추가적인 피해자가 생기면 어쩌려고? ㄱㄴㄲ.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닫힌 눈 위의 떨림. 얼마 후 주인공은 아무것도 참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은 어느 무엇이라도 견디기 어렵고 번개처럼 도망친다. 주인공은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게 된다. 주인공은 이후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빚이 는다. 느낀다. 느낀다. 느끼고, 주인공은 그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느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공은 아직 그 술집에서의 만취한 자신과 작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도 작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리고 또 어쩌면 자신의 진실이 진실되지 않을 수 있기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2026년 4월 2일 목요일

BEST DRIVER

꿈을 꿨는데 죽은 친구가 사실은 살아 있었다는 걸 밝히고 다시 함께하는 내용이었다. 걔랑 걔가 좋아하는 카페(마닐마닐)로 가서 각자 할 일을 하는데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따로 앉았고 내 앞에 있는 걔의 등을 보면서 아 이걸 보고 싶었어 조금 더 나이 든 네 등이라고 생각할 때쯤 깨서 아쉬웠음


BEST DRIVER

그게 계속 보고 싶어 좀 더 나이 든 네 등. 하지만 너는 죽었다고 한다. 나는 네가 살아 있는 시간이었던 차를 몰고 부산에서 전주로 간다. 거대한 가로수, 버드나무 옆에 차를 세운다. 포도 한 바구니를 사서 운전석에 누워 먹는다. 손이 보라색으로 물든다. 번개의 속도로 잠든다. 눈뜨니 쏟은 포도알들이 몸에 짓눌려 있다. 얼룩덜룩한 보라색 몸으로 차 문을 연다. 할리우드 촬영장의 컨테이너 숙소 문고리를 잡은 채 목에 스태프 네임 카드가 걸려 있는 걸 본다. 장비를 싣는 차 중 가장 큰 차의 운전수라고 영어로 적혀 있다. 문 닫고 차 몰아 촬영장 밖으로 나간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서 일출을 보고 뉴욕으로 가서 햄버거를 먹는다. 화려한 밤거리를 지나 고요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갑작스레 비가 많이 내려 운전하기 어렵다.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빛이 보여 가까이 간다. 깜빡이며 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아래에 시네마라고 적혀 있다. 차를 세워두고 지하의 극장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 근처에 서서 스크린이 있는 자리라고 느끼는 곳을 응시하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영사가 시작되고 극장 안이 어느 정도 밝아진다. 내 눈앞 중앙이랄 곳은 관객석 중앙이었다. 관객석 중앙에는 네가 앉아 있다. 옆자리로 가서 앉아 함께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본다. 너는 눈물 흘려가며 웃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에 “BEST DRIVER JOO YOON JOO”라는 글자가 뜬다. 엔딩 크레디트까지 끝나고 극장의 조명이 켜진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극장 밖으로 나온다. 세상에 내 차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차를 몰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다.

M의 음악 감상문

조금 전 <시네마 천국>을 예매하고 나갔던 관객이 다시 돌아와, M에게 아이스 카페라테를 건네며 친절한 응대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M은 일할 때 액체류를 받으면 위험이 있어 폐기한다. 하지만 M은 생각한다. 이 관객은 <시네마 천국>을 좋아해서 몇 주 전에 들러 언제 상영하냐고 물어도 보고, 오늘은 친구랑 같이 보러도 오고, 며칠 후 부모님 모시고 또 올 거라는 사람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M은 그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신다. (‘괜찮을 거니까.’)

응대를 잘하는 M. 영화관 매표소 직원으로서 친절한 M이다. M은 자신이 친절한 이유를 생각하기 두려워한다. 두려워진 M. 아이스 카페라테의 영향으로 여자 화장실로 향한다.

쓰레기통. 생리혈로 추정되는 피가 묻은 휴지와 소변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젖은 휴지와 대변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접힌 휴지를 본다. M은 변기를 사용하고 나면 휴지를 많이 뽑아 두텁게 만든 다음 자신의 살이 닿았던 자리를 닦고, 휴지통 근처 떨어진 휴지들을 휴지로 집어 쓰레기통에 눌러 놓는다. 휴지들. M. 이곳의 직원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닌, 어디서나. 여자 화장실이라면.

