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1일 일요일

신이 녹은 바다

이곳은 빛이 잘 들지 않는 바다다. 대부분의 빛은 바다의 겉면에 녹고 이제 나머지 바다의 부분이 훨씬 더 깊다. 물고기들은 물에 녹은 신성을 섭식하며 산다. 신성이라곤 해도 하얀 빛이 나거나 평소보다 반짝이지는 않는다. 신성은 조금 위대한 것이고 영양분을 대체한다. 이곳은 신이 녹은 바다라고 불린다. 잠수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인 부레는 몸을 물의 무게보다 무겁게 해서 계속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게 해준다. 가라앉다 보면 신성이 짙어지는 게 느껴지고 거기서 더 가라앉으면 다시 신성이 미약해진다. 당연히 신성이 제일 짙은 곳에 물고기들이 많이 머무른다. 가장 깊은 곳에서도 멀쩡하고 몸길이가 20cm 이상인 이들을 탐색자라고 부른다. 왕 큰 줄치는 바로 그 탐색자다. 몸에 줄무늬가 나 있으며 2000m 수심에 산다. 왕 큰 줄치는 지금 갈림길 협곡에 머무르고 있다. 갈림길 협곡에는 빛이 한 점도 들지 않아 시각 외 수단을 정교하게 발달시킨 종만 고생하지 않고 지날 수 있다. 해저 동굴의 일종인데 크기가 커서 협곡이 되었고 가장 안에는 대왕 오징어들이 누워서 휴식한다. 대왕 오징어들은 성정이 포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성을 먹고 사는 이 어류들은 다른 바다의 생물들에 비해 약 2.5배 정도의 평균 수명을 갖고 있다. 이 신이 녹은 바다와 다른 바다의 경계에는 끝없이 원형으로 순환하는 대형 정어리, 멸치 떼가 있다. 그들을 아웃 벨트라고 부르고, 혹등고래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아웃 벨트를 몸으로 견뎌내며 뚫고 올 수 있을 만한 생물은 거의 없다. 왕 큰 줄치는 풍등 고래 떼의 수장인 만물박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만물박사는 온갖 지식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도 다른 바다와 마찬가지로 고래의 음성 기관에서 비롯된 초음파 언어가 널리 쓰이는데, 영어 이전의 라틴어가 그랬듯이 그 언어의 역사 흔적은 길게 펼쳐져, 도플러 효과처럼 지형이나 먹이에서 그 음파의 반향이 되돌이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바다에서 태양은 제2 제3의 신, 그러니까 거짓 신인 위신으로 통하는데, 해저 화산의 분출에 대한 미신적인 신앙이 여기에 속한다. 태양과 해저 화산의 분출의 공통점은 둘 다 뜨겁다는 것이다. 메리아케 나일다니스가 만물박사에게 찾아와 왕 큰 줄치에게 말을 건다. 그의 등에는 별 모양의 반점이 있다. ‘내 등 뒤에는 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심해의 진짜 예술가들이라 불리는 야광 어류가 성기게 이곳을 둘러싸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는 것……. 저 아래에는 죽은 인간들이 걸어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거짓 신 중에는 달도 있다. 영원 류가 재생을 통해 죽지 않고 산다는 걸 달에 빗댄 어느 음유 시인의 노래도 있다. 어류들은 기본적으로 장수에 대해 호의적인데 영원 류의 영생에 대해서는 그것이 자유로이 헤엄치는 삶이 아니라면서 경멸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 녹은 신성의 정체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음식을 섭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여기에서 아주 잔잔히 있다. 해류에 휘말리는 해양 쓰레기들처럼. 트리아게돈 아타락시아는 그 신의 흔적을 뒤쫓고 있는 물고기다. 집에는 성해포의 일부분이 보관되어 있고 가까이 가면 신성의 농도가 짙어진다. 그래서 그의 집은 여러 물고기들이 찾는 인기 장소다. 그 신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파스토마스라는 해저 뱀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펍에는 아웃 벨트의 정어리, 멸치 떼를 뱃속에 넣고 소화시키는 고래들이 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