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사형수

갈림길 여럿을 지나고 나자 제법 큼지막한 공간이 나왔다. 

“여기가 출구와 가장 가까운 쉼터지.” 바닥에 조잡한 짐승 가죽 몇 장이 대충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흙밥처럼 꾀죄죄한 남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광산장이 그의 두 뺨을 연거푸 때려 갈기지 않았다면 스피커는 그를 시체라 여겼을 것이다. 남자는 눈을 껌벅거리다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모아 눈두덩을 문질렀다. 그는 천천히 키 작은 몸을 일으키고서는 스피커를 올려다보고 한마디 했다. “형을 살러 온 사람 같지 않구려.”

광산장은 그를 사형수라고 불렀다. 사형수는 맞은 뺨을 긁적이더니 입을 죽 찢어 웃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반쯤 뜨고 감은 그의 눈이 스피커를 보았다. 그의 목 둘레를 타고 둥글게 이어진 검푸른 피멍이 보였다. 그것은 꼭 목 매달기 위한 밧줄 자국 같았다. “이 친구는 자원해서 여기 왔어. 살인죄로 여기 온 너와는 다르지.” 사형수가 입을 길게 벌렸다. “자원했다고요?” 그리고는 잠깐 웃었다. “가끔 오지요. 도둑놈들 말입니다. 포대에서 감자를 찾듯 얼어 죽은 몸을 뒤적이고는 하죠. 하지만 뭐든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못 봤어요. 여긴 넓고 시체도 많으니까.”

광산장은 사형수가 오래된 사람이라고 했다. 광부 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다고. 그에게는 몸을 덥히는 주술이 소용없다고 했다. 광산장은 규칙 비슷한 것을 몇 가지 일러주고는 증발하듯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스피커는 조금 당황해서 사형수 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사형수는 아래로 가는 얼음계단을 걷고 있었다. 여전히 찢어진 듯 이죽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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