M은 여자 화장실에서, 더러운 휴지들을, 보고, 만지며, 결심하곤 한다. 오늘의 결심. ‘앞으로 나를 영화감독이었다느니, 영화감독이라느니 하는 말을 이야기를 특히 과거에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굳이는 먼저는 말하지 않아야겠어.’ M은 이제 그게 너무 옛일이라고 생각하며, 터무니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옛날 일이 현재 M의 내면 깊은 곳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없는 일로 칠 수 있다면, 없는 일로 칠 의향이 들었기 때문이다. M은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저는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오르막 맨 위에 있는 반지하 집으로 가는 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전에 애인이었던 친구와 이층 침대로 나눠 쓰는 작은방에는 제가 만든 식물 선반 위로 식물이 가득하지요 저는 그 선반에 직접 쥐색 페인트칠을 했고 식물을 들인 이후로 집 안을 날아다니게 된 벌레들 때문에 옆의 큰방에 사는 전 애인의 동생이 나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요 오르막 너무 힘듭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가위로 다 자를 것이다.’ M은 왼손에 식물과 흙을 담을 쓰레기봉투를 쥐고 있다. 그리고 M, 음악을 듣고 있다. SWEET TRIP의 SEPT다. M은 달리는 말의 닳고 있는 발굽을 아주 가까이에서 본다.

이제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의 2층 계단에 붙은 집으로 가는 평지를 걸어 귀가하고 있어요 전세사기를 당하여 계약 기간 종료 이후인데도 살고 있지요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때문에 썩고 앓는 부분이 여기... 저기... 그리고 일, 그만둘래, 나는, 끝을 냈어, 나는, 방금, 끝을, 냈어... 저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또 영화를 만들 거랍니다. 화곡동의 집으로 가며 퇴사를 결심한 순간, M, 음악을 듣고 있다. SWEET TRIP의 SEPT다. M은 천 미터 앞의 나무를 끌어당기고 싶다. M은 옆의 아파트를 한 줌에 우그러뜨리고 싶다. ‘용을 만나고 싶다. 용을 타고 밤하늘에서 훨훨 날고 싶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의 높은 계단, 달, 아, 앞으로는 다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잘 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며 뭐라도 잘 되지가 도저히 않는다고 해도 괜찮으니 그러니까는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서울시 중구 신당동 이제 다 괜찮다고 쓰겠다.

M은 지난 몇 년간 영화 극장에 앉아 괜찮다는 대사를 듣는 족족 울어댔다. 제일 필요한 말이었다. 괜찮다는 말이 말이다. 봉천동에서도 화곡동에서도 신당동에서도. 그리고 This time maybe it's true. 바로 그때 용이 M의 가슴을 통과한다. M은 눈을 찌푸리게 했던 모든 빛을 응시한다. ‘신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신에게는 손이 있겠다. 택시 기사, 고서점 사장, 영화 속 친구들, 그들이. 그들이 내게 말했어. M, 괜찮다고. 신의 손이 미세하게라도 움직인다면 그런 소리가 날 것이다. 신의 손이 아주, 아주 미세하게, 나에게, 나에게, 닿는다.’

SWEET TRIP의 SEPT에는 가사가 “This time maybe it's true”밖에 없다.



붉은 천장

A24와 NEON의 공동 제작지원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후, 할리우드에서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내 나이 27세에...

그렇진 않았고 목욕하는 동안 금융사에서 독촉 메시지가 온다. 자정쯤 목욕을 하고 있다. 집 근처 모텔 중 욕조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은 곳이고 고장 난 버튼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욕실이 붉다. ‘완전히 썬-댄스네.’ 눈을 감는다. ‘유명한 호텔에 가고 싶다. 욕조가 더러울까 봐 마음 졸이며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호텔. 거기서 파는 와인도 사 마시고 그러는 거지.’ 눈을 뜬다. ‘그거면 될 것 같아. 정말로 그거면 될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서 일기장에다가 정말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졌다고 쓴다.

2026년 4월 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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