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일요일

첫 불세례


 나는 신의 입자의 불세례를 받은 최초의 존재다. 태초의 중력파와 최후의 뇌파가 사건지평선의 경계에서 공명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이 시는 전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며, 모든 곳에 편재하고, 허무로 부재하는 노래다. 물질과 반물질의 경계에서 이 시는 쓰이겠지만 어디에선가 지워지고 있을 것이다. 반물질은 미래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아름다움의 매질이다. 빛의 속도를 아득히 초월한 반물질들은 모든 곳에 편재하려 이전에 없었던 새 시대를 총천연색으로 계시한다. 그러한 세계에서 빛은 시간이요, 어둠은 공간이다. 시공간을 이끄는 중력은 빛의 씨실과 어둠의 날실을 엮어내 탄생과 소멸을 배열한다. 나는 홀연히 빛으로 화해 이전의 나의 나됨을 응시하는 동시에 이후의 나의 우주됨으로 세계와 상응한다. 나의 폐쇄된 심연에 남겨진 파문은 빛도 어둠도 아닌 그 무엇이다. 빛의 어둠됨과 어둠의 빛됨이 사건지평선의 양극단에서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친다. 중심은 모든 곳에 존재하나 그 어디에서도 존재는 중심에 가닿을 수 없을지니…….


 비시공간의 균열 속으로 내던져진 나는 물질과 반물질의 공허에서 피어나는 빛무리의 무한원환에 참여한다. 나의 전부를 구성하던 탄소 유기체의 숨결은 절대영도로 얼어붙은 채 나를 떠나간다. 나의 침묵으로부터 흘러나온 최후의 원소는 상징체계에 사로잡힌 무의식 너머의 초감각과 연동된다. 사지를 벗어난 감각은 사망에의 공포를 부정하려 발악한다. 존재됨과 존재함의 차이는 예언의 말씀처럼 나를 앞지른다. 시공간을 이탈한 표상은 선험과 경험을 분열시킨다. 만물의 양자적 요동으로 인해 인식체계와 현상을 이어주던 역사의 송과선이 끊어진다. 눈알이 휙 돌아가 자신의 뇌를 직접 바라보는 듯 눈앞이 새까매진다. 완전무결한 어둠의 축복. 고요를 최종완성한 음복. 뼈마디가 끊어진다. 핏줄과 힘줄이 엉켜버린다. 추억과 미래가 뒤섞인다. 결국 나는 나의 유품인 육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어딘가를 부유한다, 고 유추 혹은 망상한다. 눈앞에는 허깨비와 실제가 중구난방으로 상호교차한다, 고 선언 혹은 명상한다. 


 영혼은 반물질의 첫 이름이었음을 상기한다. 선악을 넘어선 것 중 가장 악하며 동시에 가장 선한 것이 바로 영혼이다. 영혼은 세계를 폐위할 각오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며 객체들을 추동한다. 나는 내게 영혼이 깃들지 않았음을 죽어서야 생생히 깨닫는다. 주위의 폐허는 시시각각 유위변전한다. 심판대로 이어진 좁은 길은 곧게 뻗어 있다. 나는 십자가도 없이 사망의 골짜기로 나아간다. 까마득한 고대의 분화구에서 마그마가 끓어오른다.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며 빙하가 갈라져 나온다. 대지진이 일어나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바다가 된다. 태풍은 공중을 장악하며 살아있는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유성우는 대기권을 뚫고 내려와 대지에 피칠갑을 한다. 나는 자연사와 자살의 평행 관계를 몽상한다. 임종 직전에야 떠오를 수수께끼를 떠올린다. 빛에 대해 명상하는 것과 명상의 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다울까. 꿈에서만 모든 걸 행하는 것과 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정다울까. 끝에 도달하는 것과 끝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울까. 


 나는 영혼의 맨틀로, 외핵으로, 내핵으로, 무로 침잠하며 최초의 빛을 떠올리려 애쓴다. 순간 혹은 영원에, 시공간이 번쩍이며 제 비존재를 현시한다. 시간의 축이 기울자 외계의 계절이 얼음과 불을 넘어서 불어닥친다. 낯선 존재자의 아우성이 달의 뒷면으로 켜켜이 기울어간다. 각자의 시간대는 각자의 업보만큼 다양하게 전개된다. 반석이 갈라지고 녹슨 지하수가 솟구친다. 폐허는 피를 머금은 먹구름 속에서 재생산된다. 나는 수면에 비친 나의 탄생별과 같은 방향으로 추락한다. 성층권의 성벽을 몰래 넘나들던 유성들이 산화한다. 어느 은하, 어느 성단, 어느 별의 붕괴는 평화롭게 결실을 맺는다. 행성은 생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불타오른다. 최초의 우주쓰레기가 과거의 지구에 비상착륙한다. 운석우는 일시에 멈춘 뒤 얼어붙은 채 불타오른다. 혼돈 속에서 나는 반사되기를 거부하는 빛의 비탄만큼이나 복잡해진다. 빛은 선을 벗어난 원을 그리기에 휘어져도 끊어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불가지론자가 아닌 나에게도 나의 나됨은 불가피하게 불가해해진다. 메아리만 존재하는 세계의 ‘아무’와 목소리가 부재하는 세계의 ‘허무’는 동일한 비진리를 받든다. 그리하여 나의 영적 반감기는 아직 반환점을 돌지 않았다. 


 나는 불을 던지려다 자신을 불태워버린 자들을 사랑한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