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3일 화요일

저택 양펭

초라한 사람. 쓸쓸해 보이는 사람.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 회의 중인 사람. 그런 사람들이 저택 양펭의 거실에 앉아 있다. 소파에 몸을 뉘이고들 있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기도 하고 말이 없어질 때도 있다. 거실 뒤편에는 연극용 소도구들이 널려 있다. 키 큰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무표정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양펭에 머무르고 있는 식객들이다. 격정적인 사람이 격정적인 몸짓으로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거실 옆에 그런 무대가 있다. 그 연극 안에서는 어떤 인물이 사랑하는 이를 잃는데(그건 오해이지만) 되돌아온 반지 하나를 보고 오열한다. 그런다고 오열하다니. 울음이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어울리기도 한다. 그런 우는 사람이 초라한 사람이 된다.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 된다.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이 된다. 회의 중인 사람이 된다. 저택 양펭의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창밖을 손으로 쓸어가는 사람. 김이 서린 창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는 사람. 여름밤이고 일종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이곳 거실에 감돌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이 일치하는 일이다. 그 반지의 경우 특별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나도 당신도 평범하게 생겼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겨 있는 듯하다. 잠에 빠진 사람.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만지는 사람.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 한번 들여다보자. ‘이 저택의 주인은 이 안에 있음.’ 사람들이 여름밤에 머무르면서 그 머물러 있음에 어느 때는 혼미해지기도 한다. 저택의 주인은 300년 동안 살아 있었던 마녀라는 소문도 있다. 이 저택의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 한다. 이 저택이 사람들을 홀리는 것은 아니다. 이 저택에 오면 평범해지게 되고 그래서 쉴 수 있다. 천국이 세속의 악을 도려내고 아주 지루한 마취 상태에 가깝다면 여기서는 이미 늙어 시간의 속도가 빠르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시간의 속도가(체감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 사람들은 이 저택을 욕망하는데, 늙지 않은 어린 사람들의 경우에도 너무 느린 시간의 속도 때문에 욕망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먼발치에서 실제로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양펭을 평범하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런 이들이 저택에 물자를 들여온다. 특별하거나 평범하다는 건 뭘까? 특별한 것은 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것도 귀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리는 궤적은 대체로 특별한 것이고 짧은 제스처 같은 것은 흔한 것이다. 옆의 무대 위에서 격정적인 몸짓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저치는 특별하다. 넘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평범하기도 하다.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택 양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평범해질 수도 있고 특별해질 수도 있다. 평범은 어쩌면 중간이다. 그것은 평행선 위에 그어놓은 빗금이고 그 빗금은 자신이 중간 지점이라고 무작정 우긴다. 그에 다 속아서, 사람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양펭의 시간은 왜곡되어 있고 연극을 다 본 후의 후련한 감정을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느끼는 일도 있다. 저치는 24시간을 연극을 하고 있고 격정적인 사람은 그 격정에 어울리는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 있다. 키 큰 사람은 그로 인해 독특해져서 평행 세계 너머의 같은 조건으로 키 작은 사람과 같은 소파에 앉아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은 곧이어 노래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사람이 된다. 비바람은 아직 몰아치고 있다. 내일까지는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창밖을 보던 사람은 아직도 창밖을 손으로 쓸어가고 있다. 김이 서린 창에 낙서를 하던 사람은 그 낙서가 지금부터도 이어질 것이라 이미 한 창문을 다 채웠다. 잠에 빠진 사람이 아직 잠들어 있다. 부스스한 머리의 사람은 아직도 머리가 부스스하다.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던 사람의 수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 왜 뭔가를 쓰지 않고 단지 말 줄임표를 쓴 것일까. 입을 여는 사람 한 명도 없고 졸린 기색의 사람들이 하나씩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와 너는 꽤 멀리 떨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이 저택에서는 쉴 수 있다. 천국은 아니지만. 늙은 자들이 시간을 잡아 찢어 자신에게 걸맞은 연속된 흐름을 아주 진중하게 느끼고자 할 때 댕- 댕- 하며 괘종시계가 울린다. 어린 손님들이 시간의 밀도를 아주 응축시켜 미래의 자신이 느낄 것을 한 번에 느끼고자 할 때 댕- 댕- 하며 괘종시계가 울린다. 괘종시계는 말이 없다. 중간값에 고정된 사람들이 중간값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미숙하고 철 지난 학술 토론처럼 자신의 심상으로 현실을 옭아매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러면서 사람들이 쉴 수 있다. 이 저택의 좋은 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좋은 점은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저택에게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부모의 지원으로 여기에 뭔가를 배우러 들어온 어린아이들도 있고, 지금껏 모아놓은 돈으로 여기서 임종을 맞이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 죽은 사람은 이 저택의 격식과 절차대로 장례를 치른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환영이라고 볼 수도 있을 법하다. 이 저택 자체도 환영일 수 있다. 어느 가시 장미들이 덮인 담벼락, 그 중앙에 쇠창살로 된 문이 있다. 그것은 환영이 아니다. 밖이 100%이고 안이 0%라면 저 문은 50%이다. 문이 열릴까, 안 열릴까? 문이 열린다면 들어가야 할까? 처음에 문 앞에서 의기소침해졌던 사람들은 모두 망설임을 이겨내고 이 안까지 당도한 것이다. 나갈 때도 물론 마찬가지이리라. 비바람이 아직 몰아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저택 양펭은 조용하고 굳건한 것처럼 보인다. 네프티스는 150년 전 큰돈을 벌어 이 저택을 지었다. 그를 찾아내면 ‘안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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