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 수요일

가정주부(농부의 아내)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아내 할게. 네가 쌀을 만들면 내가 밥을 지을게. 같이 밥 먹고 잠자고 아이도 낳자. 아이는 누가 할래?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아이 할게. 내가 울고 내가 달랠게. 밤 늦게까지 술 마시면 안 돼. 술 마시고 때리면 안 돼. 때리고 안아주면 안 돼. 술 냄새 나잖아. 여보는 가서 돈이나 벌어 와. 가서 돈이나 벌어 오세요, 아빠. 나보고도 벌어 오라고? 난 애도 보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품앗이도 하는데 돈까지 벌어 오라고? 식당에 나가? 몸이라도 팔아? 애는 누가 봐? 시어머니가 필요하겠어. 시어머니는 누가 할래?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시어머니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랠게. 너는 가서 큰일을 해라 애비야. 큰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 애비야. 애비야, 큰일 안 하고 뭐하냐 애비야! 저기 호박이 넝쿨째 굴러간다 애비야, 저기 네가 사랑하는 이웃집 여시가 네 꼬추 물고 도망간다 애비야! 이러다 암탉이 울겠어. 집안이 무너지겠어. 강아지를 한 마리 들여야겠어. 이름은 워리로 해야겠어.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워리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래고 내가 재롱떨게. 워리 워리 돈 워리 워리는 월월이. 목줄에 매여 슬픈 멍멍이. 개뼈다귀 하나 물고 신난 복덩이. 복날에 맞다가 천국 간 막둥이. 워리가 남기고 간 똥 덩어리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네.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벌레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래고 내가 재롱떨다가 내가 꿈틀꿈틀꿈틀이…… 그런데 너는 다른 거 하기 싫어? 너는 다시 태어나도 농부 할 거야? 우와, 너는 좋겠다. 꿈이 분명해서. 나는 다시 태어나면 뭐 할까? 네 아내는 안 할래. 벌써 한 번 했잖아. ㅎㅎㅎ*





* “농부는 아내를 데리고 왔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왔네/ 아이는 유모를 데리고 왔네/ 유모는 소를 데리고 왔네/ 소는 강아지를 데리고 왔네/ 강아지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네/ 고양이는 쥐를 데리고 왔네/ 쥐는 치즈를 데리고 왔네/ 치즈는 혼자 서 있네/ 하이호 더 데리오!/ 치즈는 혼자 서 있네”, 놀이 동요 ‘작은 골짜기의 농부’의 가사.
* “남자애들은 농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자애들은 농부의 아내, 자식, 반려동물, 심지어 해충이 되고 싶어 했다.”(웬즈데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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