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1일 수요일

상상 퇴사 같은 것

모래사장에선 숨을 곳이 없었다. 다만 갖고 싶은 밤이 머리 위에 떠 있었지.
정말로 갖고 싶은 만큼 쥐었다. 쥘 수 있을 만큼 쥐었을 뿐이지만.
그걸 한쪽 주머니 속에 넣어보려다 주머니가 터져버렸다. 아래로 검은 모래가 쏟아졌다. 있던 모래 위로 쌓인 아주 약간의 다른 모래 색.

나는 양손을 비비며 모래를 섞었다. “섞은 모래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래군.”
혼잣말하며 모래 속으로 한 손을 넣어보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열화된 체제였다. 이런 체제 정비의 배경은 무엇일까……
신분을 만들고 한동안 거기에 체류했다. 숙소 주인은 조식을 제공해주었는데 그때마다 내게 한마디씩 했다. “머물다보면 변해. 변하면 여기 있게 되고.”
그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진 못했는데
가끔은 묻지 않아도 사적인 얘길 잘하는 사람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이 기억에 남지.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미 뜨거운 변화로 물든 셈이다.
휴일에 울리는 사무실 전화기처럼, 몰래 침투한 사상범처럼. 목격한 장면들을 조용히 지나칠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이대로 내 생활이 여름 감기에 걸려도 괜찮은 체질인지 궁금하다. 맞다면 이 사건은 알맞은 날에 도착한 나의 우울일 것이다.
모래사장에서 출발한 나는 벌써 기침 중. 입을 가렸던 손바닥에서 모래알갱이가 바삭거린다. 계기가 없었나 생각해보면 그것이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